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파토스로 전율하는 멕시코 근대 미술

EXHIBITION REVIEW

프리다 칼로 <2명의 프리다(Las dos Fridas)> 1939년
Oil on canvas, 174 x 173 cm
© Museo de Arte Moderno, Mexico City.

타협을 불허하듯 꿰뚫는 시선, 어딘가 모르게 도발적이면서도 항의하는듯 진지한 표정, 강렬한 색채와 나이브 아트를 연상시키듯 어리숙해 보이는 필치.

오늘날 멕시코 미술계의 국제 외교관이라 불러도 모자름 없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멕시코 출신의 근대기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미술계 내에서는 물론 웬만큼 미술에 관심있다고 자처하는 일반 미술관람객들 사이에서도 이미 반 고흐, 피카소, 워홀 등과 같은 유명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20세기 전반기 멕시코 모더니즘기에 활동했던 화가 마누엘 곤잘레즈 세라노(Manuel Gonzales Serrano)는 칼로의 미술을 가리켜서 우울증과 카톨릭 종교에 대한 회의에서 오는 죄책감 사이에서 빚어진 정신적 불안정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런가하면 혹자는 뼈, 심장, 핏줄, 주검, 고통받는 신체 등 그녀의 그림에 곧잘 등장하는 신체적 폭력성은 화가의 고통과 사무치는 파토스의 표현이라고 말하며, 또 혹자는 고통을 노골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대리해소하는 멕시코인 특유의 블랙휴머라고도 해석한다.

1983년 헤이든 헤레라 (Hayden Herrera)가 쓴 프리다 칼로의 전기 출간이 촉발점이 된 이래, 칼로는 곧 1980-90년대 페미니즘 미술사 분야에서 최전선의 페미니스트 여류 화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프리다 칼로는 충격적이고 강한 전율을 자아내는 그림 작품으로만 아니라 살아 생전에 헐리우드 스타를 무색케 할 정도로 떠들썩했던 사생활로도 자자하게 소문났던 글래머와 카리스마의 화신이기도 했다.

3년전 [2002년]에는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한평생이 『프리다』라는 타이틀의 헐리우드 영화 (2002년)로까지 만들어졌으며, 이어서 2005년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칼로의 일기 『프리다 칼로의 일기-한 편의 은밀한 자화상 (The Diary of Frida Kahlo : An Intimate Self-portrait)』이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로 출판이 되었고, 팝스타 마돈나 같은 유명 연예인들은 앞다투어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사 모으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화려한 사생활과 더불어서 최근 새로운 경향의 미술사 연구에서 또 최근 새롭게 재발견되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여류 근대 사진예술가로 티나 모도티 (Tina Modotti)를 꼽을 수 있다. 모도티는 이탈리아 태생이지만 1920년대 무렵 멕시코 혁명 (1910-1920년)을 끝으로 멕시코에서 한창 전개되고 있던 혁명 후기 정치적 예술적 정황과 격변에 자극을 받아서 멕시코로 건너와 작업을 했다.

아주 최근 까지만 해도 티나 모도티는 동료 근대 사진가이자 애인이었던 에드워드 웨스튼(Edward Weston)과의 정열적이고 다채로운 연애 행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가 새삼 그녀의 작품세계로 미술사 학계의 관심이 몰리면서 또다른 멕시코 근대 미술계의 스타로 거듭 탄생한 경우다.

디에고 리베라 <루페 마린의 초상(Retrato de Lupe Marín)> 1938년 Oil on canvas 171,3 x 122,3 cm © Museo de Arte Moderno, Mexico City. 루페 마린은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에 앞서 첫 결혼한 전처였는데 타협을 모르는 야성적인 성격과 저돌적 태도 때문에 근대기 멕시코 여인의 전설적 전형으로 기억되는 여성이다.

그런가 하면 헌신적인 공산주의자, 소문난 여성편력가, 못말리는 허풍쟁이, 그러나 무엇보다도 근대 멕시코의 벽화운동 (El Muralismo Mexicano)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이미 젊은 시절을 유럽에서 보내면서 미술을 공부했던 덕분에 아내였던 프리다 칼로 보다 훨씬 일찍이 유럽에서 이름을 알렸다.

아내 칼로가 신체적 불구와 병고와 싸우면서 집에 갖혀 자전적이고 자기주술적인 성향의 자화상을 그렸던데 반해서, 리베라는 국가 주도로 후원받아 1920년대에 걸쳐 멕시코 혁명 후 공산주의를 기초로 한 그의 신념과 유토피아 사회 건설에 대한 희망을 묘사한 초대형 벽화 그리기 프로젝트를 완성한 정치미술가였다.

맑스주의자였던 그의 명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본주의의 수호국인 미국에서 더 자자하게 널리 퍼졌는데, 특히 그는 1930년대 미국에서의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Detroit Institute of Art)와 뉴욕 로커펠러 재단 빌딩(Rockefeller Center Building) 벽화 프로젝트를 맡아 멕시코 민속풍 이미지와 사회주의적 상징성이 강하게 담긴 그림을 그려서 명성과 스캔들을 한꺼번에 차지했다.

그로 인해서 경제공황기 미국에서 리베라는 토마스 하트 벤튼, 벤 샨, 잭슨 폴록, 필립 거스통 같은 젊은 후배격 미국 화가들이 본받은 배운 벽화의 본보기이가 스승이 되었다. 비록 지금은 프리다 칼로의 유명세에 눌려서 일반인들 사이의 인지도 목록에서는 다소 저 아래로 밀려 있지만, 근대 서양 미술사의 전개 과정에서 리베라가 1930년대와 이어 전후 미국과 유럽 미술가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훨씬 더 지대했었음을 엿볼 수 있다.

20세기 멕시코의 근대 화단을 논하기 위해서는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보다 폭넓은 20세기 세계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고 새로운 근대적 사상과 주의주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폭발하고 있던 20세기초 근대기, 멕시코에서는 대서양 건너편 유럽으로부터 전해 온 신사고 물결과 멕시코 자생적 구조 변화가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기운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호제 데이빗 알파로 시케이로스 (José David Alfaro Siqueiros)
 1947년
pyroxylin on celotex / glas fibre, 222 x 175 cm 
© Museo de Arte Moderno, Mexico City.
호제 데이빗 알파로 시케이로스 (José David Alfaro Siqueiros)
 <현재 우리의 모습(Our Present Image)> 1947년
pyroxylin on celotex / glas fibre, 222 x 175 cm 
© Museo de Arte Moderno, Mexico City.

1920년대까지도 유럽인들의 눈에 멕시코 화단은 과거 식민주의자들이 남긴 잔재 속에서 노예제, 빈곤, 기아, 제도적 부정부패 같은 과거의 족쇄와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이상주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속에서 서서히 발전하는 선진 유럽 미술의 위성 실험장처럼 비춰졌다.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였던가. 1910년대에 유럽에서 앞다투어 전개되고 있던 여러 미술 신사조들, 예컨대 상징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등은 192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멕시코로 유입되어 ‚에스트리덴티즘(Estridentismo)’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멕시코 풍으로 토착화되었다.

멕시코의 화단에 불어닥친 다양한 유럽풍 신사조의 물결에 못지 않게 멕시코의 근대사 또한 격랑의 도가니였다. 사실상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보건대 20세기 전반기 근대기는 어느나라와 문화권에서나 격변과 역동의 시기였으며 북미 대륙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라틴국가 멕시코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찬란한 고대 아츠텍 문명의 발상지던 멕시코의 역사는 16세기초 스페인의 침략, 점령, 식민 정권 이후로 수많은 인종, 언어, 문화가 뒤섞이며 그들 사이에서 빚어진 정치적 사회적 각축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다사다난했다.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을 비롯한 여러 유럽 이민자들과 멕시코땅 원주민들 사이의 폭넓은 인종간 교차 결혼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메스티조(Mestizo)로 불리는 스페인-인디오 원주민 혼혈자손들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19세기 말 즈음이 되자 그 수는 멕시코 전체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민족주의 추세가 당시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를 사로잡고 있던 만큼 멕시코도 예외는 아니었고, 멕시코 내 혼혈인구의 증가는 곧 멕시코인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혈통에 대한 자의식을 한층 고조시켰다. 스페인 제국의 보석땅 멕시코는 1824년 제국의 손아귀로 부터 벗어나서 독립을 얻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과거 스페인 제국의 기득권 세력이 남겨 놓고 간 부패와 부조리의 잔재까지 이어받아서 19세기가 다 끝나갈 때까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갈등과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브라함 안젤(Abraham Ángel) <작은 당나귀 (La mulita)> 1923년 Oil on cardboard 78 x 121,5 cm © Museo de Arte Moderno, Mexico City.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집권했던 멕시코의 강력한 지도자 포르피리오 디아즈(Porfirio Diaz)는 이 나라 운영의 모든 면에서 유럽풍을 추종했지만 곧이어 자파타(Emiliano Zapara)가 주도한 1910년 멕시코 혁명을 끝으로 종식되었다.

자파타 주도의 멕시코 토착적인 혁명군 정부는 전통 문화의 재인식이라는 과업을 기치로 내걸고 멕시코식 민족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이때 집권한 제도적 혁명당 또는 줄여서 PRI는 2000년도까지 집권을 계속하여 20세기 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장기 집권한 정권으로 기록되고 있다. 문화적으로, 디에고 리베라, 호세 오로스코 (Jose Orozco), 데이빗 알파로 시케이로스 (David Alfaro Siqueiros) 로 구성된 근대기 멕시코 벽화운동의 3두 마차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며, 누구보다도 멕시코인으로서의 뿌리를 중요하게 여겼던 프리다 칼로가 멕시코 전통의상인 테후아나 드레스와 볼레로를 패션 아이콘으로 즐겨 입기 시작한 때도 이 시기이다.

멕시코 출신의 근대 화가들은 저마다 어딘가 강렬한 카리즈마와 주술적 마력을 잔뜩 발산한다. 이는 어쩌면 근대기 미술가들이 그 시대를 살던 멕시코인들이 경험하고 있던 정치적 풍운과 생의 고통이라는 집단적 상태를 미술로 표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국의 계급적 부조리, 빈곤, 부패, 생의 고통 등 당시 멕시코가 당면하고 있던 문제를 표현한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의 벽화운동가들의 정치적 미술은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규모상의 장대함과 주제상의 진지함에 압도되어 마치 엄숙한 종교화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감흥을 안겨준다.

인간은 한낱 권력, 선동, 원시적 본능의 노예라고 본 오로스코는 흡사 미켈란젤로의 웅장한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육중한 남성 누드를 그림에 그녀 넣는 것으로 해서 인류가 우매와 자멸에 빠지지 말것을 경고했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근대적 진보라는 낙관주의를 향해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것은 시케이로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루피노 타마요(Rufino Tamayo) <자화상(Autorretrato)> 1967년작 Oil on canvas 178 x 127 cm © Museo de Arte Moderno, Mexico City.

그러나 모든 멕시코 화가들이 그림을 통해서 심각한 정치사회적 논평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야수파와 원시주의에 영향을 받은 듯 한 양식을 추구한 아브라함 안젤(Abraham Ángel), 피카소의 대형 인물화를 연상시키듯 커다란 캔버스에 붉은색 피부를 한 멕시코 여성 누드화를 즐겨 그린 마누엘 로드리게즈 로자노 (Manuel Rodriguez Lozano), 기하학적인 형태와 평면성을 강조하여 유럽의 모더니즘을 멕시코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루피노 다마요 (Rufino Tamayo) 등은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멕시코적 혈통과 전통 민속 문화를 화폭에 기록한 멕시코 민족 화가들이다.

자전적 개인사를 그림에 반영한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품 <2명의 프리다 (Las Dos Fridas)>(1939년)는 독일인 혈통과 원주민 혈통이 섞인 화가의 정체성은 곧 멕시코인들의 정체성과 같음을 시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수박이 있는 정물화>(1953년)는 자연이 잉태한 과실을 통해서 관능과 생에 대한 열정을 표현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추상미술이 본격화함에 따라서 1950년대 이후부터 멕시코 화단에도 덩달아 추상주의 물결이 불어 닥쳤다. 이른바 ‚단절의 세대 (Generation of the Rupture)“로 불리는 새로운 유행이 자리잡은 이후로 멕시코는 아직도 20세기초 근대 회화 운동이 이룩했던 폭발적 예술성은 또다시 목도하지 못했다.

20세기 전반기 멕시코에서 숨가쁘게 전개된 모더니즘 미술 운동을 한 눈에 점검해 볼 수 있는 『멕시코 모더니즘 – 멕시코 시티 근대미술관 걸작전』은 오스트리아의 개인 현대미술관인 잠룽 에슬 (Sammlung Essl)에서 [2005년] 6월 12일까지 계속된다. Photos courtesy : Sammlung Essl.

전시 제목: 멕시코 모더니즘 – 멕시코 시티 근대미술관 걸작전 (Mexican Modern)
전시 장소: 오스트리아 빈 잠룽 에슬 현대미술관 (Sammlung Essl Kunst der Gegenwart)
전시 기간: 2005년 3월18일-6월12일

* 이 글은 본래 세종문화회관 월간 회원지『문화공간』 2005년 6월호에 실렸던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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