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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국제 건축 양식

소수의 걸작과 다수의 졸작의 시대

ARCHITECTURE OF THE 1970s – Masterpiece vs Mediocrity : The Second International Style

1970년대 제2차 국제 건축 양식
아방가르드가 주류로, 이상주의가 상업주의로
자본주의적 기성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이념적인 이상주의(idealism)가 사회와 예술문화 분야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1960년대가 막을 내리고 1970년대가 출범했다.

1960년대 말, 유럽과 미국 사회를 한바탕 혼란과 자각적 환기로 몰아 넣었던 플라워파워 세대를 향해 반격의 일타를 가하기라도 하듯, 197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었고 이어서 1960년대말 저항 록음악의 대명사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가 줄지어 그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으며 전설의 록밴드 비틀즈가 해체했다.

전세계의 냉전 구도는 팽팽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다국적 기업들은 나날이 대규모화되고, 지속적인 경제 부흥을 유지하기 위해서 광고와 마케팅은 그 언제보다 정교하고 세련되어 졌으며, 사람들의 일상 생활은 나날이 윤택하고 편리해 졌다. 우주 공상과학 영화 《스타워즈 (Star Wars)》와 TV시리즈 《스타 트렉 (Startrek)》은 정치적 냉전시대를 반영이나 하듯 선악(善惡) 모럴과 목적론적 낙관주의로 미국인들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는 동안에, 전에 없이 많아진 공중파 라디오에서는 귀를 거스르는 60년대풍 록음악 대신 한결 듣기 편한 소프트록과 디스코가 대중들의 정서를 차분하게 길들이고 있었다.

1970년대, 저항 및 주변 세력의 주류화 (mainstreaming)와 아방가르드의 상업화 (commercialism)는 건축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세기 전반기 구축된 모더니즘 건축을 주류 건축의 표본으로 삼아 대규모로 상업화하기란 건설업자들 측에서도 효율적이었다. 단순간결하기 때문에 측정 표준과 기준 치수를 표준화하기에 매우 쉬우며 따라서 무한대로 반복사용할 수 있다는 모더니즘 건축의 장점 때문이었다.

그 결과, 건축물 바깥 모습은 대체로 철골과 유리판으로 뒤덮힌 따분한 육방체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고, 건축 실내는 상상력이나 변조적인 공간이 불가능한 천편일률적이고 뻔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시대 건물들에서 발견되는 무미건조하고 커다락 상자 미학은 디자인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는 20세기 초엽부터 1930년대까지지 무렵에 형성된 바우하우스 (Bauhaus) 건축 양식에서 비롯된 제1차 국제 건축 양식의 겉모양새를 본따서 쓰되 그 외형을 대중 주택 건설 프로젝트, 학교, 병원과 보건소, 도시 설계 등과 같은 공공 건축 건설 사업에 널리 두루 활용된 ‘모더니즘 건축의 무더기 대랑 생산의 시대’로 정의된다. 혹은 건축 디자인사에서 흔히 도는 평가에 따르면,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의 시대 특히 1970년대에 서구 구미 세계 도처에서 창궐한 모더니즘풍 건물과 고층 빌딩은 1930년대 즈음부터 서서히 보편화되기 시작한 ‘제1차 국제 건축 양식의 답습과 반복’의 결실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는 건축 사진의 조작과 연출의 시대이기도 하다. 《아키텍쳐럴 다이제스트 (Architectural Digest)》 (줄여서 《AD》라고 부른다.) 같은 건축 전문 잡지를 통해서 보여지는 건축 사진 이미지가 현실 속에서 실제 건축물을 보고 느끼는 일반인들의 시각적 판단력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AD》誌가 자랑하는 특유의 사진 촬영 기법과 편집 방식은 건축 실내외 공간에 활기차고 실험적인 느낌을 잘 부각시킨 예로 꼽힌다.

이 시대의 건축 연출 사진은 또 1960년대 말부터 서구 사회에 만연해진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적이고 이국적 색채를 현대적 감각으로 각색해 다채롭게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로 부터 비롯된 미적 감각 곧 뒤이어 1970년대 말엽 부터 고개를 들어 1980년대를 호령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건축의 등장을 앞서 예고하는 원인이 되었다.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으로도 부르는 1970년대의 모더니즘 건축은 보다 일찌기 세워진 거장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작품의 외형만을 이리저리 적당히 배끼고 변형해 대량으로 공급한 ‘모사 건물 (imitation architecture)’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30년대 전후,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가들을 주축으로 해 근대적 유토피아 세상 건설이라는 야심찬 이상(理想)이 건축을 통해서 단발적으로 지속되다가, 20세기 중엽에 이르자 이른바 ‘국제 건축 양식 (International Style in Architecture)’은 대학과 건설업계에서 점차 일종의 건축 관습의 하나로 굳어져 갔다.

특히 1970년대에 접어들자 전세계는 구미권과 제3세계권 할 것 없이 도처 구석구석에서 크고 작든 규모에 상관없이 온통 사각형 모양을 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철근을 심은 콘크리트 벽과 강철 건물 골조에 유리나 금속판을 끼워 넣거나 매어 다는 시공 기법은 20세기 전반기만 해도 신소재와 형상의 잠재적 미학을 극한으로 밀어 부친다는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실험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혁신적인 사상도 세월이 지나면 타성의 산물로 변하는 법이던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그같은 요소들은 건물짓기의 표준 공식 내지는 표준 시공 요소로 보편일반화 되기에 이르렀다.

혁신적인 모더니즘 건축의 계승 그리고 타성화
사실상 따지고 보면 1970년대 즈음이 되어서 모더니즘 건축을 전보다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경지로 더 밀어붙이겠다는 야심은 그러나 말처럼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거 20세기 전반기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건축 명인들은 모더니즘 건축이 이룰 수 있던 결실 면에서 이미 높은 성취도에 이르렀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1940년대 전후 이후로 본격화된 전세계 건축붐을 타고 전에 없이 많은 건설 주문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모더니즘풍 건물을 선호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또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의 1970년대는 유럽에서 온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들이 미국 유수의 건축 대학에 자리를 잡고 후배 건축가들을 키워낸 신세대 건축가 대거 배출의 시대이기도 했다. 1930년대 독일 나치 정권이 유태인들은 물론 예술가, 건축가, 과학자들을 대거 배척했던 이유로 해서 그 결과 다수의 재능있는 건축가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오면서 미국은 단숨에 건축과 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수지를 맞았던 것이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나치와의 협력을 거부하고 1934년에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1937년에 하버드 대학의 건축학과 학과장직을 임명받고 미국으로 가 정착했다. 독일의 건축가 디자이너인 마르셀 브로이어 (Marcel Breuer)도 뒤따라 하버드에서 그로피우스와 나란히 대학 강단 생활을 했다. 20세기초 다다이스트 겸 초현실주의자 모홀리-나지 (Moholy-Nagy)는 새 바우하우스를 미국에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1937년에 미국 시카고로 건너갔으며, 요제프 알버스 (Josef Albers)는 브랙마운틴 칼리지(블랙 마운틴 칼리지는 라우셴버그, 재스퍼 존스 등 1940-50년대 전후 미국 추상 미술의 주도적인 미술가들을 배출했다)와 예일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가르쳤다.

1970년대 건축계의 군계일학들
건축 구조 공학 전문가로서 더 빛을 발한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로베르 마이야르 (Robert Maillart), 프랑스의 외젠느 프레시네 (Eugéne Freyssinet), 이탈리아의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 (Pier Luigi Nervi)는 자칫 차갑고 무미건조한 모양으로 전락하기 쉬운 콘크리트 소재에다 상상력과 합리적인 감각을 결합한 독특한 미학적 인상을 남긴 건축가들로 꼽힐만 하다.

특히 네르비는 일찌기 1940년대 부터 이탈리아 투리노 전시장 건물(1948-49년), 파리 유네스코 빌딩(1953-58년, 마르셀 브로이어와 베르나르드 체르푸스 (Bernard Zehrfuss) 공동 설계), 호주 퍼스 뉴 노르시아의 교회당 건물(1960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육중한 콘크리트 안에 강철망을 심는 그만의 기법을 고안해서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마치 자유롭게 흐느적거리는 듯한 유연미끈한 곡선을 연출할 수 있었다.

호주 시드니의 명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Sidney Opera House, 건설 기간 1957-73년)는 덴마크의 간판급 모더니즘 건축가인 요른 웃존 (Jørn Utzon, 1918년 생)의 대표적인 역작이며,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에에로 사아리넨 (Eero Saarinen)은 1962년도에 완공된 미국 워싱턴 D.C. 덜레스 국제 공항 (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을 설계를 맡아서 전에 보지 못한 전격적으로 새로운 구조 공사 해법을 발휘해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역시 핀란드 출신의 거장 모더니즘 건축가인 알바 아알토 (Alvar Aalto)는 20세기가 낳은 주류 모더니즘 건축가들과는 차별되는 색다른 모더니즘 철학을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0년대 중엽 이후부터 1970년대로 접어들 때까지 40여년에 걸친 건축 생애를 살면서 여타 건축가들이 그토록 찬양해 마지 않았던 산업용 소재들 예컨대, 강철, 콘크리트, 대형 통자 유리판, 알루미늄 등을 건축물에 도입하는 것을 끝까지 부인했다. 그리고 그대신 아알토는 핀란드 특유의 광활하고 친자연주의적 미학과 공간 개념에 기초하여 친숙하고 감각적이면서도 과장이나 일편의 가식이 제거된 순수미의 신경지를 개척했는데, 그래서 그는 주로 자연석, 원목, 구리 이음새 만을 사용하여 실내 공간 전체에 햇빛을 최대한 들이고 분배할 줄 안 세련된 공간 창조의 명수로서 20세기 건축사에 길이 기억되고 있다.

1970년대 건축계에서 빛의 조율사 라고 하면 또 떠올릴 수 있는 이름으로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 (Louis I. Kahn)을 들수 있는데, 미국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가로지르며 활약한 그는 루이스 설리번 (Louis Sullivan)이 선언한 그 유명한 모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를 새롭게 해석하여 기능이 건축물의 모양을 결정짓는 건축을 추구했다. 특히 그가 설계하여 1972년에 완공을 본 텍사스 포트 워스의 킴벨 미술관 (Kimbell Art Museum)은 건물 내부의 긴 통로의 천정 공간에 빛을 오묘하게 조절하는 대들보를 설치하는 방법을 통해서 장대한 분위기를 연출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서 1970년대 국제 건축 양식이 널리 보편화되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건축가는 미국의 필립 존즌 (Philip C. Johnson)이었다. 하버드 대학 건축학교 발터 그로피우스의 제자이기도 했던 그는 모더니즘 건축계 최고의 카리즈마적 거장 미스 반 데어 로헤 (Mies van der Rohe)와도 친분을 나누었는데, 일찌기 1951년에 미스 반 데어 로헤와 함께 시키고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고층 아파트 건물 설계를 함께 담당하기도 했다. 곧이어 1956-7년, 존슨은 뉴욕 시그램 양주 제조사 본부 건물 설계 프로젝트를 따서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바우하우스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헤와 함께 공동 설계하는 영광을 누렸다.

올 2005년 1월에 98세의 나이로 타개한 것으로 보도된 필립 존슨은 독일 나치주의에 가슴 깊이 동조했다는 어두운 내면의 소유자로서 건축사 뒤안길에 남아 있지만, 또 한편으로 생전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을 뺨치는 적극적인 자기홍보가였으며,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을 능가할 만큼 명성과 글래머를 일관적으로 추구했던 맹렬한 건축계 커리어리스트로도 기억되며, 오늘날 프랭크 게리 (Frank Gehry)에서 자하 하디드 (Zaha Hadid)에 이르기까지 현대 건축계의 수퍼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A급 건축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을 안겨준 인물이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20여년간 뉴욕 근대미술관 (MOMA) 의 건축담당 디렉터직을 맡으면서 바우하우스 건축 미학의 열렬한 옹호자로 활약했던 필립 존슨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마천루의 본고장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창조하는데 큰 획을 그은 장본인이었다.

1950년대 이후 전후 미국 대도시에서 전격적으로 전개된 마천루 (Skyscrapers) 건설붐은 오늘날 1970년대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을 논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기념비적 건축물 건설을 가능케 했다. 1970년대보다 앞서 1950년도에 완공된 뉴욕 국제 연합 기구 빌딩 (United Nations Building)은 미국 빌딩붐을 선포한 최초의 전후 미국 건축의 르네상스를 예고한 상징물이다.

“Less is more” 라는 건축 철학을 토대로 본래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어 로헤가 1930년대 초엽에 독일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학교에서 착상해 두었던 단순 간결한 실용주의적 기능주의 (utilitarian functionalism) 컨셉을 기초로 설계된 이 국제 연합 빌딩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어 로헤가 제외된 국제 건축가 팀의 단체 협력으로 설계를 마쳤다. 그런가 하면 최근들어 건축계의 재조명을 받고 있는 브라질의 이상주의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 (Oscar Niemeyer)는 한 건축가의 비젼이 어떻게 유토피아 국가 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놀라운 예로 꼽을 만하다.

흔히 1970년대의 모더니즘 건축은 대기업과 대형 정부 조직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일반인들로부터는 외면당한 반쪽의 건축 양식이었다고 평가되곤 한다. 20세기 전반기의 제1차 국제 건축 양식이 중소형 규모의 공공 건물이나 거주용 개인 주택을 통해서 모더니즘 시대의 새로운 건축과 실내 공간을 실험했다면, 20세기 후반의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은 모더니즘의 모태와 뿌리로부터 단절되어 냉냉하고 비인간적인 한 편의 거대한 기념탑으로 변질되었다.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은 대기업이나 정부 조직체의 재력이나 행정력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아이콘이었으나 반면에 건축의 외형이나 실내 구조는 인간에 대한 배려(예컨대 핀란드 건축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휴먼 스케일 (human scale)은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1960년대 이후 건축 생애의 말년에 접어든 르 코르뷔지에가 유독 인간의 영혼과 건축의 조화에 관심을 두었던 사실이나, 벅민스터 펄러 (Buckminster Fuller)가 환경주의 건축과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그쳤던 점,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무자비한 고건물 건축붐에도 아랑곳 않고 건축물의 상징성을 일관적으로 표현했던 에에로 사아리넨의 건축 정신이 유독 소중하게 재검토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 이 글은 본래 『공간사랑』 지 2005년 6월호 “History of …” 컬럼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다시 게재한 것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