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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이 되었던 곳

FLEMISH LANDSCAPE PAINTING

플랑드르 지방의 풍경화 감상하기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인 지난 2002년 봄과 여름철, 빈에 있는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부설 전시장인 하라흐 궁 (Palais Harrach) 에서는 『플랑드르 정물화』 전시를 열어서 미술 애호가들과 관광 방문객들의 큰 호응을 모았었다. 역사적으로나 언어와 문화면에서나 플랑드르 지방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미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네덜란드의 일부 영토 내지는 주변적 문화권으로 두리뭉실 취급되어 왔던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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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반 발켄보르흐의 『볏짚이 있는 여름철 풍경 (7월 혹은 8월)』 1585년 작 ©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그같은 점에 착안해서 빈 미술사 박물관이 기획해 전시로 부쳤던 『플랑드르 정물화』 전을 통해서 일반 대중 미술 관객들은 물론 전문가들에게 네덜란드 회화와는 구분되는 플랑드르 회화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규명하고 거장 화가들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 교육적 성격이 강한 전시였다.

2년전의 그같은 대중 관객들의 호응도와 전시 연구 성과의 여세를 몰아서 이번에는 『플랑드르 풍경화 (Flemish Landscape Painting)』를 주제로 빈 미술사 박물관은 과연 플랑드르 풍경화의 전형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 모색의 결과를 보여주는 전시에 한창이다. 전세계 유명 박물관들과 개인 소장처들로부터 대여해 온 대표적인 플랑드르 풍경화들의 수는 총 유화 작품 130점과 스케치 및 그래픽 작품 18점.

지난번 『플랑드르 정물화』 전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가 성사되기까지 빈 미술사 박물관의 회화 학예 원구원들은 독일 에쎈의 빌라 휘겔 박물관의 루르 문화 재단 (Kulturstiftung Ruhr in der Villa Huegel at Essen)과의 연구 협력과 소장품 전시 대여 공유 협의 끝에 이 전시를 성사시켰다고 한다.

보다 일찌기 이미 1988-89년에 미술관 방문객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의 『17세기 프라하 미술 (Prague around 1600)』 展과 이어 1997-98년 『브뢰겔 형제의 회화 (Breughel-Breughel)』 展도 바로 그같은 공동 전시 기획 연구의 결과였으며, 특히 이번 『플랑드르 풍경화』 전시를 위해서는 플랑드르 회화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벨기에 안트워프 왕립 미술관 (Koninklijk Museum voor schone Kunsten in Antwerp)까지 가세했다.

우선 플랑드르란 어떤 곳일까가 궁금해 진다. 1970년대에 어린이 만화 방송을 보고 큰 세대들은 만화 영화 시리즈 『플란다스의 개 (The Dog of Flanders)』를 기억하시리라. 천사처럼 맘 착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농촌 소년 네로와 늙은 개 파트라슈의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를 담은 만화 『플란다스의 개』가 배경으로 했던 곳은 바로 플랑드르였다. 나무 울창한 숲과 녹색 잔디 구릉, 포를러 나무가 늘어 선 농촌길, 옹기종기 모여 선 농가 마을 – 만화 속에서 정형화되어 버리다 시피한 플랑드르 지방 농촌의 전형화된 단편적 이미지들이지만 플랑드르의 자연 풍경을 어림짐작해 보는데 아주 쓸모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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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브뢰겔 (아버지, Jan Brueghel d.Ä.) 『한 강가의 생선시장 (Fischmarkt am Ufer eines Flusses)』 1605년 작 © München, Bayerische Staatsgemäldesammlungen, Alte Pinakothek.

플랑드르 지방 영토는 오늘날 벨기에가 차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보자면 오늘날 네덜란드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유럽 중세기에 속하는 14-15세기에는 프랑스령 하에서 농업과 양모 수출로 번성했던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지만, 1830년 혁명이 터지기 전까지 벨기에는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나폴레옹 프랑스에 걸친 외부 열강들의 지배하에서 시달렸던 고난과 아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묘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정치적 격동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던 플랑드르 지방에서 17세기 이후부터는 스페인,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외부 정권의 압력과 끊이지 않는 종교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서 15-16세기와 같은 미술 전성기를 다시는 경험하지 못했다.

플랑드르가 14세기 이후로 적어도 17세기까지 미술 문화의 절정기를 이룩하게 되기까지에는 중세 시대 플랑드르 영토의 프랑스 군주들이 일찌기 확립해 놓았던 황실 미술 후원 전통과 양모 무역이 가져다 준 재정적 번영의 덕이 톡톡이 차지했다. 지금도 벨기에가 자랑하는 옛 역사적 무역 중심지 하알렘 (Haarlem)에서는 조각가 클라우스 슐루터와 화가 멜키오르 브로덜람이 활동했고, 북부 유럽의 양모 무역의 중심 도시던 브루게 (Brugge)에서는 중세의 거장 화가 얀 반 아이크 (Jan van Eyck)가 프랑스 황실 전속 화가로 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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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뢰겔 (아버지 Pieter Bruegel d. Ä.) 『소떼를 이끌고 귀향하는 길 (Die Heimkehr der Herde)』 1565년 작 ©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플랑드르 지방 화가들의 혁신적인 창의력은 또 남다르기로 유명해서 선배 대가들의 양식을 추종하고 모방하기 보다는 저마다의 전문적인 특기를 발전시키는 재주를 발휘하곤 했다.

흔히 유화 물감의 발명가로 알려져 있는 얀 반 아이크는 유화의 풍부한 색채성과 질감을 개척했다고 한다면, 이어 16세기와 17세기에 피터 브루겔과 피터 폴 루벤스는 이탈리아에서 배워 온 성숙된 화면 구도법과 육중하고 감각적인 바로크 미술의 고전미를 완성했다고 일컬어 진다. 『플란다스의 개』의 결말 부분에서 네로가 얼어죽기 직전 추운 겨울 교회당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바라봤던 대상은 바로 안트워프 성당 안에 걸려 있는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였다.

또 15세기말 북유럽 고딕 시대를 마무리하던 시대에 인간의 욕망과 죄악을 환상적 상상력과 기괴한 알레고리로 표현했던 히에로니무스 보슈 (Hieronymus Bosch), 17세기 영국 황실 화가로 명성을 누렸던 신동 화가 안토니 반 다익 (Anthony van Dyck), 플랑드르 정물화의 귀재 프라스 슈나이더 (Frans Snyder)는 플랑드르 출신의 거장화가들이다.

피터 브뤼겔과 그의 두 아들 피터 브뢰겔 (Pieter Brueghel the Younger (성서의 최후의 심판을 즐겨 그려서 ‘지옥 브뢰겔 (Hell Brueghel)’이라는 별칭으로 불림)과 얀 브뢰겔 (Jan Brueghel (벨벳 천을 실감나게 잘 그려서 벨벳 브뢰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정물화가로 활동)도 풍경화라는 국한된 쟝르와 상관없이 이 지방이 배출한 걸출한거장 화가들이다.

이번 “플랑드르 풍경화” 전이 유독 촛점 삼고 있는 시기는 1520-1700년까지. 그러니까 플랑드르 지방이 자리해 있는 북서부 유럽에서는 바로크 시대가 지배하고 있던 16세기초부터 18세기까지가 되겠다. 플랑드르 지방의 회화,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풍경화가 북방 네덜란드의 그것과 본격적으로 분리되어 독자적인 쟝르로 전개되기 시작한 계기는 다름 아닌 반종교 개혁 운동 (Counter Reformation). 즉, 북부 네덜란드가 프로테스탄트 신교를 인정한데 반해서 플랑드르와 브라방 지방을 포함한 남부 네덜란드에서는 신교를 배척하고 카톨릭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구 카톨릭교를 고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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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베르프의 한 화가 [약 1540년 경 활동했던 마티스 쿡 (Matthys Cook(?))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가 그린 『위대한 성녀 카타리나가 있는 풍경화 (Landschaft mit der Marter der Hl. Katharina)』 © Washington, National Gallery of Artm Samuel H. Kress Collection.
1517년 독일의 마틴 루터가 구 카톨릭 교회 권력의 지나친 권력과 부패를 비판하고 성서를 중심으로 기독교 교리를 재해석하면서 돌발한 기독교 종교 개혁은 거듭된 반종교 개혁 운동 끝에 북부 독일을 포함한 그 이북 유럽에서는 성공했지만 플랑드르를 포함한 그 이남 유럽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적어도 미술 분야에 있어서, 플랑드르 지방을 지배한 카톨릭 교회 전통은 프랑스 궁정풍의 위풍장대한 바로크 미술 양식이 후원받으면서 발전할 수 있었던 자양분을 제공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 셈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제를 빌어오거나 성서 속의 일화를 해석한 종교화와 역사화가 회화 미술의 주류를 이루던 서양 미술사에서, 정물화와 풍경화 장르는 흔히 네덜란드가 탄생시킨 고유의 발명품이라고 여겨져 왔던게 상식이다. 본래 풍경화란 북부 네덜란드에서 처음 도입해 온 것으로소, 실제로 이번 전시가 플랑드르식 풍경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1520년경인 16세기 초엽만 하더라도 플랑드르에서 풍경화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한 낯선 그림 쟝르에 불과했다.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미술 전문가들에 따르면 풍경화가 정물화 보다 약간 앞서서 독자적인 그림 쟝르로 독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종교화나 역사화 속 한 구석에 들러리처럼 끼워넣어진채 묘사되던 바깥 자연 풍경과 실내 인테리어나 야채, 과일, 먹거리 등이 확대경처럼 한 폭의 그림 속 그 자체로 묘사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플랑드르 정물화가 인생무상 (人生無常), 절제와 검소의 미덕, 기독 성서 내용 알레고리, 거리의 활기찬 시장 광경이나 음식거리와 식기가 널려있는 풍성한 식탁 묘사로 지속적인 가내 평안과 번영 기원 등을 묘사한 교훈용 그림이었다고 한다면, 풍경화는 기독교적 요소와 자연을 모티프로 삼은 화가의 판타지 그림의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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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 – 1640) 『숲 속의 연못 (Der Teich im Walde)』© Vaduz, Sammlungen des Fürsten von und zu Liechtenstein.

오늘날 일반인들에게도 어지간히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바로크 회화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 (Pieter Paul Rubens)라든가 피터 브뤼겔(아버지 Pieter Brueghel the Elder) 등은 플랑드르 회화 전통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거장들이다.

이들은 다름아닌 당시 플랑드르 지방의 중심 도시던 안트베르프 (Antwerp)와 브뤼셀 (Brussel)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플랑드르식 정물화와 풍경화 전통을 구축해 나갔던 장본인들이었으며, 그들의 기량과 재간은 가히 유럽 대륙 곳곳에서 칭찬이 자자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피터 브뤼겔의 걸작 풍경화들과 드로잉들 중 일부는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이 애지중지하는 대표적인 영구 소장품들이다. 당시 16-17세기 플랑드르 화단이 그 절정의 꽃봉오리들을 만개하도록 기여한 우수한 풍경화가들은 또 있다. 헤리 멧 데 블레스 (Herri met de Bles), 얀 반 암스텔 (Jan van Amstel), 코르넬리스 마시스 (Cornelis Massys), 루카스 가셀 (Lucas Gassel) 등은 비록 네덜란드-플랑드르 미술사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에서나 알려져 있는 다소 생소한 이름들이긴 하지만 16-17세기 플랑드르 풍경화가 독립적인 쟝르로 자리잡기까지 없어서는 안됐을 일등공신들이었다.

또 1570-1610년대 즉, 16세기말과 17세기초에 이르는 시기 동안 안트베르프와 브뤼셀을 거점 삼아서 그림을 그렸던 화가 작업실들이 번성했다. 화가들은 저마다 조수 화가와 견습생들을 두고 신흥 부유층 고객들의 주문에 응해 그림을 그려냈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히 화가들 사이에서는 제나름마다의 특기를 부각시켜서 독자적인 양식을 고집하는 전문화 현상이 전개되었다. 16세기 동안만 해도 일명 “세속 풍경화 (world landscapes)”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인기를 끌었던 보편적인 풍경화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그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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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브뢰겔 (Jan Brueghel d.Ä., 1568 – 1625)과 피터 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 – 1640) 협동 제작한 회화작품 『아담과 이브의 타락을 묘사한 세속적 천국(Das irdische Paradies mit dem Sündenfall von Adam und Eva)』1615년 경 작품 © Den Haag, Mauritshuis.

산수 풍경 약간, 숲과 강가 풍경 약간, 마을 풍경과 인물상 약간씩 골고루 섞은 절충무난한 세속 풍경화 대신, 이 시대에 들어서부터는 그림을 주문하는 고객들은 풍경화를 구성하는 여러 자연 풍경 속의 요소들 가운데에서 한 두가지 주제를 강하게 부각시킨 세부화된 풍경화를 원하기 시작한게 그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16세기말-17세기초 플랑드르 풍경화는 산수 풍경화, 마을 풍경화, 바다 풍경화, 조감도식 풍경 기록화, 사시사철 풍경을 묘사한 계절 풍경화, 성서나 상상 속의 천국 풍경화, 환상 풍경화 등 전에 없이 세분화, 환타지화되었다. 미술사에서 이 시기의 플랑드르 풍경화 유행 현상을 두고 “후기 매너리즘”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다 빈치, 미켈란젤로, 이어서 라파엘로로 이르는 전성기를 이룩했다면, 플랑드르 정물화는 17세기초에 피터 폴 루벤스와 더불어 그 절정기에 다달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때는 시기상 서양 미술사에서는 바로크 시대로써 루벤스는 풍경화 분야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대혁신을 이룩했다고 평가받는다. 루벤스의 손재주로 인해서 풍경화 속의 대기와 자연은 마치 살아있는듯 숨쉬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풍의 세련된 구도법과 플랑드르 회화 전통의 육중하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이 프랑스 바로크 궁중 회화를 영광되게 드높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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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반 발켄보르흐의 『겨울철 풍경 (1월 혹은 2월) Winterlandschaft (Januar oder Februar)』 1586년 작 ©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얀 빌덴스 (Jan Wildens), 루카스 반 우덴 (Lucas van Uden), 그리고 브뤼셀 화파 소속 화가들 (로데빅 데 바아더 (Lodewijck de Vadder), 자크 다르투아 )Jacques d’Artois), 루카스 아체링크 (Lucas Achtschellink), 다니델 반 하일 (Daniel van Heil), 코르넬리스 호이스만스 (Cornelis Huysmans)는 루벤스를 스승삼아 루벤스 회화 전통을 충실하게 추종한 후계 풍경화가들이다.

모름지기 풍경화 (landscape painting)라고 불리는 그림 쟝르는 동양의 산수화 (山水畵)나 서양의 풍경화 (風景畵)든 그 출발은 화가의 상상 속에서 재구성된 이상화 (理想化)된 경치를 화폭에 담는 것에서 출발했다. 고대 로마의 프레스코 벽화, 중국 고대의 산수화, 15세기 서양 르네상스 미술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초상화나 기록화를 위한 배경 처리적 요소로 활용되다가 16-17세기에 와서야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화가들에 의해 비로소 독립적인 그림 주제로 인정받게 되었다.

풍경화는 19세기말에 접어들면서 가장 눈부신 발전을 했다고 평가되는데, 분명 터너, 콘스터블, 세잔느, 반 고흐 등 오늘날 일반인들이 즐겨 감상하는 19세기 인상주의 및 후기 인상주의 풍경화는 바로 그 대표적인 결과였으니 분명 서양 풍경화의 역사에서 플랑드르 풍경화는 분수령적인 공로를 했음에 분명하다.

*이 글은 본래 『오뜨』지 2004년 3월호에 실렸던 것으로 편집되기 이전의 글을 그대로 실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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