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적 건축에서 조화로운 가구로

알바 알토의 가구 디자인

portrait-alvar-aaltoALVAR AALTO 핀란드 고유의 목공예 전통을 이어받아서 일찍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유할 것을 주창한 이른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 정신의 대표적인 옹호자였던 알바 알토(1898-1976). “인도적 모더니즘(Human Modernism)”으로도 알려져 있는 알토의 디자인은 자연, 건축, 디자인, 그리고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대화를 화두로 삼는다.

아름다움이란 기능과 형태가 조화롭게 결합된 것 (Beauty is the harmony of purpose and form.) – 알바 알토, 1928년.

일찍이 초기 건축가 시절부터 스스로를 코즈모폴리탄 지성인이자 ‘세계적 수준의 건축가’라 자칭했던 알바 알토는 비행기 탑승에 늦게 도착하면 의례 핀란드 항공사 승무원들과 탑승객들이 항공기 이륙 시간이 지연되는 것도 마다않고 이 위대한 건축가 선생이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주었을 정도로 생전 국가적인 영웅 취급을 받곤 했는데, 그는 국민들이 그를 향해 베풀어준 그같은 대우를 태연작약하고 당당하게 누린 일면 뻔뻔한 자존가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1924년 알바 알토 건축사무소를 설립하며 건축가로 데뷰한 때는 핀란드가 스위덴으로부터 독립하여 신시대 핀란드의 아이덴티티 구축에 한창이던 핀란드 문화 르네상스기이자 건축사업 황금기였다. 그 덕분에 알토의 건축 사무소에는  건축 디자인 수주가 끊기지 않고 물밀려 들어왔다. 특히 비이푸리 시립도서관(Viipuri City Library, 1927-35)과 파이미오 결핵 치료요양소(Paimio Tuberculosis Sanatorium, 1929-33)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국제 모더이즘 양식을 취하되 알토 고유의 해석력과 인간존중적 휴머니즘이 담긴 작업으로 오늘날 건축사에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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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알토가 파이미오 요양소 실내장식을 위해 디자인한 파이미오 팔걸이 의자 41번. 라미네이트 목판 굴곡 공법을 응용한 목재 캔틸레버 의자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Photo courtesy: Jacksons Design, Stockholm-Berlin.

알토는 파이미오 요양소 건물 실내 장식에 임할 당시, 특히 디테일 면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환자의 입장을 깊이 고려하는 시점의 변화를 가했다. 실내 환경은 카나리아 새를 연상시키는 노랑색으로 밝고 차분한 분위기로 연출했고, 금속재 세수대에서 물 떨어지는 소음이 환자들의 청각을 거스르지 않도록 수도꼭지와 세수대도 세심하게 디자인했다.

결핵으로 호흡이 힘겨운 환자들에게 한결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해 금속 대신에 주형 목판을 의자의 주소재로 사용했다. 요즘처럼 사용자 편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널리 일반화되어 응용되고 있는 시대에 환자의 시점에서 병원과 실내를 디자인한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 하겠지만, 환자를 격리, 감시, 처치의 대상으로 여기던 백 여년전 의료 문화의 관점에 비하면 당시 알토의 시점은 분명 인간존중적이었다.

193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목재를 활용한 기능주의 건축과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다. 특히 그의 가구 디자인은 라미네이트 굴곡 공법으로 휘어진 나무소재를 이용한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 형태가 특징적이다. 알토는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창안한 철관으로 만든 캔틸레버 의자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는 이 의자를 목재로 재해석한 의자를 고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파이미오 팔걸이 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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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푸리 시립도서관 설계 당시 디자인한 등받이 없는 의자와 트롤리 테이블. Photo courtesy: Jacksons Design, Stockholm-Berlin.

1930년대 중엽, 알토는 핀란드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가대표급 건축가로 높이 존경받고 있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발터 그로피우스가 주도한 독일 바우하우스 운동으로부터 밀려온 국제 경쟁에서 다소 밀리며  중요한 건축공모전 당선을 연거푸 놓치게 되면서 건축 수주도 주춤해졌다.

잠시나마 의기소침해진 알토는 1935년 아내 아이노와 함께 수도 헬싱키에서 벗어난 교외마을 문키니에미로 이사한 후 가구용품 회사 아르텍(Artek)을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지금까지도 알토의 고전적 실내장식용 가구와 장식용품을 생산판매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슬럼프기는 1937년, 헬싱키 중심부에 있는 사보이 레스토랑의 실내장식 수주를 받는 것으로써 종지부를 찍고 제2의 알바 알토 황금기 출발을 맞이했다. “젊은 에스키모 여성이 입는 가죽 바지”의 모양새에서 영감을 받아서 디자인한 곡선모양의 그 유명한 디자인 아이콘 “사보이 꽃병”(1937년 디자인)은 바로 이 사보이 레스토랑 디자인에 쓰이기 위해서 디자인된 것이었다.

또 이 때부터 알토는 핀란드 갑부들로부터 수주를 받아서 개인 주택을 설계하는 일을 다수 맡았는데, 통나무, 유리, 금속, 콘크리트 기둥, 잔디 지붕 등 근대적 소재를 결합시킨 알토 특유의 건축 미학을 한껏 발휘했다. 이어 1939년 핀란드를 대표해 뉴욕 근대미술관서 열린 뉴욕 세계 국제 박람회에 참가한 알토는 핀란드의 숲에서 영감받은 핀란드관 건물 디자인을 소개해 남 칭찬 잘 안하기로 소문 자자했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로부터 ‘천재적’이라는 격찬까지 받았다.

스웨덴과 독일에 두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20세기 디자인 전문화랑 잭슨스(Jacksons)에서는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핀란드의 전설적인 모더니즘 건축가 겸 디자이너 알바 알토의 가구, 조명, 유리 디자인 용품을 선별하여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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