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July 2014

패션과 미술의 해후

ART MEETS FASHION, FASHION MEETS ART

과거 그 어느때 보다도 오늘날 만큼 패션과 미술이 동등한 위치를 점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때는 없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요즘의 수많은 패션 추종자(fashion victim)들이 매년 매계절 마다 거리와 백화점 매장을 메우며 신유행을 정신없이 뒤쫏고 있고, 미술은 더이상 소수의 가난하고 고뇌하는 숨은 천재들과 난해한 말장난을 즐기는 평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Continue reading

문화재 이전인가 희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인가?

g-main-e_sm-300x296

메인 갤러리 동쪽벽 광경. 세잔느의 『누드가 있는 풍경 (Les grandes baigneuses)』 캔버스에 유채 132.4 x 219.1 cm과 오귀스트 르노아르의 『화가의 가족 (La famille de l’artiste)』 캔버스에 유채 1896년 작.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미술컬렉션 이전에 즈음하여

BARNES COLLECTION IN PHILADELPHIA

매년 여는 국제 예술 페스티벌 말고도 미국의 역사 도시 필라델피아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유산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반스 재단 미술 컬렉션이다. 반스 재단은 故 앨버트 반스 박사가 평생 모은 주옥같은 미술품 컬렉션의 보금자리다. 현재 감정 시세 250억 달러 (우리돈 약 27조원)라는 막대한 가치의 미술품 총 2천5백여점 (그 중 회화의 비중은 800여점)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7월3일 반스 컬렉션은 문을 잠시 닫았다. 반스 재단의 허술한 재정관리와 근 10년에 걸친 법률 공방 끝에 반스 컬렉션은 지난 85년 넘는 세월 보금자리였던 메리온을 떠나 필라델피아 도심 서부 벤자민 플랭클린 파크웨이 거리에 지어질 새 건물로 이전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7월초 반스 미술 재단이 내년 이전을 이유로 휴관을 선언하고 소장품 이전에 착수하자마자 구미권 미술계와 언론은 잔뜩 술렁댔다. 그토록 값비하고 그많은 수량의 국보급 미술품을 한꺼번에 옯기는 대이동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본 적 없는 규모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 어느 작품을 몇 점 어느 트럭에 어떻게 무사히 운반하는가는 숨가쁜 헐리우드 첩보영화를 방불케할 만큼 극도로 비밀스럽고 조심스럽다. 미술품은 미술관에 걸려 있을 때보다 운반 도중에 도난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디 그뿐인가. 혹 제아무리 도난범죄로부터 안전하다 할지언정 모름지기 미술품이란 매번 이동할 때마다 크고작게 내외적 손상을 받기 때문에 복원전문가들은 가급적 미술품의 이동을 말린다.

Barnes_portrait_by_de_Chirico_1926-230x300

죠르죠 데 키리코 (Giogio de Chirico) 『앨버트 반스 초상 (Portrait of Albert C. Barnes)』 캔버스에 유채 1926년 작품. ©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던 반스 재단에 대한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기 까지는  2009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도난당한 미술 (The Art of the Steal)』의 공이  컸다. 이 영화는 故 앨버트 반스 박사의 사유 미술 컬렉션의 설립의도를 묵살한채 이 컬렉션을 갈취하려 혈안이 된 필라델피아 시 정치가들과 주지급 재단 위원들의 탐욕과 음모를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문화유산이 막강한 자산이 된 요즘, 반스 컬렉션의 소장품은 필라델피아의 문화적인 위신을 한껏 높여줄 뿐만 아니라 시정부가 추진하는 문화관광 산업 및 파생 수입원에 더없이 요긴한 밑천이 되어 줄것이라는 속셈이 깔려있다.

30대 말엽 미술 컬렉터로 변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반스 박사의 본업은 화학자였다. 본래 약사가 될 생각으로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화학을 수학한 후, 1899년에 아가이롤 (Argyrol)이라는 기적의 여성용 청결제를 개발했다. 항생제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던 당시, 아가이롤은 임질로 인한 여성병과 신생아 실명을 예방해준 신약으로 각광받으며 큰 매출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반스 박사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마침 때는 유럽에서 다양한 미술 사조와 창조 운동이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던 20세기 모더니즘 시대. 반스 박사는 직접 프랑스로 여행가 머물면서 당대에 내노라하는 아트 딜러와 거장 미술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작업실을 둘러본 후 손수 고른 작품만을 사들였다. 예컨대 피카소와 마티스는 딜러 거트루드 스타인을 통해서, 모딜리아니와 데 키리코는 폴 기욤을 통해서 대거 소장하게 된 화가들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당시 반스 박사는 일찍이 미래 거장을 꿰뚫어 볼 줄 알았던 탁월한 감식안을 갖춘 아방가르드 미술 컬렉터였다 할 수 있겠다.

g-main-w_sm-243x300

반스 재단 미술컬렉션 메인 갤러리 서쪽벽 광경. 위의 작품은 죠르쥬 쇠라 (Georges Seurat)의 『모델들(Poseuses)』, 아래 작품은 폴 세잔느 (Paul Cézanne)의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 (The Card Players)』.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반스 박사가 유럽을 여행하며 모은 미술작품들은 대체로 파리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계열 작품들이 백미로 꼽힌다. 르노아르의 그림 180여점, 세잔느 59점, 마티스 46점, 피카소 21점, 드가 7점, 고흐 7점을 포함하여 일부 전문가들은 반스의 소장품을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인상주의 미술 컬렉션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특히 세잔느가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5개 연작중에서도 반스 재단 소장품은 작품 규모가 제일 크고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쉽다” – 미국의 철학자 에릭 호퍼 (Eric Hoffer)가 이런 말을 했다. 반스 박사는 평소 성격이 퉁명스롭고 당시 필라델피아 교외에 살던 부유한 지주급 이웃들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푸줏간집 아들로 태어나 본직 약제사에서 미술 컬렉터로 변신한 앨버트 반스 박사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가 되어서도 자신의 소박한 출신을 한번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주옥같은 자신의 미술소장품을 흠모하던 콧대높은 미술계 인사들이나 사교계 방문객들의 관람요청에는 까탈스럽게 굴었지만 소시민 감상객과 학생들에게는 흔쾌히 전시실과 도서관 현관을 활짝 열어주었다고 한다.

반스 컬렉션 재단의 설립자 앨버트 반스 (Albert C. Barnes) 박사는 필라델피아 도심을 피해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한적한 교외 마을 메리온 (Merion)에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가 폴 크레 (Paul Cret)에게 설계를 맡겨서 세기전환기 아르데코풍으로 디자인한 개인 저택을 1925년에 완공하여 소장품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반스 재단은 미술을 제정신으로 감상할 수 있는 미국에서 유일한 곳”이라고 마티스는 말한 적이 있는데, 고즈넉한 교외에 펼쳐진 원예정원, 유럽풍 빌라 건축, 회화와 조각을 빼곡하게 나란히 배치시킨 전시 배열법은 반스 컬렉션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친밀하고 독특한 감상 포인트다.

bf37_300dpi_sm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우편배달부 (죠셉 에티엔느-룰랭) (The Postman (Joseph Etienne-Roulin))』, 1889년 작, 캔버스에 유채, 65.7 x 55.2 cm ©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미술작품의 진정한 소유자는 누구인가? 오늘날 문화는 소수 특권층의 사유재산이라기 보다는 만인이 공유하는 공공적 유산이라는 개념이 널리 일반화되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 국립으로 운영되는 박물관들이 무료입장제로 관객에 공개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생전 반스 박사가 자신의 미술 컬렉션이 길이 비영리 교육 재단으로 활용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힌 법적 유서를 남긴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단 창설자의 사유재산의 본래 의도를 무시하고 시정부가 재정적 부실을 핑계삼아 반스 컬렉션을 자의로 해체 이전한 후 관광명소로 만들기로 한 이 결정을 과연 단순한 문화재 보금자리 이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개인 문화유산와 운영철학에 대한 침해로 볼 것인가?

그래서 반스 컬렉션의 이주에 저항하는 반대 세력은 지금도 만만치 않다. 특히 반스 재단에서 미술사 교육과정을 거친 학생들과 회원들에 따르면, 재단의 도심 이전 결정이 반스의 소장품이 지닌 막대한 가치를 알아챈 필라델피아 시 정부와 지주들이 주도돼 반스 재단을 분산시키고 갈취하려는 본 의도를 은근슬쩍 감추기 위한 마케팅 조작에 다름아니라고 역설한다.

반스 컬렉션 소장품들이 새 반스 컬렉션 미술관 (Tod Williams Billie Tsien Architects 설계)으로 옮겨져 전시 채비를 갖추고 2012년 봄에 개장하면 반스 재단은 더 이상 교육의 위한 사유 문화재단이 아니라 유료입장제 시정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현재 공시가 1억5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원 반스 재단 건물은 다른 용도로 활용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약을 안은채 알보레툼 수목원 안에 지금도 호젓이 서있다. 우수한 문화재의 가치는 현시가로 매길 것이 아니라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라는 인류 역사적 진실을 다시금 환기해 볼 것을 재촉하는 듯하다.

* 이 글은 본래 『크로노스』 코리아 (CHRONOS Korea) 지 2011년 9/10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뮤지엄 – 21세기 현대인들의 문화 예배당인가 오락단지인가?

세계의 박물관

THE MUSEUMS OF THE WORLD

예술은 문명의 여정을 따라 핀 꽃길과도 같다. –링컨 스테펜스 (19세기 미국 언론인)

예술이 없다면 현실의 조야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 조지 버나드 쇼 (20세기초 아일랜드의 문학가 및 비평가)

여권과 여행자금만 있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세계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게 된 오늘날. 특히 1990년대 후반기부터 글로벌 경제와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현재 21세기 만큼 해외 여행이 모든 대중에게 널리 보편화된 시대는 인류 역사상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관광객들과 여행자들은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면 의례 그곳 대표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러보는 것이 의무적인 관광 코스이자 당연스런 의례가 되었다. 어떤 관객에게 박물관과 미술관이란 앎과 지식 향상을 위한 교육적 기관일테고 또 다른 관객에게는 눈요기감과 즐거운 시간을 약속하는 오락공간일테다. Continue reading

비엔나 고전음악 여행 가이드

“비엔나 – 세계 고전 음악의 수도” 

VIENNA – THE CITY OF MUSIC

18세기 바로크 시대 빈 거리에서 음악을 켜는 사람들. 당시 사람들은 기타 처럼 생긴 류트를 즐겨 다뤘다. 자료 사진.

18세기 바로크 시대 빈 거리에서 음악을 켜는 사람들. 당시 사람들은 기타 처럼 생긴 류트를 즐겨 다뤘다. 자료 사진.

…가난한 고학생들이 밤늦게 술에 취해 삼삼오오 모여 가곡을 합창하고 … 교회당을 지나치면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미사 오르간 소리가 흘러나오고 … 매주 일요일 호프부르크카펠레 예배당에서 비엔나 소년합창단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고 … 골목에서 이름모를 거리의 악사들이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으로 흥겹게 자아내는 거친 헝거리 민속음악도 언제든지 들은 수 있는 도시 비엔나. 이 곳은 부유한 자나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자나 상관없이 누구든 음악을 켜고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의 도시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의 거리 곳곳, 음악이 숨쉬는 대기 속에는 어딜가나 음악으로 흥건하게 젖어있다. 월츠와 오페레타는 비엔나에서 처음 탄생했고, 세계의 그 어느 나라와 도시를 합쳐서 비엔나 만큼 다수의 기라성급 음악가들을 배출한 곳은 없다. 고전 음악 뿐만 아니라 재즈, 팝, 록 음악은 물론이고 현대판 오페레타라고 불리는 뮤지컬 공연과 페스티벌도 일년 내내 열려서 국내와 해외 음악 청중들을 맞이한다. 비엔나에서는 일년 365일중 300일 동안 공연이 벌어지는데 대형 오페라 50편과 발레 공연 20편을 포함한 각종 규모와 쟝르가 망라된 음악 콘서트 행사는 무려 1만5천여 편에 이른다고 한다.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Las Meninas, or The Family of Felipe IV, Ca. 1656, Oil on Canvas, 318 cm x 276 cm. © Museo Nacional del Prado.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Las Meninas, or The Family of Felipe IV, Ca. 1656, Oil on Canvas, 318 cm x 276 cm. © Museo Nacional del Prado.

비엔나는 어떻게 세계 음악의 수도가 되었을까? 그 근원은 지금부터 약 3백여년 전 동유럽의 바로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사가들은 비엔나를 유럽 음악의 중심지로 끌어올린 장본인으로서 황제 레오폴트 1세를 꼽는다.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즈의 걸작 회화 『시녀들(Las Meniñas)』 속에 등장한 금발의 5살 박이 공주는 바로 레오폴트의 첫 아내이자 영원한 사랑이었던 마가리타 테레사(스페인 필립 4세왕의 딸)였다.

레오폴트 1세는 본래 예수회 교단 성직자가 될 계획으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황위후계자던 형 페르디난트 4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8살의 나이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됐다. 오토만 제국과의 대 터어키 전쟁, 헝거리 내전, 프랑스의 루이 14세와의 9년 전쟁 등 끊임없는 정치적 권모술수와 전쟁지휘에 바빴던 레오폴트 1세였지만 실은 부친 페르디난트 3세를 닮아서 사생활 면에서는 열렬한 문화애호가이자 아마츄어 작곡가였으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작곡가들을 데려와 직접 후원하기도 했다.

18세기 전반기 정치경제적 번영을 거듭한 바로크 시대에 뒤이어서, 18세기 후반기 로코코 시대가 되자 요제프 2세 황제 치하의 오스트리아 제국은 점차 계몽사상에서 영향받은 정치 분위기로 이행했고 문화적으로는 고전음악의 황금기로 이어졌다. 이 시기 활동한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는 빈에서 산 성인 시절 9년 동안 가장 훌륭한 명곡들을 창조해 냈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를 찾아서 독일 본에서 올라온 베에토벤은 빈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평생 활동했고, 수없이 많은 섬세한 멜로디의 낭만주의 악곡을 작곡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도 빈 출신이었다.

빈 중심부 슈타트파크 공원에 서 있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동상. 사진: 박진아.

빈 중심부 슈타트파크 공원(Wiener Stadtpark)에 서 있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동상. 사진: 박진아.

전형적인 19세기 낭만주의의 웅장한 교향곡의 대가 브루크너(Anton Bruckner)는 북부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으며, 북부 독일서 온 야심가득한 낭만파 작곡가 브람스(Johnanes Brahms)는 음악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다지기 위해 비엔나로 건너와 활동하면서 월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아버지)와 경쟁했다. 세기전환기 대표적인 후기 낭만파이자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전설적인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도 빈에서 세기말 근대기 ‘비엔나 악파’를 이끌었다.

오늘날도 변함없이 비엔나는 음악 감상에 조예있는 음악애호가와 미래 음악스타가 되고픈 열망 가득한 음악인이라면 꼭 방문하는 음악의 순례도시다. 특히 엘리트 음악 스타라면 꼭 한 번쯤은 서보고 싶어하고 또 거쳐간다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 무대로라면 단연 빈 국립 오페라 극장(Staatsoper)을 꼽는다.

국립 오페라 극장이 전설적인 문화적 명소가 된 이유는 또 있다. 매년 연초 2월면 “오펀발(Opernball)” 오페라 무도회 행사를 위해 오페라 건물안 공연장 전체가 거대한 무도장으로 탈바꿈하여 사회고위인사와 유명인들이 팔꿈치를 부비는 화려한 사교장이 된다.

1778년에 일반 대중관객을 상대로 개관된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öte)>의 대본은 썼던 당대의 유명 리브레티스트 에마누엘 시카네더(Emanuel Schikaneder)가 관장을 맡았던 역사 깊은 오페라 극장이다. 이곳에서 베에토벤은 이 극장안에 있는 손님방에서 한동안 거처하면서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 프리미어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오늘날 빈에서 가장 유서깊은 오페라 하우스로 자리잡은 이곳에서 지난 2009년에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의 서거 2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열렸다.  하이든이 남긴 가장 유명한 오페라극 <달의 세상(Il Mondo della Luna)>을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바로크 음악 전문가인 니콜라우스 하농쿠르(Nicolaus Harnoncourt)가 80회 생일을 자축하며 특별 지휘를 맡아서 큰 화재를 모은바 있기도 하다.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는 모차르트의 음악인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악연주회가 열렸다. 사진: 박진아.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는 모차르트의 음악인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악연주회가 열렸다. 사진: 박진아.

비너 무지크페라인(Wiener Musikverein)은 전세계 고전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장 전통적인 고전 음악 콘서트 레파토리를 갖추고 세계적인 지휘자와 공연자들을 무대에 올리는 곳으로써 잘 알려져 있다. 현대적인 해석이나 혁신적인 연주 기법을 개척하기 보다는 과거 원 작곡가와 공연연주자들이 냈던 원음과 연주 테크닉을 가장 원형 가깝게 재현하는데 훌륭한 기여를 해왔다고 자부하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가 상연하는 이 극장에서 특히 황금홀은 매년 특별 초대된 지휘자의 지휘로 연주되는 신년 연주회(Neujahrskonzert)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정통 고전음악에서 다소 벗어나서 중세음악에서부터 클래식, 모던, 재즈, 해외음악 등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보다 폭넓은 레파토리와 연주자들을 만나보고 싶은 음악애호가들 사이에서 빈 콘체르트하우스(Wiener Konzerthaus)는 빈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국제적인 음악을 소개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13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명으로 개관되었고, 요한 슈트라우스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프랠루디움> 행진곡을, 그리고 베에토벤은 그 유명한 심포니 제9번 ‘합창’을 작곡해 축하곡으로 선사했다. 오늘날 빈 콘체르트하우스는 빈 국립오페라하우스, 빈 무직페라인과 더불어 빈의 3대 주축을 이루는 음악 제도권이자 고급 공연문화의 미팅포인트임을 자처한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연하며 전통 고전음악을 가장 과거 원음에 충실하게 재현하는 무지크페라인. 사진: 박진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연하며 전통 고전음악을 가장 과거 원음에 충실하게 재현하는 무지크페라인. 사진: 박진아.

음악이 곁들여진 연극, 오페라, 오퍼레타. 발레, 현대연극, 뮤지컬을 포함한 우수한 레파토리를 제공하는 그장으로 꼽은 만한 무대로는 빈 폴크스오퍼(Volksoper Wien) 극장을 놓치지 말  일이다. 조르쥬 비제(Georges Bizet)의 오페라 걸작 카르멘(Carmen)이 독일어로 일주일에 3-4회 공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 오락용 오페레타(프랑스식 휴머와 오스트리아식 위트를 혼합한 대중적 서민 오페라)의 대표적인 고전작들로 꼽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Die Fledermaus)>와 프란츠 레하르(Franz Lehár)의 <유쾌한 미망인(Die lustige Witwe)>도 폴크스오퍼에서 고정적으로 공연된다.

그 외에도 일반 대형 무대에서는 잘 공연되지 않는 회귀공연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소규모이나  유서깊은 공연장들도 있다. 예컨대 빈 카머오퍼(Wiener Kammeroper) 챔버 오페라단은 특히 바로크 시대와 근대기 작곡된 희귀 악곡들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여름철에는 대중 청중들을 위해 쇤브룬 궁전 극장(Schönbrunn Palace Theater)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유명 오페라 작품들을 야외에서 연주하는 행사도 연다.

슈타츠오퍼 국립 오페라 극장의 건물 서쪽 광경. 빈 도심에서 가장 붐비는 쇼핑거리 케른트너슈트라쎄 거리상에 위치해 있으며, 이 극장 공연을 보려는 관객들이 당일 공연 직전까지도 매표소에서 입석표를 구하는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사진: 박진아.

슈타츠오퍼(Staatsoper) 국립 오페라 극장의 건물 서쪽 광경. 빈 도심에서 가장 붐비는 쇼핑거리 케른트너슈트라쎄 거리상에 위치해 있으며, 거의 매일 저녁마다 이 극장 공연을 보려는 관객들이 당일 공연 개봉 직전까지도 매표소에서 입석표를 구하는 모습을 어렵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 박진아.

지금 비엔나의 고전음악팬들은 내년 2013년 바그너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기대로 한창 들떠있다. 바그너의 해 특별 행사에서는 글룩, 슈트라우스, 로시니, 바그너의 오페라와 심포니로 구성된 레파토리에 아나 네트렙코, 엘리나 가란챠, 요나스 카우프만,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오페라계의 수퍼스타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그렇다고해서 고전음악을 감상하기 위해서 갑갑한 수트를 입고 경직된 자세로 극장 실내에 앉아 시간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국립오페라는 음악을 사랑하고 감상하고 싶어하는 비엔나 시민과 관광객들을 위해 일 년중 날씨가 좋은 4, 5, 6, 9월이면 오페라 하우스 건물 맞은편 액 50평방 미터 면적의 헤르베르트-폰-가라얀 광장에서150편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담긴 영상을 무료로 공연한다.

* 이 글은 본래 IBK 기업은행 사보 2012년 10월호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댄디 화가가 된 귀족남

닐스 다르델 – 근대 유럽의 민주적 댄디

“NILS DARDEL AND THE MODERN AGE” at Moderna Museet, Stockholm

닐스 다르델 ⟨숨져가는 댄디(The Dying Dandy)⟩ 1918년 © Nils Dardel.

닐스 다르델 ⟨숨져가는 댄디(The Dying Dandy)⟩ 1918년 © Nils Dardel.

근대기 유럽 미술계에서 하이소사이어티에서 기인 화가이자 개성 강한 댄디로 알려져 있던 닐스 다르델(Nils Dardel). 오늘날 스웨덴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국민 화가가 되었지만 그가 국민 화가 대접을 받기 시작한 때는 그다지 오래전이 아니었다. 남달리 개성이 강한 패션 감각, 기이한 성격, 인습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사생활을 고집했던 꾀짜라는 딱지에 가려 198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 덕택에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댄디(Dandy)란 본래 18세기 영국에서 인류 문명과 최고로 세련된 매너를 배우러 이탈리아로 유학여행을 떠나던 엘리트 교육과정, 이른바 이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하고 돌아온 귀족 남자 자제들을 뚯했다.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 Continue reading

‘미술가의 미술가’ 필립 거스통

PHILIP GUSTON – LATE WORKS at Schirn Kunsthalle Frankfurt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미국에서는 1940년대부터 1950년이 저물기까지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대세를 놓지 않고 있던 가운데, 추상표현주의를 과감히 뒤로 하고 다시금 ‘구상미술(figurative painting)’로 돌아간 반항아가 있었는데 필립 거스통은 그런 ‘이단자’였다. 2013년 겨울 (11월6일-2014년 2월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른 쿤스트할레에서는 미국 화가 필립 거스통(1913-1980, 캐나다 생)이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1960년대 말부터 ‘고급 미술’에 미국 대중 시각문화를 결합해 독특한 스타일을 개척했던 필립 거스통의 후기시절 구상회화 세계를 조명한다. 이 필립 거스통 전시는 덴마크 훔레벡 미술관으로 옮겨져 2014년 9월7일까지 “필립 거스통: 그림그리고, 담배피고, 먹고 (Philip Guston: Painting Smoking Eating)”이라는 제목으로 계속된다.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