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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없이 물고기 낚기”

TO CATCH FISH WITHOUT A NET

디자인 베끼기는 수치- 베를린 표절 박물관 개관에 즈음하여

오랜 플랑드르 지방 속담에 “그물 없이 물고기 낚기”라는 표현이 있다. 누가 애써 한 일을 남이 득을 본다는 뜻이다. 직업적 어부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물고기 낚는 법과 수완이 있다. 아침 눈을 떠 하늘만 보고도 날씨를 예측할 줄 알고, 어느 시간에 배를 띄어 언제 육지로 돌아와야 할 줄도 알며, 물쌀과 바람으로 배를 어디로 몰지 물고기가 어디로 모일지도 알며, 언제 그물을 드리우고 언제 낚시줄을 드리워야 하는지도 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도 모를 뿐만 아니라 물고기 잡아본 적도 없는 이들이 어선을 몰고 부두에 나타나 ‘풍어’를 외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는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창조 분야와 학계에서 말하는 표절(Plagiarism)이란 다른 사람이 한 독창적인 결과물을 원창작자의 이름이나 출처를 밝히지 않은채 마치 자기한 한 작업인척 제시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창조적 결과물의 경우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작업해 만들어진 출판된 혹은 출판되지 않은 문헌, 해석문, 컴퓨터 소프트웨어, 디자인, 음악, 사운드, 이미지, 사진, 아이디어 또는 아이디어 프레임워크가 다 포함된다. 이 결과물은 종이인쇄된 형태일수도 있고 인터넷상 전자 미디어 형식일 수도 있다. [출처: 호주 멜버른 대학 학문 윤리강령]

필자가 잠시나마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일하던 중 „학생들이 프로젝트로 제출하는 디자인 작품들이 다른데서 훔쳐 온게 아닌가를 우선 확인한 다음 채점에 들어간다“고 한국의 디자인 학교에서 대학원 강의를 한 적이 있는 한 외국인 디자이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여 좋은 점수를 줬던 한 학생의 디자인 컨셉이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해외 디자이너의 작품을 배낀 것이었음을 한참 후 우연히 알게 된 경우도 있다“고 그 디자이너는 덧붙였다. 남의 작품이나 글을 배낀 숙제나 작품을 수업에 제출하는 것은 „표절“(plagiarism) 행위이고 이는 학사 제도상 심대한 처벌감이다. 그리고 디자인 표절은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디자인 업계에서도 혹대한 처벌 대상이다.

디자인은 예술적 독창력을 전제로 한 창조작업이다. 특히 서구문화에서 개인의 창의력, 유일무이의 독창성(uniqueness), 기발한 컨셉은 신성한 가치이다. 그래서 19-20세기 모더니즘부터 오늘날까지 서양 예술가들은 „남들이 아직 하지 않은 뭔가 새롭고 충격적인 것“을 실험하는 컨셉와 혁신적인 형식을 짜아내느라 고심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서구인들 사이에서는 독창성(originality)이 한없이 존경받는 숭고한 가치인 만큼, 모방과 베끼기는 온 인류의 조롱과 비난을 사도 모자른 죄악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은 시각 예술이고 그래서 수많은 디자이너들(특히 디자인 산업에 대한 냉소주의에 덜 노출된 젊은 디자이너 일수록)은 스스로를 창조 활동에 종사하는  예술가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디자인은 단순한 예술 활동 만일 수는 없다. 디자인이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생산한 후 시장에 내달 팔아 이윤을 남겨야 하는 비즈니스적 실리없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일테다. 19세기 산업혁명 이래 대량생산소비 체제가 경제 원리로 자리잡고 있는 오늘날까지, 디자인와 비즈니스는 특히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는 실과 바늘의 관계가 아니던가.

제품 디자인은 외형적 아름다움과 기능적 혁신성을 갖춘 아이디어 상품이어야 하며 그런 양질의 상품은 시장에서 정당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교환가치라는 개념이 널리 자리잡은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 표절 제품들이 끼치는 정신적 재정적 피해는 적지 않다고 부쎄 관장은 역설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다른 회사가 투자하고 개발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훔치고 배끼는 행위로 인해 피해 업체들이 당하는 경제적 손해는 년간 200-300억 유로,  실업자 수 20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 이해관계로 인해 최근 선진국들의 법조계는 디자인을 포함한 표절이나 해적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피터 브뢰겔 아버지 『네덜란드 속담 알레고리』1559년, Gemäldegalerie, Berlin.

오랜 네덜란드 속담에 “그물 없이 물고기 낚기”라는 표현이 있다. 누가 애써 한 일을 남이 득 본다는 뜻이다. 원제『부조리한 세상(The Folly of the World)』로 이름된 피터 브뢰겔 아버지의 유채 그림 『네덜란드 속담 알레고리』중에서. [세부] 1559년, Gemäldegalerie, Berlin.

지난 11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표절 박물관이란 뜻의 플라기아리우스 뮤지움(Museum Plagiarius)이라는 이색적인 박물관이 새로 개관했다. 이 박물관은 다른 디자인 제품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노골적으로 모방해 판매한 „표절 제품“을 전세계에서 모아 소장하고 전시하여 제품 모방 기업들을 규탄하고 법적인 처벌을 가해 업계에서 몰아내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특히 매 년 한차례씩 전세계 피해 제품 업체들과 기업들이 등록해 온 피해 사례들과 미술관측이 직접 발굴한 모방 사례들을 두루 모아 최악(?)의 표절 디자인 제품들을 선정하는  „수치상“ 공모전을 열어 업계와 대중들의 경각심을 높이는데 힘쓰고 있다. 총 400평방 미터 면적의 전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이 박물관에는 1977년부터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수집한 오리지널작과 표절작을 모아 나란히 전시하고 있으며, 학술 세미나 행사와 일반 대중들을 위한 워크숍 공간, 강의실, 그리고 학생, 전문가, 업체를 위한 도서자료실도 갖추고 있다.

리도 부쎄(Rido Busse) 관장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얻은 충격에서 표절 박물관 건립과 표절 „수치상“을 창안했다고 한다. 1977년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봄철 디자인 박람회에 참가했다가 그가 알고 있는 제품의 모양새를 그대로 배껴 생산한 저울을 버젓이 전시하고 있는 한 홍콩 업체를 발견했다.  그 Nr.8600 모델 저울은 부쎄 관장이 이미 1965년에 죈레 저울사라는 업체와의 계약으로 생산하여 개 당 26독일 마르크에 판매되었던 제품이었으나, 이 홍콩 업체는 디자인 개발비 한 푼 안들이고 값싼 소재로 대체해 모양만 따 만든 표절제 저울 6개를 24마르크라는 파격적인 판매가격으로 주문받고 있었다.

사정인즉 이렇다. 박람회 기간 중 죈레 저울의 전시 부스가 주문받기에 정신없는 사이 한 홍콩 업자가 저울을 훔쳐 돌아가 재빨리 이 저울의 표절품 10만점을 생산해 판매하고는 도산했다. 그리고 2개월 후 도산한 업체를 이어받은 또 다른 홍콩 무역업체는 다시 똑같은 표절 저울을 만들어 독일 시장에 팔고 있었다.

부쎄씨는 하이스너(Heissner)라는 정원 장식용 난장이 인형(Nr.917) 생산업체를 인수하게 되면서 이를 기념하여 난장이 모형의 트로피를 직접 만들어 „표절왕“에게 주는 수치의 심볼로 선사하기로 했다. 정원 장식용 난장이 인형은 온몸에 검정색 래커로 칠한 후 코만을 금칠(거짓말을 일삼던 피노키오에 대한 은유)을 입혀 트로피의 불명예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상의 첫 수치는 물론 표절 저울을 만들어 판 홍콩의 리 무역회사에게 돌아갔다. 이후 이 행사는 오늘날까지 권위있는 디자인 박람회가 열리는 하노버와 프랑크푸르트 암비엔테에서 계속되어  매년 독일 언론의 관심을 끌어오고 있으며 독일 디자인 협회(DDV, 1980년 창립)의 후원도 받고 있다.

그리고 올해 부쎄 관장의 표절 박물관 개관은 1977년부터 20여년 동안 디자인 표절에 홀홀히 대항한 일인(一人) 투쟁(베를린 시의 지원으로 혼자 활동했음)의 결과였다. 그 결과 1989-90년에는 제품 디자인 및 마케팅 해적행위에 대한 법적 제도적 대항활동도 시작해 현재도 운영되어 오고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홀로 고독하게 작업하는 독창적 개인으로서의 미술가 개념은  네덜란드의 바로크 화가 렘브렌트에 와서야 시작되었다고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평론집 『미술과 문화(Art and Culture)』(제1장 „아방가르드와 키치“ 참고)에서 언급했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서양에서는 동양의 미술 전통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모작을 하는 것으로써 정신적∙기술적 숙련을 쌓았고 기련적 숙련을 마스터한 후에 비로소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해 나가지 않았던가.

그러나 개인의 독창성이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20세기 근대 이후,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는 명성이고 곧 돈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대다수 국가에서는 외제품의 모양새를 따 만들어 박리다매하는 업체들 때문에 여전히 창조적인 디자이너와 아이디어가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박람회마다 유난히 아시아계 업체들의 제품들을 눈여겨 본다고 하는 부쎄 씨의 언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부쎄는 새 소재와 살짝 변형된 홍콩제 저울이 이전 보다 나은 제품이 되었는가에 대한 제품 품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새 홍콩 업체가 보다 싼 소재로 잘 작동하는 저울을 생산판매했다면 이는 ‘혁신’이지 단순한 ‘표절’은 아니다.]

피터 브뢰겔 아버지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원숭이 두 마리 (Two Monkeys)』 1562년, 목판에 유채.

피터 브뢰겔 아버지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사슬에 묶인 원숭이 두 마리 (Two Monkeys)』 1562년, 목판에 유채.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mäldegalerie, Berlin, Germany.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 그림 속에서 원숭이는 쉽게 유혹당하기 쉬운 세속적 욕심으로 옥죈 딱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으로 즐겨 그려진 교훈적 주제였다.

제품 표절 업체들 가운데 아시아 업체들(특히 홍콩과 중국)의 수가 유난히 압도적인 것은 제품 디자인의 독창성의 소유 개념 부재와 단기적 이윤 추구라는 근시안적 경제적 이해가 뒤섞여 나타난 것이 주요 원인인 듯하다. 그리고 구미 국가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자국의 혁신적 디자인 아이디어를 도둑질 당하지 않으려 더 눈을 크게 뜨고 관찰할 것이다. 베를린의 표절 박물관은 바로 그런 제도의 하나이며 수치심 자극을 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동서고금 문화전파의 역사를 보건대 남들의 피땀어린 창조물을 슬쩍 하는 비양심적인 사업가와 학자들은 대륙과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 일이다. 노력하지 않고 쉽게 남이 이룬 성과를 취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예나지금이 동이나 서나 할 것 없는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더구나 요즘 더없이 치열해진 아카데미아 환경 속에서 직위와 강의를 유지하는데 급급한 수많은 과학계, 인문학계, 예술계 구미권과 국내 학자들 할 것 없이 제자들이나 동료들이 피땀 기울여 이룩한 연구 결과를 슬쩍해 기관 후원금을 받아내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영감을 받고 더 아름답고 더 훌륭한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행위, 우리는 그것을 ‘창조’ 혹은 ‘창의력’ 그리고 비즈니스계에선 ‘혁신’이라 부른다.

허나 19세기 아일랜드 출신 문필가 조지 모어(George Moore)도 말했듯, “누군가로부터 그대로 훔쳐와 아무짝에 쓸데 없는 것으로 만들어 이득을 보는 것은 ‘표절’이다.” “그물 없이 물고기를 낚아 이득을 보는 어부”의 부조리한 세상을 꼬집었던 옛 플랑드르 속담처럼 ‘열심히 일한 그 누구로부터 그대로 훔쳐와 원천을 밝히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는 분명 도둑질이다.

* 이 글은 본래 2001년 11월 30일「디자인 정글」을 위해 기고했던 기사를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디아이와이 디자인 스위스 스타일

DIY DESIGN SWISS STYLE

짧게 줄여서 디아이와이(DIY)라는 단축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소비자가 직접 하기(Do-It-Yourself)” 운동은 이제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물리적 문화 속에 널리 일반화되었다. 구미권에서 불어닥친 이래 1990년대에 처음 한국에 소개된 바 있던 DIY 운동. 소비재 업계와 언론출판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인은 성미가 급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DIY 운동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소비자들은 많이 달라졌다. 획일적이고 남들 누구나 갖고 있는 물건이나 집안 세간을 사들여 놓고 살기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직접 스케치를 하여 목공소나 재료사에서 재료를 재단해 와 직접 두드리고 맞추고 나사를 조여가며 자기만의 독특한 인테리어 용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주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생산 혹은 제작(production)과 소비(consumption) 활동이 융화되는 디자인 분야의 새로운 현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넘어 보다 폭넓게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명 ‘프로슈머(prosumer)’ 문화로 불리는 이 새 트렌드는 디자인 제품의 생산 공정 과정과 대중 소비자들의 소비 활동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탈중심화하고 민주화하는 적잖이 혼란스럽고 파격적인 이른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랄 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스스로 디자인 오브제를 머리 속에서 창안해 스케치로 옮기고 실존하는 물리적 일상용품으로 현실화시키는 행위 그 자체로 점점 많은 취미 디자이너들은 공예의 미덕과 손을 움직여 창조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수작업의 감각적 즐거운을 재발견해 나가고 있다.

주류 디자인 시장과 대안 문화 사이의 디아이와이 디자인 – DIYD 디아이와이 스스로 뭔가를 직접 만드는 행위는 주류 시장이 독주하며 지배하는 이른바 주류 취향과 디자인적 표준이라는 도그마로부터 우리 소비자들을 해방시켜줄까? 최근 들어 전에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구, 의류, 악세서리 같은 디자인 용품과 소품들을 아무 생각없이 사쓰기 보다는 이런 디자인 제품들을 직접 만드는데 필요한 제작 매뉴얼이나 조립설명서 서적물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같은 추세를 반영한다.

반 보 레-멘첼(Van Bo Le-Mentzel), 『하르츠 개혁 법안 제5번 가구(Hartz IV Möbel)』 2010-2012 Photo: © Daniela Gellner

반 보 레-멘첼(Van Bo Le-Mentzel), 『하르츠 개혁 법안 제5번 가구(Hartz IV Möbel)』 2010-2012 Photo: © Daniela Gellner

사실 20세기 디자인의 역사를 되돌이켜 보건대, 유럽의 가장 원형적 고전 모더니즘 운동도 값비싸고 과시적인 역사주의풍 공예품으로 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대중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저렴한 가격과 실용적인 새 양식을 구축한다는 사명에서 출발했으며, 이어서 1960-1970년대 무비판적 소비주의 문화에 대항한 대안적 문화운동으로 시작된 DIY 운동은 스스로 짖고 만들기 전략으로 통해 소비주의 시장에 대항하는게 목표였다. 그리고 21세기 초 현재, 다시 한 번 DIY 운동은 디지틀 시대라는 새 배경 속에서 소비자들이 주류 소비재 시장과 대안 문화 향유라는 두 다른 축 사이에서 부활하고 있다.

“더 많이 누리고 덜 소유하라(Have more, own less)” 라는 모토를 달고 1973년과 1974년에 연거푸 출간된 제임스 헤네시(James Hennessey)와 빌토르 파파넥(Viktor Papanek) 공저 『유목적 가구(Nomadic Furniture)』와 『 유목적 가구 2(Nomadic Furniture 2)』는 외쳤다. 쓸모없는 싸구려 제품이나 용도를 상실한 무용지물이 우리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는 물질 과징 풍족의 시대, 요즘 불어닥치고 있는 DIYD 운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정말 필요한 사물은 무엇이고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된 천편일률적인 소비품 말고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상 디자인 용품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디자인 박물관에서는 바로 이 문제의식을 화두로 해 『두 잇 유어셀프 디자인(Do It Yourself Design)』 전을 3월20일부터 5월 31일까지 연다. Images courtesy: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