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pril 2005

갑갑한 아텔리에서 탁트인 전원 공간으로

인상주의 회화의 잉태한 세기말 파리  – 귀족을 위한 미술에서 시민을 위한 미술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행하던 세기 전환기 유럽 – 여타 예술 분야와 더불어서 미술도 전에 없던 혁신적인 변화를 목도하기 시작했다. 귀족층들만을 미술품 관객 및 주고객으로 취급하던 왕립 주도의 파리 미술 아카데미 (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s, 1648년 창립)는 17세기 처음 창설한 이래 그 철저한 아카데미 교육과 미술가 선발 제도를 200년 동안 고수하며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의 미술을 주도·통제했다. 그러나 이 막강한 미술 기관의 제도적 고루성과 천편일률성은 일부 미술가들과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불거져 나온 불만과 반발을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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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야콥 쉰들러 『카이저뮐렌의 도나우 강변 증기기관선』 1871/72년 경 작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그같은 원성이 급기야는 파리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예술적 권위와 취향에 대항하는 사건으로 번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1863년의 낙선전 (Salon de refusés)이었던 것이다.

나폴레옹 3세와 신흥 중산층 시민 계층이 주도가 되어 새로운 시대의 미술을 외치고자 한 이 낙선전을 통해서 전시를 하게 된 화가들 중에는 폴 세잔느, 에두아르 마네, 카미유 피사로, 제임스 휘슬러 같이 오늘날 일반인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럽을 지배해 왔던 절대주의 귀족주의가 붕괴의 일로로 가속화해 가던 한편으로 새로운 정치 경제적 급부상 일로에 있던 부르조아 시민계층이 세를 더해 가고 있던 당시 19세기, 부르조아 대중은 이제 귀족주의적 취향에 봉사하던 고전주의 아카데미 미술 대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미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회  극소수 상류 엘리트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미술은 이제 남부럽지 않게 부를 축적하게 된 신흥 중산층 시민들도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기호 상품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상주의 미술의 대두는 유럽 근대 세기 전환기에 전개되었던 신흥 부르조아 계급의 출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 된다. 인상주의 개척자들의 뒤를 이어 등장한 후기 인상주의파 화가들, 특히 폴 세잔느,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등은 인상주의의 파격적인 이념과 양식적 특징을 이어받아 근대기 파리 미술계가 나아갈 향방을 제시하며20세기 근현대 주류 아방가르드 미술의 시발점을 제공해 주었다.

비엔나 인상주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도 프랑스 인상주의 회화 운동이 지녔던 의미있는 인상주의 회화 운동이 존재했는가? 미술에 대한 문외한들도 인상주의 회화의 발상지가 파리였음은 능히 짐작하시겠지만, 미술을 웬만큼 안다고 자부하는 애호가들과 전문가들에게 비엔나 인상주의 회화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시리라.

이같은 의문에 대한 분명한 응전으로써 ‚비엔나에도 인상주의 회화 운동이 있었다’라는 선언구를 내걸고 지난 3월16일부터 이곳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국립 벨베데레 갤러리 미술관에서는 『비엔나 인상주의풍 회화전 (Stimmungsimpressionismus)』 展이 전시에 한창이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180여점의 비엔나 인상주의 회화 작품들 가운데 대다수는 이곳 국립 벨베데레 갤러리를 포함한 오스트리아 내 미술관 여러곳과 개인 소장자들로부터 대여해 온 것들이며 그 외에도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립 박물관에서도 이번 전시를 위해서 작품들 일부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이 전시를 바라보는 언론, 미술 전문가들, 그리고 일반 관객들의 이해와 주장은 저마다 각양각색이겠지만, 대체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근대기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했던 인상주의풍의 회화 운동은 전원적 자연을 소재로 삼은 사실주의 경향의 회화 경향의 하나로서, 그리고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는 중산층 대중들의 취향과 잘 부합하여 집에 한번 쯤은 걸어 두고 싶은 낭만적이고 보기좋은 그림들을 만들었던 그림 양식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듯 하다.

Ribarz

루돌프 라바르츠 (Rudolf Ribarz), 『밭에 딩구는 호박 (Pumpkins On The Field)』목판에 유채, 44 x 54 cm ⓒ Wien Museum, Wien.

물론 앞에서 언급한 프랑스의 인상주의 운동과 오스트리아의 인상주의豊의 풍경화 그림 운동은 동일한 미술사적 의미로 설명될 수는 없다. 오스트리아에서 행해졌던 인상주의풍 회화 운동은 근원적인 동기 면에 있어서나 미술계에 미친 파급 효과 면에 있어서나 프랑스에서 처럼  폭발적이거나 혁명적인 성격을 띠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운동에 참여했던 화가들 대다수는 그림그리기를 생계를 위한 주업으로 삼았던 직업적인 화가들도 아니었다.

감성과 신비가 느껴지는 정취 담긴 풍경화
그러나 프랑스 인상주의가 발단했던 사회적 배경과 미의식(美意識) 면에 있어서 서로 공유하는 유사점도 없진 않다. 사회적인 배경 면에서 볼 때 당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절대주의 귀족체제에서 부르조아 체제로 이행하는 근대기를 겪고 있었으며, 따라서 때는 새로운 신흥 중산층 시민들은 카톨릭 교회와 귀족 정권을 미화하는 엘리트주의 경도의 고전파 미술을 거부하고 그대신 일상 생활과 연관지을 수 있는 보다 쉽고 이해하기 쉬운 미술을 요구하는 시대였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스트리아의 인상주의풍 화가들은 풍경화로부터 예술적 ·미적 정당성을 찾는데 주력했다. 때는 1870-1900년대 즈음, 프랑스 퐁텐블로 (Fontainebleau)에서 전개되었던 바르비종 화파 (Barbizon School, ‚외광파(外光派)’로도 알려져 있는 이 화파에는 쟝-쟈크 루소, 프랑소와 밀레 등이 포함)의 영향을 받고, 오스트리아의 인상주의파 화가들은 이젤과 휴대에 편할 만한 크기의 캔버스와 그림 재료들을 들고 야외로 나가서 천연 태양광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나우강(江)과 비엔나 숲 (Wienerwald)을 끼고 발달해 있는 도시에 살던 비엔나인들은 스스로를 둘도 없이 자연과 친숙한 자연애호가들임을 자부해 왔던 터인데에다가 보기만 해도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터주는 풍경화 그림에 아무런 거부감없이 금방 친숙해 질 수 있었던 듯 하다.

바르비종 화파와 인상주의파 화가들이 일광에 반사된 자연과 일상 풍경을 보고 받은 일시적으로 받은 인상 (Impression)을 객관적인 눈으로 즉각 화폭에 옮기는 일에 주력했다고 한다면, 오스트리아의 인상주의풍 화가들은 자칫 다분해 질 수 있는 단조로운 자연 풍경과 날씨 묘사를 하는 것을 넘어서서 화가 개인의 감성(emotion)을 담아 내는 이른바 ‚정취 담긴 풍경화 (atmospheric landscape)’를 창조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전통적인 회화 관습에 따르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사소하고 미미한 소재를 크게 클로즈업해 묘사하는 방식이 일부 화가들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탐구되기도 해서 그들이 즐겨 묘사했던 정원이나 밭 위에 널려있는 채소나 꽃, 그리고 풍경화 속에 곁들여진 묘한 자태의 미소년과 미소녀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신비감까지 더해 주었다.

이같은 비엔나 인상주의풍 풍경화파를 주도했던 화가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 화파에 참여했던 화가들로는 대체로 전통적인 아카데미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른바 비직업적 혹은 아마츄어 화가들과 여성들이 차지했던 것이 특징적이다. 일명 ‚쉰들러 서클 (Schindler Kreis)’의 주도적 인물이었던 에밀 야콥 쉰들러 (Emil Jacon Schindler)는 근대 비엔나 인상주의풍의 대부격 인물이자 여러 다른 후배 화가들의 표본이자 스승뻘 인물이었다.

에밀 야콥 쉰들러는 사실 근대 음악의 선구적인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와 결혼했으며 바우하우스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 (Oskar Kokoschka) 등과 염문을 뿌려서 부르조아 사교계에서 널리 알려졌던 여성 알마-말러 베르펠 (Alma-Mahler Werfel)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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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에 에그너 『덩굴 시렁』 1919년 작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그의 미술 일기에서도 적고 있는 것처럼 그가 추구했던 풍경화는 ‚자연의 헌신적인 입맞춤’을 감성과 시적(詩的) 정서를 한껏 담아서 표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쉰들러가 특히 그의 풍경화 소재로 삼았던 대상들로는 그의 작품 『카이저뮐렌의 도나우 강변 증기기관선』(1871/72년 경 작), 『하킹의 봄』(1883년 작)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도나우 강변의 숲과 수경(水景), 비엔나 도심 북부에 펼쳐져 있는 비엔나 숲, 그리고 각종 박람 전시와 놀이 공원이 있는 프라터 거리 (Prater) 풍경들이었다.

눈으로 보고 눈으로 느낀 자연을 감성을 담아 가미해 그려내는 것을 사명감으로 삼았던 쉰들러의 ‚인상주의풍 사실주의 회화’ 또는 ‚시적 사실주의 회화’들은 보는이에 따라서는 감정에 북바쳐 표출된 측은한 감상주의 (sentimentalism)라고 볼 수도 있겠고 또 한편으로는 시적 감수성과 자연을 향한 친밀감이 고조된 사실주의로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프랑스 인상주의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색채 감각이나 치밀한 구도력은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생전 쉰들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열렬한 슈베르트 팬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화가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감흥을 최다한 느껴보기 위해서 슈베르트의 가곡 한 편을 틀어 놓고 쉰들러의 그림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쉰들러 서클과 여성 후학들
에밀 쉰들러는 동시대 젊은 화가들을 추종자로 끌어 모으는데 적잖이 성공했다. 오스트리아의 세기 전환기 화가 카를 몰 (Carl Moll)은 갓 애송이 화가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 쉰들러의 영향을 받고 아텔리에에서 박차고 나와 도심 슈타트파크 (Stadtpark)  시립공원이나 비엔나 시립 중앙 묘지 (Zentralfriedhof)에 이젤과 캔버스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렸다.  쉰들러와 한때 한 아텔리에를 나눠쓰던 동료 화가 아우구스트 셰퍼 (August Schäffer)는 „하나님 자유로운 자연에서 작업하는 것이 내 천명“이라고 외쳤던 자연 애호가였다.

한편 쉰들러 서클의 동인으로 가입해 풍경화를 그리던 젊은 화가들중에서 오이겐 예틀 (Eugen Jettel) 『무성하게 자라는 양파밭』 (1897년 작), 루돌프 리바르츠 (Rudolf Ribarz , 야채가 있는 풍경화가 특징), 로베르트 루스 (Robert Russ) 등은 쉰들러 서클에서 중도탈퇴하고 그 대신 정식 미술 학교에서 수학하는 길을 택했다. 유명한 스승의 지도나 개인 교습을 통해서 그림을 배우던 도제식 교육 방식이 점차 미술 학교 혹은 미술 대학과 같은 근대적인 교육 제도에 의해 대체되는 교육 체제의 변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같은 변혁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에게 전통적인 미술 아카데미나 미술 학교에 입학하여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는 여간해서 주어지지 않았다. 때는 여성의 몸으로 그림을 그려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던 시대였으며 당시 19세기 비엔나의 미술 아카데미는 철저한 가부장적 체제를 고수하고 있었다.

에밀 쉰들러의 날개 밑에서 인상주의풍  풍경화를 추구했던 젊은 여성 화가들이 여럿 활동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특히 티나 블라우 (Tina Blau)와 올가 비싱어-플로리안 (Olga Wisinger-Florian) 두 여성 화가는 오스트리아 미술사에서 저마다 독특한 풍경화 소재를 추구한 화가로서 만이 아니라 근대 여명기 유럽에서 개화된 신여성상을 일찌기 시사한 초기 여성해방주의자로 비춰지기도 한다.

특히 티나 블라우는 쉰들러 서클의 주도자이자 스승이었던 에밀 쉰들러의 애인이었으며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의 작품 『프라터의 봄』(1882년 작)이나 『암스텔담 수로』(1875/76년 작)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승이 주로 다뤘던 숲 경치나 도나우강 수경을 역시 즐겨 그렸다. 티나 블라우가 그녀 내면에 깊이 간직하고 있던 여성해방주의적 신념은 사실 그녀의 그림을 통해서는 엿보기가 힘들다. 다만 연출된 블라우의 기록 사진을 통해서 그녀가 그림그리기 활동을 일종의 여성성(女性性) 혹은 모성(母性)과 연결시키는 제스쳐를 보였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림그리기에 필요한 이젤, 캔버스, 재료를 유모차에 싣고 프라터 공원으로 그림을 그리러 가는 블라우의 모습을 담은 연출 사진을 통해서‚ 여성적 상징물로서의 유모차’ – 유모차는 여성의 잉태와 종족 번식이라는 상징성을 내포 –를 이 화가의 창조적 도구가 담아 나르는 ‚창조의 자궁’이라는 메시지를 소리높여 외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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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비싱어-플로리안 『만발한 양귀비 꽃』 1895/1900년 작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올가 비싱어-플로리안은 본래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가 30대 중반부터  미술 사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정물화와 풍경화의 매력에 빠져 화가로 전향한 여성 화가. 음악 수련에서 받은 규율적 태도 때문인지 „미술에서 일정한 경지에 이르는 첩경은 근면이다. 근면이 없는 재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는 원리원칙을 모토로 삼고 그림그리기에 임했던 비싱어-플로리안은 자연의 미미하고 사소한 대상들을 눈여겨 보면서 화폭으로 옮겼다.

오스트리아의 미술평론가 클라우디아 아이그너가 ‚야채 심리학자’, ‚야채 관음주의자’ ‚사이코 식물학자’라는 가시달린 우스개 별명으로도 평가되고 있는 비싱어-플로리안이 집요하게 천착했던 대상들은 가을철 수확을 앞두고 있는 호박, 양배추, 홍당무 비트 같은 채소류, 봄여름철 만발한 꽃밭과 정원 풍경, 낙엽지는 가을 풍경들이 주를 이룬다. 『만발한 양귀비 꽃』(1895/1900년 작), 『멘토네의 덩굴 시렁』(1900년 경 작), 『수국꽃이 있는 정원 길』(1895년 작) 등은 그같은 예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인상주의파 풍경화파 속의 여성 화가들 중에 가장 나이어린 화가 지망생 마리에 에그너 (Marie Egner)는 결혼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직업적인 화가의 길을 선택한 경우인데 그녀의 작품은 대체로 스승 쉰들러의 회화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광을 찾아 풍경화를 그렸던 마리에 에그너의 시력은 그녀가 세상을 뜨던 1940년 거의 실명 상태였다. 로베르트 루스는 약시 때문에 대수술을 받았고 야채 풍경화의 달인 올가 비징어-플로리안의 말년기 시력은 실명 상태에 가까웠다. 에밀 쉰들러도 심한 눈염증이 화근이 되어 사망했다고 한다. 이젤과 붓물감을 들고 아텔리에를 벗어나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 비엔나 풍경을 인상주의풍으로 그려냈던 이 화가들에게 천연 태양광은 절대 필요 조건이었음이 분명하다. 헌데 그 천연 태양광으로 인해 화가들은  시력을 상실해야 하는 엄청난 댓가를 치뤄야 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태양빛 가득할 비엔나의 올 봄과 여름, 미술 관객들은 그들의 눈을 통해 그려진 인상주의풍 풍경화를 맘놓고 감상할 수 있다. 이 전시는 7월 4일까지 계속된다.

근대 오스트리아 인상주의 회화전 | 전시 제목 : 비엔나 근대 인상주의풍 회화 (Stimmungsimpressionismus) | 전시 장소 :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벨베데레 미술관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Oberes Belvedere)  전시 기간 : 2004년 3월17일-7월4일까지

* 이 글은 본래 『오뜨』 2004년 5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핀란드 헬싱키 키아즈마 현대미술관

Kiasma Museum of Contemporary Art Helsinki

kiasma09_small1-300x223핀란드는 최근 들어 미술 문화 방면에서 핀란드 특유의 개방적 사고방식과 서늘한 미적 기질을 한껏 발휘해 핀란드 현대 미술을 국제 미술 지도상에 우뚝 세워놓고 있다. 가장 핀란드적인 현대 미술을 발굴하는 발전소는 바로 헬싱키 키아즈마 국립 현대미술관.

핀란드를 어떤 모습으로 떠올리는가? 올 초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비교 시험인 PISA 평가제에서 우리나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교육의 나라, 노키아 휴대폰으로 전세계 무선통신 산업을 장악하며 지난 10여 년 동안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부유한 나라, 야생 순록들이 누비는 광활하고 축축한 라플란드 토지와 여름 내내 계속되는 백야 현상이 인상적인 천연 자연의 나라, 루터란교적 노동 윤리와 높은 세율에 기초한 근검 윤리와 평등, 사회복지의 나라,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 가운데 최우선 순위로 꼽히기도 한 살기 좋은 나라 핀란드. 핀란드는 최근 들어 미술 문화 방면에서도 핀란드 특유의 개방적 사고방식과 서늘한 미적 기질을 한껏 발휘해 자국의 현대 미술을 국제 미술 지도상에 자리매김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핀란드의 미술은 이웃인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와는 대조적으로 국제화 물결에 선뜻 합류하기보다는 핀란드적 특성(Finnishness)을 부각시키는 지역주의를 고집하기로 유명하다. 세계화와 글로벌리즘이라는 최근의 문화적 추세에 떠밀려 성급히 해외 작가들과 대형 전시를 국내로 가져와 소개하는 대다수 현대미술관 전시 추세와는 사뭇 대조되는 전시 기획 정책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미술관이냐는 정체성 질문에 주저 없이 ‘가장 핀란드적인 미술’을 전시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가장 최근 있었던 우리나라 부산 비엔날레,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호주 시드니 비엔날레 등 국제 현대 미술계에서 꼬리의 꼬리를 물고 전시 행진을 벌이고 있는 핀란드 미술계의 슈퍼스타 아이야 리이사 아틸라(Eija-Liisa Ahtila)를 비롯해, 사진작가 에스코 메니쾨 (Esko Mänikkõ), 화가 마리아나 우티넨 (Marianna Uutinen)은 키아즈마의 전시장을 거쳐간 후 국제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가장 핀란드적인 현대 미술인 중 대표적인 인물.

키아즈마 현대미술관 (Kiasma Museum of Contemporary Art)은 국가 주도적 문화 사업이 체계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는 핀란드가 1990년대 초 자국의 현대 시각 문화와 미술을 한걸음 더 발전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탄생시킨 국립 미술관이다.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이 탄생한 배경은 1990년대 불어닥친 전세계적인 미술관 건축 붐과 현대 미술의 대중화 물결이라는 국제적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 풍요와 다문화주의가 만연하던 1990년대에 현대 미술계와 미술관들은 전에 없이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미술인들이 혁신적인 주제, 매체, 표현 기법을 소개하며 시각 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키아즈마 현대미술관 역시 새로운 문화적 요구에 부응하고 현대 미술을 대중과 연결시키는 공공 제도체로서의 역할을 짊어진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과거 10여 년을 포함해 현재까지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 전개되고 있는 미술관 건축붐의 대체적인 추세가 그렇듯, 키아즈마 건축도 미술관 측의 남다른 철학과 미술품 전시와 관련된 공간 미학의 결정체임을 자부한다. 일군에서는 키아즈마 미술관 건축을 두고 20세기를 마무리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단순하고 간결한 미니멀리즘을 기초로 하되, 실내외 공간의 실질적인 활용과 기능을 극대화한 핀란드 전통의 기능주의 건축 디자인 미학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햇볕이 귀한 나라인 만큼 실내에 탁 트인 밝은 공간과 일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리 천장, 역시 유리가 풍부하게 사용된 벽도 인상적이다. 핀란드는 추운 나라라 실내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건축과 디자인이 발달했다고 했던가. 근대 핀란드의 대표적인 건축가 겸 디자이너 알바 아알토(Alva Aalto)가 보았어도 고개를 끄덕였을 이 미술관 건물은 이제 헬싱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두 선이 만나는 교차점을 의미한다는 ‘키아즈마 (Chiasma 또는 Kiasma)’란 단어는 미술관 건물이 지니고 있는 건축 구조상의 특징과 의미를 집약한 최적의 이름인 셈이다. 옛 유리 궁전 천장, 북쪽으로 난 나무 공원, 입구 쪽으로 연결된 핀란드 국회 건물 등 이웃하고 있는 기존 옛 건물과 설치물들을 미술관 건물과 조화롭게 결합한 고금 (古今)의 융합체라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세계적인 건축사무소와 핀란드 국내외 건축가 및 건축사무소 300여 곳이 참여한 공모전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된 뉴욕의 건축가 스티븐 홀 (Steven Holl)은 미술관이 헬싱키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이 나라의 주요 건물들과 유동선이 하나로 만나는 곳에 세워질 것을 표현하기 위해 키아즈마라는 설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지상층 (미술관 카페와 숍이 있는 층)으로 통하는 미술관 입구와 로비에 들어서면 모서리진 유리 천장이 시야에 들어오고, 유리 천장을 통해 들이치는 일광은 검은 로비 바닥과 대조를 이루며 2층 전시 공간으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2층에서 4층까지는 매년 미술관이 국고의 보조를 받아 구입하는 영구 소장품을 전시하는 RoomX실, 사진과 그래픽 분야의 현대 미술품 전시에 적합한 프린티 (Printti)실, 그리고 비디오 등 뉴미디어 미술을 주로 전시하는 메디아테크 (Mediatheque)가 상설 전시 중이며, 5층에는 주요 개인전이나 굵직한 기획전을 여는 StudioK실이 있어 최신 핀란드 미술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키아즈마가 핀란드 현대 미술의 총집산지로서 군림하게 되기까지 이 미술관의 선두지휘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마아레타 야우쿠리 (Maaretta Jaukkuri) 관장의 역할이 컸다. 노르웨이 트론트하임 미술 학교 교수직과 키아즈마 현대미술관 관장을 겸하면서 국제적 규모의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대표하는 큐레이터로서 해외 전시 기획에도 틈틈이 참여하고 있는 야우쿠리 관장. 가장 핀란드적인 현대 미술 작품과 미술인들을 발굴해 키아즈마 전시 경력을 그들이 세계적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해 핀란드 현대 미술을 홍보하는 데 적극적이다. 최근 핀란드 출신의 현대 미술인들이 이웃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와 발틱권 국가들에 비해 폭넓은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이유도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의 그 같은 전략이 적절히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 같은 기세를 몰아,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키아즈마는 관람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핀란드 현대 미술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과 인기 없는 작품들을 선정해 보여준 전시 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무엇보다 키아즈마가 자랑하는 강점은 최근 부각되는 정치 사회적 이슈를 현대 미술로 다루어 현대 시각 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지적인 화두로 연결할 줄 아는 학제적 (cross-disciplinary) 전시 기획력이다. 오는 4월 초부터 늦은 가을까지 진행될 『키아즈마 컬렉션 선정 정치적 현대 미술』 展은 벌써부터 현대 미술에 관심 있는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모으고 있다.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은 헬싱키 마너하이미나우키오 (Mannheimaukio) 거리에 자리해 있다.

* 이 글은 본래 『노블레스 (NOBLESS)』 2005년 4월호 122페이지에 실렸던 편집된 글에 대한 필자의 원문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