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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화랑에서 미술관 재단으로

FONDATION BEYELER IN BA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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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Art 25`94 부스에서 곡객과 전화 통화중인 에른스트 바이얼러 (Ernst Beyeler, 1921 – 2010). 뒤켠에 서있는 사람은 평론가 파스캴 촐러(Pascale Zoller), June 16, 1994. Photo: Kurt Wyss, Basel.

바젤 바이얼러 재단 갤러리

매년 6월 중순경이면 미술 전문 딜러, 미술관 관계자, 큐레이터, 미술 애호가, 컬렉터들이 앞다투어 모여드는 중요한 행사가 하나 있다. 아트 바젤 (Art Basel)로 불리는 바젤 아트 페어가 바로 그것. 『뉴욕타임즈』 신문이 바젤 아트 페어를 두고 ‚미술계의 올림픽’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을 정도로 아트 바젤은 세계 미술 시장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국제 미술계 메카이자 최대 권위의 미술 견본 시장이다.

매년 페어 운영 위윈회의 철저한 심사과정 끝에 선정된 270여 안팎의 상업 미술 화랑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이들 화랑들은 그 자체로도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은 화랑들이기도 하지만 또 그에 못지 않게 일단 이 행사에 참여한 화랑들은 행사중 적잖이 짭짤한 작품 매매 수입을 올리고 돌아가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마치 숨가쁘게 돌아가는 뉴욕 증시 시장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듯, 거장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고가로 전세계 미술관이나 개인 컬렉터들에게 팔려나가거나 기성 및 새로 각광받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이 그럴싸한 가격에 매매되는 소식과 입소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곳은 거대한 그야말로 그림과 조각이 있는 장거리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매년 빠짐없이 현대 화랑과 국제 화랑 등이 참여하여 한국의 근현대 미술을 세계에 소개하는 일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작아도 귀중한 미술 문화로 가득한 도시 바젤 스위스 영토 북쪽 비르즈 (Birs) 강과 비제 (Wiese) 강이 만나는 지점인 라인강 (River Rhein) 상류 부근을 끼고 발달해 있는 도시 바젤 (Basel 또는 영어로 Basle라 표기)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이들 유럽 3국의 주요 관통 도시이기도 하다. 본래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라인강가의 한 고요정막한 중세 도시에 불과했으나, 16세기 북유럽에 온통 불어닥친 기독교 개신교 종교 개혁을 피해 이민온 카톨릭파 장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장인 길드 (guild)와 무역이 번성한 경제의 중심 도시로 재탄생했다. 은행업, 제약업, 직물 무역, 정밀 기계 등 현재 스위스에서 벌어지는 무역 거래의 3분의 1 이상이 인구 고작 17만여에 불과한 이 작은 도시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강한’ 도시의 전형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역과 번영의 도시 바젤은 그런가 하면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도시이기도 해서 옛 고도시가 포함되어 있는 그로스바젤과 산업집중 지대인 클라인바젤 그리고 그 주변 소고을들 곳곳에 널려 있는 크고 작은 공립 및 사람 박물관과 미술관만도 40군데가 넘는다. 국립 바젤 쿤스트무제움 (Kunstmuseum Basel)을 비롯하여 고미술 박물관 (Antikemuseum), 역사 박물관 (Historische Museum), 문화 박물관 (Museum der Kulturen) 등은 바젤 시민은 물론 이 도시 방문객들이라면 한 번쯤은 둘러 보았을 고정 관람 코스가 되었다.

바젤이 자랑하는 이 대표적인 박물관/미술관 목록 윗켠을 차지하고 있는 또다른 대표 주자는 바이얼러 재단 미술관 (Fondation Beyeler / Galerie Beyeler)인데, 특히 평소에 20세기 근현대 미술에 관심있는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유럽 도시 관광이나 문화 기행을 하면서 방문지 목록에서 꼭 끼워넣으라고 권장할 만한 곳이다. 바젤 도심에 있는 SBB 스위스 중앙 철도역에서 내려서 노랑색 전차 2번이나 6번을 잡아 타고 동북 방향을 15분 가량 여행하다 보면 바젤-리헨 (Basel-Riehen)이라는 작은 교외 고을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바로 바이얼러 재단 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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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초 피아노의 설계로 지어진 바이얼러 재단 갤러리 건물의 전경. Photo: Mark Niedermann.

사설 화랑 주인들이 만든 20세기 미술관
고급 적색 포르피리 대리석, 철골, 유리를 주재료로 삼아 지어진 긴 장방형 건물이 푸른 잔듸밭 위에 고즈넉하게 펼쳐져 있는 바이얼러 재단 미술관. 파이 퐁피두 센터 건축 디자인을 맡았던 이탈리아 출신의 국제적인 스타 건축가 렌초 피아노 (Renzo Piano)가 설계를 맡아서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화재가 되었던 바 있기도 하다.

이곳이 재단 형식의 미술관으로 출범한 때는지금부터 7년전이지만 미술관 건물 공사를 완결하여 본격적인 미술관 형태를 띠고 일반인들을 위한 미술 문화 공간으로 문을 연 때는 지금부터 4년전 가량 전인 2000년도 가을이다. 힐디와 에른스트 바이얼러 (Hildy and Ernst Beyeler) 부부가 개인적으로 모아두었던 20세기 근대 미술품 특히 회화 작품들 200여점 되는 소장품을 팔지 않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 센터 (Centro de Arte Reina Sofia in Madrid)에 특별 전시로 대여해 줬다가 예상외의 큰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관 건립을 고려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이얼러 재단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은 피카소, 세잔느, 마티스, 반 고흐, 클레 그리고 워홀 등과 같이 흔히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회화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다수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의 수준도 매우 높다. 바이얼러 미술관의 장기 분야는 20세기 서양 근대 미술이며 그래서 자연히 그 출발점을 인상주의 회화로 삼는다.

미술관으로 탄생하기 전 화랑으로 운영되고 있던 당시 바이얼러 부부가 화랑 개업 기념 전시로 1940년대 근대기 일본 목판화 그림, 인상주의 드로잉, 후기 인상주의 회화, 툴루즈-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들을 선정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던 중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가 1910년에 그린 그림 『즉흥, 제10번 (Improvisation 10)』을 구입하는 것을 계기로 바이얼러 갤러리는 단숨에 20세기 미술 분야에서 주도적인 화랑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피카소 같은 유명한 여럿 거장 화가들과 개인적인 친분과 우정을 구축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값진 근대 명작들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사적 통로와 노하우를 더 근본적으로 다질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파키소와 클레 컬렉션은 이곳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명품들이라고 하는데, 이 미술관의 주 상설 전시실을 보면 이 두 부부의 화가들과의 개인적인 친분과 소장품 관리에 관한 취향과 안목을 한 눈에 확인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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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얼러 재단 갤러리 내 모네 전시실 광경. Photo: N. Bräuning.

철도역 노동자 아들에서 성공한 화랑 주인이 되기까지
힐디와 에른스트 바이얼러 부부가 그처럼 20세기 미술의 보물들을 다수 차지하게 되기까지는 그 두 사람이 지난 50년 넘도록 개인 화랑을 운영해 오는 가운데 미술계와 미술 시장에 직접적으로 접하면서 미술품 매매에 관여할 수 있었다는 개인적인 잇점이 크게 기여했다. 화랑업을 운영하다보면 외부 일반인들은 웬만해서 접촉하기 어려운 개인 소장자들이나 작품 매입 경로에 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유독 값지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은 화랑 고객들에게 팔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 모여 오늘날 바이얼러 미술관 컬렉션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바이얼러 부부는 고백한다.

그러니 미술 컬렉션을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잘 알고 지내면서 그림을 사고파는 사이의 화랑 주인들이 고객 모르게 창고 뒤켠에 숨겨두지 않았나 눈여겨 보시라고 권할만도 하다. ‚그 거장의 작품이 아직도 더 남은게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오늘날까지 세계 국제 미술 경매 시장에서 그 수요가 끊이질 않고 틈틈이 낙찰대 옆에 등장하는 것도 바로 비밀스런 미술품 유통 경로 속에서 돌고도는 미술품들의 생리 때문이다.

에른스트 바이얼러 씨는 바젤 철도역 노동자의 아들이었지만 어려서부터 키워온 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업 수완을 일찌기 깨닫고 대학에서 미술사와 경제학을 공부했다. 학업중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고서 서점에서 일하던 그는 1945년 서점 주인이 갑자기 병사하자 고서점을 이어받아 운영하다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사업 수완을 동원해 1951년부터 상점 간판을 바이얼러 갤러리로 바꾸어 달고 본격적인 화랑업으로 뛰어 들었다고 한다.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전흔으로 황폐한 유럽에서 20세기 거장들의 명품 회화 구입과 수집을 한 바이얼러 부부의 그같은 추진력은 당시 1950년대 초엽 상황으로 볼 때 분명 선견지명가적이었다. 바이얼러 재단 미술관과는 별도로, 지금도 바젤에 가면 옛 고서점이 있던 보임라인가쎄 거리 9번지에는 바이얼러 갤러리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도 매년 아트 바젤 미술 박람회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여해 온 우량 사설 화랑이기도 한 그들의 바이얼러 갤러리는 20세기 근현대 회화는 물론이려니와 최근 유럽과 미국의 유력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거래해 가면서 그들의 재단 미술관의 소장 창고 살찌우기에 여념이 없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미술사 책을 장식하고 있는 여러 현대 미술가들 중에서도 유독 바이얼러 미술관이 집중적으로 수집한 분야는 1970년대 주류 일맥인 개념주의 미술과 그 이후 198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신표현주의 계열 회화 와 소수의 조각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위아래가 전복된 (up-side-down) 캔버스 그림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옛 동독 출신 화가 게오르크 바젤리츠 (Georg Baselitz), 음울하고 황폐한 갈색 혹은 회색 물감을 거대한 규모의 캔버스에 두텁게 발라 그리는 독일의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그리고 1960년대에 이탈리아에 불어닥친 아르테 보베라 (Arte Povera) 운동의 기수로서 고대 그리스 신화를 모티프로 삼아 개념적인 작품을 구성한 루치아노 파브로 (Luciano Fabro) 등의 회화작들은 특히 바이얼러 부부가 아끼는 이 컬렉션의 대표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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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느 『노랑색 의자에 앉은 세잔느 아내 (Mme Cézanne au fauteuil jaune)』 1888-90, oil on canvas, 80,5 x 64,5 cm © Fondation Beyeler.

화랑업을 통해 얻은 바이얼러 부부의 미술 컬렉션 철학
바이얼러 미술관이 취하고 있는 20세기 및 21세기 미술에 대한 시각은 다소 보수적이라는 느낌이 들정도로 조심스러워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20세기 미술사가 이미 대체로 정리가 된 오늘날에 와서 볼때 바이얼러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20세기 작품들은 서양 근대 미술사 개론서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 위주별로 구성된 컬렉션 구성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20세기 근대 미술이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가장 최근 벌어지는 현대 미술의 실험적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바이얼러 미술관이 최근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 미술에 대해 취하고 있는 조심스러운 태도는 그들이 1년에 한 두회씩 전시로 부치는 특별전들과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잘 나타난다. 과거 바이얼러 재단 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들로는 <『바실리 칸딘스키와 아놀드 쇤베르크의 색과 음악의 만남』 전, 『로이 리히텐스타인』 전, 크리스토와 쟝 클로드의 『나무 포장』 전, 『세잔느와 모더니즘』 전, 『마크 로드코』 전, 『칼더와 미로』 전 등 소장품 위주의 작가별 주제 전시가 주를 이루었다.

지난 199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세계에는 현대 미술계에는 젊고 활기넘치는 신진 미술인들을 양성하고 발굴하는 실험성 강한 미술 전시장과 대안적인 전시 공간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그같은 전지국적인 문화 현상은 바젤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보다 실험성 강한 최첨단 스위스 현대 미술계와 국제적인 특별 전시를 보려면 아무래도 바젤시가 운영하는 쿤스트할레 바젤 (Kunsthalle Basel)과 쿤스트할레 발젤란트 (Kunsthalle Baselland)와 바젤 출신의 금융계 거부인 에마누엘 호프만 (Emanuel Hoffmann)이 건립한 사설 바젤 현대 미술관 (Museum für Gegenwartskunst Basel) 을 방문해 볼 것을 권장할 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얼러 미술관이 현대 미술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단정짓는 것은 섣부른 오해이다. 실제로 바이얼러 부부는 마르쿠스 브뤼덜린 (Markus Brüderlin) 큐레이터 겸 미술 평론가를 두고 기존 소장품 관리를 맡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떠오르는 유망있는 현대 미술 작품 구입에 관한 자문을 얻기도 한다.

다만 최근 현대 미술계에서 스타급으로 치솟으며 유명세를 누리는 젊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 선뜻 투자를 하기 보다는 기성 미술사와 이론에 기반하여 적어도 과거 20-30년에 걸친 학문적 검증과 시장적 가치를 인정받은 미술품을 구입하여 소장 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에 더 치중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얼러 부부는 현대 미술에도 관심을 두고 있으며 아직 소수이나마 현대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어느 작가의 무슨 작품을 갖고 있는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는 상태이다. 요즘처럼 현대 미술가들의 명성과 시장적 가치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자칫 현대 미술에 대한 투자는 투기로 변질될 위험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바이얼러 부부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능히 짐작을 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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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얼러 재단 미술관 건물 출입구.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이 건물은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해 온 적색 포르피리 대리석, 대형 통판 유리, 통벽이 특징이다. 배경에 보이는 녹원은 베로버 공원 (Berower Park). Photo: T. Dix.

과거 1980-90년대에 걸쳐 지금까지 하강과 상승 곡선을 타고 전개된 경제의 파도 속에서 특히 영미 문화권에서는 기업 미술 소장붐이 전에 없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나라 재정이나 공관 지원으로 운영되는 것으로나 알았던 박물관과 미술관들 말고도, 초국가적 대기업들, 유명 법률 사무소, 광고 제작사에 이르기까지 문화 투자, 세금 환원, 기업 이미지 쇄신 등을 내세워서 미술 작품을 구입에 대거 투자한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여러 학자들도 입을 모아 정의했던 것처럼 고래로부터 미술 작품이란 그 주인의 사회적인 신분과 권력 그리고 남다르게 탁월한 미적 취미를 한껏 뽐내기 위한 ‚신분 차별화 (status distinction)’의 수단이어 왔다. 고대 시대 전쟁에서 이긴 군대는 패배한 상대 나라의 값진 보물과 문화 유산을 약탈해 가져오는 것으로 권력자의 위세를 자랑했고,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메디치가가 그 고위한 가문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을 키우고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 미술가들은 다른 직업으로 연명하다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나 메디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이얼러 부부의 미술 컬렉션 역사와 그들만의 소장 철학은 미술을 사랑하고 미술품 컬렉션에 관심있는 많은 이들에게 현명한 미술품 수집에 대한 첩경을 제시해 줄지도 모른다. All Photos courtesy: Fondation Beyeler.

* 이 글은 본래  『오뜨 ( HAUTE)』 지 2004년 7월호에 실렸던 것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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