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Dec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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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hnacht_20

현대 인도미술 시장 다이제스트

INDIAN ART NOW

인도 현대미술의 오늘과 내일

영원한 사랑과 로맨스의 아이콘 타지 마할. 대영제국으로부터 인도를 해방시킨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현대 인도 대중문화 현상이 된 발리우드 시네마 – 인도 하면 떠오르는 몇몇 대표적 전형 말고도 인도의 문화적 위상 증진에 큰 몫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현대미술이다.

이미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온지 오래된 일본미술, 최근 십 여년 동안 경제 급성장과 함께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이어서 인도의 현대미술은 요즘 구미권 컬렉터들 사이에서 새삼스러운 관심과 유망한 투자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도 현대미술을 향해 강렬히 쏟아지는 국제 미술시장의 주목은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신흥 성장국들의 일원으로 급성장한 경제력의 덕도 힘입은 때문이다.

아니시 카푸르(Anish Kapoor)
 2006년 작. Stainless steel
1066.8 x 1066.8 cm. 
Photo © 2010.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블루칩 미술품은 이제 주식이나 채권에 버금가는 자산으로 인정받는 포트폴리오 다각화 투자 품목이기도 하지만 컬렉터의 남다른 감식안을 우아하게 뽐낼 수 있는 문화적 무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구미권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즈>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크리스티스나 소더비의 동남아시아 미술 경매 결과를 눈여겨 보도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 런던 프리즈 등 간판급 국제 현대미술 박람회에서는 최근 주가 높은 현대미술가들을 홍보하며 컬렉터들을 유혹한다. 예컨대 아니시 카푸르(Anish Kapoor),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지티시 칼랏(Jitish Kallat)은 서구적인 감각과 최첨단 매체로 인도의 현모습을 조명하는 전략으로 구미 미술시장을 공략하며 한껏 주가를 높이는 작가들이다.

최근 몇 해에 걸쳐 크리스티스 경매소는 인도 현대미술 영역에서 최고의 경매실적을 올려왔고, 그 뒤를 소더비 경매소가 뒤따르고 있다. 2000년 인도 뭄바이 본사에서 창립된 후 현재 뉴욕, 런던, 델리 등 4도시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사프론아트(Saffronart)는 인증된 고급 인도 미술과 공예품을 인터넷상에서 거래하는 최대 규모의 온라인 경매소 겸 딜러로 유명하다. 사프론아트는 가장 최근인 9월말 가을철 정기 경매에서 원로 화가인 티옙 메타(Tyeb Mehta)의 회화작품을 미화 1백5십6만5천 달러(우리돈 약 18억5천여만 원)에 낙찰시켜 2008년 국제금융난 후로 잠시 침체되어 있던 인도미술 시장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었다.

라빈더 레디(Ravinder Reddy) 
 1995-96년 작. 
Fiber glass, gold leaf, paint 
61 x 86,4 x 111,8 cm.
 Lekha and Anupam Poddar Collection 소장품. Photo courtesy: Daimelr Art Collection.

막불 피다 후사인(Maqbool Fida Husain)은 인도 근현대 미술 하면 우선 떠올리는 국가대표급 원로 화가다. 1915년 생인 후사인은 일명 ‘인도의 피카소’ 또는 ‘인도의 워홀’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20세기 인도 미술계를 목도하며 70평생 활동한 다작가였다. 본래 영화극장 간판과 포스터를 그리던 간판쟁이 일을 하던중 미술의 세계로 입문한 그는 말년에 힌두교 다신들을 누드로 그렸다하여 과격 힌두교 신자들로부터 쫏겨 해외 망명생활을 하다가 올해 6월 런던에서 작고했다.

그렇다고 인도 미술가들이 후사인의 뒤를 이어 신성모독이나 사회적 터부에 도전하는 도발적 미술을 추구하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인도 미술가들은 주로 인도인들의 일상 풍속을 담은 풍경화나 역사적·종교적 사건을 다룬 기록성 강한 역사화를 주로 그려왔다.

그런 이유로 전세계 미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인도미술은 대체로 신비롭고 사색적인 미술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풍 구상화를 그린 시예드 하이더 라자(Syed Haider Raza), 인도 토속풍경을 그린 라자 라비 바르마(Raja Ravi Varma)는 후사인과 더불어 인도 근대 미술계의 삼대구도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블루칩 원로 화가들이다.

21세기 현재, 인도 현대미술을 이끄는 젊은 30-40대 미술인들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는 창조적 화두이자 쟁점은 다름아닌 글로벌리즘(Globalism)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글로벌화의 물결을 타고, 인도는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의 인구이동, 고속도로와 신도로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인간무리와 교통수단, 새로운 물적풍요와 그 뒤안길에 서려있는 수선스러움과 허탈감 – 글로벌화라는 열병에 들떠있는 오늘날 인도의 풍경은 급속한 산업화를 겪은 아시아인에게 보편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면이 있다.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 2007-2008년 작. C-print. Courtesy the artist and Frith Street Gallery, London. 2008 © Dayanita Singh.

현대 인도 미술인들은 인도적 향취가 짙은 이미지를 활용하지만 매체나 기법 면에서는 서구의 현대미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젊은 세대 인도미술가들은 과거 선배 화가들이 갇혀있던 전통적 회화나 조각에서 벗어나서 초대형 설치, 멀티-스크린 비디오, 대규모로 확대한 총천연색 디지틀 사진,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결합한 혼합매체 등 매체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표현 방식을 구사한다. 구시대와는 확연히 다르고 복잡해진 글로벌 사회를 보다 절실히 표현하는데에 최첨단 시각매체가 더 유용하기 때문일테다.

주제 면에서도 나태한 컨셉츄얼 미술이나 가벼운 세태풍자나 논평에 안주하지 않는다. 최근 주목받는 현대 인도의 미술인들은 언뜻보기엔 전형적이고 진부하다고 느껴질 지언정 현대화 과정 속에서 인도인들이 경험하는 종교적, 경제적, 일상적인 혼돈과 갈등을 진지한 어조로 다루며 사색적 무게를 가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예컨대 ‘인도의 데미언 허스트’라고 불리며 인도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수보드 굽타(Subodh Gupta)는 광채가 화려한 일상용품을 활용한 대형 설치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경매장의 귀염둥이로 자리잡은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은 대형 사진작품을 통해서 빛과 초고속 스피드로 전율하며 변화·갈등하는 인도의 겉모습과 인간상을 포착한다.

또 그런가하면 한결 정치적·종교적 운을 띤 작품을 하는 작가들도 눈에 띄는데, 특히 젊은 비디오 아티스트인 아마르 칸와르(Amar Kanwar)는 멀티스크린 비디오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 힌두교대 회교 사이 종교적 갈등을 다뤄 구미권에서 무게있는 작가로써 평가받고 있다.

지티시 칼랏(Jitish Kallat) <수하물 찾기(Baggage Claim)> 2010년 작. 캔버스에 아크릴릭. Courtesy: Arndt Gallery, Berlin.

경제성장과 더불어 미술시장에서 급부상한 인도의 현대미술은 과연 창조성과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가? 자칫 인도 미술은 몇몇 한정된 수의 미술인들이 서구 미술 시장에 의해 작위적으로 선정돼 ‘인도 브랜드’ 창출로 치중되는 아닐까? 장기적으로 예술적 생명력과 내공을 발휘하며 미술사에 남을 작가는 누구일까? – 이 모든 의문점은 역사의 시험대에 서있는 현대미술가라면 누구나 당면한 숙제일뿐 인도 미술 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도의 현대 미술은 인도의 역동적인 경제성장 만큼이나 계속 진행중인 흥미로운 문화 프로젝트다.

국가는 경제가 번성하면 그에 준하는 미술이라는 유형 자산(tangible asset)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인도 현대미술이 구미 미술시장에서 관심을 끌게 된 배후에는 인도 산업계 갑부들과 30-50대전문직 중상층 해외파 인도인들이 주도된 미술 수집 트렌드 한 몫을 한다고 새프란아트는 집계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정신적 영혼적 풍요로움을 가장 잘 버무려 표현해 주는 재산 목록으로써 미술품만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경제력이 커지면 문화의 위력도 그에 비례해 커지는 것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 이 글은 본래 Chronos Korea 지 2011년 11/12월호 (제17호) 188-189쪽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근현대 추상미술의 근원은?

서평

『미술과 우상: 우상숭배, 우상파괴, 유태인 미술』의 역자 후기 중에서

유태인 미술 – 분명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물론이려니와 서구의 일반인과 미술 연구자들에게도 퍽 생소한 미술 개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유태인 민족과 직접적인 접촉이나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던 우리나라의 경우 유태인 미술은 차치하고라도 유태민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지극히 부족하다.

다만,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성서를 통해서 유태 종교 및 그 신자인 유태인 민족의 역사와 자신들과의 신앙적 차이점을 익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셰익스피어의『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 샤일록처럼 유태인이 등장하는 여러 서양 고전문학 작품들에서는 곧잘 유태인은 이재에 머리가 밝지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교활한 근성을 지닌 민족으로 묘사됨으로써 인자하고 너그러우며 품성좋은 기독교 유럽인에 대한 상대적 전형으로 제시되곤 했다.

유태인 미술이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미술을 뜻할까? 이 책의 저자인 앤소니 줄리어스가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유태 민족은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성서 십계명 제2조항을 원칙으로 삼아 미술 행위를 철저히 금하였다. 근대기 이전기까지 기독교 유럽 세계에서 유태인 출신의 미술가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근ㆍ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유태 민족이 거쳤던 박해와 이산의 역사를 고려해 볼 때, 또 종교 예배를 위한 수공예 기술 이상의 그 어떤 미술 창작 활동을 금했던 유대교 교리를 주지해 볼 때, 저자의 ‚유태인 미술’ 범주 선언은 자의적인 구석이 느껴지는 데가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유태민족은 유태적 미술이라고 칭할 만한 미술을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특성과 재능을 시각예술로 승화한 유태인 고유의 미술을 구축해야 한다“고 저자 줄리어스는 주장한다.

한편 서구 20세기 근ㆍ현대 미술계서 유태인들의 활동은 전에 없이 활발했다. 특히 19-20세기 전환기부터 부르주아 및 사회 상류층 유태인들은 미술 후원가로도 큰 활약을 하며 신시대 미적 취향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빈 모더니즘기의 대표적인 화가인 클림트(Gustav Klimt),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실레(Egon Schiele)는 알마 말러-베르펠(Alma Mahler-Werfel), 아델레 블로흐-바우어(Adele Bloch-Bauer), 데이지 헬만(Daisy Hellman) 같은 오트-부르조아지 유태인 여성후원자들의 주문과 재정 후원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명화들을 완성했다.

그런가 하면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빈에서 살면서 화가 지망생이던 청년시절 히틀러는 한 유태인 교수가 퇴짜를 놓아 미술학교 진학시험에 낙방한 이후로 유태계 이민자들이 사회 곳곳의 요직과 창작업에 포진해 있음을 발견하고 유태인에 대한 혐오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히틀러를 포함한 빈 근대 세기전환기의 보수 카톨릭과 우익 정치 세력이 빈 근대미술을 퇴폐미술(degenerate art)로 낙인하고 체계적인 파괴와 압수를 자행했던 것도 유태인들이 근대기 퇴폐미술을 조장하고 장려했다고 여겼던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제 3제국 정권과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유태인 문화계 종사자들이 영국과 미국으로 쫓겨났지만, 그로 인해 런던과 특히 뉴욕의 문화계가 살찌워진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2차 대전 이후 미술계 중심축이 유럽에서 뉴욕으로 이동해 갔으며 그 후로 전에 없이 많은 수의 유태인 출신 미술가들이 탄생해 근ㆍ현대 미술사의 대획을 긋는 업적을 남겼다. 유태인 옹호주의자들과 유태인 혐오자들이 한데 입을 모아 특히 20세기 추상 미술은 근본적으로 유태인 미학이라고 주장했던 것도 바로 그 같은 전례 없는 현상을 해명하려던 시도였다.

이 책에서 저자 줄리어스 역시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는 오히려 20세기 미술에서 유태인 미술가의 범람 현상을 그 같은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태계 근ㆍ현대 미술가들은 유태인 미학이 아닌 기독교 문화에 철저히 동화된 개인들로서 기독교적 미학 원리에 입각한 미술을 창조했을 뿐이며 따라서 20세기 미술은 전혀 유태인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줄리어스의 그 같은 입장은 위대한 유태계 미술사학자인 고(故) 에른스트 곰브리히(Ernst Gombrich) 경의 시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19-20세기 전환기에 비엔나 정치문화사 분야의 개척자인 역사학자 칼 쇼스케(Carl E. Schorske)는 이미 1960년대에 “동유럽에서 이민 온 유태 민족은 오스트리아 상류사회 진입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으로서 가톨릭교로 개종하고 유럽 문화로 개화했다.“고 쓴 바 있다. 이어 1990년대에 스티븐 벨러(Steven Beller)는 특히 비엔나 모더니즘을 주도한 과학자, 철학자, 문장가 및 대문호, 작곡가, 문화계 후원자들이 유태인 후손들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해 “세기 전환기의 비엔나 문화는 유태인적 취향을 반영한 사실상 유태인 문화“였다고 했다.

이에 반박해 1996년 11월, 런던 오스트리아 문화원 주최 오스트리아-유태인 문화 페스티벌에서 ’1900년대경 비엔나와 유태인 문화의 연관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곰브리히 경은 “비엔나를 포함하여 유럽에 흩어진 유태인들은 배경 국가의 종교와 문화에 완전히 동화된 유럽인들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이 창조하고 후원한 미술은 유럽 미술이지 유태인 미술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유태민족과 그들의 정체성 문제는 이산과 박해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이며 미술 분야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 앤소니 줄리어스의 본 저서는 기존의 미술사에서 유태인 미술을 발굴하고 기존 미술 작품을 통해서 유태인 미술을 정의하고 규정하지 않는다.

julius_t&h그 대신 그는 유대교와 그로부터 추출한 정신과 사고방식을 시각예술로 전환시킨 유태인 고유의 미술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이를 추구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유럽 문화에 완전 동화된 영국계 유태인 후손의 시각과 변호사 다운 탄탄한 논리전개 방식 및 언변력과 미술사적 통찰력은 흥미로운 책 읽기 경험을 선사하리라고 믿는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결코 쉽지 않은 국내 미술 전문 출판업의 환경에서도 역자에게 본 저서를 번역해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역자의 번역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시고 수 차례의 고된 편집을 책임져 주신 박은영 편집자님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2003년 여름 빈에서 박진아.

필자 앤소니 줄리어스(Anthony Julius)는 영국계 유태인으로 미술문화 전반에 대한 활발한 저술 및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직 변호사로 현재는 런던 소재 법률사무소 미쉬콘 데 레야에서 명예훼손 및 상업위반법 전문 변호인으로 일하고 있다. 고(故) 다이애너 비의 이혼소송 건과 홀로코스트 부정자 데이비드 어빙을 상대로 한 립스타트 교수와 펭귄 출판사 간의 명예훼손 건을 책임져 영국 법조계의 스타 변호사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영국 유명 일간지『가디언』(The Guardian) 등을 통해서 유태민족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문제와 관련한 기고활동도 겸하고 있다. 본 저서 『유태인 미술과 우상숭배』(Idolizing Pictures : Idolatry, Iconoclasm and Jewish Art, 2000) 외에도, 최근 20세기에 걸쳐  전통미술의 규범과 관객의 상식에 도전한 전복적인 미술을 정의하고 이를 분석한 책 『발칙한 미술』(Transgression: The Offences of Art, 2002)을 출간해 사회문화적으로 터부시되는 주제를 미술과 연관시켜 분석하는 미술평론가 겸 이론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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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적 건축”에서 조화로운 가구로

알바 알토의 가구 디자인 ALVAR AALTO AT JACKSONS, BERLIN

아름다움이란 기능과 형태가 조화롭게 결합된 것 (Beauty is the harmony of purpose and form.) – 알바 알토, 1928년.

portrait-alvar-aalto핀란드 고유의 목공예 전통을 이어받아서 일찍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유할 것을 주창한 이른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 정신의 대표적인 옹호자였던 알바 알토(1898-1976). “인도적 모더니즘(Human Modernism)”으로도 알려져 있는 알토의 디자인은 자연, 건축, 디자인, 그리고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대화를 화두로 삼는다.

비행기 탑승에 늦게 도착하면 핀란드 항공사 승무원들과 탑승객들이 이 위대한 건축가 선생이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주었을 정도로 알토는 국가적인 영웅 취급을 받았고, 알토는 일찍이 초기 건축가 시절부터 스스로를 코즈모폴리탄 지성인이자 ‘세계적 수준의 건축가’라 자칭하며 그같은 대우를 태연작약하고 당당하게 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1924년 알바 알토 건축사무소를 설립하며 건축가로 데뷰한 때는 핀란드가 스위덴으로부터 독립하여 신시대 핀란드 아이덴티티 구축에 한창이던 핀란드 문화 르네상스기였고 건축 디자인 주문 물량은 끊기지 않고 밀물려 들어왔다. 특히 빌푸리 시립도서관(Vilpuri City Library, 1927-35)와 파이미오 결핵 치료요양소(Paimio Tuberculosis Sanatorium, 1929-33)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국제 모더니즘 양식을 취하되 알토 고유의 해석력과 인간존중적 휴머니즘이 담긴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아이콘격 의자 모델인 팔걸이 의자 42 (Armschair 42)는 1932년에 아르텍에서 첫 제조되어 오늘날까지 생산되고 있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아이콘격 의자 모델인 팔걸이 의자 42 (Armschair 42)는 1932년에 아르텍에서 첫 제조되어 오늘날까지 생산되고 있다.

193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목재를 활용한 기능주의 건축과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다. 특히 그의 가구 디자인은 라미네이트 굴곡 공법으로 휘어진 나무소재를 이용한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 형태가 특징적이다. 알토는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창안한 철관으로 만든 캔틸레버 의자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는 이 의자를 목재로 재해석한 의자를 고안했다.

알토는 파이미오 요양소 건물 실내 장식에 임할 때 특히 디테일 면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환자의 입장을 깊이 고려하는 시점의 변화를 가했다. 실내 환경은 카나리아 새를 연상시키는 노랑색으로 밝고 차분한 분위기로 연출했고, 금속재 세수대에서 물 떨어지는 소음이 환자들의 청각을 거스르지 않도록 수도꼭지와 세수대도 세심하게 디자인했다. 결핵으로 호흡이 힘겨운 환자들에게 한결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해 금속 대신에 주형 목판을 의자의 주소재로 사용했다.

천정 조명 A330S(Pendant Lamp A330S). 알바와 아내 아이노는 1936년 헬싱키에 있는 사보이 레스토랑 실내장식 디자인 의뢰로 이 조명갓을 디자인했다. 이 작품은 1937년 파리엑스포 행사에서 핀란드관에서 출품되기도 했다.

천정 조명 A330S(Pendant Lamp A330S). 알바와 아내 아이노는 1936년 헬싱키에 있는 사보이 레스토랑 실내장식 디자인 의뢰로 이 조명갓을 디자인했다. 이 작품은 1937년 파리엑스포 행사에서 핀란드관에서 출품되기도 했다.

1930년대 중엽, 알토는 핀란드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가대표급 건축가로 높이 존경받고 있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발터 그로피우스가 주도한 독일 바우하우스 운동으로부터 밀려온 국제적 경쟁에서 다소 밀려 중요한 건축공모전 당선을 연거푸 놓치며 건축 수주가 주춤해졌다. 잠시나마 의기소침해진 알토는 1935년 아내 아이노와 함께 수도 헬싱키에서 벗어난 교외마을 문키니에미로 이사한 후 가구용품 회사 아르텍(Artek)을 설립해 이 업체는 지금까지도 알토의 고전적 실내장식용 가구와 장식용품을 생산해 전세계로 판매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슬럼프기는 1937년, 헬싱키 중심부에 있는 사보이 레스토랑의 실내장식 수주를 받는 것으로써 마감되었다. “젊은 에스키모 여성이 입는 가죽 바지”의 모양새에서 영감을 받아서 디자인한 곡선모양의 그 유명한 디자인 아이콘 사보이 꽃병(1937년 디자인)은 바로 이 사보이 레스토랑 디자인에 쓰이기 위해서 디자인된 것이었다.

사보이 꽃병은 1936년에 카르훌라(Karhula) 사에서 최초로 생산되었다. 1937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출품되었다.

사보이 꽃병은 1936년에 카르훌라(Karhula) 사에서 최초로 생산되었다. 1937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출품되었다.

또 이 때부터 알토는 핀라드 갑부들로부터 수주를 받아서 개인 주택을 설계하는 일을 다수 맡았는데, 통나무, 유리, 금속, 콘크리트 기둥, 잔디 지붕 등 다양한 근대적 소재로 결합시킨 알토 특유의 건축 미학을 한껏 발휘했다. 이어 1939년 핀란드를 대표해 뉴욕 모마서 열린 뉴욕 세계 국제 박람회에 참가한 알토는 핀란드의 숲에서 영감받은 핀란드관 건물 디자인을 소개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로부터 ‘천재적’이라는 격찬까지 받았다.

스웨덴과 독일에 두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20세기 디자인 전문화랑 잭슨스(Jacksons)는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핀란드의 전설적인 모더니즘 건축가 겸 디자이너 알바 알토의 가구, 조명, 유리 디자인 용품을 선별하여 전시한다. Photographic images courtesy: Jacksons, Berlin.

※ 맨 위 이미지 설명: 비이푸리 시립도서관 설계 당시 디자인한 등받이 없는 의자와 트롤리 테이블. Photo courtesy: Jacksons Design, Stockholm-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