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에는 정해진 규율이란 없다.

198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 뉴아방가르드로서 포스트모더니즘 (제2편 – 디자인)

POSTMODERNISM AS NEW AVANT GARDES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80′s (Part 2)

기능적인 건축은 자를 대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못지 않게 올바르지 못한 길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장족의 발전 끝에 우리는 드디어 비실용적이고, 쓸모없고, 주거가 불가능한 건축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 오스트리아 출신 생태 건축가 프리든스라이히 훈더트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가 모더니즘에 대하여 남긴 평.

디자인은 창조적 혼란과 기발한 컨셉의 결정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활동하던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은 흔히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정신을 가리켜서 ‚창조적 혼란 (creative chaos)’ 상태라고 표현하곤 했다. 1980년대는 자연 과학 분야에서 ‚카오스 이론 (Chaos Theory)’가 처음으로 발표되어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뒤에 숨은 무작위적인 연쇄적인 인과관계와 인간의 이해불능력을 정의한 시대였다.

고도로 발전을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미지(未知)의 영역은 점차 커져만 가고 있음을 시인하는 과학계가 그러할진대 디자인 예술 분야라 하여 사정은 그다지 다를수 없었다. 디자인 제품이란 반드시 기능적 구실을 수행하는 사물의 결정체여야 한다는 과거 모더니즘의 강령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이제 디자인은 창조자의 기발한 착상, 독창적인 컨셉, 사회문화적 이념이 담긴 이념적 의사소통의 매개적 창조물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1980년대 대륙권 유럽 미술계에서는 1960-70년대 미술계를 휩쓴 추상미술과 개념미술에 질린 화가들 사이에서 신표현주의(Neo-Expressionsm, 독일)나 트랜스 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 이탈리아)라는 이름을 내건 구상주의 회화 운동이 다시금 불어닥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대중문화 최전선방에서는 텔레비젼 MTV 뮤직비디오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 왬! 같은 대중연예인들을 이용해 헤어스프레이로 잔뜩 부풀린 헤어스타일과 영국 하위 서브컬쳐 및 스트리트 스타일에서 영감받은 절충주의 패션을 새롭게 유행시키고 있을 때였다.

자연히 1980년대의 디자이너들은 아직도 주류 건축계를 도그마처럼 사로잡고 있던 모더니즘의 기능주의 (Functionalism)와 합리주의(Rationalism) 경도의 건축 및 디자인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모더니즘 기능주의가 낳은 상자곽 같은 천편일률성과 지루한 표준화 끝에 만들어진 도시 환경과 건축물에서는 개인주의, 개성, 상상력을 아무리 눈씻고 찾아도 찾을 길이 없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든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과거 모더니스트들이 그토록 신봉하던 기술과 미래에 대한 굳건한 이상(理想)이나 진보에 대한 확신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구식 사고방식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Javier Mariscal, Hilton - Serving trolley, Barcelona, Spain, 1981, Painted metal, shaped crystal glass, industrial casters. Victoria & Albert Museum collection.

Javier Mariscal, Hilton – Serving trolley, Barcelona, Spain, 1981, Painted metal, shaped crystal glass, industrial casters. Victoria & Albert Museum collection.

이같은 배경 속에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을 타고 과거 합리주의 경도의 심각한 모더니즘을 비웃으며 인간의 보다 비이성적/감성적이고 자유로운 창조적 상상력에 의존한 디자인을 추구한 디자인 운동의 초기 기미는 이미 1960년대 말과 1970년대부터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예컨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활동한 하비에르 마리스칼 (Javier Mariscal)은 본래 만화가로 시작한 후 현재까지도 풍자와 기이한 매력을 풍기는 그래픽 디자인과 날렵한 에어로다이나미즘을 자랑하는 제품을 만들어 오고 있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산업을 위한 표준화된 디자인으로부터의 탈출 그러나 1980년대에 혁신적인 사고와 파격적인 스타일로 급진적인 디자인 운동이 가장 무성하게 전개되었던 곳은 이탈리아였다. 그들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이미 반문화 운동이 전세계 구미 대도시에서 번졌던 반문화 운동이 한창이던 이미 1960년대 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66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이 도시 출신의 건축가들이 모여서 수퍼스튜디오 (Superstudio)라고 불리는 급진적인 디자이너 단체가 결성되었다.

‚안티-디자인 (Anto-design)’을 슬로건으로 내건 수퍼스튜디오의 두 창설자 아돌포 나탈리니 (Adolfo Natalini)와 크리스티아노 토렐라도 (Cristiano Torelado)가 주축이 된 수퍼스튜디오의 동인 디자이너들은 정치적으로 놀랍도록 급진적이어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중국 마오주의 공산주의 혁명과 그의 빨간책 어록집을 존경했고, 일찌기 동성애주의를 지지했으며, 소비주의 문화와 항상 새것을 추구하는 욕망자극지향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Alessandro Mendini, Chair „Redesign Thonet“, Studio Alchimia, 1979. Die Neue Sammlung Photo: Die Neue Sammlung – The International Design Museum Munich (A. Laurenzo)

Alessandro Mendini, Chair „Redesign Thonet“, Studio Alchimia, 1979. Die Neue Sammlung
Photo: Die Neue Sammlung – The International Design Museum Munich (A. Laurenzo)

수퍼스튜디오 그룹의 디자이너들의 작품 세계는 정치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다는 점 때문에 그 결과물은 콜라쥬와 아이디어 드로잉들이 주를 이루지만 이탈리아의 가구업체인 자노타 (Zanotta)가 생산한 콰데르나 테이블 (Quaderna table, 1970년도 작)은 지금도 파리 퐁피두 센터와 뉴욕 근대미술관에 영구소장되어 있다. 콰데르나 테이블은 실내 공간을 최대한 열어두기 위해서 가구의 부피와 볼륨을 최소화한다는 수퍼스튜디오의 자유주의 철학이 디자인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을 일찌기 1960년대말에 예고한 피렌체의 수퍼스튜디오 그룹은 1920년대부터 건축과 디자인을 장악해 온 모더니즘의 이상에 제동을 걸고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소비주의로 치닫는 후기 산업 사회를 한 지적인 운동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디자인사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1972년, 수퍼스튜디오는 결성된지 6년째 되는 해에 드디어 해체되었다.

뒤이어 1976년, 밀라노에서는 알레산드로 멘디니 (Alessandro Mendini)와 에토레 솟사스 (Ettore Sottsass) 두 디자인계  최고봉이 주도된 급진적인 디자인 그룹 스튜디오 알키미아 (Studio Alchimia)가 결성되었다. 그들은 1960년대 말엽 팝미술과 수퍼스튜디오의 안티-디자인 정신을 한 단계 더 전개시켜서 당시 기성 사회에서 ‚고급 취향 ’이라고 당연시되던 취향의 진부함 (banality of taste)을 전면 공격하며 기존의 미의식에 도전장을 내던졌다.

알키미아 (이탈리아식 표기로 alchimia 또는 영어식 표기로 alchemy)란 금속붙이를 가치 높은 금으로 변화시키는 마술적인 연금술이라는 뜻으로서, 그 명칭의 의미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진부하고 평범한 디자인에 컨셉과 아이디어를 불어 넣어서 전복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전환시키는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신념이 반영한다. 예컨대, 지성주의 디자이너 멘디니는 키치 (kitsch)의 미학을 적극 활용하여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고 과거 유럽 미술 양식들로부터 두루 영감을 얻어 온갖 장식적 요소들을 혼합하는 절충주의 미학을 구축하여 이른바 ‘양식적 무정부주의 (stylistic anarchy)’와 과감한 실험주의를 표명했다.

kuramata

Shiro Kuramata, Miss Blanche, designed in 1988, produced in 1989 to the present. Manufacturer: Kuramata Design Office, Tokyo Size: 90.5 x 62.5 x 60; seat height 45.5 cm. Material: acrylic resin, plastic, epoxycoated aluminum tubes.

알키미아 그룹이 창조자의 번뜩이는 착상과 역사와 철학적인 지식을 기초로 한 지성의 유희의 표현 수단으로서 디자인을  활용했던 터에 이 동인파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은 시각적으로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지평을 열어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제품의 사용자 편이성 (usability)과 기능성(functionality) 면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았다. 예컨대, 도시적 여피들과 상류층 예술 애호가들이 주방에 하나씩 진열해 두곤 했던 필립 스탁의 쥬시 살리프 (Juicy Salif, 쥬스짜기, 알레시 생산)는 그 우아한 자태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자연히 알키미아 그룹의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컨셉들은 실제 소비자용 제품으로 생산되어 판매되는 일이 드물었고 그 대신 아이디어 드로잉과 프로토타입 형태로 전시회나 도록으로 발표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라이프스타일 소비자 용품으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의 기능성과 유용성은 제품의 존재에 있어서 그다지 최우선인 조건이 아니라는 신념을 멤피스 그룹의 디자이 철학으로 이어졌다. 멤피스 (Memphis) 그룹은 멘디니와 결별하고 알키미아부터 떠어져 나온 솟사스가 1981년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새 수도 밀라노에서 설립한 또다른 이탈리아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 운동이 되었다. 솟사스가 미켈레 데 루키 (Michele de Lucchi), 바르바라 라디체 (Barbara Radice), 마르코 자니니 (Marco Zanini), 알도 치비치 (Aldo Cibic), 마테오 툰 (Matteo Thun) 과 함께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중에 스테레오에서 연거푸 흘로나온 밥 딜런의 노래 「멤피스 블루스 (Memphis Blues)」의 제목을 따서 즉흥적으로 그들의 디자인 동인회의 이름을 ‚멤피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일화는  오늘날 20세기 디자인사에 잘 알려져 있는 한 편의 전설이 되었다.

멤피스는 고대 이집트의 고도이자 미국 블루그래스 음악의 보고장의 명칭이기도 해서 다중 의미를 띤 독특한 고유명사라는 점이 멤피스 동인들을 매료시켰다 한다. 디자인은 여러 부분의 합 (sum of parts)이지 하나의 단일체(unity)가 아니다. …“ 라고 말하며 솟사스는 ‘디자인은 더 이상 기능수행을 위한 작동 기계도 아니며 또 그렇다고 해서 익명의 대도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량생산과 소비용 일용품도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 되어야 한다’며 디자인을 새롭게 정의하려 시도했다.

헌데 어쩐지 솟사스가 내세웠던 그같은 반기업적, 반소비주의적 디자인 철학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솟사스를 비롯한 멤피스 동인 디자이너들 다수는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이나 디자인 제조 업체들의 주문을 받아서 제품 디자인 프로젝트를 다수 이행하여 디자이너-산업 연계라는 전통적인 디자인 산업구조를 유지했다.

Philippe Starck, W.W. Stool, Design: 1990 Production: 1992 to the present. Manufacturer: Vitra AG, Basel. Size: 97 x 56 x 53 cms. Material: varnished sand-cast aluminum.

Philippe Starck, W.W. Stool, Design: 1990 Production: 1992 to the present. Manufacturer: Vitra AG, Basel. Size: 97 x 56 x 53 cms. Material: varnished sand-cast aluminum.

예컨대, 리쳐드 새퍼 (Richard Sapper)는 특유의 절제된 IBM 컴퓨터 디자인을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알레시 (Alessi) 사를 위한 물주전자, 자누소 (Zanusso) 사를 위한 텔레비젼 등 소비재 디자인용품을 디자인해 기업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또, 1970년대에 올리베티 (Olivetti) 사의 의뢰를 받아 타자기를 디자인했던 거장 디자이너 마리오 벨리니 (Mario Bellini)는 그의 본령인 가구 디자인 외에도 일본 기업 야마하 (Yamaha)의 전자 음향기기 디자인을 담당했다.

한편 멤피스에 동참하며 유럽 포스트모던 디자인을 탐색하던 일본출신의 디자이너들은 기업에 종사하는 디자인 보다는  순수형식의 조형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절묘한 디자인 작품들로 탄생시키는데 더 주력했는데, 예컨대 마사노리 우메다 (Masanori Umeda)와 시로 구라마타 (Shiro Kuramata)는 그런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이었다.

국가적∙국민적 정체성으로서의 디자인 이탈리아에 비해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프랑스는 1980년대 초엽 미테랑 대통령의 엘리제궁 재 디자인 작업을 단해하기 위해 디자이너를 물색하던 계기를 통해서 필립 스탁 (Phillippe Starck)이라는 젊은 천재 디자이너를 발굴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프랑스 디자인계를 사실상 독주하다시피 한 필립 스탁은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전세계의 수많은 화재의 실내 디자인 및 가구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의 미니멀주의, 독일 디자인의 심각함, 스페인 디자인의 엄격함 그리고 이탈리아 디자인의 극도의 실험주의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사려 깊고 균형 감각이 살아있다 평가되는 프랑스적 디자인을 구축했다.

한편 수도 런던을 구심점으로 해 출발한 영국의 포스트모던 디자인은 영국국민 특유의 실용주의와 디자이너 개인의 개성이 융합된 디자인을 전개시켰다. 이탈리아의 자유분방함 보다는 단순간결한 기능주의의 모더니즘 정신과 유용성이 대담한 표현성과 결합된 실용주의 노선을 타고 급속하게 전개되었다. 자유분방한 조각 작품을 연상시키는 론 아라드 (Ron Arad)의 가구 디자인을 비롯해서 톰 딕슨 (Tom Dixon)과 재스퍼 모리슨 (Jasper Morrison)는 1970년대 영국에서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 DIY 가구 디자인 유행에 기초해 실용주의 디자인의 대중화에 기여한 대표적인 1980년대의 영국 디자이너들로 꼽힌다.

i-D, no 28. The Art Issue, August 1985. Styled by William Faulkner, design by Terry Jones, photograph by Nick Knight, featuring Lizzy Tear © V&A Museum.

i-D, no 28. The Art Issue, August 1985. Styled by William Faulkner, design by Terry Jones, photograph by Nick Knight, featuring Lizzy Tear © V&A Museum.

다문화, 주변문화, 하위문화, 글로벌화 시대를 위한 준비  이 시대 영국이 또 자랑하는 디자인적 기여로는 키치와 절충주의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비비엔 웨스트우드 (Vivien Westwood)나 잔드라 로즈 (Zandra Rhodes) 등이 주축된 런던 패션 디자인붐과 아키줌 (Archizoom) 그래픽 디자인 그룹, 피터 사빌 (Peter Saville), 네빌 브로디 (Neville Brody) , 펑크 (Punk) 등으로 대표되는 급진적인 그래픽 디자인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
인류 역사상 20세기 후반기 만큼 인류를 소비주의의 물결로 몰아넣은 적은 없었다. 서구 사회는 1960년대 말엽 히피 반문화 운동 (Counterculture Movement)이라는 반성적인 계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비대화되어 간 대규모 다국적 기업들의 사업 확장과 경제 성장 덕분에 물질적으로 윤택해 지는 가운데 교통과 통신의 발달, 보다 자유롭고 활발해진 여행과 이민, 소수민족과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 증대, 환경문제에 대한 위기 의식으로 인해서 서구 사회는 더이상 근대적인 신념 만으로는 역부족인 경지에 이르렀다.

일부 창의적이고 지성적인 학자들과 디자이너들은 1980년대에 두드러지게 표면화되기 시작한 그같은 문화적 환경 변화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다문화적 (multi-cultural)이고 주변적인 (marginal) 쟁점들로 눈을 돌려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같은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시대라고 이름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디자인 제품에 감성(emotion), 유머와 위트, 재미(fun),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은(feels right) 감각 등 이전의 합리주의 지향적인 모더니즘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직관적인 요소들이 디자인 창조 과정에 핵심적인 창조 원천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때도 바로 19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덕택이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그것이 ‚모더니즘으로 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못다한 모더니즘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모더니즘의 연속’ 또는 모더니즘 2.0을 의미하는 것인지 매우 불명확하고 두리뭉실하게 사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디자인 분야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물결 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건축과 디자인 운동은 이후 1990년대와 21세기의 현대인들의 일상 생활에 깊이 파고든 소비주의 (consumerism)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lifestyle)이라는 개념이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쐐기를 박는데 기여했다.

※ 이 글은 LG 인테리어 사보 『공간사랑』지 2005년 9월호에 실렸던 글을 편집 전 상태로 게재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