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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디자인 어제와 오늘

GERMAN DESIGN PAST &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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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그르치치가 디자인한 Chair One은 2002년 이탈리아의 가구생산업체 마지스(Magis) 사에서 출시되었다. 2007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린 『25/25 – Celebrating 25 Year of Design』 전에 전시된 모습. Photo: Luke Hayes.

Design in the Global Age – 요즘과 같은 고도의 글로벌화 시대 속에서 디자인의 국가적 특성과 차별성은 급격하게 희미해져 가고 있다. 20세기 근대화가 낳은 교통수단과 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실시간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물론 신기술과 신제품에 접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글로벌화가 보편화된 지금에 와서 디자인의 국가적 특성을 고찰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외양 면에서나 품질 면에서 보편화되고 동질화되어 가는 현대인들의 시각 환경 속에서 각 나라마다 지닌 독특한 디자인 문화 전통과 물질 문화 철학을 살펴 본다 함은 급속한 과학 및 기술의 발달과 지식 및 정보의 확산이 지배하는 요즘 경제적 우위를 점하고자 추구하는 산업계에게는 국제시장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써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는 보다 개선되고 계몽된 환경 창조의 원동력으로써 좋은 영감을 제공해 주리라 기대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rom Follows Function.)” – 간결한 선매, 우수한 품질, 현대적인 기능성이 돋보이는 스타일링 – 독일 디자인을 세계적인 무대에 올려 놓은 그같은 평판은 바로 형태와 기능이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잘 어우러진 기능주의 미학이다. 형태 (form)와 기능 (function)을 주축으로 한 그같은 독일 전형의 디자인 미학이 탄생하기 까지에는 독일이 지난 한 세기 넘는 세월 동안 걸어온 근대사와 산업 발달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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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아돌프 마이어 (Adolf Meyer), 에두아르트 베르너 (Eduardo Werner)가 공동 설계 디자인한 아에게 (AEG) 파르구스 구두 공장 건물로서 AEG의 총괄 디자이너이던 페터 베렌스의 영향이 느껴진다. 1911년 완공.

디자인계에서 가장 즐겨 사용되어 오고 있는 이 유명한 슬로건을 가장 충실하게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발휘한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바이마르에서 처음 설립된 근대 건축 및 디자인 학교인 바우하우스 (Bauhaus)는 1896년에 미국의 건축 디자이너였던 루이스 설리번 (Louis H. Sullivan)이 처음 창안한 이 모더니즘의 좌우명을 받아 들여서 바우하우스는 이전까지의 장식적인 군더더기를 일체 제거하고 일반 대중에게 표준화되고 기능적인 디자인 용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보급하여 근대적인 생활 패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민주적’인 디자인을 제공하겠다는 인본주의적 사명감을 이룩하고자 했다.

독일 근대주의 미학의 요람 – 바우하우스 독일 국토의 중앙부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보수적인 도시 바이마르는 흔히 독일 근대 디자인의 탄생지로 일커어지곤 한다. 제1차 대전 종전 이후의 패전과 폐허의 상처를 달래며 1919년에 독일 출신의 건축가 겸 사상가인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가 초대 학장으로 출범한 바우하우스 학교는 지금까지도 서양 건축과 디자인의 역사에서 가히 20세기 서구 유럽에서 탄생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 및 디자인 교육 기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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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일색이던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학교의 여성 디자이너 마리안네 브란드 (Marianne Brandt)가 디자인한 <찾주전자> 1924년작. The Beatrice G. Warren and Leila W. Redstone Fund. ⓒ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그동안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해 오던 바우하우스는 이 도시의 정치적 분위기가 학교 운영에 불리해 지자 1925년에 산업 발전에 한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도시 데싸우 (Dessau)로 학교를 이전했다.

그러나 1930년대 초엽에 나치의 정치 및 군사적 세력이 더 한층 강해지자, 바우하우스는 나치의 탄압에 밀려 데싸우의 바우하우스 학교 문을 닫고 베를린으로 피신했다. 그 결과 베를린 바우하우스를 이끌던 미스 반 데어 로헤 (Ludwig Mies van der Rohe)는 근대주의적 이념을 탄압하는 나치의 탄압에 못이겨서 결국 1933년에 이 학교를 영원히 폐교한 후 미국으로 피신했다.

이렇게 해서 나치주의 정치의 물결이 전 독일을 휩쓴 1930년대 독일은 발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 로헤, 마르셀 브로이어 (Marcel Breuer),  빌헬름 바겐펠트 (Wilhelm Wagenfeld), 마리안네 브란트(Marianne Brandt) 같은 독일 모더이즘의 거장들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독일식 근대주의 건축 및 디자인 미학의 원리를 구축해 놓고 미국과 영국 등으로 망명의 길로 내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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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역사상 최대의 휴머니스트이자 거장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헤의 <바르셀로나 (Barcelona)> 의자. 1929년 작.

양차 대전 사이기간 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1930년대는 독일 산업 디자인 업계가 굳건한 기반을 갖춘 결정적인 도약기이기도 했다. 바우하우스가 드높이 외친 모더니즘 미학과 근대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이 시기에 제품 디자인 업계가 새로운 경제적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 준 셈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1920년대에 출범한 독일의 가전제품 업체 아에게 (AEG)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독일은 페터 베렌스 (Peter Behrens)를 고용하여 AEG 사 최초의 통합된 기업 아이덴티티 로고를 만들어 독일 내외의 제품 시장에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독일의 기적적 경제 재건의 원동력 – 산업 디자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3년에 바우하우스의 자취를 뒤이어 보다 진취적인 산업 디자인 미학을 개척하겠다는 취지이에서 울름 디자인 학교 (Ulm Hochschule fűr Gestaltung)가 발족되었다. 독일 출신 디자이너인 오틀 아이허 (Otl Aicher), 그의 아내 잉게 아이허-숄 (Inge Aicher-Scholl), 그리고 스위스 출신의 미술가 막스 빌 (Max Bill)이 공동으로 설립한 울름 디자인 학교는 19년 동안 운영을 해 오는 가운데 건축 및 산업 디자인 분야의 후학 양성은 물론 20세기 후반기 근대 독일 디자인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주목을 받게 되기까지 여러 기여를 하였다. 특히 길이 기억되고 있는 울름 디자인 학교의 업적으로는 오틀 아이허가 직접 디자인한 1972년도 뮌헨 올림픽 아이덴티티 디자인, 오늘날까지도 독일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는 고속 철도 기차와 전철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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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람스가 디자인해 가전업체 브라운 사에서 1970년도에 출시한 전기 면도기.

독일의 산업 디자인 컨셉하면 뗄레야 뗄 수 없는 업체는 가전제품 생산업체인 브라운 (Braun) 사를 꼽는다. 독일 디자인의 르네상스라고도 일컬어지는 1960년대에 브라운을 이끈 디터 람스 (Dieter Rams)는 과거 울름 디자인 학교에서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기능성 (functionality)과 기술력(technology)이 결합된 제품 미학을 추구한 영향력있는 디자인어로 인정받고 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기타 디자인 분야에서도 우수한 품질과 독특한 디자인이 잘 어우러진 제품들로 세계 시장에서 유명해 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는 예나 글라스 (Jena Glas) 의 유리 제품과 도자기 용품, 라이카 (Leica) 고급 카메라, 뢰베 (Loewe) 가전 제품, 가구 디자인 분야에서는 빌칸 (Wilkhahn)과 비트라 (Vitra), 필기용품 분야에서는 라미 (Lamy)와 몽블랑(Montblanc), 조명 디자인 분야에는 에르코 (Erco)가 1960년대의 독일의 국가대표급 브랜드들로 떠 올랐다.

1970년대에 오면 이탈리아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영향과 영미권의 팝 문화가 만연하게 된데에 영향을 받아서 독일의 디자인도 전보다 팝 아트적인 요소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외형적으로는 이전의 우직하고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에서 다소 탈피하여 가볍고 명랑하면서도 감성적인 감각이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이전까지 독일 디자인계가 고수해 오던 기능주의와 철저한 품질성에 대한 철학에는 변함이 없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관통하면서 그같은 독일 디자인을 가장 잘 반영한 사례들로는 잉고 마우러(Ingo Maurer)와 토비아스 그라우 (Tobias Grau)의 조명 디자인, 포르셰 자동차(오스트리아 산)를 디자인한 바 있는 괴짜 가구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Luigi Colani), 가구 디자이너 겸 디자인 화랑 운영인 헤르베르트 야콥 바이난트 (Herbert Jakob Weinand), 닐스 홀거 모오르만 (Nils Holger Moormann) 가구사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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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물결과 더불어 독일에 불어닥친 신 독일 디자인 운동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Luigi Colani)의 등받이 의자 (Schlaufenstuhl) 1968년 작. Photo ⓒ Helmut Bauer.

하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자 독일은 그동안 디터 람스가 주창했던 “우수한 형태 (Gute Form)’ 디자인 철학이 한풀 꺽이고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이른바 “신 독일 디자인 (New German Design)” 운동이라고도 불리는 1980년대의 디자인 패러다임 전환은 당시 서구 사회를 휠쓸던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었다.

이와 발맞추어 신세대 독일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울름 디자인 학교가 가르친 순수 기능주의와 불멸의 영구주의의 도그마에 반기를 들고 인간 본유의 감각과 감성에 호소하는 보다 광범위한 개념의 디자인 컨셉을 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영향을 받은 1980년대의 신 독일 디자인은 새로운 디자인 붐과 디지틀 시대 (digital age)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프로그 디자인 (frogdesign) 사의 창업자였던 하트뭇 에쓸링거 (Hartmut Esslinger)는 1980년대 출시된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장착된 애플 클래식 컴퓨터 디자인을 위한 아주 새로운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제시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아힘 하이네스 (Achim Heines)는 라이카의 카메라 의 그리고 크리스토프 뵈닝거즈 (Christoph Bőningers)는 지멘스 (Siemens) 가전제품 등의 인터페이스를 개선하는데 기여한 디자이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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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용품 제조업체 WMF가 2003년에 출시한 Lyric 포오크-나이프-숫가락 세트 제품군. ⓒ WMF AG.

글로벌리즘과 디지틀 혁명이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현대 독일 디자인은 어느새 ‘독일적’이라기 보다는 ‘국제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변모했다.

1960년대 이전까지 여타 그 어느 나라의 것들보다 독일 디자인을 두드러지게 했던 미니멀리즘풍의 단순간결한 미학과 엄격하고 절제된 기능주의 위주의 형태 보다는 곡선위주의 유기적이고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를 적극 도입한 감성지향적인 디자인 제품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이는 ‘전형적인 독일’ 디자인이 글로벌화에 자리를 내 준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늘날 출신 국가에서 머물고 있기 보다는 영국, 미국, 이탈리아와 같은 디자인 선진국에서 교육을 받고 더 크고 다양한 디자인 시장에서 경쟁하고 싶어하기 독일의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보다 큰 국제 시장을 겨냥한 보편화된 디자인 양식을 추구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다.

그같은 대표적인 현대 독일 디자이너 콘스탄틴 그르치치 (Konstantin Grcic, 1965년 생)은 그의 본령인 가구 디자인 이외에도 유리, 세라믹,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각종 제품 디자인에서도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단위로 활동하고 있는 피닉스 제품 디자인 (Pheonix Product Design), 빈프리트 쇼이어 (Winfried Scheuer), 지거 디자인 (Sieger Design), 팀즈 디자인 (Teams Design), 포크트 운트 바쩨네거 (Vogt + Weizenegger) 등도 독일을 대표하는 디자인 업체들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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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레드닷 뮤지엄 내 “산업 건축의 전당 (Cathedral of Industrial Architecture)”에 설치되어 있는 매달려 있는 아우디 자동차. Photo: Simon Bierwald.

최근에는 스포츠와 패션 디자인이 접목된 아디다스 (Adidas)의 운동화 디자인, 세계 최고의 성능, 첨단 엔지니어링, 현대적인 감성에 맞는 디자인으로 국제 자동차 업계를 공략하고 있는 폴크스바겐 (Volkswagen), 메르체데스 벤츠-다임러 크라이슬러 (현재는 Mercedes-Benz), BMW, 포르셰(Porsche), 아우디 (Audi) 자동차사들이 21세기 산업 디자인의 국제 양식을 선도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엽 서구 산업화 시대와는 달리 ‘디자인’과 ‘생산’이 급속하게 분리되어 버린 21세기 경제 생산 체제 속에서, 독일 디자인계의 미래는 ‘메이드 인 저머니 (Made in Germany)’ 보다는 ‘ 디자인드 인 저머니 (Designed in Germany)’가 지닌 디자인적 가치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독일 디자인계 전략가들은 선언한다.

* 이 글은 본래 LG화학 사보 『공간사랑 』지 2006년 3월호 Design Nation 연재 컬럼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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