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수퍼스타인가?

The New Yorker Cover Story Purple Rain May022016
RIP Prince (1958-2016) – Prince has passed away.  Purple Rain, The New Yorker Cover Story Purple Rain May 2, 2016 Issue, illustration by Bob Staake

RIP Prince (1958-2016) – Prince has passed away.

SUPERSTARS … THROUGH THE EYES OF ART …

현대 미술을 통해서 나타난 수퍼스타들의 천태만상

…나는 모르겠네.
내 기분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당신은 무슨 수퍼스타임에 분명할꺼야.
당신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까… 
(2003년에 발표된 제멜리아 데이비스 (Jamelia Davis)의 R & B 유행곡 『수퍼스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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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광경 중에서 아드리안 트란킬리 (Adrian Tranquilli)의 설치작품 『These Imaginary Boys』 2004년 작. Courtesy Studio Stefania Miscetti © the artist Photo: Stephan Wyckoff.

두 미술 전시장에서 열리는 한 편의 대형 현대미술 전시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한 겨울을 장식했다. 현대 미술을 전문적으로 기획전시하는 쿤스트할레 빈과 오스트리아 은행 (Bank Austria) 재단이 운영하는 BA-CA 쿤스트포룸이 공동으로 기획하여 전시로 부친 『수퍼스타 (Superstars)』 전이 바로 그것이다.

‘수퍼스타’라란 오늘날 전세계 어느 언어권에서도 누구나가 알고 있는 보편 어휘가 되었다. 스퍼스타란 무슨 뜻이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잠시 권위있는 영어 사전들의 정의를 살펴보자면, 옥스포드 영어 사전은 수퍼스타란 매우 유명하고 성공한 공연자나 운동 선수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메리엄-웹스터 영어 사전은, 1. 매우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대중에게 인기가 많고 높은 보수를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운동이나 영화계의 스타, 혹은 2. 매우 유명하거나 최상의 이목을 끄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스타 (star)’라는 어휘 하나만으로도 어떤 분야에서 다수의 일반인들을 훨씬 능가하는 재능과 유명세를 뜻하기에 충분한게 하물며 ‘수퍼 (super)’라는 최상급의 존재나 능력을 뜻하는 형용사가 더해진 이 어휘는 스타 중의 스타, 초대형 스타를 뜻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수퍼스타라는 어휘는 그래서 대중문화가 만발한 과거 40여년 동안 문화행사와 상품들을 통해서 대중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왔다. 팀 라이스 (Tim Rice)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가 1970년에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소개한 화재의 록 오페라 뮤지컬 공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예수의 생애를 연예계 유명인에 비교하여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언론과 관중의 다양한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켜서 수퍼스타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일찌기 환기시킨바 있다.

1999년에 미국에서 개봉된 코미디 영화 『수퍼스타 (Superstar)』는 1070년대를 휩쓸었던 존 트라볼타 주연의 디스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의 원본을 기초로 하여 한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990년대 판으로 재해석해서 많은 관객동원에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작년 2005년은 독일의 유명한 운동화 제조업체인 아디다스 사가 아디다스 수퍼스타 모델 운동화 탄생 35주년을 기념하여 이 운동화의 최신형 모델인 ‘수퍼스타 35’를 개발 시판하는 마케팅 수단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이미 친숙해진 이름 ‘수퍼스타’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관용적인 어휘로 자리잡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에 들어와서 부터였다. 특히 대중매체들이 국지적이거나 국경의 한계를 넘어서 전세계적인 지명도와 인기를 끈 글로벌급 파급력 발휘와 보편적인 어필을 하는 대형 유명인들을 가리켜서 수퍼스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때가지만 해도 영화, 패션, 음악 등과 같은 대중 연예 분야의 유명인사들만을 가리켜 부르던 이 명칭은 미술계에서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60년대 말부터 한낱 그래픽 디자인과 백화점 쇼위도 장식으로 일하기 시작한 앤디 워홀이 팝아트의 대부격으로 급부상하면서 웬만한 유명인사들에 못지 않은 유명세를 거머쥐기 시작했다. 그를 뒤이어서 1980년대에 등장한 팝아트의 후계자이자 현대미술계의 악동 제프 쿤스 (Jeff Koons)는 미술과 상업 사이를 오가는 능란한 PR 전략을 십분 발휘한 유능한 비즈니스맨으로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언론의 화재를 사로잡을 만큼 도발적인 사생활로도 유명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20대 못지 않은 정력적인 연예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수퍼스타 가수 마돈나는 대중음악 분야 활동도 모자라서 그녀 이름이 지닌 브랜드성을 활용하여 영화 배우 및 감독, 아동서 작가 등으로도 활동을 벌이고 있으니 성공과 명성을 향한 수퍼스타들의 불멸의 욕구와 열정은 경계도 한계도 없는 듯해 보인다.

서양 미술사로 눈을 돌려서 세월을 되돌이켜 보면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계의 ‘스타’ 개념은 지금부터 500여년 전인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수많은 무명의 공예 장인들이 신에 대한 영광을 드높이기 위하여 창조했던 중세시대의 서양 미술과는 반대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 시대 특유의 “천재 (genius)” 개념과 개인 미술가들의 특출난 재능을 높이 격려하고 찬양했던 시대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15세기말부터 16세기 전반기에 걸쳐 펼쳐졌던 르네상스 전성기에 미술가 최고의 명성을 구가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같은 거장들을 들 수 있다.

또 그런가 하면 18세기 서양 바로크 시대의 고전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룩했다는 회화의 황태자 렘브란트, 피터 폴 루벤스, 카라바죠 등은 고귀한 위신과 탁월한 취미를 과시하는데 앞다투어 경쟁하던 당시의 왕과 고관대작들 같은 귀족들은 물론 부유한 상인과 무역가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던 이른바 ‘스타 화가’들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스타 화가들은 이루 다 감당하기 넘쳐나는 주문량에 응하기 위해서 대도시 여러곳에 아텔리에를 여러군데 지어 운영했다.

특히 고객관리와 외교활동에 까지 손을 뻗쳐서 모든 작품을 일일이 제작할 시간이 없던 피터 폴 루벤스는 조수들을 시켜 그림들을 완성했던 것으로도 유명해서 요즘의 표현을 빌자면 그림 대량 생산 체제의 감독 혹은 ‘아트 디렉터’를 미리 예견한 셈이었다. 그렇게 보면 20세기 후반에 앤디 워홀이 20세기 대량 생산 및 소비 사회 체제에서 본따서 수십 명의 조수가 여려편의 작품을 대량 복사 제작하던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 (Factory)’라고 부른 것은 서양 미술사에서 그다지 아주 새로운 발명은 아니었던 셈이다.

쿤스트할레와 BA-CA 쿤스트포룸에서 공동 전시된 『수퍼스타』 전은 20세기 현대 미술계에서 수퍼스타의 가장 전형을 창조한 앤디 워홀의 초상화로부터 출발하여 ‘수퍼스타로서의 미술가’와 ‘현대 미술가들이 작품을 통해서 묘사한 수퍼스타들의 이미지’를 점검해 보고 있다. 예컨대, 20세기 초엽 서양 모더니즘의 발흥과 더불어 등장한 근현대 미술계의 수퍼스타들, 예컨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마르셀 뒤샹, 요제프 보이스, 마르쿠스 뤼페르츠 등은 지금도 변함없이 미술 시장과 미술관계에서 무적의 스타 미술가들로 기록되어 있다.

또 그런가 하면 대중문화 속의 수퍼스타들의 대중 매체 이미지와 그들이 발산하는 묘한 매력은 여러 현대 미술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각적 영감이자 소재로 활용되어 오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네오팝의 기수 제프 쿤스나 대중 매체에 실린 유명 연예인들의 초상을 센티멘털한 분위기의 회화로 재현하여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페이튼 (Elizabeth Peyton) 등은 이미 우리 주변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대중적 이미지들에 대한 미적 재활용을 가하여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엽에는 관중을 경악으로 몰아 넣는 충격효과를 주무기로 삼아서 미술계에 도전한 일군의 젊은 현대 미술가들이 다수 등장한 때였다. 작품의 시각적인 파급력 면에서는 물론 미술가 스스로가 ‘악동 (Bad Boys and Bad Girls)’의 역할을 연기하는 식의 홍보 전략은 영국의 테러이시 에민 (Tracy Emin)이나 독일의 요나탄 메에제 (Jonathan Meese)가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트레이시 에민은 굴곡 많았던 성장기와 소녀시절의 강간 경험 등과 같은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충격적이도 도발적인 설치작이나 사진작들로 미술계와 일반 대중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면서 찬반호악의 다양한 반향과 비평을 몰고 다니는데 성공했다. 이제 갓 서른살을 넘긴 설치 및 퍼포먼스 아티스트인 메에제는 스스로를 ‘문화적 주술사 (cultural exorcist)’로 부르며 수퍼스타들의 이미지를 빌어서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면서도 격정적이고 동시에 신비감이 도는 이미지들로 한창 현대 미술 시장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요 최근에 현대 미술계이 수퍼스타가 된 주인공들 중에는 글로벌한 유명 브랜드나 상품 이미지들을 미술 작품의 이미지에 차용한 경우도 많이 눈에 띄인다. 나이키, 맥도널드 햄버거, 코카 콜라 같은 글로벌 브랜드 상표가 스포츠계나 연예계의 유명인들과 현대 사회의 열띤 소비주의와 한데 연관되어 현대 미술의 모티프가 되고 있다.

현대 소비주의를 상징하는 브랜드와 상품을 값싼 종이로 만들어서 대중화된 현대인들의 소비주의 행태를 꼬집는 미국의 설치미술가 톰 색스 (Tom Sachs)를 비롯해서, 키치적 이미지와 개념을 한데 버무린 네덜란드의 마크 바일 (Marc Bijl), 신문과 잡지 등 대중인쇄 매체 속의 광고 사진 이미지 (특히 말보로 담배와 카우보이 이미지가 대표적)로 현대 사진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가중 한 사람이 된 미국의 리쳐드 프린스 (Richard Prince),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와 소비주의가 담고 있는 에로티즘을 비평적으로 논평하는 스위스 출신의 실비 플뢰리 (Sylvie Fleury)는 그들이 제각기 자랑하는 독특한 시각성에 못지 않게 미술시장의 블루칩 화가들로서 굳건히 자리잡았다.

그들보다 20년 가까이 먼저 미술시장 내에서 스타로 군림해 온 데니스 오펜하임 (Dennis Oppenheim)과 신디 셔먼 (Cindy Sherman)은 작품 속에 나타난 이상화된 우상적 주인공은 단지 창조의 기계적 과정의 일부분에 불과함을 전달하고자 하며 로드니 그래험과 에이드리언 트란킬리 (Adrian Tranquili)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제아무리 과장되고 이상적으로 연출된 이미지는 결국 현실 속에서 조성된 가상의 현실이라고 말하려는듯 하다.

전시중에서 무엇보다 일반 관객들의 눈길을 끈 것들로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수퍼스타이자 시대적 아이콘으로 각인되어 있는 ‘흘러간 스타들 (old stars)’들의 모습일 것이다. 20세기를 통틀어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이자 여성의 심볼이 된 마릴린 몬로 (Marilyn Monroe)를 비롯해서 5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서양 미술 속의 가장 유명한 여인으로 남아 있는 모나 리저 (Mona Liza)는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수퍼스타들이다. 그런가 하면 폴 매카시 (Paul McCarthy)가 묘사한 팝음악의 황제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의 모습은 이 작가 특유의 기괴한 취미와 블랙 휴머가 교묘하게 섞여있어 흥미롭다.

수퍼스타는 오늘날 현대 사회를 주도하는 대중 매체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게 두드러진 문화 현상이 되었다. 더구나 글로벌 시대가 무르익은 요즘, 연예계, 스포츠계, 미술계 할 것 없이 대 스타를 꿈꾸는 스타 지망생들은 국경, 문화권, 언어를 넘나들며 전세계 모든 팬들을 거느리는 보편적인 수퍼스타가 될 것에 대한 꿈으로 잔뜩 부풀어 있다. 그러나 수퍼스타들이 과시하는 그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외면 세계의 뒤안길은 그에 못지 않게 어둡고 외롭다고 하지 않던가.

수퍼스타들이 한껏 발산하는 매력과 카리즈마와 나란히 그들의 사생활을 둘러싼 소문과 험담을 동시에 즐기는 현대 대중들의 심리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현대 대중 매체로 인해서 나날이 심화되어 가는 수퍼스타들의 ‘인위적인 천국’이 실은 화려함과 고뇌가 뒤섞인 변성적인 (metamorphic) 일면을 다시 한 번 되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전시 제목: 수퍼스타 – 워홀에서 마돈나까지
전시 | 장소: 오스트리아 쿤스트할레 빈 (Kunsthalle Wien)과 BA-CA 쿤스트포룸(BA-CA Kunstforum) 공동 동시 | 전시
전시 기간: 2005년 11월4일 – 2006년 2월 22일까지.

* 이 글은 세종문화회관 월간 회원지 『문화공간』  2006년 3월호에 실렸던 것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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