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하찮은 농담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일은 인생의 중대사이다. – 『아늑함과 친근감의 보금자리 – 빈 옛 레스토랑과 주점의 자취를 따라서
 (Viennese Taverns – Micro-cosmos of Everyday Lives)』 중에서.

“신사는 요람에서 한 번 태어나고 식당에서 다시 한 번 태어난다.”
“우리의 거리에 있는 빈 주점에서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얼마나 가진 자인지 그 어느 누구도 묻지 않는다네.” – 1950-60년대 독일에서 뮤지컬 스타로 명성을 날렸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 페터 알렉산더 (Peter Alexander)가 부른 “작은 선술집 (Das kleine Beisl)”이라는 제목의 유행가 가사 중에서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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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rhard Wasserbauer. Courtesy: Wien Museum.

WIENER BEISL 테이블이나 바에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정치를 토론하고 돼지철학을 설파하고 실없는 농담도 맘껏 지껄일 수 있는 곳. 혼자라면 옆자리에 않은 손님과 오늘 날씨가 참 좋다며 간단한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카드놀이를 하며 시간을 죽일 수도 있는 곳 – 빈 만의 독특한 주점인 바이즐은 빈 도심의 카페하우스 (Wiener Kaffeehaus), 도시 외곽 포도주밭에 딸려 있는 호이리겐 (Heurigen) 포도주 주점에 이어 빈을 대표하는 단연 가장 독특한 3대 음식 문화 제도로 꼽힌다.

바이즐이 해외 여행의 일반화와 해외 미식 문화가 여러 독특한 음식맛과 음식점 분위기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하는 미식 여행객들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보고 경험해 보았을 빈의 3대 별미 순례지라고 꼽히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에 파리에서 건너온 레스토랑 (restaurant)이라는 음식문화 제도가 널리 보편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주점은 빈 특유의 음주와 요리 문화 (gastronomic culture)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유해 온 문화사적 자취라 할 수 있다.

영국에는 펍 (pub)이 있고 독일에 크나이페 (Kneipe)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그 중에서도 유독 빈에는 바이즐 (Beisl)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주점’ 또는 ‘선술집’ 정도로 부를 수 있는 이 바이즐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태번 (tavern) 정도로 옮기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비유를 해 보자면 우리나라 옛 조선 시대에 길가던 나그네들이 식사와 술을 하고 잠을 자고 쉬어 가던 주막이나 여인숙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곳이다.

물론 현대와서는 요식업과 숙박업이 분리된 이른바 환대 산업 (hospitality industry)이라는 전문 비즈니스 영역으로 독립발전했을 정도로 산업화되었지만, 교통과 여행이 요즘처럼 쉽지 않았던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조차 외지에서 온 이방인 여행객들은 일명 게스트하우스 (guesthouse)라는 손님 접대소나 여인숙 (inn)에서 가면 음식과 잠자리를 두리뭉실 합쳐서 한꺼번에 대접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주점 문화의 근원은 언제였을까? 문화사 학자들에 따르면 그 가장 원초적인 기원을 지금부터 약 1천 6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프로부스 고대 로마 황제가 오스트리아를 포함함 게르마니아 영토를 정복한 후, 당시 빈에서 살고 있던 농부들이 로마 황실의 허락을 얻어 포도를 재배하고 그 열매를 따서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했던 기원후 3세기 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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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비너 슈타트브로이 맥주집 광고판 © 개인소장.

포도를 재배한 농부들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포도주 저장실에다 긴 나무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직접 키워 담근 포도주와 주방에서 만든 간단한 음식을 식객들에게 대접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주점으로 거듭 발전해 왔다.

옛 유럽의 주점과 여인숙 문화가 어떠했을까를 엿볼 수 있는 전해오는 이야기는 어린 모차르트가 유럽을 여러 도시를 도가는 연주 여행담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아마도 과거 유럽의 주점은 거칠고 단순한 음식과 불결한 잠자리를 내 주던 허름한 여인숙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상상이 간다.

맥주냐 포도주냐? 북부 유럽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에서도 맥주가 가장 대중적이고 널리 사랑받는 주류인 것은 사실이지만 포도주 또한 그에 못지 않는 일상화된 음료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스트리아에서 맥주와 포도주는 서로 우위를 판가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상막하의 보편 음료다. 과거나 지금이나 빈 사람들은 맥주와 포도주를 모두 즐겨 마셨으며, 이를 반영하듯 빈에 있는 주점과 식당들은 간단한 고정 식단으로 구성된 끼니용 식사와 함께 예외없이 맥주, 갖가지 지방산 포도주, 특산 증류주 등을 골고루 갖춰 두고 제공한다.

사람 마다 취향이 다르듯 주점을 찾는 손님들은 자기가 유독 선호하고 즐기는 맥주를 파는 주점을 찾아 식사와 음주를 한다. 메뉴판에 있는 여러 맥주 중에서도 선호하는 상표나 종류, 예컨대, 맑게 정제한 필스 (Pils), 완정 정제하지 않아 탁한 츠비클 (Zwickl), 밀을 원료로 만들어 색이 밝고 맛이 상쾌한 바이츤 (Weizen), 볶은 맥아나 보리로 만들어서 색이 진한 둥클레스 (Dunkles) 등)를 주문해 마신다.

포도주도 마찬가지다. 흔히 전통적으로 빈 사람들은 산뜻한 그뤼너 벨트리너 (Grüner Veltliner)나 텁텁한 맛이 나는 샤도네 (Chardonnay) 보다는 매우 드라이하고 우아하다는 리즐링 (Riesling) 백 포도주를 가장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무슨 포도주가 되었든 빈 사람들은 포도주와 소다가 섞인 미네럴 워터를 유리잔에 반반씩 섞어 마시는 슈프리츠터 (Spritzter)를 즐겨 마신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지금도 과거 합스부르크 황실 집무실인 호프부르크 (Hofburg)와 정부 청사와 관청 건물들이 어깨를 맞댄채 옹기종기 모여있는 빈 도심 1구역 거리 구석구석에는 고풍스러운 간판과 실내장식을 간직한채 전통적인 빈 요리와 술을 파는 바이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한 번 발을 들여보고 음식과 술 맛이 좋았다거나 웨이터가 맘에 들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자기집 거실을 드나들듯 그 주점을 단골 삼아서 수시로 드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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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웨이터, 1905 년 경 사진 © 개인소장.

요식업 유행이 자주 변하고 한 두 해를 못 넘기고 개업했다가 문을 닫는 레스토랑이 많아진 요즘과 같은 요식 산업의 춘추전국 시대에도 아랑곳 없이 지금도 빈에서는 수 십년 된 유서깊은 주점에서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슈탐쿤데 (Stammkunde)” 즉, 단골 손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어김없이 일명 단골 손님의 지정 테이블이나 자리 즉, 슈탐티시 (Stammtisch)를 버젓이 차지하고 서 있거나 앉아서 그의 단골 음료를 즐긴다.

바이즐 주점 빈 시민들의 일상 생활을 담은 소우주
역사 속의 모든 제도 공간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역할도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과거도시를 오가던 단골 손님들이나 먼 길에 오른 여행객들이 잠시 들러 음식으로 고픈 배를 채우고 술과 음료수로 마른 목을 축이는 여인숙이었던 주점들 (tavern)은 근대기를 거치면서 도시인들이 지인과 친구들을 만나 정치적 화재 거리를 논하고 사회 토론을 벌이던 사교와 지성의 공간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손님이 누구였든 사회적인 지체가 높든 낮든 남녀노소에 구분없이 바이즐은 누구든 박대하지 않고 똑같이 정직한 음식과 술을 제공해 주는 민주적인 공공 장소였다는 점에서 매우 근대적인 제도이기도 했다.

물론 빈 전통식 주점도 실은 어느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주점에서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된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만큼 자취를 감춘지 오랜 트락튀르 (Der Trakteur)라는 주점은 말하자면 선 채로 한껏 마시고 맘껏 취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포도주 바인 바인할레 (Weinhalle, 와인홀)와 맥주홀인 비어켈러 (Bierkeller)가 있었고 그곳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월츠 음악이 연주되며 손님들의 흥을 돋구었다.

이 트락튀르는 아마도 빈 거리 곳곳에 선 채로 간이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지금의 슈탄들 (Standl)의 원조격이 아닐까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주점 문화는 1930년대와 1940년대까지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전쟁 통에 사라졌지만 1970년대 이후 다시 불기 시작한 과거 문화 부흥 물결을 타고 지금까지 재모습을 되찾아 정착되었다.

그러나 19세기말엽 근대기로 접어들자 빈의 도시 서민들에게 주점이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애환을 풀고 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유쾌의 공간으로 정착했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주점 안에는 남녀 가수들이 등장하여 유행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돋구고 주점 주인은 바삐 술과 음식을 날라댄다. 남자 손님들은 술로 피로와 외로움을 달래고 (과거 매춘부를 제외한 여념집 여성들은 주점 같은 공공 장소에 출입할 수 없었다), 시끌벅적하고 들뜬 분위기를 틈타 구걸을 하는 거렁뱅이들도 어슬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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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미하엘 네더 (Johann Michael Neder) <부셴샹크 포도주 주점에서> 1847년 작 캔버스에 유화 © Wien Museum.

힘겨운 일과를 마치고 하루의 시름을 털기 위해 노동자들이 즐겨 찾았던 단순하고 허름한 바이즐(Beisl)에는 사람들이 밤을 묵어갈 수 있는 객실 여인숙과 남녀 손님들이 한데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놀 수 있는 댄스홀(Tanzsal)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의 유흥 주점이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다고 한다.

특히 도시화와 근대화가 한창이던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빈의 여러 노동자 구역에는 잠자고 쉴 집이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과 남성 손님들을 겨냥하여 춤추고 노래하는 매춘여성들이 드나드는 서민 주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 빈 16구역의 바인하우스 지틀(Weinhaus Sittl)은 그 같은 과거의 추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그런가 하면 호이리겐(Heurigen) 또는 부셴샹크(Buschenschank)로 불리는 포도주 주점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빈을 방문하면 꼭 경험해 보고 싶어하는 독특한 체험 루트다. 비너발트(Wiener) 빈 숲 근처에 도나우 강을 내려다 보면 빈 도심에서 한 시간 가량 벗어나 언덕처럼 솟아 있는 빈 교외 숲 비너발트(Wienerwald)에는 포도밭이 있는데, 특히 칼렌베르크(Kahlenberg), 누쓰베르크(Nussberg), 그린칭(Grinzing), 지버링(Sievering), 노이슈티프트(Neustift) 같은 빈 교외 동네에는 예전에 포도밭을 일궈 담근 포도주와 식사를 만들어 팔던 농부들이 운영했던 호이리겐 포도주 주점들이 옛 자리에 아직도 여러 곳 남아 있다.

이제는 호이리겐은 특히 늦봄과 여름철이면 포도밭 자연 내음과 빈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시원한 경관과 호이리겐 포도주를 만끽하기 위해 찾아드는 세련된 도시인들과 직장인들로 테이블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진 인기 별미 레스토랑이 되었지만, 이 호이리겐도 과거에는 지나던 여행객들과 농부들에게 포도주와 음식을 팔던 한낱 허름한 포도주 주점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캬바레라는 작은 코미디 무대에서 국립 극장에 이르기까지 빈 사람들은 특유의 블랙 휴머를 즐긴다. 오스트리아의 야사 중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한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4대 강국들(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을 상대로 독립 협상은 실은 호이리겐에서 벌어진 강국 우두머리들의 술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주점의 음식 맛이 좋고 술자리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서 골치아픈 정치가들 가슴까지 녹여주는 곳이었음을 뜻하는 것이었을 테다.

“인생은 단순한 농담 거리가 아니다(Life is no laughing matter)” 라고 했던가. 그래서 빈 사람들은 매일매일 인생의 중요한 일부부인 먹고 마시는 일에 매우 진지하게 임한다. 그래서 지금도 토박이 빈 사람들은 예나지금나 한결 같이 맛있는 음식이 나오고 맛좋은 맥주와 포도주를 챙겨두는 전통 주점을 애써 찾아다니는 일을 고집한다.

20세기 유럽의 격변을 목도한 빈 출신 사회평론 언론인 겸 시인 외르크 마우테(Jörg Mauthe)는 “제대로 된 빈 주점에서 손님은 잘 먹고 잘 마시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곳에 앉아 있는 동안 좋은 인생을 보낼 수 있다.”고 논평했다.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는 빈의 주점 문화는 빈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살아가는 방식(a way of life)이기 때문이다. Photos courtesy: Wien Museum.

  • 이 글은 본래 『HAUTE』 誌 2007년 7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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