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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빌락 타이포그라피

PETER BILĂK INTERVIEW WITH MONTHLY DESIGN KOREA

디자이너 프로파일
신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겸 디자인 디자인 평론가, 저술인, 교육자, 잡지 편집인은 물론 디자인 전시회 기획자 등 로 활동하고 있는 피터 빌락. 이제 갓 서른살을 넘긴 그는 현재 네덜란드의 행정도시 헤이그에서 작년인 2001년 봄에 설립한 피터 빌락 그래픽 타입 웹 디자인 앤 비욘드 (Peter Bilǎk : graphic, type, web design & beyond)라는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웬만한 중견 디자이너에 못지 않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다. 작년 2001년 한국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타이포잔치“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에서도 출품한 경력이 있기도 하다.

빌락은 본래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계에 첫발을 딛은 후 줄곧 서구 유럽과 미국에서 국제적인 경험을 쌓아가면서 경력을 쌓은 케이스. 옛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인 그는 현재 슬로바키아에 위치해 있는 브라티즐라바 미술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타이포그라피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수학 도중 국제 교환학생 과정과 인턴 수련과정을 통해서 영국과 미국에서 디자인 환경을 익힌 후 파리에 있는 국립 타이포그라피 아틀리에 (ANCT, Atelier National de Création Typographique)에서 타이포그라피 및 타이포 디자인 공부를 마쳤다. 프랑스에 있는 한 유명 타이포그라피 디자인 회사에서 1년간 일을 한 후 연구장학금을 받고 네덜란드 마스트리히에 있는 얀 반 아이크 미술 아카데미 (Jan Van Eyck Akademie)로 건너가 비디오를 통한 타이포디자인의 가독성을 주제로 한 연구과정을 2년만에 마치고 이를 인연으로90년대 중반부터 네덜란드의 유서깊은 그래픽 디자인 대행 회사인 스튜디오 둠바 (현재 헤이그 소재)에서 5년여간 그래픽 관련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슬로바키아 출신인 젊은 그가 타이포그라피 및 그래픽과 웹 디자이너로서 디자인 수준이 높기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유로는 빌락이 타이포그라피와 그래픽 디자인 전통이 깊은 동유럽권 출신이라는 점이 적잖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처럼 그래픽 및 서체디자인 역사가 깊은 서구 유럽의 전통과 달리 특히 근대에 접어들어 동유럽권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심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능과 그래픽 디자인이 요하는 특유의 예술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복합적인 디자인을 창조해야 하는 숙제을 안고 있었고 바로 그같은 디자인 문화가 잠재적으로 빌락의 디자인에 영향을 끼쳐왔다고 말한다. 여기에 건축가와 디자이너란 전천후 만능인 (Jack-of all-trades)이며 따라서 고소득과 고급 지성인급 직업인으로서 대접받는 특수전문인이라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문화에서 비추어 볼 때 빌락은 이른바 그가 알고 있는 „디자이너의 정치적 사회적 역할“을 원리원칙대로 수행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빌락이 처음 그래픽 디자인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95년경 공모전을 통해 유레카라는 서체를 응모하여 수상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이미 90년대 초엽 그가 미국에서 디자인 수련과정을 하던 중 한창 미국을 주도로 유행하기 시작한 디지틀 서체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때가 바로 이 즈음이었다. 이리저리 날뛰듯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디지틀 서체가 지니는 특성에 매료되어 서체의 비가독성 (illegibility)에 대해 관심을 갖고 폰트숍 (FontShop)에 손수 제작한 서체를 판매하기도 했던 그 대표작들이다.

이후 파리 국립 타이포그라피 아틀리에에서 공부하던 중 그는 다시 서체의 가독성과 실용성에 다시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가독이 쉬우면서도 독자 마다의 개별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서체를 제작하자는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결과 탄생한 서체가 오늘날 동유럽 언어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유레카체(Eureka)인데, 이 서체는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를 비롯한 동구유럽 문자에 많은 각종 액센트 표기와 특유의 시각적 리듬 조화가 잘 이루어진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서체 디자인이 빌락의 핵심 디자인 창조활동인 만큼 그는 독자적으로 설립한 온라인 폰트샵 티포테크를 통해서 폰트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발표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90년대 중엽의 실험적 성격이 강한 홀리 카우체 (1995년)와 챔폴리언체 (1996년)과 대조적으로 가장 최근 페드라 상스 (2001년) 및 페드라 모노체 (2002년)는 디지틀 시대를 반영하듯 단순간결한 스타일과 컴퓨터 디스플레이 최적화를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디자인 비평과 저술활동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디자인 창조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2000년도 5월에 창간한 <닷-닷-닷(dot-dot-dot)> 디자인 전문지 편집 활동이다. 빌락 외에도 유르겐 알브레히트, 톰 운페르자그트, 스튜어트 베일리 등 총 4명이 모여 창간한 이 잡지는 현재 스튜어트 베일리와 빌락이 주요 책임 편집인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일년에 2번씩 간행되고 있다(http://www.dot-dot-dot.org)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이미지 위주의 포트폴리오식 편집 아니면 저널리즘 리포트식 편집이 주를 이루는 여타 기존의 대다수 디자인 잡지들에서 느꼈던 못마땅한 점들을 과감히 수정하고 현재 디자인 출판물들이 놓치고 있는 요소들을 추가하여 디자인 잡지들 간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간행물을 만들어 보자는게 <닷-닷-닷>의 창간 취지라고 그는 말한다. 일명 창조적인 비평 저널리즘을 추구한다고 하는 이 잡지는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한정된 주제 이외에도 그래픽 디자인과 관련된 각종 시각 문화 현상에까지도 관심을 두고 그에 적합한 기고를 편집에 추가한다.

다음은 피터 빌락과의 인터뷰 문답 내용:
디자인 : 당신은 디자인 창조 작업 외에도 디자인 전시 기획, 국제적인 디자인 전문지 비평 기고 활동, 강의, 직접 창간한 <닷-닷-닷>지 편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같은 비평 활동은 당신의 디자인 창조작업에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가?

빌락: 언급한 이상의 활동들은 모조리 동등한 중요성을 띠고 있으며 내 디자인 작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나에게 디자인 기고활동은 디자인 창조와 똑같이 중요하다. 일부 디자이너들은 자기네들이 ‚시각적으로 사고한다’며 글쓰기와 디자인하기를 분리하곤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란 사실상 작업에 투여하는 시간보다 자기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임을 염두해 본다면 디자인에 대해 사고할 줄 안다는 것은 큰 맥락에서 볼 때 여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디자인 평론가라고 자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은 순수히 디자이너라고 여기며, 글쓰기에 임할 땐 아주 아주 느린 속도로 곰곰히 신경을 써가며 글을 쓰지만 글을 씀으로 해서 비로소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오로지 타이포 디자인 혹은 강의만을 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여러가지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을 너무 즐겁게 하고 있으며 그런 창조외 활동들이 그 모든 활동들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디자인: 훌륭한 타이포그라피 디자이너는 동시에 훌륭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될 잠재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가?

빌락: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같은 예는 현실에서도 흔하다. 나는 훌륭한 타이포그라피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그래픽 디자이너이거나 그 역의 경우의 예가 없음을 언제나 이상하게 생각해 왔다. 그 두가지 재능은 두뇌의 서로 다른 부분과 연관되어 있는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뭏튼 그 둘은 미시적 대(對) 거시적 시각을 요하는 재능이며 어떤 이유에 있어서인지 몰라도 웬만해서는 동시에 겸비되지 않는다.

디자인: 슬로바키아 출신 디자이너로서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은?

빌락: 분명 단점이라면 우선 사회적 배경,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하고 법률적인 문제에 휘말리기 쉽다는 점 등이다. 타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여유있고 의미있는 인생을 누릴 수 있는 위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장점이라고 한다면 양쪽 문화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다는 점, 보다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지역적인 편견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일 게다.

디자인: 당신은 네덜란드 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도 교육을 받고 직업적인 경험을 쌓았는데 결국 네덜란드를 작업지로 선택한 이유는?

빌락: 사실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된 이유를 내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인생사가 그렇듯 여러차례의 우연에 결과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단지 네덜란드의 작업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꼭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디자인: 당신은 현 네덜란드의 시각문화와 비교할 때 자신의 디자인 혹은 디자인 양식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당신이 네덜란드에서 인정받는 타이포그라피 및 그래픽 디자이너로 자리잡게 된 것이 그 분야 전통이 깊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다고 보는가?

빌락: 잘 알려져 있는 바대로 네덜란드인들은 상당히 관용적이다. 나는 내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임이 내 직업생활에 그다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 배경을 저어버렸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단지 어떤 특정 배경 출신이라고 해서 더 우월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그다지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내 출신은 내 선택으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다만 내 능력 혹은 내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따라 인정받기 원한다. 하지만 물론 특정한 교육이라든가 성장시기 영향요소로 인해 유전받는 감성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체코 시문학과 네덜란드적 직접성에 두루 영향을 받았다고 여기며 이 두 작업환경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디자인: 작년 2001년 4월경 몸담고 있던 스투디오 둠바를 떠나 독립된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성과는?

빌락: 지금 생각해 보면, 스튜디오 둠바를 떠난 것은 참 잘 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열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고 싶었던 타이포 디자인과 강의에 더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좋한다. 나는 네덜란드 울타리를 벗어나 현재도 프랑스, 독일, 영국에 있는 친구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디자인: 시각을 돌려서, 당신의 활동상은 고국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그리고 네덜란드와 동구유럽의 디자인 교류는?

빌락: 지난주 나는 내가 그래픽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던 브라티즐라바 미술 디자인 학교에 초대되어 방문했다. 매우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나는 고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편이긴 하지만 공식적인 행사로 모교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방문 동안 내가 네덜란드에서 하고 있는 작업을 설명하는 기회를 가졌다. 고국을 떠나 있음으로 해서 나는 고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분명하게 살필 수 있게 되었고 이상하게도 그로 인해서 고국에 더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프라하와 브라티즐라바 두 곳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정보제공, 출판활동, 전시회 등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디자인: 클라이언트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빌락: 내가 하는 작업은 매우 독특한 한정된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자극하는 것 같다. 주로 그들은 친구들이나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작업하기도 쉽다. 나의 경우 내가 잘 개인적으로 알지못하는 클라이언트와 작업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상호신뢰와 존중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의 협력은 대부분 매우 보람있게 마무리되곤 한다.

디자인: 최근 당신의 관심을 차지하고 있는 최근 프로젝트나 개인적인 창조작업은 무엇인가?

빌락: 나는 요즘 타이포 디자인에 훨씬 시간을 많이 투여하고 있다. 오픈타입의 가능성에 매우 큰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새로운 서체개발에 계속 전력할 생각이다. <닷-닷-닷> 제5호가 지금 막 인쇄를 마치고 출간되었다. 이 잡지는 제 발이 달린듯 새 호가 출간될 때마다 자연스럽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공동편집자인 스튜어트 베일리와 나는 현대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책을 내년까지 출간(템즈앤허드슨 간)하기 위해 집필에 한창이다. 이 책은 내가 작년 브루노 비엔날레의 행사 일부로 기획했던 현대 네덜란드 디자인 전시를 한발짝 전개시킨 창조적 기록물이 될 것이다.

디자인: 당신의 최근 지적/창조적 관심사는?

빌락 :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책읽기를 아주 많이 하고 있다. 칼비노, 카프카, 고다르, 에코 등을 읽는다. 그리고 음악, 영화, 문학 할 것 없이 여러 다양한 분야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타이포 디자인의 역사적 측면을 이해하는 매우 도움이 된다. 타이포 디자인은 필히 역사적이고 축적적인 산물이므로.

디자인: 당신의 단장기 미래 계획은?

빌락: 책읽기에 시간을 더 만들었으면 좋겠다. 최근 급격히 내게 중요한 요소이므로.

인터뷰 진행/편집 박진아

*이 글은 본래 월간 『디자인』지 2002년 10월호에 실렸던 기사를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