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슨의 초미니멀리즘이 빚어 내는 영혼적 풍요

MINIMUM IS MAXIMUM –  John Paw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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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Pawson – Plain Space』런던 디자인 뮤지엄 설치 광경 (Design Museum). Photo © Gilbert McCarragher.

“미니멀리즘은 복잡한 사고에 대한 단순한 표현”이라고 1970년대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도널드 져드 (Donald Judd)는 논평한 적이 있다. 또 그런가 하면 네덜란드 출신의 현대 건축계의 수퍼스타 렘 콜하스 (Rem Koolhaas)는 “미니멀함은 변장한 맥시멀함이다”라고 풍자적으로 비꼰 적이 있기도 하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헤와 벅민스터 펄러(Buckminster Fuller)의 건축 원리는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 (Robert Browning)이 “Less is More”라고 표현한 한 싯구절에 기초한 것이었다. 다원화된 사회와 문화 속에서 다양한 의미와 기호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의 생활을 한 편의 단순 간결한 미니멀풍 인테리어만큼 더 잘 일목요연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올해 56세된 영국 출신의 존 포슨 (John Pawson, 1949년 영국 핼리팩스 생)은  오늘날 가장 엄격하고 절제된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실현하는 건축 디자이너로 불린다. 뉴욕의 칼빈 클라인 본점(1995년), 홍콩 쳅랍콕 신공항 내 캐세이 퍼시픽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1998년)의 설계를 담당하고, 이어 2002년 체코에 노비 드부르 (Novy Dvur) 시토 수도회 수도원과을 설계하여 극도로  미니멀한 스타일로 화재를 모았던 그는 작년, 렘 콜하스가 이끄는 OMA  건축 사무소나 EMTB 같은 막강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영국의 저명한 현대 건축 및 디자인 전문지인 『블루프린트 (Blueprint)}』가 선정한 최우수 건축가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으면서 본격적으로 스타급 건축 디자이너 대열에 오른 셈이 되었다.

2004년 봄  포슨의 설계로 개장한 영국 막스 앤 스펜서 백화점 라이프스토어 (Marks & Spencer  Lifestore) 게이츠헤드 지점은  매출 부진을 이유로 비록 개장한지 11개월 만에 폐장을 맞는 불운을 맞았지만, 적어도 건축 실내 디자인의 측면에서는 그의 극도의 초미니멀리즘 (über-minimalism)이 쿨 (cool)과 시크 (chic)가 결합된 세련미로 승화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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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Pawson – Plain Space』런던 디자인 뮤지엄 설치 광경 (Design Museum). Photo © Gilbert McCarragher.

그런가 하면 작년인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어마어마한 예산과 19인의 국제적 명성의 스타 건축 디자이너들이 참여하여 건축계를 놀라게 한 화재의 푸에르타 아메리카 호텔(Puerta America Hotel)에 참여하여 포슨 특유의 시그니쳐 미니멀리즘을 또 한번 선보인 바 있다.

“미니멀리즘을 스타일의 한 유형이라고 보는 것을 그만두고 공간에 대한 사고의 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영국 『가디언 (The Guardian)』 紙 2004년 4월19일 字 인터뷰)고 말한 건축가 존 포슨은 건축물이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할 것 없이 건축물 안팎을 점거하는 모든 것의 존재 방식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라고 본다.

가구는 목재, 바닥재는 광택 콘크리트, 벽은 백색 페인트칠을 한 플래스터에 이르기까지 포슨이 즐겨 활용하는 건축 자재도 단순하고 견고한 소재가 주를 이룬다. 일체의 장식성이나 군더더기로 허락하지 않는 그의 건축 세계를 가리켜서 흔히 단순함을 넘은 스파르타적인  엄격함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하지만 정작 존 포슨은 자신의 건축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고 편안한 공간을 모색한 결과라고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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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쳅랍콕 신공항 내 캐세이 퍼시픽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 (Cathay Pacific Lounges), 1998년. © John Pawson Ltd.

화려한 장식과 고풍스러운 앤티크 가구가 재차 인테리어 디자인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는 요즘, 모더니즘 디자인 철학에 기반한 포슨의 미니멀리즘은 흔히 금욕, 절제, 냉정이 감도는 자기부정적 인 피폐의 미학인양 비난 받곤 한다. 그러나 20세기 심리학자 빅토르 프랭클 (Viktor Frank)은  자신의 2차 세계 대전중 나치 포로 수용소 경험을 서술한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물리적인 피폐는 놀라운 영혼의 풍요를 불러온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건축도 공간에 대한 사색과 안락은 시각적인 명료함 (clarity)에서 비롯된다고 포슨은 주장한다. 그 어떤 군더더기나 불필요한 요소가 없이 대형 유리 벽유리창을 통해 탁 트인 공간 속에 들이치는 천연광이 연출하는 공간은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편안과 풍요를 안겨준다. 고된 육체 노동과 엄격한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시토 수도회의 수도승들에게  포슨이 재설계한 체코 노비 드부르  수도원은 그런 점에서 극도로 절제된 물리적 요소들 (bare essential) 속에서 무한한 영혼적 풍요와 사색을 고무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자체를 위한 혁신성과 시선집중 자체를 겨냥한 일시적 충격효과에 편향된 시각성이 현대인들의 공간과 시각 환경을 혼동시키는 지금, 미니멀리즘과 영혼주의가 만나는 존 포슨의 공간 미학은 동과 서, 과거와 현재를 초월하는 고요와 절제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이 글은 본래 LG화학 사보 『공간사랑』 지 2006년 6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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