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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재산을 지켜주는 또다른 통화화폐

전쟁기에는 군사력, 평화기에는 문화력

사회학자 베블린(Thorstein Veblen)에 따르면, 모름지기 고귀한 신사란 토지, 부동산, 광산같은 유용한 재산보다 미술품처럼 ‘쓸모없는’ 대상에 돈을 잘 쓸줄 아는자라 했다. 부자에게 미술품 수집이란 즐겁고 우아하게 돈쓰는 방법중 하나다. 미술명품을 구입해 곁에두고 살면 시각적 쾌락과 영혼적 행복을 얻을 뿐만 아니라 고상감 취향과 감식안을 주변에 과시할 수 있는 막강한 사교적 무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고대로마 황제와 몽고의 징기스칸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전리품으로 적의 문화재를 약탈해 가 과시했다. 평화시 교황과 제왕, 귀족과 재력가들은 당대에 최고로 아이디어 좋고 손재간 뛰어나다는 미술가를 앞다투어 고용해 새 건축물을 짓고 실내장식하는데 각축을 벌였다. 전쟁이라는 무력 다음으로 문화는 중대한 소프트파워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미술품, 새로운 화폐단위(커런시)로 떠오르는 밑천

화가 게하르트 리히터와 더불어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대형 사진작품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1991년 작)는 2008년 가을 국제금융위기에서 파산한 리먼브러더스 투자은행의 미술컬렉션이었으나 2010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433,250 파운드(우리돈 약 7억6천5백여만 원)에 낙찰되었다.

“미술품은 갖고 있는 동안은 좋은 장식품, 빚을 갚아야할 순간에는 요긴한 밑천”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미술품은 궁지에 몰린 채무자가 막판에 내놓는 빚보증물이었다. 2003년 벨기에의 사베나항공의 부도처리 과정에서 이 항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르네 마그리트의 <창공의 새(L’Oiseau de ciel)>(1965)가 경매에서 3백4십만유로(우리돈 약 53억원)에 낙찰되어 직원들의 퇴직금을 확보했다. 2009년, 적자로 허덕이던 이탈리아의 알리탈리아 항공사도 미래주의 회화 컬렉션을 경매에 부쳐 얻은 수익 1백2십만유로(우리돈 약 20억원)로 대차대조표를 충당했다.

조직과 국가 운영을 하던 중 절실한 자금난에 처했을 때, 미술품과 문화유산을 담보로 걸거나 빚을 갚겠다? – 당장 돈이 필요한 채무자에겐 분명 솔깃한 얘기 같다. 2008년 가을 터진 금융위기에서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 투자은행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사의 회계사정 후 뉴욕과 런던 본부에서 보유하고 있던 미술품 450여점을 소더비와 크리스티스 경매소를 통해 매각해 채무의 일부금액을 이행했다. 이어 200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극장 운영에 필요한 대출금을 융자받기 위해서 소장품이던 샤갈의 벽화 시리즈를 거래 은행에 채무담보로 넣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가장 최근인 4월에는,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재정난에 처한 그리스 정부에 2천6백7십억유로 구제대출금을 허락하는 담보로 파르테논 성전을 담보로 놓으라는 제안을 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고대그리스 민주주의 상징이자 수호물을 국가빚에 대한 담보로 내놓다니 얼토당토 않을 소리지만 문화재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해준 사례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고가 미술작품은 오래전부터 구미 엘리트층 사이에서 매우 요긴한 보증품이자 이른바 ‘3D 위기’를 대비한 개인 재산 목록이기도 하다. 여기서 3D란 3가지 인생의 고비 즉, 이혼(divorce), 사망(death), 빚(debt)을 뜻한다. 실제로 최근 세계 유명 은행들은 돈많은 프라이빗뱅킹 고객들의 재산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데, 채권이나 주식 위주의 전통적인 투자품목으로부터의 손실방지를 헤지책 겸 포트폴리오의 다각화 전략으로써 미술 투자를 권유하는 추세다.

1980년대, 소더비 경매소가 한 호주 사업가 앨런 본드에게 반 고흐의 유화 <수선화>와 소장미술품을 담보로 대출을 해 주었다. 본드는 채무불이행하게 되었고 그 댓가로 소더비는 <수선화>와 그의 컬렉션을 대충자금으로 압수한 후 게티 미술관에 막대한 금액으로 되팔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금도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미술경매소는 경매전 최저 작품예상가의 40%까지에 대한 금액을 고객에게 융자해주는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아트파이낸스란?

그렇다면 미술품은 어떻게 귀한 자산으로 변모할까? 과거 미술작품, 가격, 미술품 보험엗 대한 미술컬렉터를 상대로한 조언은 옥션하우스나 화랑업자들이 주로 담당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초엽 이후 경기호황을 타고 유명 은행들은 미술시장을 금융권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부유한 은행고객을 상대로 미술품을 투자와 재산증식을 위한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아트파이낸스 서비스(art finance service)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프리이빗 뱅크는 여유자금이 많은 고객에게 시장성있는 미술품 구입을 권유하거나 사업용 대출자금이 필요한 고객의 소장미술품을 담보로 대출금을 융자해 준다.

그렇게 마련된 자금을 바탕으로 은행은 자체적인 미술계 인사이더와 큐레이터로 구성된 자문단(art advisory)을 구성하고 유망주 미술가를 선별지원하거나 홍보하여 미술품 시장가격을 높여간다. 블루칩 미술가의 작품이나 유망있어 보이는 신진미술가의 작품구입을 대행해 주거나 미술품 구입에 필요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른바 아트펀드(art fund) 제가 그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며 2005-6년에 최호조를 맞았었다.

2008년 가을 국제금융위기에도 아랑곳없이 구미의 개인은행들은 미술의 애셋화 전략을 꾸준하게 진행중이다. UBS은행은 아트바젤 미술페어와의 긴밀한 스폰서 겸 재정파트너로서 미술 컬렉터들의 재정기밀을 보장한다. 세계최고의 앤티크페어인 TEFAF 마스트리히 행사 스폰서인 ABN_AMBRO, BNP파리바, 도이체은행은 미술컬렉팅과 컨설팅 서비스를 핵심 기업 철학으로 삼고 있다.  크레디스위스, 씨티그룹, HSBC은행, 딜로이트(Deloitte) 회계법인은 미술투자 고객들의 수요증가에 부응하기위해 정보제공 프로그램 운영과 뉴스레터 발행도 한다.

미술투자, 미래유망주냐 블루칩이냐?

미술계는 패션계에 못지않게 유행에 민감하다. 특히 생존하는 현대미술가의 인기도는 기복이 심하고 수명도 짧다. 더구나 요즘처럼 수많은 미술가들이 각축을 별이는 환경에서 미래의 피카소와 워홀을 미리 점찍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2008년 국제금융위기 직후 현대미술시장 매출액은 이전 해보다 17% 하락했고 미술품을 팔려는 고객수도 30-40% 줄었다. 2008년 9월 17일, 데미언 허스트가 전속화랑이던 화이트큐브와 분리를 선언하고 런던 소더비 옥션에서 첫 직접경매를 기다리던 같은 날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신고를 해서 당황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생존하는 현대작가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위태롭고 불확실한가를 확인하게 해 준 경우다.

반면 블루칩 미술작품은 불황은 물론 극단적인 경제환경이 닥친다해도 가격을 유지하는 든든한 자산이 된다. 블루칩 미술품이란 프랑스 인상파 계열 미술, 20세기 모더니즘 미술, 고전 거장들의 미술품 등 미술시장에서 인기도와 가격이 입증된 것들이다. 양식적 식별이 쉽고 인지도가 높아서 미술시장 내에서도 기복없이 가격을 유지하기 때문에 장기투자대상으로써는 물론이고 급히 자금을 마련해야할 때 자금화  유동성도 우수하다. 제값을 하는 블루칩 미술품의 조건은 거장 미술가의 전형적인 양식으로된 핵심작이며 미술사적 의미가 인정받았고 경매장과 감식가의 감정을 거친 출처(provenance)가 분명한 진품이라고 전문가들은 귀띰한다.

감식안이 좋다면 컬렉터는 꼭 회화나 조각 같은 순수미술로 관심분야를 국한시킬 필요도 없다. 주얼리, 금은제 장식품, 도자기나 유리 공예, 휘귀 동전과 우표, 희귀 악기, 고가구, 빈티지 포도주도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가 커지는 컬렉팅 아이템들이다. 예컨대 최근 중국 갑부들은 전세계 미술경매를 통해서 해외 미술시장에 떠도는 중국 골동문화재와 고미술품을 다시 사들여오고 있다. 차후 필연적으로 찾아올 렌민비화의 가치상승과 최근 급속화되고 있는 인플레에 대비하려는 헤지 전략이자 가격이 더 상승할 중국미술품을 미리 사두겠다는 계산된 투자의도에서다.

단, 겉보기보다 미술품은 다른 재산보다 관리비가 많이 드는 목록이기도 한다. 미술작품을 소유한다 함은 토지, 금은괘, 주식처럼 속성이 유지되는 재산품목이 아니라 세월, 환경, 관리에 따라 변하고 손상되므로 컬렉터는 문화재 관리자라는 필히 책임의식을 지녀야 한다. 작품 운반비용, 복원 및 관리비, 미술품 파손 및 도난 대비 보험료, 옥션하우스 매매 수수료 등에 드는 부수적 비용에 대해서도 미리 정보를 갖추는 것도 필수다. 현재 아트어드바이저리를 보유한 은행들과 사설 아트펀드 회사들은 이 모든 서비스를 대행해준다.

각별한 취미가를 위한 귀중한 재산목록

일반적으로 미술 전문가들은 미술품을 단기적인 투자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경고한다. 미술작품의 매매 거래과정과 통로가 투명하지 않고 비밀스럽다는 점도 지적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때도 작품 대여비나 저작권료를 받는 경우가 아닌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 재정적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미술품 자체를 깊이 사랑하고 세계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한다는 사명감이 겹합된 긴 안목없이 단기에 재정적 이득을 보겠다는 목적에 미술품에 투자했다가는 후회하기 쉽다. 성공한 개인 미술컬렉터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화랑업자나 언론매체의 허풍이나 일시적인 유행에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만의 취향을 키워나가라고 조언한다.

결론적으로, ‘미술품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대출보증, 인플레에 대비한  투자대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은 ‘그렇다’이다. 단, 미술시장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고 꾸준한 정보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작품을 볼 줄아는 탁월한 안목을 갖췄을 때에만 그렇다. 좋든싫든 미술품은 어느새 중요한 대안 투자대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래 《크로노스》 코리아 (CHRONOS Korea) 지 2011년 7/8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