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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디자인 어제와 오늘

전통과 실험주의 사이에서

ITALIAN DESIGN BETWEEN TRADITION AND EXPERIMENTALISM

“이탈리아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법학(legge)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architettura)이지요.”  1999년, 현재 뉴욕 근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에 재직중인 이탈리아 출신의 파올라 안토넬리 디자인 담당 큐레이터는 이탈리아의 디자인에 대한 한 강연을 이 농담으로 시작했다.

프랑스 시장을 겨냥한 베스파 스쿠터 SB 98 모델 광고 포스터. 1960년대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베스파 스쿠터는 라이프스타일 선언용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얘기는 과거 유럽에서 로마 제국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를 주도하며 찬란한 문화를 구축한 이탈리아가 오늘날까지도 ’법’으로 대변되는 고대 로마의 탁월했던 행정력과 ‘건축’으로 대변되는 미(la bellezza)를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인간의 기본 요건으로 여기는 나라임을 뜻한다.

질서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전통(traditione)이 무색하지 않게 오늘날까지도 자동차, 패션, 건축, 실내장식 등 디자인에 관한 한 거의 전영역에서 탁월한 감각과 세계를 주도하는 혁신적인 스타일링을 자랑하는 최고 디자인 강국으로서의 이탈리아의 위상은 변함이 없다.  ‘아름다운 인생(la bella vita)’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이탈리아인들에게 미(美)의 추구는 곧 인생 최대의 미덕(美德)이자 선(善)인데 그 같은 전통의 뿌리는 유구한 역사 속에 기초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배워 온 이상주의(理想主義) 철학을 실용주의적으로 응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었다. 시대와 지방마다 차이는 있지만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들은 대체로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의 그리스식 건축 평면도에 기초하여 돔, 아치, 기둥과 교각, 원형 천정 등으로 구성된 기하학적이고 조화로운 공간을 지녔던 것이 공통적이다. 고대 로마 시대의 폼페이 화산 유적지에는 찬란한 프레스코 벽화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서 당대 귀족들의 생활상과 미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고대 로마인들이 남긴 인류 역사 상의 가장 눈에 띄는 공로는 공공 건축 및 토목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 기원전 7세기 전부터 대 하수도 시설을 건설하여 오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고 도시 대중의 위생보건을 전격적으로 개선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시 미관에도 획기적인 진보를 이룩했다. 지금도 고대 로마 제국 유적지 포룸과 도시 곳곳에서는 현대식 상수로 원리의 기초가 되어 준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라는 고대 로마식 하수도 시설과 배수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정신적 이상(理想)의 부흥’을 꾀했던 르네상스 시대에 오자 건축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유행했던 명료성, 좌우대칭, 수학적 비례, 기하학적 균등성의 원칙에 입각해 설계되었다. 저마다의 탁월한 미적 취향을 과시하기 위해서 르네상스 귀족들은 당대에 이름 높던 건축가, 화가, 조각가를 고용하여 집안을 장식하길 좋아했다.

특히, 은행업과 무역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교황령의 로마나 밀라노 공국 등과 나란히 권력을 견주었던 피렌체의 메디치 가(家)는 거장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와 브라만테를 비롯해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같은 화가 및 조각가들의 재능과 손을 거쳐 아름다운 피렌체 시를 탄생시켰다.

이후 17세기에 이르자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은 한결 무르익어서 한결 극적이고 과장된 움찔거리는 듯한 역동성으로 가득한 바로크 양식으로 발전하여 기독교 교권과 절대주의 왕권이 정치적 위력을 과시하는 시각적 수단으로써 범 유럽 예술 양식이 되어 전파되었다.

미래주의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의 노바 치타 또는 신도시 설계 스케치. 『미래주의 건축 선언』(1914년) 중에서.

기계 미학에서 찾은 이탈리아 모더니즘 19-20세기 전환기가 되자  알프스 이북 유럽권에서는 근대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그에 걸맞는 신사고와 이상주의에 기초한 모더니즘 건축 및 디자인 운동이 가뭄에 불붙듯 번지기 시작했다.

파리의 아르 누보(art nouveau), 빈과 독일의 유겐스틸(Jugendstil), 네덜란드의 데 스틸(De Stijl), 스페인의 모데르니스타(Modernista), 스코틀랜드 글라스코의 찰스 레니 매킨토시 학파가 모더니즘을 고하고 있었다.

이 즈음, 이탈리아에서는 아르 누보의 곡선미와 식물 모티프와 유사한 스틸레 리버티(Stile Liberty) 양식과 스틸레 플로레알레(Stile Floreale) 양식이 한껏 꽃망울을 터뜨리며 구시대적 장식성과 역사적 유산을 벗어 던지고 유리, 금속, 콘크리트 같은 신소재를 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1909년 이탈리아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가 발표한 미래주의 선언과 함께 탄생한 이탈리아 미래주의 운동(futurismo)이 근대 시대의 기계미학에서 발견한 역동성, 스피드, 에너지, 추진력을 높이 찬양하며 당대의 지배적인 미학 운동으로서 이탈리아 근대기를 주름잡았다.

예컨대, 미국식 도시 계획법과 빈 출신의 건축가 오토 바그너의 건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미래주의 건축가 안토리오 산텔리아(Antonio Sant’Elia)는 ‘노바 치타(Nuova Città, ‘신도시’라는 뜻)라는 상상의 미래 도시 설계도를 1914년 밀라노 트리에날레(Triennale di Milano)에 선보여서 프리츠 랑(Fritz Lang)의 걸작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1926년 작)의 영상 미학에 영감을 주며 미래 테크놀러지 시대를 건축 디자인으로 점쳐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이른바 근대적 개념의 산업 디자인은 유럽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맞기 직전인 1930년대에 와서야 본격화되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하 양차 대전 사이 기간 동안의 이탈리아는 나치주의 정권 하의 독일에서 벌어지던 독일 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 같은 국가주도적 디자인 진흥 기관을 본 따서 디자인을 민족주의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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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닌파리나 사가 1946년에 선보인 치지탈리아(Cisitalia) 202 GT 모델. 피닌파리나는 산업디자인의 조형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대표적 업체로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이탈리아의 전후 경제 재건에서 주력했던 자동차 생산업에 크게 기여했다. Photo: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그 결과, 1930년도에 몬짜 비엔날레(Biennale di Monza)와 그로부터 3년 후인 1933년에 열린 밀라노 트리엔날레(Triennale di Milano)는 이탈리아의 산업 디자인이 이후 지향하게 될 전형을 구축하다시피 했다고 할 정도로 이탈리아 디자인 도약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된다.

때는 비로소 브레다(Breda) 사가 국립 철도용 ETR 200 모델 전기 기차와 세계 최초로 헬리콥터가 생산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피아트(FIAT) 자동차 사가 같은 대중적인 대량소비를 겨냥해 대중용 토폴리노(Topolino) 승용차를 생산하는 등 대량 생산된 제품들이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시장을 강타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디자인을 통한 산업 재건과 경제 기적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을 패배로 종결한 이탈리아의 전후 경제는 제2차 대전이 시작되던 해인 1938년 경제 규모의 25%도 못미칠 정도로 폐허화되었지만 전후 경제 회복 또한 놀라운 속도로 재개되었다.

특히 이탈리에서는 경제 활성 전략을 도입해 산업화된 대량 생산 체제를 급속하게 늘렸고, 동시에 국민들은 대대적인 포스터 광고를 통해서 돈만 있으면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갖가지 산업 디자인 제품들에 쉽게 친숙해 지기 시작했다. 전후 대량 생산 대량 소비주의 경제의 출발이었다.

죠 폰티(Gio Ponti)가 디자인한 파보니 카페용 커피 제조기(La Pavoni Coffee Machine) 밀라노, 1948년 생산.

특히 1940년대말에 등장하여 대중의 발이 되어 준 피아죠(Piaggio) 사의 베스파(Vespa) 모터 스쿠터와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큰 성공을 거둔 람브레타(Lambretta) 스쿠터, 그리고 이어 1950년대에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피아트 자동차의 노바 500 모델, 피닌파리나(Pinifarina) 자동차, 사무용품 생산업체 올리베티(Olivetti) 사의 타자기는 전후 이탈리아 경제 재건과 활성화에 산업 디자인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는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자 산업디자인의 아이콘들이다.

1950년대에 들자 이탈리아의 디자이너들과 전통 장인들은 산업에 봉사하는 디자인이라는 경제적인 이해를 넘어서 아름다운 형태와 기능성 간의 관계가 잘 조화된 디자인을 추구해야 하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이른바 “우수한 디자인(good design)” 진흥운동이 일기 시작했고, 자연히 디자인 비평과 출판물의 발간 사업도 활발해 졌다. 오늘날까지도 인테리어 디자인 언론에서 지명도를 누리고 있는 『도무스(Domus)』 지와 이후 1966년에 창간된 『오타고노(Ottagono)』 지는 오늘날 이탈리아 디자인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특유의 유기적이고 조각적인 조형 미학이 형성되기까지엔 전후 이탈리아 지성계와 디자인 언론계를 주도했던 좌성향 계열 지성인들의 감식안과 비평 또한 크게 기여했음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두 디자인 매체들이다.

1950년대가 끝날 무렵이 되자 디자인을 중대한 기업 가치로 삼은 디자인 생산업체들, 예컨대 아르테루체(Arteluce, 1939년 창립), 브리온 베가(Brion Vega, 1945년 창립), 테크노(Tecno, 1952년 창립), 가비나(Gavina, 1953년 창립) 그리고 자노타(Zanotta, 1954년 창립)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상층 고객들의 가정 인테리어를 장식해 주며 전후 이탈리아의 경제적 풍요와 과시성 소비 분위기를 선도했다.

1969년도에 사무용품 생산회사인 올리베티 사를 위해서 에토레 솟사스(Ettore Sottsass)가 디자인한 발렌타인(Valentine )타자기는 당시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디자인 아이콘이 되었다. © Olivetti.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고조된 1960년대에 이르자 이탈리아의 산업 디자인은 경제적 독점과 환경 오염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내부에서 점차 강력한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사회경제를 향한 비판세력과 미학적 추구세력 사이의 갈등은 급기야 이탈리아 경제가 어려움에 표류하며 1963년도 총선 결과 좌파 정치 세력과 공산주의 정당이 집권하면서 더 첨예해 졌다.

그같은 정치적 환경 변화는 디자인이 지닌 사회적이고 창조적인 잠재력에 비해서 자본주의적 지배 경제가 미치는 해악적 효과가 더 큼을 비판한 당시의 지성계 추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같은 비판은 이후 1966년 피렌체에서 결성된 급진적 건축 디자인 운동 그룹 수퍼스튜디오(SUPER STUDIO)나 아르키줌 아소치아티(Archizoom Associati, 안드레아 브란찌(Andrea Branzi)가 결성)로 이어져서 이후 1980년대에 다가올 이탈리아 아방가르드 디자인 운동에 이념적인 원천을 제공해 주었다.

알키미아에서 멤피스까지 – 1980년대 이탈리아 아방가르드 아트 디자인 실험소 1950-60년대 무렵, 이탈리아의 산업 디자인은 이탈리아적 선이라는 의미의 “리네아 이탈리아(linea italia)” 또는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의미의 “벨 디제뇨(bel disegno)”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이미 국제적인 명성과 독특한 위상을 단단히 구축했지만 일부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그 같은 꼬리표로 싸잡여 불리기를 강하게 저항했다.

알레싼드로 멘디니, Qui, Galleria Curti Milan, Italy, 2009 ⓒ Alessandro Mendini.

앞서 언급된 수퍼스튜디오와 아르키줌 아소치아티가 내 건 반 디자인(anti-design) 운동은 1977년 밀라노에서 알레산드로와 아드리아나 게리에로(Alessandro and Adriana Guerriero) 부부와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가 주축이 된 스튜디오 알키미아(Studio Alchimia, 1977년 결성-1992년 해체, 밀라노)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알키미아(Alchimia)란 잡금속붙이를 가치 높은 금으로 변화시키고자 시도하는 마술적인 연금술을 뜻한다. 알키미아 소속의 디자이너들은 당시 주류 사회 상류층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진부하고 평범한 디자인에 진보적인 컨셉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불어 넣어서 기존체제와 사고방식에 의문을 가하는 다분히 실험주의적인 디자인을 창조할 것을 사명감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지성주의 디자이너 멘디니는 키치(Kitsch)의 미학을 사용하여 모더니즘의 독단에 반기를 들고 과거풍 장식을 폭넓게 사용한 절충주의(ecleticism)와 양식적 무정부주의(stylistic anarchy)를 추구한 이른바 포트스모더니즘 디자인을 주도했다.

알키미아 그룹이 디자인을 기발한 착상과 역사와 철학적인 지식을 기초로 한 지성적 유희의 표현 수단이라고 여겼던 이유로 인해서 이 계열의 디자인 작품들은 사실상의 제품생산에 활용되기 보다는 컨셉 드로잉이나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독일 바우하우스 식의 기능주의에 대한 이론적 교조주의를 철저히 거부했던 때문에 실제로 알키미아 디자인은 사용자 편의(usability) 측면에서 응용이 난해하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알키미아 그룹의 두 대들보격 인물이던 멘디니와 에토레 솟사스(Ettore Sottsass) 사이에 의견의 차이와 갈등이 불거졌다. 결국 솟사스는 알키미아에서 탈퇴하여 자신이 주도가 된 멤피스(Memphis) 그룹을 1981년에 밀라노에서 결성했다.

디자인의 기능성과 유용성은 디자인 제품의 최우선적 존재적 이유가 아니라고 한 멤피스의 반모더니즘적 신조는 알키미아의 경우와 변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은 더 이상 기능수행을 위한 작동 기계가 아니며 익명의 대도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량생산과 소비용 일용품도 아닌 순수 조형 예술의 경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신조도 사실상 알키미아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나 다름없다.

솟사스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반기업적이고 반소비주의적 디자인 철학을 역설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솟사스 자신을 비롯한 멤피스 소속 디자이너들중 상당수는 결국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이나 디자인 제조 업체들과 협력함으로써 가족기업 단위의 디자이너-산업 연계 생산체제 위주의 이탈리아식 디자인 산업구조를 한층 강화시키는데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칼톤 캐비닛(에토레 솟사스, 1981년), IBM 컴퓨터 (리쳐드 새퍼(Richard Sapper) 디자인), 더블린 소파(마르코 자니니(Marco Zanini) 디자인, 1981년), 네퍼티티 세라믹 용기(마테오 툰(Matteo Thun), 1981년) 같은 제품들은 멤피스 그룹의 디자인 양식이 1980년대 전세계 디자인계를 주름잡은 이른바 “신 국제 디자인 양식(New International Design)”의 원형이 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알레씨 사의 트웨르지 라인 인테리어 제품 ⓒ Alessi.

이탈리아 디자인 오늘 그 후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1980년대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실험장이었던 이탈리아의 디자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글로벌리즘이라는 국제 경제 환경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이탈리아의 디자인 또한 국제화라는 경제적 문화적 대세와 따로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1970-80년대 이상주의에 불타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소리 높여 외쳤던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디자인 운동은 이제 당시에 발휘했던 강력한 효력을 잃었다. 구미권은 물론 일본이 국제 경제계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한때 무시당하던 지역 문화나 하위 문화와 이미지를 속속 주류 대중 문화로 적극 흡수하며 치열한 이윤추구 경쟁을 본격화한 1980년대 이후로 이탈리아는 20세기 이탈리아가 이룩해 온 산업 디자인계의 업적을 재차 활용하고 양식화하는 전략으로 경쟁에 맞서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알레시(Alessi)는 업계-디자이너 연계의 이탈리아식 디자인 제품 생산 방식과 대체로 낙관적인 시대적 분위기 다운 유머와 재치로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는 제품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이탈리아 디자인의 돌파구를 시도하기도 했다. 글로벌리즘으로 인한 국제 문화의 획일화와 정보화 위주의 신경제 체제 속에서 제품 생산이 핵심이 되는 산업 디자인이 설 자리가 나날이 좁아지는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지금도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 제도권과 신진 세력 사이의 대립 속에서 산업 디자인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 이 글은 본래 『공간사랑』 2006년 9월호 Design Nation 연재 컬럼에 실렸던 것임을 밝혀둡니다.

Top cover photo: Piaggio Ape Serviz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