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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 195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I Consume, therefore I am.”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50s

재건과 풍요의 1950년대 건축과 디자인 – 소비주의 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 바바라 크루거 – 현대미술가

현대 사회를 꼬집는 예술가나 문화논평가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에게 소비활동이란 숨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의 하나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지 오래다. 예나지금이나 인간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의식주 환경은 현금이나 신용카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선택하고 소유할 수 있는 일용품 (commodity)이 되었다. 주유비가 많이 듦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안락을 내세운 탱크같은 SUV 자동차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으며,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운 아파트 신건축물과 인테리어 디자인은 보다 귀족적이고 고귀한 생활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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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 디자인 미학의 창시자 레이먼드 로위가 1947년에 디자인한 코카콜라 디스펜서는 다가올 50년대 디자인을 예고했다.

고급 브랜드를 내세운 의류와 악세서리 같은 최고급 디자이너 제품들은 물론 미용실과 병원 같은 서비스 산업에 이르기까지 명품 열기는 가실줄 모르고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때 사회 최고부유층 만이 가질수 있던 고가 명품은 점차 대중 소비자들도 지불만 하면 소유할 수 있는 일용품으로 대중화 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코넬 대학의 경제학 교수 로버트 프랭크의 개념을 빌자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럭셔리 열병 (luxury fever)’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이미 예견이나 했다는 듯, 일찍이 1940년대에 영국의 문학가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은 인간의 사회는 ‚물욕의 사회 (acquisitive society)’로 향해 치달아가고 있으며 얼마안가서 ‚소비 사회 (Consumer Society)’는 ‚우리가 매순간 숨쉬는 공기’처럼 일상화될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한 두 학자 아도르노 (Theodor Adorno)와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는 미래 시대에 예술과 문화는 대중 연예 산업으로 변질되어 대중을 현혹함으로써 그들을 한낱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인 소비자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존 갈브레이드 (John Galbraith)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풍요의 사회 (The Affluent Society)》에서 전에 없이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을 처치하려면 그만큼 빠른 속도의 소비가 뒤따라야 자본주의 경제가 유지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기업들은 전에 없이 많은 광고와 강력한 매출 수완을 한껏 발휘해서 소비자의 구매욕구 (desire)를 부지런히 창출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거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현학들의 예상은 오늘날 선견지명처럼 현실화되어 우리의 일상 생활의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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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에 출시된 프랑스 자동차 시트로엥 DS-19 모델은 전후 유럽의 경제 재건과 낙관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미래주의적이고 에어로다이나믹한 차체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참으로 수많은 업체들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유사한 디자인 제품들과 주거 환경 용품들을 시장으로 토해내고 있다. 자동차, 가전 제품, 일용품 등은 그래서 서로 다른 상징과 의미를 띠고 소비자들을 유혹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광고와 제품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제조업체와 제품 시장에 결정적인 차별화 요소로 등장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1960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신화 (myth)’라는 개념으로, 그리고 현대 문화비평가 쟝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는 ‚기호 체계 (signs-system)’라는 개념으로, 그리고 보다 더 일찍이 좌파 철학가 루카치 (György Lukács)는 선배학자 칼 마르크스의 물신숭배주의 (fetishism) 개념으로부터 자본주의 ‚회로 (circuit)’라는 개념을 도출하여 어떻게 대량생산된 제품과 일용품이 오늘날 그토록 매력적인 소비상품으로 둔갑하여 오늘날 우리의 주변 환경을 그토록 기품있고 세련되게 꾸며주게 되었는가를 설명한 바 있다.

전후 폐허는 재건과 풍요의 모태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매력적인 광고와 최신 유행 디자인을 이용한 체계화되고 전략적인 제품 차별화 전략이란 요즘에 와서야 흔히 대중매체에서 접하게 된 신유행어 처럼 되어 통용되고 있지만 그 원형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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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제2차 대전이 끝나고 난 유럽과 미국, 전후 서구 사회는 재건과 풍요의 시대를 맞으면서 본격적인 소비 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전후 폐허는 신건설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뭐든 이룰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흔히 소비 사회는 경제 불황과 정치 위기의 시대에 사라졌다가 부에 대한 안정과 번영이 만연하고 문화적 변동이 급변하면 다시 등장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서구 세계는 1945년 독일 연맹국의 패전으로 마침내 종결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인류의 희생을 뒤로 한채 인류역사상 전에 보지 못한 경제적 부흥을 맞기 시작했다. 승자 미국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이 한장이던 1940년에서 종전기까지 전시 군용품을 보급 생산하면서 전미국 경제 성장률을 이전의 두 배 가까이 상승시켰다. 미국이 ‚아메리칸 드림’과 ‚기회의 나라’로 부각되기 시작한 때도 바로 이 즈음 이었으며, 특히 1950년대부터는 급성장하는 미국 시장에서 산업디자인은 제품 시장에서 본격적인 전략 요소로서 응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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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아죠 사가 생산한 베스파 개인용 스쿠터는 1959년 프랑스 시장에 소개되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Photo courtesy: Piaggo & C S.p.a.

연합국 프랑스는 미국의 마샬 정책의 도움을 얻어서 전쟁 동안 온통 멈춰서다시피한 농업과 기계 산업 등을 재건하면서 이후 1970년대까지 매년 5% 성장율이라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이며 경제 강국으로 정착해 나갔다.

전후 프랑스의 1950년대와 1960년대 대체로 노동자 출신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던 프랑스 국민들은 어느새 중산층 시민이 되어 넉넉한 경제생활을 누리게 되었고 소비성향은 나날이 커졌다.

한편 영국에서는 소비재 생산 분야를 촉진하겠다는 의도아래 국가주도식 대형 전시회나 디자인 페스티벌 같은 대중적 차원의 디자인 진흥 사업을 벌이는 것을 통해서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부터 공공 환경에 이르기까지 전국가적 차원의 영국판 디자인 르네상스를 주도하려 애썼다.

비록 전쟁에서는 졌지만 전후 재건이라는 과제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포함한 연맹국들에게도 승전국가들의 그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안이었다. 패전으로 인한 굴욕과 경제적 피폐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것이 급선무이던 독일은 과거 서독이 주도가 된 고도 성장을 이루었는데 그들이 이룩한 ‚경제 기적’은 미국에서 도입해 온 테일러식 대량생산체제와 문화적 가치관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덕택 때문이었다.

전후 가장 큰 경제 성장을 경험한 나라들 중에서 이탈리아를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195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탈리아는 자동차, 가구 및 인테리어 장식, 조명,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이른바 ‚이탈리안 스타일’이라는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적 멋을 유지해 오고 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bella figura)’다는 이탈리아인들의 남다른 미의식과 디자인 용품에 대한 의식수준은 디자인을 위주로한 전후 이탈리아의 경제 재건의 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경제 재건 (Ricostruzione) 시대 수많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발 역할을 해 준 피아죠 (Piaggio) 사의 베스파 (Vespa) 스쿠터를 비롯해서 피아트 (FIAT) , 란챠 (Lancia), 알파로메오 (Alfa Romeo) 자동차들, 자노타 (Zanotta)와 카르텔 (Kartell) 사의  가정용 인테리어 가구, 올리베티 (Olivetti) 사의 사무용품 등이 이탈리아인들의 일상환경을 채워 나가는 가운데 나날이 부유해지고 소비성향이 강해진 중산층 소비자들을 겨냥한 사치성 일상용품과 사회적 심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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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가전제품 제조업체 브라운 (Braun AG, 1921년 경 설립) 사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 (Dieter Rams)가 1958년에 가전 시장에 선보인 포터블 라디오 모델 T3는 깔끔한 디자인과 성능을 추구한 독일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로서 훗날 애플 아이폿 (iPod) 디자인의 영감이 되어주었다.

일본은 패전국들 가운데에서 가장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나라로서 주목받으며 서구 국가들을 위협하는 아시아의 파워하우스로 주목받았다. 일본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디자인 교육을 받고 돌아온  개별 디자이너들과 기업별 사내 디자인 연구소를 통해서 디자인 진흥을 추진하는 정책을 썼는데, 특히 건설, 교통, 통신, 컴퓨터, 자동차, 가전제품, 인테리어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오늘날까지 그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만인을 위한 디자인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의 뼈 속까지 깊이 자리잡게 된 소비 문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어떤 모양새로 오늘날 우리 주변의 공간 문화에 반영되고 있을까? 전세계 경제를 암흑기로 몰아 넣은 1929년 뉴욕 증권가 폭락과 뒤따른 경제 공황기로 몰아 넣었던 1930년대의 악몽은 어느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일명 ‚붐타임 (Boom-time)’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20세기 후반기 약 30여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에서 계속된 경제 발전과 풍요 현상은 가히 눈부실 정도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우후죽순 같은 대기업 설립 붐 덕택에 전에 없이 많은 인구가 화이트칼라 직종에 종사하는 중산층으로 급부상했고, 부동산 개발과 건축붐에 힘입어서 도시화와 주택 소유가 활성화되었다. 코카콜라는 미국 뿐만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국가에서 현지 생산되어 대중 음료로 팔려나가고 있었고, 맥도널드 같은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대중 소비자들의 낙관주의와 소비욕을 자극하며 보다 간편하고 현대적인 식문화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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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미국의 가전제품 업체 프리지데어 사가 내건 미래의 주방 광고 사진들.

꿈과 내일을 가꾸는 가정 주부에게 어필하라!
 웬만한 중산층 가정은 경제적 중추이자 가장 역할을 하는 아버지, 집안 가사와 가내 경제를 책임지는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로 구성된 핵가족 제도를 형성하며 넉넉하고 행복한 현대적 가족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남편들이 하루종일 직장에서 돈을 벌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여성들은 새시대의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가정주부를 의미하는 ‚홈메이커 (Homemaker)’라는 어휘는 여성의 가사는 더 이상 단순한 집안 노동(housekeeping)이 아니라 고등 교육을 받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가정관리를 하는 전업주부를 높이 치켜주기 위해 미국에서 탄생한 신조어였다.

식료품 업체들이나 세탁용 세제업체 같은 가정용 공산품 업체들은 물론이려니와 제너럴 일렉트릭 (GE)와 프리지데어 (Frigidaire) 등 가전제품 업체, 제네럴 모터스 자동차, 메이시 (Macy)와 김벨스 (Gimbels) 같은 유명 백화점 체인들도 앞다투어 가정주부들의 취향과 욕구를 자극하는 상품 개발과 판매 전략 짜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가정주부들은 집안 실내를 꾸미기 위해 백화점에서 가구와 장식품을 사들이고 보다 편리한 주방을 꾸미기 위해서 냉장고, 믹서, 자동식기 세척기, 세탁기 등 가전제품 업체들이 제안하는 갖가지 전자 문명의 이기를 사들였다. 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프리지데어 가전용품 업체는 오늘날 우리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최첨단 주방 환경을 미리 예견한 ‚미래의 주방 (Kitchen of Tomorrow)’ 컨셉으로 이미 1950년대 가정 주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가하면 고급 승용차 브랜드 캐딜락 (Cadillac)은 갑부 남성들과 더불어서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즐기기에 여념없는 귀부인 모델을 나란히 보여주는 것으로 여성들 속에 잠자고 있는 허영심에 부채질을 했다. 1960년대 부터 대학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원하는 직업여성들의 수가 점차 늘어가는 새로운 추세로 접어들게 되면서 가사를 편리하게 돕는 신 가전용품과 가사용 공산품은 ‚일하는 여성들’이라는 또 다른 소비자 섹터를 겨냥하게 되었다.

1950년대 풍요로운 가정과 디자인 소비재 소비현상은 유럽에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전후 새삼스러운 경제 부흥을 맞은 독일에서는 산업 디자인이 가정 실내 장식에 적극 응용되고 있었고, 스웨덴, 덴마크 등과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중산층을 위한 모더니즘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하여 서민들의 주거 환경 수준을 평준화하는데 한창이었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린 (Thorstein Veblen)은 1950년대 서구사회에서 만연한 소비주의 문화는 유한계층이 사치성 소비로 그들의 사회적 특권을 확인하려 했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에 따르면 문화적 소비는 특권층만의 고귀한 취향 (taste)을 표현해 주는 계급 차별화 전략 행위라고 정의했다.

어떤 문화비평가들은 소비주의를 공허하고 어리석은 속물주의이자  정신적・영혼적 노예상태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성전이 되다시피한 쇼핑센터와 백화점을 거닐면서 시각과 욕망을 자극당하고, 화폐와 상품을 교환하고, 소비하고, 소유하는 즐거움을 선뜻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 이 글은 본래  LG 화학 사보 《공간사랑》지 2005년 4월호에 실렸던 “History of …” 컬럼에 실렸던 기사를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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