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칸의 기념비적 건축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다카 소재 국회 건물. 1962년 시공 -83년 완공.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다카 소재 국회 건물. 1962년 시공 -83년 완공.

LOUIS KAHN: THE POWER OF ARCHITECTURE

20세기 미국을 대표한 가장 뛰어난 건축가중 한 사람이었던 루이스 칸(Louis Kahn, 1901✴︎필라델피아 -1974✝ 뉴욕)이 심장마비로 1974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자 『뉴욕 타임즈』 지 부고 기사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했다. “벽돌과 콘크리트로 위력적인 형태를 창조하며 수많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미국 최고의 생존 건축가로 학자의 인정을 받았던 루이스 I. 칸이 일요일 저녁 [뉴욕] 펜실바니아 역에서 73세의 나이로 하직했다.”고 보도했다. 루이스 칸이 사망했을 즈음, 이 건축가는 한 아내와 두 애인을 포함한 세 집 살림의 가장이었으며 정력적인 건축 설계 활동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설계가 살아생전 실현되었고 약 5억 달러 가량의 빚을 지고 있었다.

⇧ 맨 위 이미지 설명: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다카 소재 국회 건물. 1962년 시공 -83년 완공.

Alfred Newton Richards Medical Research and Biology Building, Philadelphia, Pennsylvania, 1957-65. © The Architectural Archiv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oto: Malcolm Smith.

Alfred Newton Richards Medical Research and Biology Building, Philadelphia, Pennsylvania, 1957-65. © The Architectural Archiv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oto: Malcolm Smith.

본래 에스토니아의 한 외떨어진 섬 오셀에서 태어났지만 1904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와 동부의 역사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한 루이스 칸은 마음 속 깊이 필라델피언이었다. 한창 일하며 경력을 키워야 할 시절이던 초년병 시절, 때가 1920-30년대 경제 공황기였던 탓에 루이스 칸은 독립 건축가 일과 예일 대학 강사일을 하며 간신히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1950년대 이후 패권국 미국의 경제 재건과 함께 칸은 보다 굵직한 건축 프로젝트 수주를 받기 시작했다.

살아 생전 칸은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과거 미술과 건축의 미학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추출했던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광적인 스케치 메모광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가 추구하던 구성적 합리주의와 세기전환기 영국의 예술공예운동에서부터 독일의 바우하우스 모더니즘을 두루 합성한 독특한 모더니스트이기도 하다. 그 자신 르 코르뷔지에의 초기 모더니즘 건축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으나 고대부터 근대기까지 시대과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다양한 요소를 취했다. 예컨대 칸은 자신이 설계해 완공시킨 소크 연구소(캘리포니아 주 라 졸라 시 소재)는 ‘피카소도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라며 떵떵댔던 대표적인 역작이었다.

겉보기에는 전통적이고 때론 원초적인 형태를 띠되 시공 기술 면에서는 최첨단 재료와 공법을 동원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혁신성을 발휘했다. 또 한 작품 착수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과 숙고를 거쳤던 여간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였으며 건축가는 중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녔다 믿었던 사명감찬 직업인이었다. 오늘날 건축학계에서 루이스 칸 건축을 모더니즘으로 정의할 것인가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정의할 것인가 여전히 그 언쟁이 분분하다. 그가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수주받아 수도 다카에 지은 육중해 보이는 국회 건물은 한 편의 건축물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영원한 기념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걸작이다.

오늘날, 건축학계에서 루이스 칸의 건축 세계는 그가 이룩한 걸작 건축에서부터 초기 도시 토목설계와 소형 개인 주택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연구되어 있다. 칸이 설계한 모든 건축물을 관통하는 일관된 미적 특징을 정의하라면 단연 면밀한 공간구성과 세심하게 연출된 빛처리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의 건축물들은 고요엄숙하면서도 동시에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보는이를 압도하는 위력을 발산한다. 미국 텍사스 주 포트 워드 시에 있는 명소 킴벨 미술관은 빛을 다룰줄 알았던 칸의 탁월한 재능이 건물 구석구석에 실현된 작품으로 꼽힌다.

Salk Institute in La Jolla, California, Louis Kahn, 1959 – 65 © The Architectural Archiv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oto: John Nicolais.

Salk Institute in La Jolla, California, Louis Kahn, 1959 – 65 © The Architectural Archiv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oto: John Nicolais.

칸의 아들 나타니엘 칸(Nathaniel Kahn, 1962✴︎))이 아버지를 기리며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건축가(My Arhitect)』(2003년)에 보면, 인터뷰에 응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 렌조 피아노(Renzo Piano),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 그리고 젊은 건축 소우 후지모토(藤本 壮介, Sou Fujimoto)의 공상과학풍 메타볼리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국제 건축계를 쥐락펴락하는 영향력 있는 건축가들은 하나같이 루이스 칸의 건축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벽돌에게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라고 한 루이스 칸의 말은 유명하다. 건설 재료에 담긴 특성이 건축물 자체의 언어를 표현해줌을 뜻한다. 그리고 그는 또 “구조가 빛을 빚어준다”고 했는데 “자연광 없는 방은 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그의 빛 철학도 유명하다. 벽돌과 콘크리트가 빛과 소근거리는 공간을 창조했던 루이스 칸의 건축물들은 한 편의 굳건하고 영원한 기념비처럼 남아있다. Photos courtesy: Vitra Desig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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