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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술 전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

EXHIBITION REVIEW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체칠리아 갈레라니 초상 (흰 담비를 안은 여인)> 1489-90년경 © Princess Czartoryski Foundation. The National Museum, Cracow.

Leonardo da Vinci: Painter at the Court of Milan 지난 11월초부터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London)에서는 화재의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회가 막을 올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밀라노 궁정화가> 회화전이다. 저명한 국제 일간지와 미술전문지 기자들은 세기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가장 종합적이고 우수한 다 빈치 전시회라며 흥분했다.

이를 보려고 전세계서 모여든 관람객들은 싸늘한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매표소에서 입장을 기다리며 장사진을 이루었다. 전시회 시작 수일 전부터 예약입장권이 매진되는 폭발적인 호응을 틈타 원가 16파운드 하는 입장권을 대량 수매해 4백 파운드에 되파는 약싹빠른 암표상들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시대를 앞선 발명가, 과학자, 탁월한 제도공, 그리고 최근 동성애 예술가로, 또는 댄 브라운의 상상추리소설 속 앤티크라이스트 음모자로 다양하게 조명되어 온 다 빈치가 이번 런던 전시회에서는 궁중화가로 재평가받는다.

피렌체의 은행업 가문이던 메디치 가족은 밀라노, 베네치아, 제노아 등 경쟁 국가도시 군주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물을 보내곤 했다한다. 로렌초 메디치는 강력한 경쟁군주던 밀라노의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자에게 이른바 “살아있는 외교선물”로  다 빈치를 보냈다. 이렇게해서 다 빈치는 1480년부터 1890년대까지 18년 동안 스포르자 가문의 궁중 화가 겸 아트데렉터가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안정된 봉급생활을 할 수 있던 덕택에 창의력과 예술적 야심을 맘껏 꽃필 수 있던 행운의 시간이기도 했다.

La Belle Ferroniere, about 1490

<한 여인의 초상, 일명 라 벨르 페로니에르(La Belle Ferronnière)> 1493–4년경, 호두나무판 위에 유채, 63 x 45 cm © Musée du Louvre, Paris, Département des Peintures (778) © RMN / Franck Raux.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는 <모나리자>(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와 <최후의 만찬>(현재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소재)을 포함해 지금까지 진품으로 전해오는 다 빈치의 그림은 모두 20점이다. 이번 런던 전시는 여간해서 다 빈치 작품을 안내주기로 악명높은 미술관들과 개인 컬렉터들로부터 대여해 온 과거 대중에게 공개된 적없는 고귀한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인 세기의 전시라할 만하다.

초상화의 역사를 통틀어 다 빈치가 이룩한 혁신이라면 단연 모델을 비스듬히 앉혀 그린 ‘시점의 전환’ 이다. 중세시대와 초기 르네상스 때까지만 해도 초상화란 모델 옆모습을 그린 것을 뜻했다.

예컨대 <흰 담비를 안은 여인>은 루도비코가 가장 아꼈다던 애첩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끊임없이 정치음모로 골몰하던 루도비코 공작을 섬겼던 체칠리아는 궁정생활의 음모와 권태 사이서 살아남기 위해 겉으로는 의연한척 했지만 어쩔수 없는 16살 난 앳띤 소녀였음을 화가의 눈과 손을 통해 정교하게 포작됐다.

<라 벨르 페로니에르>로 불리는 여인 초상화는 루도비코의 아내 베아트리체 데스테 여공작이라는 설과 여러 첩들중 한 여인이 아니었을까라는 설 사이 공방으로 학계와 미술시장에서 끊임없이 화재를 몰고 다니는 그림이다.

해부학적으로 정확치밀한 손재주를 넘어서 인간의 심리상태와 영혼까지 꿰뚫어볼 줄 알았던 화가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당시 이탈리아 여군주와 귀족여성들이 다 빈치로부터 초상화를 그려갖기를 애원했다하니, 현대로 치자면 유명인사들이 워홀이나 루시안 프로이트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주문하거나 유명 사진가 애니 라이보비츠나 마리오 테스티노로부터 사진을 찍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이번 전시에서 놓치지 말고 눈여겨볼 화재의 그림은 또 있다. 잊혀져 있다가 올해 갑자기 한 개인소장자를 통해 재발굴돼 진품으로 감정받은 <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다. 이 그림은 기독교 종말론을 암시하는 듯한데, 다 빈치의 말년작들에서 종종 눈에 띄는 특유의 오싹한 신비가 감도는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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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토르 문디> 1499년경. Private Collection. © 2011 Salvator Mundi, LLC. Photo: Tim Nighswander/Imaging4Art.

‘세상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카메라 촛점이 흐려진듯 희뿌옇게 처리해 교묘한 신비감을 고조시켰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마틴 켐프에 따르면 축복을 내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든 수정구슬 사이에 오가는 빛처리는 현대과학적으로 봐도 적확하게 그려졌다고 하는데, 아마도 다 빈치의 아텔리에 조수 겸 제자이던 살라이(Salai)나 프란체스코 멜치(Francesco Melzi) 공작을 모델로 삼았지 않았을까로 추측되고 있다.

오늘날 미술관은 종교를 상실한 세속화된 현대인의 성전이라고 한다. 올 겨울 다 빈치 전시의 열기는 연말을 보내고 새해가 되도록 식을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관객들은 미술관 측이 임시로 발행한 추가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매일 아침 미술관 개장하기 3시간 전부터 줄서 기다려 시간대별로 관람하고 있다.

과거 소수의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이나 곁에 간직하며 감상할 수 있었던 볼 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들은 미술 성전으로 옮겨져 이제 전세계의 대중 관객들 앞에서 그 신비와 거룩한 예술성을 한껏 뽐내고 있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시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2012년 2월5일까지 계속된다.

* 이 글은 본래 『크로노스 코리아(Chronos Korea)』 지 2012년 1/2월호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