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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형과 실험주의 – 1990년대의 건축 [제1부]

New Forms and Experimentalism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90s

20세기 후반기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유산을 이어받아 전통과 혁신의 조화로운 공존
인본주의에 기반한 이상주의적 예술관에서 출발한 20세기초 모더니즘이 세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따분하고 천편일률화된 자본주의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무릎을 꿇고 나자, 1960년대부터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운동이 등장하며 건축을 본령을 삼아서 현대인들의 시각 환경과 미적 감수성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조형 예술 설치물로서의 건축 – 첨단 건축 기술과 실험적인 조형미 사이의 교합으로 탄생한 1990년대의 건축 1970년대의 오일 쇼크와 1980년대의 뉴욕 증시 폭락 등과 같은 경제적 충격에 주춤거리는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만한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에서는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 필립 존슨(Philip Johnson) 등과 같은 거물급 건축가들이 주도가 되어 무미건조한 상자각 모양을 한 대도시 마천루식 기업 사무실 빌딩 양식을 과감히 버리고, 대중문화나 과거의 고전적 건축양식 등에서 영감을 받아서 양식적으로는 절충적(eclectic)인 동시에 내용면에서는 유희적(playful)인 유머 감각과 건축 디자이너 개인의 개성이 담겨있는 특유의 미국식 포스트모던 건축을 소개했다.

대서양 건너편 유럽에서도 특히 1980년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를 기폭제로 삼아 이탈리아 (파올로 포르토게지 Paolo Portoghesi)와 알도 로시 Aldo Rossi), 오스트리아(한스 홀라인 Hans Hollein), 스페인(리카르도 보필 Ricardo Bofill), 프랑스(레옹 크리에 Leon Krier)을 포함한 여러 유럽국가 출신의 건축가들이 교조화된 모더니즘의 유령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건축을 창조하자는데 목소리가 날로 커져 갔다.

공간의 시학 – 예술 작품으로서의 건축
1990년대의 건축은 196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전개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미학을 한단계 더 멀리 밀어붙였다. 건축물은 공간을 채우는 한 편의 예술 설치물이라는 건축의 새로운 예술적 자기 각성과 건축가의 무한한 창조력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첨단 건축 시공 및 공학 기술의 발전이 그같은 도약을 가능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건축사와 이론가들 사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피상적인 천박성, 지나친 과장성, 무독창성이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수사 어휘들과 엮여 특징지워지곤 했다. 그같은 평가에 대해서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그들이 그토록 고집스럽게 추구했던 장난스러운 이미지에 대한 애착, 과거의 건축적 유산과 형식의 재해석과 응용, 기상천외한 외형과 파격적인 구조 등의 특징들을 이용해서 각 건축물마다 지닌 독특한 공간적 환경과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새로운 창조력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안타깝게도 1987년 10월 일명 ‘블랙 먼데이’로도 불린 청천벽력과도 같은 뉴욕 증시 폭락과 그에 따른 미국 경제의 재정적 위기로 인해서, 1990년대 중엽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미국의 건축가들은 대체로 새로운 건축 형태를 자유분방하게 실험하기 보다는 어쩔수 없이 보다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며 비용절감에 유리한 모더니즘풍 건축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들의 주문에 따르는 것으로 타협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건축가들이 사적 기업이나 단체의 주문에 주로 응해야 하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 대륙의 건축가들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까지도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는 국가주도의 공공 건축 사업이 주를 이룬 유럽의 건축 후원 환경 덕택에 훨씬 더 획기적이고 자유로운 건축 양식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동구권 유럽의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그에 따른1989년 11월9일 역사적인 독일 베를린 장벽의 해체를 계기로 하여 유럽에서도 특히나 독일은 1990년대 초엽부터 공모전을 통해서 수많은 정부 주도의 신건축 사업과 도시 계획 사업을 본격화하며 도시 전체가 전격적인 신건설 붐을 맞았다. ‘항상 건설중인 도시’라는 별명을 자랑할 정도로 도처에 신건축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통 독일의 신수도 베를린에는 렌조 피아노(Renzo Piano), 리쳐드 로저스(Richard Rogers),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 헬뭇 얀(Helmut Jahn),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등과 같은 국제급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또 1990년대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이 널리 추구하던 역사주의의 재해석 경향 이외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건축적 양식을 모조리 거부하고 파괴하는 날카롭고 공격적인 양식이 등장했다. 일찌기 1988년에 뉴욕 모마(Museum of Modern Art) 미술관에서 『해체주의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전시가 열린 것을 계기로 ‘해체주의(Deconstructivist Architecture)’라는 공식 건축 명칭을 얻게 된 이 새로운 건축 양식은 날카롭게 각지고 쪼개진 불협화음적 공간을 통해서1980년대의 과학계와 문화계를 사로잡은 혼돈 이론(Chaos Theory)을 건축적으로 실현해 보이고자 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해체주의 건축이 특징으로 한 모지고 날카로운 선은 사실상 그보다 훨씬 전인 1920년대의 러시아 아방가르드주의와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환기이자 건축적 재해석이기도 했다. 그같은 양식을 가장 전형적으로 구사한 건축가들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2인조 건축가팀인 코옵 힘멀블라우(Coop Himmel(b)lau)를 꼽을 수 있는데, 그래서 날카롭게 각진 금속 건축 재재와 유리를 마구잡이로 허물어 놓은 것 같은 그들의 스타일을 가리켜서 일부 건축 이론가들은 해체주의가 아니라 신구성주의(Neo-constructivism)라고 고쳐 부르기도 했다.

그 외에도 1990년대의 해체주의 건축 양식을 추구한 또다른 대표적 건축가들로는 1989년부터 1993년까지에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태인 박술관 재건을 맡은 바 있는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 독일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에 있는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 건축을 담당한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 돔(Millenium Dome)을 설계한 영국의 리쳐드 로저스(Richard Rogers) 그리고 네덜란드가 낳은 초국제급 스타 건축가 겸 건축 저술가인 렘 콜하스(Rem Koolhaas)를 꼽을 수 있다.

현대판 성전으로서의 미술관 – 지구촌에 번진 미술관 신건축 붐
 1990년대 중반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경제 호황이 10년 가까이 지속된 덕택에 유럽은 물론 미국은 물론 아시아와 남미 대륙에까지 대대적인 건축 붐이 일은 ‘20세기 건축의 르네상스’기였다. 인터넷이라는 획기적인 신매체의 대중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가 새로운 재정적 기폭제가 되어 여러 나라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공공 기관과 사기업체들이 앞다투어 국제급 유명 건축가들을 초대하여 새건물을 짓거나 재건축하는데 혈안이 된 때가 바로 이때였다.

특히 1990년대 이후로 전세계 특히 구미권의 박물관 및 미술관들은 경제 호황의 덕택으로 정부의 세금 지원과 사기업들의 재정 후원을 손쉽게 보조받아 박물관/미술관 건축 사업에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로 인해 전세계 도시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번진 박물관/미술관 건축 프로젝트의 현상을 일컬어서 1998년에 출간된 『새로운 미술관을 향하여(Towards a New Museum)』이라는 책의 저자인 빅토리아 뉴하우스(Victoria Newhouse)는 현대 미술관 건축이란 ‘미술관화(museumification)’ 되고 있으며 그 미술관들은 과거 서양 교회당을 방불케 하는 ‘신성한 공간(museum as sacred place)’으로 재탄생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른바 ‘문화의 시대’가 최고조의 대중화를 이룩한 1990년대에 미술관이 한 도시와 시민들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은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는 스페인 북부의 보잘 것 없는 산업 항구 도시 빌바오(Bilbao)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노먼 포스터,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로버트 스턴(Robert A. M. Stern),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 등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Bilbao) 건물 설계를 위한 공모 각축을 벌인 끝에 카나다 출신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가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1990년대 중엽은 스페인 이외에도 미국의 대도시와 주변 지역의 대도시들, 독일의 베를린, 일본의 나라와 후쿠오카 등이 정부 주도의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도시환경 및 문화공간 신건설 프로젝트를 통해서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시대였으나,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을 통해서 한 보잘것 없는 주변 소도시를 단숨에 국제적 문화 지도에 올려 놓은 최대의 문화 사업 성공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프랭크 게리가 티타늄을 소재로 각지고 물결치는 형상으로 표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의 외형은 옛 선박 조선 산업으로 형성되었다가 무기력에 빠져있던 이 도시에 새로운 역동적 이미지를 불어넣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새로운 형태에 대한 탐색과 실험 
1990년대 건축을 ‘새로운 형태(New Form)의 시대’라고 정의한 건축 이론가 필립 조디디오에 따르면, 특히 1990년대에 이후로 건축계에서 널리 유행한 파격적인 건축 외형과 절묘한 형태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급속도로 진보한 캐드(CAD) 혹은 컴퓨터 이용 설계(Computer-aided Design) 기술과 예술적 조형미에 대한 새로운 재발견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엄밀하게는 건축 자재 기술은 물론 시공 기술 분야에서 건축은 이미 1980년대부터 현격한 발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의 새 국립 도서관 건물을 설계했던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 파리 퐁피두 센터의 렌조 피아노(Renzo Piano), 일본 현대 미니멀리즘 건축의 대가 다다오 안도(Ando Tadao), 현대 건축의 하이테크 시인으로 불리는 다카마츠 신(Takamatsu Shin) 그리고 최근들어 유난히 건축계의 각광을 받고 있는 딜러 + 스코피디오(Diller + Scofidio), 가로팔로 아키텍츠(Garofalo Architects), 그레그 린(Greg Lynn) 등과 같은 크고작은 신진 건축가들과 건축 사무소들이 자아내는 고도의 표현적이고 곡선적인 스타일과 미래적이고 우주적인 건축 분위기는 고도로 컴퓨터화된 건축 렌더링 도구와 노하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특히 불가능해 보이는 절묘한 형상을 즐겨 설계하는 프랭크 게리는 건축설계용 컴퓨터 프로그램은 물론 최첨단 항공우주 공학용 전자 기술까지도 적극 도입해 사용함으로써 건축 시공상의 안전은 물론 에너지 효율성과 환경 친화성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에너지 효율성과 환경친화성이라는 현대 건축상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독일 베를린의 라이히스탁 국회건물 일부를 재설계한 노먼 포스터와 페토로나스(Petronas) 트윈 타워로 쿠알라룸푸르의 스카이라인을 재정의한 말레이지아 출신의 건축가 켄 에앙(Ken Yeang)이 전문가들로 인정받고 있다.

글 | 박진아 (미술 평론가, 디자인 컬럼니스트)
 출처: 『공간사랑』 200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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