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October 2014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고대 로마 - 게르마니쿠스의 재를 갖고 로마로 돌아오는 아그리파 (Ancient Rome; Agrippina Landing with the Ashes of Germanicus) 1839년. Tate.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윌리엄 터너 『고대 로마 – 게르마니쿠스의 재를 갖고 로마로 돌아오는 아그리파 (Ancient Rome; Agrippina Landing with the Ashes of Germanicus)』 1839년. Tate.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윌리엄 터너의 후기 회화 세계

LATE TURNER – PAINTING SET FREE At the Tate

2013년 영화화되어 큰 화재를 모은 스웨덴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The Hundred-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2009년)은 창조적 마인드와 끊임없는 호기심과 생을 향한 열정이 있는 자에게 나이란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장수하는 노년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 속에 있는 요즘 세상에서 노후 인생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한편,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노년에 치닫더라도 유연하고 개방된 사고를 키우며 자연을 관찰하고 경외하며 동시에 과학적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류 정신을 되세기게 해준다.

윌리엄 터너 『빛과 색채 (괴테의 이론) - 홍수 이튿날 - 모세의 창세기 (Light and Colour (Goethe’s Theory) - the Morning after the Deluge - Moses Writing the Book of Genesis)』 1843년. Tate.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윌리엄 터너 『빛과 색채 (괴테의 이론) – 홍수 이튿날 – 모세의 창세기 (Light and Colour (Goethe’s Theory) – the Morning after the Deluge – Moses Writing the Book of Genesis)』 1843년. Tate.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영국 화가 조세프 메일러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년✝) 또한 작업 말년기인 1835-50년 약 15년 동안 유난히 폭발적인 창조적 활력과 발군의 시각적 혁신을 이룩했다. 1835년 윌리엄 터너는 환갑을 맞았다. 누가 뭐라해도 이미 ‘장년의 나이’가 된 이 화가는 나이와 노쇄해진 체력에도 아랑곳 않고 더 큰 세상을 보고 역사를 공부하고 외국의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유럽 전역으로의 긴 그림 여행길에 오르곤 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터너는 정말 모와 마티스에게 표현적인 색채, 뿌옇고 아련한 대기 분위기 연출하는 법을 가르친 근대미술의 선구자였을까? 일부 서양 미술사 책에 보면, 특히 그가 그린 말기 그림들에 보이는 극도의 추상적이고 물감을 두텁게 입힌 임파스토 기법을 들어서 터너를 19-20세기로 넘어가던 근대기 프랑스 인상파의 선각자인양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실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자연의 영원불변성을 그림으로 기록해 두고자 했다는 점에서, 시시각각 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외부세상을 포착하려 했던 프랑스 인상주의 세계관과는 정반대 입장을 취했다.

터너는 실은 고대 유럽 역사주의와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던 18세기형 낭만주의자였다. 터너가 환갑의 나이에 인류역사를 배우기를 계속하며 그림 그리기 열정을 불태웠던 당시 19세기 유럽은 근대 모더니즘이 본격화하기 직전, ‘질풍노도 (Sturm und Drang)’ 자연의 위력에 경외를 바치고 고대 로마 그리스 시대를 되돌아보며 흘러간 역사주의의 향수 속에서 시름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터너는 당시 독일인들의 낭만주의 서정을 한껏 적셨던 작곡가 리햐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와도 정서적으로나 세계관적인 측면에서 아주 유사했던 바그너리언이었다.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푸른 리지에서의 일몰 (The Blue Rigi, Sunrise)』1842, Watercolour on paper, 297 x 450 mm. Tate collection.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푸른 리지에서의 일몰 (The Blue Rigi, Sunrise)』1842, Watercolour on paper, 297 x 450 mm. Tate collection.

런던에서 이발사의 아들이라는 지극히 조촐한 배경의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 네살의 어린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아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림 공부를 한 후 로열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교수로 발탁되며 노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사회적 존경까지 받았던 그는 내면적으로는 전근대적 인물이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어느새 근대적 업적주의의 장점을 누렸던 시대운을 잘 타고난 운 좋은 미술가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그는 미술컬렉터가 제시한 거금의 돈을 거부하고 자신의 작품 모두와 스케치 및 기록물을 간직해 두었다가 테이트 미술관에 기증할 수 있었다.

영국  2014년 개봉된 영화 『미스터 터너(Mr Turner)』(티모시 스폴(Timothy Spall) 주연)에서 묘사되었듯, 땅딸막하고 무뚝뚝했던 화가 터너 씨는 혁명적이고 위대한 미술을 창조했지만 사생활 면에서 조촐하다 못해 때론 인격적으로 의심스러운 면모까지도 지녔던 한 남자였다. 이 영화를 만든 마이크 리(Mike Leigh) 감독은 과연 화가 터너를 훌륭한 미술가로 보여주려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점을 지녔던 한 인간에 불과함을 보여주려 했을까? 이 영화의 의도는 그다지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훌륭한 미술가는 오로지 불타는 창조적 열정과 그나 남긴 훌륭한 미술작품을 통해서 역사와 관객에게 평가받을 뿐이므로.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열리는 『터너의 후기 회화 – 회화를 해방시키다. (Late Turner – Painting Set Free)』 전은 2014년 9월10일부터 2015년 1월25일까지 테이트 브리튼 린버리 갤러리에서 전시된다. Images courtesy: Tate Britain, London.

워커 에반스 – 20세기 포토저널리스트

워커 에반스 「곳간」 캐나다 노바스코샤, 1969-1971. Collection of Clark and Joan Worswick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워커 에반스 「곳간」 캐나다 노바스코샤, 1969-1971. Collection of Clark and Joan Worswick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WALKER EVANS – A Life’s Work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경제공황으로 몰아넣었던 1929년 10월 29일 블랙프라이데이와 1930년대 미국인들의 빈곤과 피폐상을 사진기로 기록했던 ‘다큐멘터리 사진가’ 워커 에반스 (1903-1975). 특유의 냉철한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대공황기 변화하는 미국의 풍경과 인물들을 포착했던 에반스의 사진 속에는 평범한 일상과 서민들을 보는 미묘하고 예민한 감성이 담겨있다.

「공공광장의 군중 (Crowd In Public Square)」 1930년대, 143 x 248 mm. Lunn Gallery Stamp (1975)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공공 광장에 모인 군중 (Crowd In Public Square)」 1930년대, 143 x 248 mm. Lunn Gallery Stamp (1975)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늘날 워커 에반스는 대체로 미국 공황기의 사진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일상 생활 속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빈곤과 절망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 중반기.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본래 프랑스 문학에 심취해 문학번역가와 작가가 되길 희망하던 에반스가 1년 간의 파리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1927년, 한스 스콜레(Hanns Skolle), 폴 그로츠( Paul Grotz), 하트 크레인(Hart Crane) 같은 예술가들의 격려로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때는 젊은 워커 에반스가 25세의 나이로 직업 사진가가 된 해였다.

초기 시절 – 뉴욕 제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한들 출중한 선배 예술인들의 영향과 훌륭한 인맥 없이는 재능의 날개를 펼칠 수 없는 법. 이어서 1928년 뉴욕 근대미술관(MoMA)의 연줄이 되어준 링컨 키르스타인(Lincoln Kirstein)을 만나 MoMA와의 연줄을 구축한 중요한 해였으며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 벤 샨(Ben Shahn)과 우정을 나누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동료 여류 사진가 베레니스 애벗(Berenice Abbott)을 통해서 프랑스 다큐멘터리 사진가 외젠느 아제(Eugène Atget)와 아우구스트 산더(August Sander)의 작품세계에 접하게 된 그야말로 분수령적 시기였다. 이에 기반해 에반스는 자신의 사진작품과 평소 갈고닦던 문필 재주를 활용한 시집 『The Bridge (다리)』 (하트 크레인 저)를 1930년 출간했고, 곧이어 1931년에 빅토리아풍 건축을 사진으로 기록한 에세이집 『사진의 재등장(The Reappearance of Photography)』을 출간했다.

1932년 그는 뉴욕의 갑부 올리버 제닝스의 제안을 받아 그와 함께 요트를 타고 4개월 동안 타히티 섬으로 가 35mm 영화를 찍고 돌아왔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빈부차가 전에 없이 더 컸던 경제공황기, 전에 없이 화려하고 개인적인 향락추구에 정신없던 미국 한량계급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것에 내면적 갈등을 느꼈던 워커 에반스는 이후 이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거리나 농가로 눈을 돌렸다.

「의류가게 바깥에 서 있는 젊은 여인 (Young Women Outside Clothing Store)」 1934-35년, 114 x 184 mm. Lunn Gallery Stamp (1975)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의류가게 바깥에 서 있는 젊은 여인 (Young Women Outside Clothing Store)」 1934-35년,
114 x 184 mm. Lunn Gallery Stamp (1975)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에반스의 작업을 눈여겨 본 경제주간지 『포춘(Fortune)』 은 워커 에반스에게 쿠바로 여행하여 사진을 찍어오라는 임무를 주었다. 1933년 독재자 제라르도 마카도 축출을 위한 내전이 벌어진던 쿠바에서 찍어 온 사진을 모아 1934년 칼스턴 빌즈(Carlston Beals) 저 『쿠바의 범죄(The Crime of Cuba)』라는 책 출간에 기여했으며, 뉴욕 근대미술관은 이 쿠바 사진들을 모아 『19세기 주택 사진전(Photographs of 19th Century Houses)』을 기획해 워커 에반스의 사진 39점을 전시에 포함시켰다. 이 쿠바 사진취재를 통해서 에반스는 짧게나마 헤밍웨이를 만나 알게 되었다고 알려진다.

뉴욕 근대미술관에서의 성공에 힘입어서 1935년, 워커 에반스는 미국 연방 농업안정청(FSA: 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의 의뢰를 받고 공황기 미국 농민들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사진가로 일했다. 이 시기의 작업은 에반스를 지금까지도 미국 대공황기 사진가로 이름을 남기게 해준 프로젝트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다시 한 번 뉴욕 근대미술관의 의뢰를 받아 이번에는 『아프리카 흑인 미술(African Negro Art)』이라는 전시를 위해 미국 남부로 여행하며 미국의 흑인 인구들의 생활상을 기록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에게 넉넉한 수고료는 물론 피카소나 모딜리아니의 근대미술작품과 동일 선상에서 전시되었던 명예로운 순간이었다.

이어서 1936년 미국 남부 농촌의 빈곤을 고발하는 특집 기사 취재를 위해 제임스 아지 『포춘』 지 편집장과 함께 알마바마 주 헤일 카운티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기사는 잡지기사로서는 부적합하단 판정을 받고 보판되었으나 결국 『Let Us Now Praise Famous Men)』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백인 농촌가족들의 쓰라리고 고달픈 빈곤생활상을 담담하고 냉철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냉철한 관찰자로서의 사진기록작업이라고는 하나 정부 위탁을 받고 정치적 의도가 담긴 사진을 생산해야했던 그는 급기야 “정치는 절대로 그만!”이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워커 에반스는 연방 농업안정청 수주 사진작업은 1938년를 끝으로 그만두었다.

「팝스트 블루 리본 광고판(Pabst Blue Ribbon Sign)」 일리노이주 시카고, 1946년. Collection of Clark and Joan Worswick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팝스트 블루 리본 맥주 광고판(Pabst Blue Ribbon Sign)」 일리노이주 시카고, 1946년. Collection of Clark and Joan Worswick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농업안정청 일을 접고 난 후 워커 에반스가 사진 렌즈를 들이댄 주제는 뉴욕 지하철이었다. 혼자서 커다란 카메라를 지하철 승객들에게 들이대었다간 따귀를 얻어맞기 십상이던 이 시절. 에반스는 친구 헬렌 레빗과 함께 두 승객인척 돌아다니면서 몰래 카메라를 찍는 수법을 고안했다.

에반스는 자그마한 35mm 콘탁스 카메라의 뷰파인더만 살짝 옷매우새 사이로 내밀어 코트나 자켓 속에 숨기고 셔터를 케이블에 소매 속으로 연결시켜 몰래 찰칵찰칵 명장면들을 잡아냈다.

인물 사진이란 “스튜디오 안에서 모델을 앉혀놓고 조명과 연출을 가미해 찍어야 한다고 믿었던 당시 인물사진의 원칙을 거부한 미학적 반항이었다”고 에반스는 훗날 회고했다.

제임스 아지(James Agee)와의 인연 덕택에 에반스는 1945년부터 1965년까지 『포춘』 지에서 정식 사진기자로 일하며 이 잡지의 모든 사진과 편집을 책임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 지긋지긋한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후 서방세계는 전에 없는 경제재건과 새로운 문화로 흥청되기 시작했다.

사진예술과 현실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었던 포토저널리즘은 그에게 매우 적합한 작업이었다. 20세기 후반, 전후 경제부흥과 포스트모던 풍요의 시대가 되자 특히 에반스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지의 사진기자로 변신해 대서양 건너편 런던으로 가 일하면서 영국적 삶에 푹 빠지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내내 영국, 스위스, 캐나다를 여행하며 미국 바깥의 세상을 경험하며 작업했던 그의 고요적막한 분위기의 흑백사진 작품 세계는 마지막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1928년부터 사망한 해인 1974년까지 워커 에반스가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200여점을 선별해 공개하는 전시회 『Walker Evans – A Life’s Work』가 베를린 마르틴-그로피우스-바우(Martin-Gropius-Bau)에서 2014년 7월25일부터 11월9일까지 열린다. Photos courtesy: Martin-Gropius-Bau, Berlin.

시대를 담은 의자, 의자를 담은 시대

Chairs in History, Histories in Chairs

스페이플 STAPLE 격월간지 제2호 [2014년 9,10월호]에 22-27쪽에 실린 박진아의 기고글 “시대를 담은 의자 의자를 담은 시대”를 통해 시대마다 달라진 의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해 보세요. 스테이플 지 2014년 9,10월호, 통권 2호, 특집 Chair. 가격은 14,000원.

※ 본 호는 품절상태이므로 박진아의 글을 보기 원하는 독자는 여기로 직접 문의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