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ugust 2013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 195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I Consume, therefore I am.”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50s

재건과 풍요의 1950년대 건축과 디자인 – 소비주의 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 바바라 크루거 – 현대미술가

현대 사회를 꼬집는 예술가나 문화논평가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에게 소비활동이란 숨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의 하나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지 오래다. 예나지금이나 인간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의식주 환경은 현금이나 신용카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선택하고 소유할 수 있는 일용품 (commodity)이 되었다. 주유비가 많이 듦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안락을 내세운 탱크같은 SUV 자동차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으며,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운 아파트 신건축물과 인테리어 디자인은 보다 귀족적이고 고귀한 생활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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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 디자인 미학의 창시자 레이먼드 로위가 1947년에 디자인한 코카콜라 디스펜서는 다가올 50년대 디자인을 예고했다.

고급 브랜드를 내세운 의류와 악세서리 같은 최고급 디자이너 제품들은 물론 미용실과 병원 같은 서비스 산업에 이르기까지 명품 열기는 가실줄 모르고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때 사회 최고부유층 만이 가질수 있던 고가 명품은 점차 대중 소비자들도 지불만 하면 소유할 수 있는 일용품으로 대중화 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코넬 대학의 경제학 교수 로버트 프랭크의 개념을 빌자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럭셔리 열병 (luxury fever)’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Continue reading

존 헤거티가 말하는 창조 시대의 광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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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garty on Advertising – Turning Intelligence into Magic 2011년 영국의 광고계 거물이자 전설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헤거티는 오길비의 광고론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헤거티의 광고론』(런던 템즈 앤 허드슨 출판사 刊)을 펴냈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이 책이 광고계의 크리에이티터를 꿈꾸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어떤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 미리 엿보도록 하자. 디자인정글에 실린 《헤거티의 광고론》 2103년 8월23일 자 북리뷰 컬럼 계속 읽기 

 

아메리칸 모던, 1925-1940년 미국 디자인

REVIEW

American Modern, 1925-1940: Design for a New Age

노먼 벨 게데스가 1939년 디자인한 “패트리엇(Patriot)” 라디오. John C. Waddell Collection.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미국의 모더니즘 디자인을 정의하고 그 미학적 의미를 고찰해 보는 전시가 한창이다.

노먼 벨 게데스 (Norman Bel Geddes), 도널드 데스키 (Donald Deskey), 폴 프랭클 (Paul Frankl), 레이먼드 로위 (Raymond Loewy), 이사무 노구치 (Isamu Noguchi), 엘리엘 사아리넨 (Eliel Saarinen), 월터 도르윈 티그 (Walter Dorwin Teague), 발터 폰 네쎈 (Walter von Nessen), 러셀 라이트 (Russel Wright)를 포함해 50여 명의 거장 디자이너들의 작품 150여 점이 한자리에 전시되는 이 전시는 가구, 시계, 전자제품, 포스터, 직물, 라디오, 테이블웨어, 그리고 욕실 세면대에 이르는 갖가지 제품들을 통해서 양차대전 사이 미국식 모더니즘 디자인 양식을 시대 및 주제별로 조명하고 있다.

파리박람회를 계기로 뒤늦게 불붙은 미국 모더니즘 논쟁 디자인 독자적인 미국 모더니즘 디자인은 과연 존재했던가? 그같은 질문에 전시 담당자 스튜어트 존슨은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미국적 모더니즘 디자인 운동에 본격적인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 시점은 파리 국제장식미술전 및 현대미술박람회가 열린 1925년이었다. 프랑스는 이 행사를 빌어 미국의 공예와 산업 미술을 전세계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 미국에게 전시관을 제공했지만 ‘새로운 영감과 진정한 독창성’을 추구한다는 기치하에 열린 이 박람회에 미국은 안타깝게도 참여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허버트 후버 미국 상공부 장관은 미국내 디자인계와 교육계 인사들의 조언을 구해 본 결과 미국에는 세계에 소개할 만한 모더니즘 미술이나 공예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때문이었다. 1925년 이전까지 미국의 디자인은 고전주의를 포함한 역사주의적 양식을 그대로 답습해 왔을 뿐 독자적인 모더니즘을 전개하지 못한 채였다.

1925년 이래 15년에 걸친 기간은 그래서 미국식 모더니즘 디자인의 탄생기이자 미적 탐구기였다. 1930년대에 접어들자 미국 경제와 문화를 황폐화시킨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와 리처드 노이트라 (Richard Neutra) 같은 소수의 모던 계열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미국은 새로운 미학의 시대를 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후로부터10년 후인 1939~40년, 미국은 모더니즘 부재에 대한 수치감을 씻어 내리기라도 하듯 뉴욕에서 세계 박람회를 개최한다.

엘리엘 사아리넨이 크랜브룩 자택 실내장식에 사용하기 위해 1929-30년에 디자인한 아르데코풍 의자와 테이블. Photo: Eliel-Saarinen.com.

프랑스 아르데코 양식의 영향
미국의 모더니즘 디자인은 파리박람회를 통해 알려지게 된 아르데코 (Art Deco) 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했다. 프랑스에서 탄생한 이 호화 공예 양식은 모더니즘의 간결한 선과 세밀한 디테일 처리로 고급스러움을 한껏 발산한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1925년 파리박람회를 관람하고 돌아온 미국인 디자이너 도널드 데스키 (Donald Deskey)는 아르데코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테이블 램프에 이어 1932년 뉴욕 라이오 시티 뮤직 홀 실내장식을 담당하기도 했다.

뉴욕시의 스카이라인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마천루도 다름아닌 아르데코 양식에서 영향받아 디자인된 것들이다. 남성적인 힘과 대담성을 암시하는 뉴욕의 초고층 건물들은 과거의 한계에 대한 저항, 미래에 대한 신념, 20세기를 향한 흥분과 낙관주의를 표현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이미지는 회화와 조각에서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반영되었다.

부와 성공의 상징이 된 펜트하우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다. 맨하탄 고층 건물 꼭대기에 거주용 아파트로 지어진 펜트하우스는 자유와 화려한 삶의 대명사가 되었고, 세련되고 화려한 펜트하우스 실내외 경관을 배경으로 한 헐리우드 영화가 심심찮게 제작되기도 했다.

유럽 출신 모더니스트들 미국으로 대거 유입
유한계층을 주요 고객으로 발단된 아르데코와는 대조적으로 대중을 위한 생활미학을 창조하고 전파하려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계열 디자인이 경제 대공황에 허덕이는 미국 사회에 크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1933년 나치의 예술탄압 정책으로 인해 유럽을 떠나온 발터 그로피우스, 마르셀 브로이어,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헤 등은 미국으로 건너온 후 미국 특유의 산업디자인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미국 출신인 월터 도르윈 티그는 1932년 코닝 글래스 웍스 (Corning Glass Works) 소속 스토이벤에서 입방체와 구를 위주로한 미국적 단순미와 기학학적 양식의 유리제품을 디자인했다. 1923년 핀란드에서 이민온 건축가 디자이너 엘리엘 사아리넨은 미국 모더니스트 디자인에 북유럽적 우아함과 세련미를 소개했다. 전시중인 놋쇠 구형 찻주전자와 쟁반은 고전적 비례감각과 장식성에 모더니즘의 기학학적 아름다움이 오묘하게 조화된 걸작으로 여겨진다.

폴 프랭클이 1927년경 디자인한 <마천루(Skyscraper)> 책장.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ollection.

유선형 디자인, 아메리칸 스타일
아르데코는 프랑스, 기하학적 모더니즘은 독일, 그리고 유선형 디자인은 미국이라는 독자적인 정체성도 동시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폴 프랭클 (Paul Frankl)은 뉴욕 마천루를 본 따 고안한 가구 디자인 시리즈를 통해서 상하직선으로 곧게 치솟은 오브제의 미학을 환기시킨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천루 모티프는 일반인들에게 어필하기에 지나치게 극단적인 인상을 준다는 점 때문에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한편 1930년대 공학자들이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유선형 디자인을 개발하자 스피드, 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는 유선형 모티프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비행기, 자동차, 기차 등 대형 동력기계는 물론 갖가지 가정용 제품과 인테리어에까지 유선형 디자인이 지배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켐 웨버 (Kem Weber)의 비행기 형태 팔걸이 의자(1934)라든가 에그몬트 아렌스 (Egmont Arens)의 ‘스트림라이너’ 고기썰이 기계 (1940년), 길버트 로데 (Gilbert Rohde)의 크롬 처리된 세련된 시계 디자인, 작자 미상의 ‘아이스 건’ 얼음분쇄기는 미국식 기계미학이 유선형으로 재탄생한 대표적인 디자인 사례들이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미국식 모더니즘 모색과 그 후
1940년대 전후에 이르면 유선형 디자인의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이전의 모더니즘적 양식에 편안함의 가치가 어우러진 절충적 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선형 디자인의 물결과 더불어 수많은 가정용 제품을 디자인해 온 헨리 드레이퍼스 (Henry Dreyfuss)나 산업디자이너 노먼 벨 게데스는 기존 유선형 디자인이 숭배하던 역동주의와 곡선의 세련미에 형식의 탈피와 편안함이라는 가치를 더했다.

에그몬트 아렌스의 ‘스트림라이너 (Stremliner)’ 고기썰이 기계. 1940년. The Museum of Modern Art collection.

이러한 절충양식은 북유럽에서 건너온 스칸디나비아 디자인과 특히 1936년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알토(Alvar Aalto)의 인테리어 가구들이 미국에 처음 수입돼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가속화됐다.

부드러운 곡선, 유기적인 형태, 인간의 손과 신체를 안락하게 감싸는 스칸디나비아식 디자인 철학은 러셀 라이트의 우아한 디자인에 영향을 끼쳤다. ‘아메리칸 모던’이라는 모델명으로 1937년 판매에 들어갔던 그의 테이블웨어 시리즈는 8천만 세트를 판매하는 경이로운 판매기록을 올린 대히트품이 되었으며, 헨리 드레이퍼스는 ‘사용자 편의(user-friendly)’라는 이름의 주방용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1940년대 이후로 미국은 유럽 디자인과 겨룰만한 독자적인 디자인 양식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지켜오고 있다.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대중소비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한 1950~60년대 미국은 다시 한 번 밝고 긍정적인 미래사회를 꿈꾸기 시작하는 한편, 기능적이면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편안함의 미학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고, 일반 소비자들 또한1920~30년대의 기하학적 모더니즘과 쉬크함 대신 실용성과 편안함을 선택했다.

* 이 글은 본래 KIPD 발행 『산업디자인의 미래 (Future of Industrial Design)』 디자인 격월간지 2000년 11/12월호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