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의 황금 망고와 문화혁명

MAO’S GOLDEN MANGO AND THE CULTURAL REVOLUTION

Have you ever heard of a mysterious fruit called the “Golden Mango”?

인민들은 이부자리 문양으로 이불에 수를 놓아 쓰고 망고 패턴이 찍힌 식기를 사쓰며 망고 과실이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망고 과실을 깊이 아끼고 드높이 숭상했다. 도대체  한낱 이국에서 온 과일이 어떻게 그토록 강력한 정치 프로파간다의 심볼이 될 수 있었을까? 이 부조리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망고 열풍은 어디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역사적 부조리 현상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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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 접시에 놓인 망고, 1968년, colour printing on paper, 53.0 x 68.3 cm. Museum Rietberg Zürich, Gift of Alfreda Murck. Photo: Rainer Wolfsberger.

1968년 8월, 중국은 정치적인 전환기를 거치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약 2년전부터 문화혁명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오던 마오쩌둥은 이 운동의 주도권을 학생들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라, 과거 전통을 모조리 말살하라고 지시하고는 마오 자신은 중국 공산당 내부 최고위권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반 마오 세력 숙청에 집중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때문이었다.

중국 공산당 문화혁명이 최고조를 달했을 때인 1968년 가을, 중국은 온통 ‘망고 열병’ (mango fever)에 휩쓸려 신음하고 있었다. 어딜 둘러보아도 이 이국적인 과일이 안보이는 곳이 없었다. 파피에마셰, 플라스틱, 왁스로 만든 망고 과실은 중국 국가의 날 행사에  자랑스럽게 등장해 퍼레이드 되며 과거의 잔재와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시대를 고하는 심볼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지도자 마오가 던져준 과제를 열렬하게 받아들여 얼마안가 중국 전체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학생혁명군과 노동자로 구성된 홍위병대는 곧 중국 내 모든 제도권을 모조리 파괴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결과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권력다툼과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화해불가능할 지경으로 서로 반목하는 적대 파벌로 갈라졌다.

마오는 노동자-농민 마오쩌둥 사상 프로파간다단으로 이름한 특수군을 결성케 명하고 베이징에 있는 칭화대학을 점거하라고 명령하고, 급기야 이 사태는 학생 대 노동자 간 무력충돌로 이어졌다. 사상교육을 통해서 마오는 1968년 7월경까지 이 사태를 진정시켰다. 분할정복법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마오는 분명 유능한 정치 전략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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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에서의 국가의 날 퍼레이드, 1968년10월, Li Zhensheng (b. 1940), black-and-white photograph, 40.0 x 47.0 cm, Museum Rietberg Zürich, Gift of Alfreda Murck. Photo: Rainer Wolfsberger.

한바탕 소란은 4일만에 종결되었고, 마오는 8월 4일 파키스탄에서 방문온 외무부 장관을 접견했다. 파키스탄 외무 장관이 선물로 들고온 망고 40개를 선사받은 마오는 즉시 이 ‘귀한 선물’을 칭화대학에 포진하고 있는 노동자-농민 사상 선전단에게 하사했다.

망고가 지닌 정치적 의미는 홍위대 전원에게 단호분명하게 전달되었다. 홍위병 소속 학생들은 자진해 전투에서 물러났고 그 대신 노동자 계급이 문화혁명을 주도하며 “모든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에서 온 이 낯설고 이국적인 과일은 이렇게 해서 – 그 본래 의미와는 아무런 연관없이 – 공산당 지위자의 인민에 대한 애정을 표현임을 넘어서 당 위원장 마오쩌둥이 내려준 성스러운 신앙적 유물로 돌변했다. 이렇게 하여 마오는 또한 탁월한 프로파간다 마케팅 전략가임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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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해방군에서 생산한 일곱개의 망고가 있는 차 컵. 1968년, industrial enamel, 20.3 x 14.0 x 9.0, Museum Rietberg Zürich, Gift of Alfreda Murck. Photo: Rainer Wolfsberger.

망고 과실의 심볼을 활용한 마오의 선전 전략은 곧 중국 전체로 급속하게 번졌다. 거대한 망고 부유물이 중국 국가의 날 퍼레이드에서 전국 방방곡곡에 소개된 직후, 중국은 온통 망고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망고는 왁스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유리전시관에 전시되어 우수 노동자에게 주는 상으로 쓰였다. 평상시 늘 사용하는 식기, 이부자리, 거울 같은 일상용품에는 물론이려니와 망고가 새겨진 배지까지 널리 사용됐다. 망고 배지를 달고 다니거나 마오 초상과 망고 과실이 함께 새겨진 그릇을 쓰는 것으로써 인민들은 마오를 향한 충성심을 표현했다.

구시대 문화와 전통을 모조리 파괴해야 했던 공산주의 중국에서도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심볼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망고 과실은 전통 중국에서 장수의 상징으로 여기던 복숭아에 대한 문화적 대체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인민들의 망고 컬트는 열병 같이 번진 망고 열풍은 한 두해를 채 넘기지 못하고 스르르 잦아들었다.

1969년 중국에서는 망고 상표를 단 담배가 탄생했다. 망고가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듯, 이 건강에 좋은 망고표 담배곽에는 이제 학생 대 노동자-농민 사이에 벌어진 혼란을 뒤로 하고 “노동자 계급이 모든 영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새 공산당 정책을 인민들에게 전달했다. 마오는 군의 세력을 이용 당내 반대세력을 숙청했고, 인민에 대한 지도적 권한은 노동자들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마오의 문화혁명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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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하지 않은 망고표 담배. 1980년 경, 7.0 x 5.8 x 2.0 cm, Museum Rietberg Zürich, Gift of Alfreda Murck. Photo: Rainer Wolfsberger.

정치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한낱 과실에 불과한 망고가 거대한 정치 프로파간다에 어찌 그토록 성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을까? 이국서 온 문화적 기억도 없는 망고는 어떻게 그 많은 중국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컬트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마오의 황금 망고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능수능란한 광고술과 정치 캠페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마오의 황금 망고와 문화 혁명』은 스위스 리트베르크 박물관에서 전시된 후 독일과 영국으로 순회전시될 예정이다. Photos courtesy: Museum Rietberg, Zurich.

전시명: 마우의 황금 망고와 문화 혁명 (Mao’s Golden Mangoes and the Cultural Revolution) | 전시 장소: 스위스 취리히 리트베르크 박물관 | 전시 기간: 2013년 2월15일- 6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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