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쫒기는 손님은 들어오지 마세요

VIENNESE COFFEE HOUSE

여유와 사색의 공간 비엔나 커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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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제 6구역에 있는 카페 슈페를 (Café Sperl).

바쁜 사람들과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
„비엔나 카페하우스에 앉아 있기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간..“ –도심 속의 섬 비엔나 카페하우스는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만나서 사사로운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착상과 영감의 공간이 되어주는가 하면, 사무실 동료들의 눈을 피해 비즈니스 상대를 만나 사업을 구상할 수 있는 전략의 공간이기도 하며, 별달리 할 일 없이 이웃 테이블의 익명의 고객들이 만들어 내는 웅성대는 목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그날 신문이나 시사 잡지들을 뒤적이는 한량(閑良)들이 나른한 여가를 보내는 낭만의 공간이자 부유한 중장년 여성들이 모여 사교계 가십거리로 수다를 떨던 정보 교환소이기도 하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21세기 오늘,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현대인들이 잊고 살았던 무위 (無爲)와 낭만적인 여유가 아직도 살아 있음을 증명해 주는 곳이 바로 비엔나 커피하우스 (Wiener Kaffeehaus)일 것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남미 지방에서 커피는 바쁜 오후 졸음을 쫏고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한 각성제이다. 높다랗고 좁은 커피 바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들이키고 에너지를 재충전한 후 바쁜 일상으로 재돌진하는 커피 고객들을 흔히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며, 느긋이 앉아 커피를 즐기는 카페하우스에 비해 카페 바가 더 성행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비엔나의 카페하우스는 그와는 사뭇 다른 곳이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마 벗어나 아무의 방해도 받지않고 홀연히 독서를 즐기거나  사색의 시간을 갖는 곳이며, 친구나 애인 혹은 지인들과  삼삼오여 모여 담소를 나누는 대화의 공간이다. 그리고 바쁜 직장인들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경험하기 위해서, 양복을 빼입고 오후 외출을 단행한 노인들이 한 잔의 멜랑쥬 커피와 애플슈투루들(Apfelstrudel, 사과 파이의 일종)을 맛보기 위해서, 그리고 정말 할 일 없이 매일 드나드는 단골 손님이 간단한 아침 식사와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 카페하우스를 찾는다.

„카페란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옆자리 벗들이 있어야 하는 곳“ – 문화 창조의 대폭발기 20세기초엽 비엔나 모더니즘 시대에 살았던 비엔나 출신 지성인 알프레드 폴가르 (Alfred Polgar)는 당시 비엔나에서 번성한 카페하우스를 두고 이렇게 정의했다. 카페 안 구석구석마다 테이블과 의자에 홀로 섬처럼 앉아 있는 손님들이 동시에 함께 카페 군중을 형성하는 역설의 공간, 비엔나 카페하우스. 그래서 폴가가 그가 즐겨 드나들던 카페 센트랄을 일컬어 „시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죽여야 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 기담은 유명하다.

비엔나 카페하우스의 유래와 오늘
비엔나에서 커피하우스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7세기말경, 비엔나가 터어키 군의 공격을 받아 거의 점령될 위기를 맞았다가 폴란드군의 군사 원조 덕택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비엔나를 재탈환한 1685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급히 쫏겨난 터어키군이 미쳐 챙기지 못하고 버려두고 간 커피콩 자루를 콜시츠키 (Georg Franz Kolschitzky)라는 이름의 폴란드 군인이 발견해 커피음료를 처음 비엔나인들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비엔나인들은 커피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커피콩을 낙타똥인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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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쥬 커피를 주문하면 제공받게 되는 전형적인 커피 세트. 은쟁반 위의 커피 한 잔, 물 한 잔, 그리고 각설탕.

지금도 그렇듯이 당시 콜시츠키는 터어키식 커피는 커피콩을 볶은 후 갈아서 주전자에 끓는 물과 커피 가루를 한데 섞어 우려내는 제조법을 사용했는데 너무 진하고 쓴맛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한다. 곧이어 이듬해인 1868년, 아르메니아계 이민자 요한 디오바토 (Johann Diobato)는 커피 가루가 잔 밑에 가라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 필터 방식을 새로 고안하고 커피에 우유를 첨가하여 맛을 부드럽게 개선한 커피를 소개해 커피의 대중화를 본격화하는데 기여했다.

17세기말 합스부르크 황실 사업인증허가소가  „터어키식 음료를 커피라는 형태로 조리해 파는 곳“이라고 한 최초의 비엔나식 카페하우스는 지금의 비엔나 제1구역 중심부 돔가세 거리에서 문을 열였다. 얼마안가서 비엔나 도심에는 여러 카페하우스들이 우후죽순 뒤따라 문을 열었다. 당시만해도 때는 절대주의 시대였던 만큼 귀족 남성들만이 카페하우스에 출입할 수 있었고, 신문을 읽거나 카드 놀이, 당구, 체스 놀이를 하는 놀이공간 겸 커피와 당과류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사교 클럽 역할을 했다. 지금도 유서깊은 비엔나 카페하우스에 마다 비치되어 있는 신문잡지들은 바로 옛 귀족 신사들이 드나들던 카페하우스로부터 전해져 온 전통의 흔적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비엔나에서 옛 카페하우스의 실내 장식과 분위기를 가장 원형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카페 슈페를 (Café Sperl, 현재 비엔나 제6구역 소재)에 가면 현란한 바로크식 대리석과 금박 장식으로 찬란한 실내 장식과 골동 당구대들이 널찍한 카페 실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19세기 초엽부터 여성들의 카페하우스 출입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자취를 감춘 카페 밀라니가 그같은 최초의 카페였다. 구스타브 말러 같은 19세기 비엔나 음악계의 큰별들도 카페하우스에서 착상에 열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비엔나를 찾은 관광객들이 들러가는 카페 데멜 (Café Demel, 호프부르크 입구 바로 앞 콜마르크트 (Kohlmarkt) 거리에 위치)은 1786년 처음 문을 연 후 제1차 세계 대전까지 2세기반 여 동안 황실 전속 당과류 공급업자로서 현재까지 오스트리아 최고의 당과생산자로서의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으며, 역시 황실 당과류 공급에 기여했던 하이너 (Heiner)의 아담한 실내는 달콤한 당과류를 찾는 여성 노인들로 항상 북적댄다.

비엔나 카페하우스가 문화 제도로 정착하기까지 그러니 비엔나 카페하우스는 단순히 커피 마시는 곳이라는 의미 훨씬 이상의 문화 제도라고 하는 이유는 능히 짐작이 간다. 특히 카페하우스는 주머니 사정이 그다지 넉넉지 못한 보헤미언들과 예술가들에게  매서운 겨울 날씨와 허기에서 잠시나마 실내의 온기, 대화의 상대, 휴식처, 따뜻한 차와 요기거리 음식을 제공해 주는 안식처였다. 해서 예술가, 문학인, 근대 정치적 격동기를 헤쳐가야 했던 무명 정치가들 중에는 단골로 드나들며 일과를 보내곤 했던 카페하우스의 주소를 사무실 겸 업무용 주소로 활용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웨이터들은 단골 손님이 평소 주문하는 커피의 종류를 일일이 기억할 뿐만 아니라 손님의 직업과 직함까지 잊지 않고 정중하게 모셨으며, 손님이 돈이 떨어져 찻값을 지불하지 못하면 아무런 조건없이 기꺼이 외상도 그어 주었다. 하루종인 커피 한 잔 시켜 놓고도 추가 주문을 강요하는 사람 없으며, 안면있고 빠릿하기까지 한 웨이터라면 빈 커피잔 옆에 놓인 작은 크리스탈 물잔이 빌 때마다 눈치있게 새 잔을 놓아주고 간다.

비엔나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작은 은쟁반 위에 놓은 커피 한 잔 옆에 반드시 작은 유리 물잔이 켵들여 나온다. 커피맛 전문가들은 1) 커피맛을 배가하기 위해서, 2) 비엔나 북부 산꼭대기에서 받아 온 천연 산수의 맛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3) 커피 속의 카페인을 중화하고 소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커피와 물을 나란히 함께 제공하는 관습이 탄생했다고 하나, 비엔나 커피 문화 연구가들의 의견은 좀 다르다. 즉, 커피를 여러잔 주문할 경제적 형편이 못되는 고객들이 주문한 커피를 다 마신 후 또 주문하지 않고도 편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한 카페하우스의 자상관대한 인심과 매너 때문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월츠의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는 카페 하우스에서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카를 크라우스는 카페에서 그의 유명한  문화 비평지 《횟불 (Die Fackel)》을 출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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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전환기, 문필가, 언론가, 지성인들이 커피 한 잔씩 시켜 놓고 하루종일 독서와 토론을 하던 그린스타이들 카페 (Café Griensteidl). Graphic: Reinhold Völkel, 1896년 작 Source: Stadtchronik Wien, Verlag Christian Brandstädter p. 360.

비엔나 카페하우스가 비엔나 사회문화 속에서 독특한 제도 공간으로서 유명해 지기 시작한 때는 20세기초 모더니즘 발흥기. 당시 문화계를 주도하던 소설가, 언론인, 음악가, 화가, 그리고 예술 후원가들과 정치인들이 모여 지적인 토론과 독서 활동을 위한 장場으로 애용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비엔나 제1구역의 프라이융 (Freyung)  궁전 건물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중세양식 건물 외장으로 유명한 카페 센트랄 (Café Central)은 20세기 초 유명한 독설가 언론인 카를 크라우스 (Karl Kraus)와 그의 벗이자 문장가 페터 알텐베르크 (Peter Altenberg)의 단골 카페였다. 또 바로 이 카페 센트랄에서 러시아에서 비엔나로 갓 이민 온 젊은 혁명사상가 트로츠키가 독서와 착상에 골몰하였다고 당시 일간지는 적은 바 있기도 하다.

지금은 옛 실내장식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을만큼 실내공간이 개조되었지만 그린스타이들 카페 (Café Griensteidl)에 가면 의례 소설가 헤르만 바 (Hermann Bahr), 아르투르 슈니츨러 (Arthur Schnitzler), 후고 폰 호프만스탈 (Hugo von Hofmannsthal)이 커피 한 잔씩 시켜 놓고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20년대에는오스트리아 근대 문학의 대문호인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헤르만 브로흐 (Hermann Broch), 프란츠 베르펠 (Franz Werfel) 등이 하루가 멀다하고 헤렌호프 (Café Herrenhof) 카페를 드나들었으며, 구스타브 클림트 (Gustav Klimt), 에곤 실레 (Egon Schiele), 오스카 코코슈카 (Oskar Kokoschka) 같은 화가들은 물론이고 오토 바르너 (Otto Wagner)와 아돌프 로오스 (Adolf Loos) 등 근대 거장 건축가들이 무지움 카페 (Café Museum)와 카페 슈페를 (Café Sperl)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가 하면 빈 국립극장 옆에 위치한 카페 란트만 (Café Landtmann)은 신흥 부유층 인사들과 연예인들이 즐겨 출입하는 곳으로 지금도 이곳을 가면 어딘가 떠들썩하면서도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 흔히 비엔나인들은 스스로를 조예깊은 커피 애호가들이라고 여긴다. 해서 개개인마다 가장 선호하는 커피가 있고 또 저마다 고집하는 커피 하우스도 있다. 지금까지 비엔나 커피하우스들이 인정하는 전통 비엔나식 커피 종류만도 34종이 알려져 있다. 해서 비엔나 커피하우스에 들어가 테이블을 골라 잡아 앉아 있노라면 한참 후에 주문을 받으러 다가오는 웨이터에게 „커피 한 잔 주세요“고 했다가는 „어떤  커피?“라며 웨이터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오른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되물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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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란트만(Café Landtmann)의 실내 공간 모습. Photo courtesy: Café Landtmann. 부르크링 순환도로 상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 란트만은 부르크테아터 (Burgtheater) 국립극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이유로 해서 예로부터 연예인들이나 신흥부유층 고객들이 즐겨 드나들었다. 이 카페의 웨이터들은 유난히 제각기 개성이 강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비엔나 커피의 국가 대표로 꼽히는 멜랑쥬 (Mélange, 프랑스어 식으로 발음한다)는 커피와 뜨겁게 데운 우유를 반반씩 섞은 커피, 모카 (Mokka)는 아무것도 섞지 않은 아프리카산 모카 블랙 커피를 의미하며, 브라우너 (Brauner)는 우유를 아주 약간 섞은 커피를, 카푸치너 (Kapuziner)는 블랙 커피에 우유와 휘핑크림을 넣은 커피를 말한다. 일부 커피 전문가들은 멜랑쥬 같이 우유를 첨가한 커피는 커피의 제향을 파괴하기 때문에 그 대신 블랙 커피에 오렌지향 리커 (liquor)를 넣은 마리아 테레지아 커피 (Maria Theresia)나 약간의 물을 탄 블랙 커피에 럼주와 휘핑 크림을 넣은 피아커 (Fiaker)를 권하기도 한다.

사람들 속에 휩사여도 고독한 섬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때론 능청스럽고 때론 퉁명스러운 카페하우스 웨이터들의 곤조에 매력적으로 맞상대할 자신이 있으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사로부터 한발짝 비껴 서서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비엔나의 카페하우스에 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가장 취향에 맞는 커피 한 잔과 전통 초컬릿 토르테 (Torte)나 제철 과일로 만든 케이크 한 조각을 맛보는 것도 잊지 마시기를.

  • 이 글은 본래 『오뜨』2003년 11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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