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

종합예술의 요소에서 건축가의 자아 표현을 위한 예술 작품으로

CHAIRS DESIGNED BY ARCHITECTS

하루일과 동안 누워서 잠자고 몸을 움직여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이동하며 활동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인간은 쉬고, 먹고, 일하고, 심지어 배설하는 순간까지 갖가지 모양과 기능을 갖춘 의자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의자라는 가구 품목이 우리 일상생활과 얽히고 설킨 관계는 여간 깊고 방대한게 아니다.

의자란 둔부를 바닥에 대고 앉아면 등을 위에서 받쳐 주는 1인용 가구다. 좀 더 엄밀히 정의하면 의자(chair)란 둔부가 바로 닿는 시트(seat)와 등받이(back rest)가 갖추어진 것이 의자다. 그래서 벤치가 2인 이상 또는 여려명이서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한 긴 걸상(bench, bank)이고, 시트만 있고 등받이가 없는 1인용 스툴(stool)과도 개념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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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레니 매킨토시 (Charles Rennie Mackintosh)가 스코틀랜드 글라스코 아르가일 거리에 있는 테살롱 식당 실내장식을 위해 디자인한 등받이가 높은 의자. 1897년 디자인.

오늘날 실내장식과 디자인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디자인 오브제 또한 의자다. 디자인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학생과 초년병 디자이너에서부터 이미 대가 취급을 받는 거장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제각자의 시그니쳐 스타일을 압축해 보여주고 평가를 기다릴 때 가장 우선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내보이는 표준 잣대도 바로 의자다. 웬만큼 디자인에 관심있다고 자부하는 디자인 애호가들은 아이콘격 의자와 디자이너 이름까지 암기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해 온 앉기의 문화는 의자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의자의 원형이 최초로 탄생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기원전 3세기,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딱딱한 바닥과 벽에 보다 안락감있게 앉고 기대 쉬기 위해서 쿠션이나 방석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몸의 곡선에 맞게 굴곡시켜 시트와 나트막한 등받이가 있는 클리모스(Klimos) 의자를 만들어썼다 하고, 고마인들은 등받이없이 의자 다리가 좌우로 교차되는 힘으로 시트와 앉는자의 몸을 받쳐주는 접이식 걸상(stool)을 널리 활용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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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릿 릿벨트 (Gerrit Thomas Rietveld)가 1918-1921년 디자인한 레드/블루 체어(Red/Blue Chair는 너도밤나무와 합판을 이용해 제작되었다. © Cassina, Italy.

오랜 과거시절 의자란 언제나 사용자를 의젓하게 앉혀주어 품위를 드높여주는데 매우 유용해서 통치자의 권력과 신분의 심볼 역할을 했었다. 오늘날까지도 조직의 최고위 지위나 장(長)을 가리켜서 영어로 체어(chair)라고 부르는 것도 그같은 문화적 자취를 반영한다.

중세시대 이후부터 의자는 묵직한 소재를 이용해 위엄있고 정교하게 제작되어 교회의 고위 성직자, 황실 왕족, 지체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앉아서 업무에 임하는 가구로 자리잡았다. 그러다보니 시대가 발전하고 양식이 변천하면서 의자는 다양한 유행과 안락성을 추구하며 디자인적 변천을 거쳐 만인들의 생활가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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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호프만이 빈 푸르커스도르프 요양소 건축과 내부 실내장식을 위해 맞춤 디자인된 팔걸이 의자. 기하학적 선과 흑백 색상으로 정제된 건축과 실내를 일체감을 준다. 1904-1905년. Wittmann 생산.

특히 19세기말부터 모더니즘 운동이 대륙 전체를 열병처럼 뒤흔들었던 유럽에서 의자는 대중을 위한 가능적이고 윤리적인 원형적 모더니즘 품목으로 떠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시대 문제에 봉착한 소외된 인류에 봉사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독일의 바우하우스 운동의 선구자들은 의자란 그 어떤 군더더기 장식이나 불필요한 요소 없이 기능에 충실하며 미감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었다.

건축 안팎 총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건물과 어울리는 인테리어, 가구, 악세서리 세부까지 총지휘하는 이른바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을 추구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거장 근대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과 오토 바그너(Otto Wagner)는 건축물과 어울리는 실내장식용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다.

손쉽게 대량생산된 가구를 구입할 수 있게된 요즘과는 달리 건축에 어울리는 실내장식용 가구를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 당시의 사정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건축적 외양과 인테리어의 완벽한 일체성(unity)를 고집했던 근대 건축가들의 원칙주의 때문이었다. 유독 20세기 전반기 탄생한 대다수 의자들이 건축가의 손에서 탄생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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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가구생산업체 카시나는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LC2 큐브 체어 디자인 원형 그대로 현재까지 생산하고 있다. ⓒ Cassina, Italy.

독일의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헤(Ludwig Mies van der Rohe)가 디자인한 철재 의자 받침구조와 가죽 시트의 바르셀로나 의자는 지금도 비트라에서 꾸준히 생산판매 되고 있는 근대 의자의 고전작이 되었다. 스위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철제 팔걸이 의자와 핀란드의 알바 아알토(Alvar Aalto)의 라미네이트 굴곡목 의자도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의 대표작들이다.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는 철관이라는 근대적인 재료를 사용해 캔틸레버 공법을 응용한 의자 디자인의 혁신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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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 1958년 디자인한 달걀 의자(Egg™). © Fritz Hansen. Photo: Tim Bjørn.

유럽과 미국에서 디자인이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본격적으로 활용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였다. 때는  건축가가 핵심 건축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 건축 설계와 가구와 실내장식까지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예컨대 르 코르뷔지에, 독일의 에곤 아이어만(Ego Eiermann), 덴마크의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등은 건축 프로젝트 수주시 실내용 가구 디자인까지 책임지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고집했다던 대표적인 ‘가구 건축가(furniture architect)’들이다.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 1958년 디자인한 달걀 의자(Egg™)는 코펜하겐 로열 호텔 로비와 리셥션 공간의 실내장식용으로 주문받아 제작되었다. 이 호텔의 건축 외형과 실내장식을 조화롭게 결합한 ‘가구 건축가’ 야콥센의 종합예술주의의 사례다.

전후 1950년대 이후부터 경제재건을 위해 이탈리아 뉴웨이브 붐을 일으키며 기랑성같은 디자인 거장을 배출한 이탈리아(죠 폰티, 카스틸리오네 형제 등)에서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은 물론 자동차와 가전제품 디자인에 기여한 주인공들도 다름아닌 건축가들이었다.

건축과 산업디자인을 별개의 분야로 결별시키려는 움직임이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서 시작된 이래, 지금도 의자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산업디자이너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찰스와 레이 이임즈( Charles & Ray Eames) 부부는 그들이 디자인한 의자와 가구를 가리켜서 “작은 건축”이라고 부르며 철제와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제품으로 현대 디자인의 대량생산과 소비주의 문화를 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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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넬슨의 마시멜로 의자. Collection Vitra Design Museum 
© Vitra Design Museum.

큐비클 사무공간의 창시자 조지 넬슨(George Nelson)은 허먼 밀러와의 협력 끝에 완성한 의자 디자인으로 유명해졌고, 현대 디자인 마케팅의 창시자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본직이던 그래픽 디자인에서 영역을 넓혀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으로써 인테리어 영역까지 포용했다.

대량생산과 소비주의와 후기 산업사회가 무르익기 시작한 20세기 후반에 와서 건축가들은 의자를 디자인하는 일에서 한발짝 물러나 제품 디자이너들에게로 그 임무를 넘겨주었다. 20세기초 바우하우스식의 기능주의에 저항한 디자이너 개인의 독특한 컨셉과 스타일, 유연하고 혁신적인 사고가 의자 디자인에 임한 디자이너들의 주된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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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의 위글 체어. 값싸고 구하기 쉬운 소재가 유행했던 1960년대 디자인 트렌드를 가구 디자인에 응용했다. 에지보드로 불리는 카드보드 종이를 여러층으로 겹쳐 접착제로 붙여 제작하여 일상생활에서도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충분할만큼 견고하다. 1972년 작품.

특히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전세계를 강타한 스타 아키텍트의 건축붐을 타고 의자 디자인은 건축가의 시그너쳐 건축 스타일과 창조적 자존심을 한데 결함해 뽐낼수 있는 품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카드보드를 겹치고 구부려 제작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위글 체어(Wiggle Chair)라든가, 기상천외한 형태로 보는이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토르크 체어(Torq)는 의자 본연의 기능성 보다는 건축가의 개성을 응축시킨 조형성 강한 미니 건축에 더 가깝다.

이미 세상에는 도저히 다 팔수없을 만큼 많은 수의 의자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의자 본위의 기능성 보다는 건축가의 자아 표현이 위주가 된 예술작품으로서의 의자는 앉기에 그다지 편하지도 앉은게 사실이다.

Hadid Z chairs
“움직이는 형태(Form in Motion)”라는 슬로건을 모티프로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Z-체어(Z-Chair), 스테인레스 광택 강철 소재, 24개 한정수량으로 Sawaya & Moroni 생산. 2011년 작품.

그러다보니 세상에 넘쳐나는 의자들에 대한 일부 젊은 디자이너들의 볼멘 소리도 잦아졌다. 예컨대 올 201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세계디자인수도 행사를 기해 핀란드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제발 더 이상 의자 디자인은 그만’하자는 이색 캠페인을 벌인다는 소식도 있었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천해 온 의자 디자인은 또 미래에 어떻게 진화해 나갈까를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숙제거리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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