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Culture & Travel

[디자인 정글] 21세기 스타트업 시대, 양지와 음지 미리 알고 뛰어들자.

Design Jungle Future of Design 5_startup

“하든가 하지 말아라. 해보는 것은 없다.” – 제다이 마스터 요다

당신은 컴퓨터를 다루어 오만가지 디자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빚어내는 21세기형 디자이너인가? 소프트웨어 아키텍트(architect)? 혹은 IT산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프론트엔드(front-end) 디자이너? 백엔드(back-end) 개발자(developer)? 아니면 요즘 각광 받는 인터넷 게임 디자이너? 어쩌면 당신은 지금과 미래 전 세계 업계가 목마르게 찾는 IT 탤런트(talent)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필자는 한국 IT 업계 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어서 알고 있을 만한 한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며 여러 차례 국내 IT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헌데 어쩐지 요즘 젊은이들은 10여 년 전과는 대조적으로 컴퓨터 학과로 대학 진학을 꺼리고 IT분야에서 일하기를 꺼려하는 추세라고 귀띔해 주었다. IT업계는 3D 직종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 [중략] 『디자인정글』 FOCUS, 2016년 1월 26일 자 Future of Design: 디자인 현재 창조적 미래 칼럼 제5탄 전제 기사 보기. Go to article in Design Jungle magazine

데이빗 보위 (1947년 1월 8일-2016년 1월 10일)

A Detail from a photo collage of manipulated film stills from 『The Man Who Fell to Earth』, about 1975–6. Design by David Bowie, film stills by David James. Courtesy of The David Bowie Archive, 2012 Film stills © STUDIOCANAL Films Ltd. Image © V&A Images

A Detail from a photo collage of manipulated film stills from 『The Man Who Fell to Earth』, about 1975–6. Design by David Bowie, film stills by David James. Courtesy of The David Bowie Archive, 2012 Film stills © STUDIOCANAL Films Ltd. Image © V&A Images

우리 시대 대중문화 속의 토털 아티스트 데이빗 보위와 창조경제. 『데이빗 보위는』 전시 작품 중.

David Bowie (January 8th, 1947-January 10th, 2016), one of the most influential total artists of our modern time. View images from the 『David Bowie Is』 exhibition at the Victoria & Albert Museum, London. The exhibition is currently travelling and on view in Groninger Museum, Groningen. See more images from the exhibition 『David Bowie Is』 exhibition.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을 위한 7가지 미덕

Caravaggio_Sette_opere_di_Misericordia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The Seven Works of Mercy, 1607, Oil on canvas, 390 cm × 260 cm (150 in × 100 in). Pio Monte della Misericordia, Naples

“내가 굶주렸을 때 당신은 내게 고기를 주었네. 내가 목이 말라할 때 당신은 마실 물을 주었네. 생면부지 이방인인 나를 당신은 받아주었네. 헐벗은 나에게 당신은 걸칠 옷을 주었네. 내가 아플때 당신은 나를 찾아와 주었고, 내가 감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 면회를 와주었네.”

카라바죠는 툭하면 말다툼과 칼싸움에 휘말려 살인까지 저지르는 격정적인 성미의 소유자였던 턱에 로마를 도망쳐 나폴리로 피신하는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살아 생전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았던 덕택에 그의 미술을 높이 아끼던 교황과 귀족들이 늘 그의 생존과 안전을 배후에서 수호해 주었다. 고달픈 망명생활을 하던 카라바죠에게 귀족 후원자들이 제공해 주었던 비호를 중세 성경의 6대 미덕에 한 가지 미덕을 더한 7가지 미덕(신약 마태 복음 25:36-7)으로 재구성해 그린 그림이 바로 『7대 주선(The Seven Works of Mercy)』이다. Continue reading

[디자인정글] 파리국제에어쇼를 통해 본 미래 항공업계

51ST INTERNATIONAL PARIS AIR SHOW 2015 featured in DESIGN JUNGLE June 30th,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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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두 차례 열리는 파리국제에어쇼(Paris International Air Show)의 제51회 행사가 6월 15일부터 21일까지 세계 항공계의 메카 르부르제(Le Bourget) 공항에서 열렸다. 일주일 동안 열린 이 세계 최대 항공박람회를 다녀간 항공업계 인사들과 일반방문객 수는 삼십오만 명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 항공우주 산업의 대중화 추세가 역력해 보였다. (2015-06-29) … [중략]. 2015년 6월29일 자 디자인 정글에서 전체 기사 내용 보기. Go to article in Design Jungle magazine paris air show 2015 jungle.

“그물 없이 물고기 낚기”

TO CATCH FISH WITHOUT A NET

디자인 베끼기는 수치- 베를린 표절 박물관 개관에 즈음하여

오랜 플랑드르 지방 속담에 “그물 없이 물고기 낚기”라는 표현이 있다. 누가 애써 한 일을 남이 득을 본다는 뜻이다. 직업적 어부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물고기 낚는 법과 수완이 있다. 아침 눈을 떠 하늘만 보고도 날씨를 예측할 줄 알고, 어느 시간에 배를 띄어 언제 육지로 돌아와야 할 줄도 알며, 물쌀과 바람으로 배를 어디로 몰지 물고기가 어디로 모일지도 알며, 언제 그물을 드리우고 언제 낚시줄을 드리워야 하는지도 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도 모를 뿐만 아니라 물고기 잡아본 적도 없는 이들이 어선을 몰고 부두에 나타나 ‘풍어’를 외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는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창조 분야와 학계에서 말하는 표절(Plagiarism)이란 다른 사람이 한 독창적인 결과물을 원창작자의 이름이나 출처를 밝히지 않은채 마치 자기한 한 작업인척 제시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창조적 결과물의 경우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작업해 만들어진 출판된 혹은 출판되지 않은 문헌, 해석문, 컴퓨터 소프트웨어, 디자인, 음악, 사운드, 이미지, 사진, 아이디어 또는 아이디어 프레임워크가 다 포함된다. 이 결과물은 종이인쇄된 형태일수도 있고 인터넷상 전자 미디어 형식일 수도 있다. [출처: 호주 멜버른 대학 학문 윤리강령]

필자가 잠시나마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일하던 중 „학생들이 프로젝트로 제출하는 디자인 작품들이 다른데서 훔쳐 온게 아닌가를 우선 확인한 다음 채점에 들어간다“고 한국의 디자인 학교에서 대학원 강의를 한 적이 있는 한 외국인 디자이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여 좋은 점수를 줬던 한 학생의 디자인 컨셉이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해외 디자이너의 작품을 배낀 것이었음을 한참 후 우연히 알게 된 경우도 있다“고 그 디자이너는 덧붙였다. 남의 작품이나 글을 배낀 숙제나 작품을 수업에 제출하는 것은 „표절“(plagiarism) 행위이고 이는 학사 제도상 심대한 처벌감이다. 그리고 디자인 표절은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디자인 업계에서도 혹대한 처벌 대상이다.

디자인은 예술적 독창력을 전제로 한 창조작업이다. 특히 서구문화에서 개인의 창의력, 유일무이의 독창성(uniqueness), 기발한 컨셉은 신성한 가치이다. 그래서 19-20세기 모더니즘부터 오늘날까지 서양 예술가들은 „남들이 아직 하지 않은 뭔가 새롭고 충격적인 것“을 실험하는 컨셉와 혁신적인 형식을 짜아내느라 고심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서구인들 사이에서는 독창성(originality)이 한없이 존경받는 숭고한 가치인 만큼, 모방과 베끼기는 온 인류의 조롱과 비난을 사도 모자른 죄악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은 시각 예술이고 그래서 수많은 디자이너들(특히 디자인 산업에 대한 냉소주의에 덜 노출된 젊은 디자이너 일수록)은 스스로를 창조 활동에 종사하는  예술가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디자인은 단순한 예술 활동 만일 수는 없다. 디자인이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생산한 후 시장에 내달 팔아 이윤을 남겨야 하는 비즈니스적 실리없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일테다. 19세기 산업혁명 이래 대량생산소비 체제가 경제 원리로 자리잡고 있는 오늘날까지, 디자인와 비즈니스는 특히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는 실과 바늘의 관계가 아니던가.

제품 디자인은 외형적 아름다움과 기능적 혁신성을 갖춘 아이디어 상품이어야 하며 그런 양질의 상품은 시장에서 정당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교환가치라는 개념이 널리 자리잡은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 표절 제품들이 끼치는 정신적 재정적 피해는 적지 않다고 부쎄 관장은 역설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다른 회사가 투자하고 개발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훔치고 배끼는 행위로 인해 피해 업체들이 당하는 경제적 손해는 년간 200-300억 유로,  실업자 수 20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 이해관계로 인해 최근 선진국들의 법조계는 디자인을 포함한 표절이나 해적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피터 브뢰겔 아버지 『네덜란드 속담 알레고리』1559년, Gemäldegalerie, Berlin.

오랜 네덜란드 속담에 “그물 없이 물고기 낚기”라는 표현이 있다. 누가 애써 한 일을 남이 득 본다는 뜻이다. 원제『부조리한 세상(The Folly of the World)』로 이름된 피터 브뢰겔 아버지의 유채 그림 『네덜란드 속담 알레고리』중에서. [세부] 1559년, Gemäldegalerie, Berlin.

지난 11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표절 박물관이란 뜻의 플라기아리우스 뮤지움(Museum Plagiarius)이라는 이색적인 박물관이 새로 개관했다. 이 박물관은 다른 디자인 제품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노골적으로 모방해 판매한 „표절 제품“을 전세계에서 모아 소장하고 전시하여 제품 모방 기업들을 규탄하고 법적인 처벌을 가해 업계에서 몰아내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특히 매 년 한차례씩 전세계 피해 제품 업체들과 기업들이 등록해 온 피해 사례들과 미술관측이 직접 발굴한 모방 사례들을 두루 모아 최악(?)의 표절 디자인 제품들을 선정하는  „수치상“ 공모전을 열어 업계와 대중들의 경각심을 높이는데 힘쓰고 있다. 총 400평방 미터 면적의 전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이 박물관에는 1977년부터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수집한 오리지널작과 표절작을 모아 나란히 전시하고 있으며, 학술 세미나 행사와 일반 대중들을 위한 워크숍 공간, 강의실, 그리고 학생, 전문가, 업체를 위한 도서자료실도 갖추고 있다.

리도 부쎄(Rido Busse) 관장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얻은 충격에서 표절 박물관 건립과 표절 „수치상“을 창안했다고 한다. 1977년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봄철 디자인 박람회에 참가했다가 그가 알고 있는 제품의 모양새를 그대로 배껴 생산한 저울을 버젓이 전시하고 있는 한 홍콩 업체를 발견했다.  그 Nr.8600 모델 저울은 부쎄 관장이 이미 1965년에 죈레 저울사라는 업체와의 계약으로 생산하여 개 당 26독일 마르크에 판매되었던 제품이었으나, 이 홍콩 업체는 디자인 개발비 한 푼 안들이고 값싼 소재로 대체해 모양만 따 만든 표절제 저울 6개를 24마르크라는 파격적인 판매가격으로 주문받고 있었다.

사정인즉 이렇다. 박람회 기간 중 죈레 저울의 전시 부스가 주문받기에 정신없는 사이 한 홍콩 업자가 저울을 훔쳐 돌아가 재빨리 이 저울의 표절품 10만점을 생산해 판매하고는 도산했다. 그리고 2개월 후 도산한 업체를 이어받은 또 다른 홍콩 무역업체는 다시 똑같은 표절 저울을 만들어 독일 시장에 팔고 있었다.

부쎄씨는 하이스너(Heissner)라는 정원 장식용 난장이 인형(Nr.917) 생산업체를 인수하게 되면서 이를 기념하여 난장이 모형의 트로피를 직접 만들어 „표절왕“에게 주는 수치의 심볼로 선사하기로 했다. 정원 장식용 난장이 인형은 온몸에 검정색 래커로 칠한 후 코만을 금칠(거짓말을 일삼던 피노키오에 대한 은유)을 입혀 트로피의 불명예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상의 첫 수치는 물론 표절 저울을 만들어 판 홍콩의 리 무역회사에게 돌아갔다. 이후 이 행사는 오늘날까지 권위있는 디자인 박람회가 열리는 하노버와 프랑크푸르트 암비엔테에서 계속되어  매년 독일 언론의 관심을 끌어오고 있으며 독일 디자인 협회(DDV, 1980년 창립)의 후원도 받고 있다.

그리고 올해 부쎄 관장의 표절 박물관 개관은 1977년부터 20여년 동안 디자인 표절에 홀홀히 대항한 일인(一人) 투쟁(베를린 시의 지원으로 혼자 활동했음)의 결과였다. 그 결과 1989-90년에는 제품 디자인 및 마케팅 해적행위에 대한 법적 제도적 대항활동도 시작해 현재도 운영되어 오고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홀로 고독하게 작업하는 독창적 개인으로서의 미술가 개념은  네덜란드의 바로크 화가 렘브렌트에 와서야 시작되었다고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평론집 『미술과 문화(Art and Culture)』(제1장 „아방가르드와 키치“ 참고)에서 언급했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서양에서는 동양의 미술 전통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모작을 하는 것으로써 정신적∙기술적 숙련을 쌓았고 기련적 숙련을 마스터한 후에 비로소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해 나가지 않았던가.

그러나 개인의 독창성이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20세기 근대 이후,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는 명성이고 곧 돈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대다수 국가에서는 외제품의 모양새를 따 만들어 박리다매하는 업체들 때문에 여전히 창조적인 디자이너와 아이디어가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박람회마다 유난히 아시아계 업체들의 제품들을 눈여겨 본다고 하는 부쎄 씨의 언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부쎄는 새 소재와 살짝 변형된 홍콩제 저울이 이전 보다 나은 제품이 되었는가에 대한 제품 품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새 홍콩 업체가 보다 싼 소재로 잘 작동하는 저울을 생산판매했다면 이는 ‘혁신’이지 단순한 ‘표절’은 아니다.]

피터 브뢰겔 아버지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원숭이 두 마리 (Two Monkeys)』 1562년, 목판에 유채.

피터 브뢰겔 아버지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사슬에 묶인 원숭이 두 마리 (Two Monkeys)』 1562년, 목판에 유채.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mäldegalerie, Berlin, Germany.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 그림 속에서 원숭이는 쉽게 유혹당하기 쉬운 세속적 욕심으로 옥죈 딱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으로 즐겨 그려진 교훈적 주제였다.

제품 표절 업체들 가운데 아시아 업체들(특히 홍콩과 중국)의 수가 유난히 압도적인 것은 제품 디자인의 독창성의 소유 개념 부재와 단기적 이윤 추구라는 근시안적 경제적 이해가 뒤섞여 나타난 것이 주요 원인인 듯하다. 그리고 구미 국가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자국의 혁신적 디자인 아이디어를 도둑질 당하지 않으려 더 눈을 크게 뜨고 관찰할 것이다. 베를린의 표절 박물관은 바로 그런 제도의 하나이며 수치심 자극을 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동서고금 문화전파의 역사를 보건대 남들의 피땀어린 창조물을 슬쩍 하는 비양심적인 사업가와 학자들은 대륙과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 일이다. 노력하지 않고 쉽게 남이 이룬 성과를 취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예나지금이 동이나 서나 할 것 없는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더구나 요즘 더없이 치열해진 아카데미아 환경 속에서 직위와 강의를 유지하는데 급급한 수많은 과학계, 인문학계, 예술계 구미권과 국내 학자들 할 것 없이 제자들이나 동료들이 피땀 기울여 이룩한 연구 결과를 슬쩍해 기관 후원금을 받아내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영감을 받고 더 아름답고 더 훌륭한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행위, 우리는 그것을 ‘창조’ 혹은 ‘창의력’ 그리고 비즈니스계에선 ‘혁신’이라 부른다.

허나 19세기 아일랜드 출신 문필가 조지 모어(George Moore)도 말했듯, “누군가로부터 그대로 훔쳐와 아무짝에 쓸데 없는 것으로 만들어 이득을 보는 것은 ‘표절’이다.” “그물 없이 물고기를 낚아 이득을 보는 어부”의 부조리한 세상을 꼬집었던 옛 플랑드르 속담처럼 ‘열심히 일한 그 누구로부터 그대로 훔쳐와 원천을 밝히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는 분명 도둑질이다.

* 이 글은 본래 2001년 11월 30일「디자인 정글」을 위해 기고했던 기사를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디아이와이 디자인 스위스 스타일

DIY DESIGN SWISS STYLE

짧게 줄여서 디아이와이(DIY)라는 단축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소비자가 직접 하기(Do-It-Yourself)” 운동은 이제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물리적 문화 속에 널리 일반화되었다. 구미권에서 불어닥친 이래 1990년대에 처음 한국에 소개된 바 있던 DIY 운동. 소비재 업계와 언론출판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인은 성미가 급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DIY 운동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소비자들은 많이 달라졌다. 획일적이고 남들 누구나 갖고 있는 물건이나 집안 세간을 사들여 놓고 살기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직접 스케치를 하여 목공소나 재료사에서 재료를 재단해 와 직접 두드리고 맞추고 나사를 조여가며 자기만의 독특한 인테리어 용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주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생산 혹은 제작(production)과 소비(consumption) 활동이 융화되는 디자인 분야의 새로운 현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넘어 보다 폭넓게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명 ‘프로슈머(prosumer)’ 문화로 불리는 이 새 트렌드는 디자인 제품의 생산 공정 과정과 대중 소비자들의 소비 활동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탈중심화하고 민주화하는 적잖이 혼란스럽고 파격적인 이른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랄 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스스로 디자인 오브제를 머리 속에서 창안해 스케치로 옮기고 실존하는 물리적 일상용품으로 현실화시키는 행위 그 자체로 점점 많은 취미 디자이너들은 공예의 미덕과 손을 움직여 창조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수작업의 감각적 즐거운을 재발견해 나가고 있다.

주류 디자인 시장과 대안 문화 사이의 디아이와이 디자인 – DIYD 디아이와이 스스로 뭔가를 직접 만드는 행위는 주류 시장이 독주하며 지배하는 이른바 주류 취향과 디자인적 표준이라는 도그마로부터 우리 소비자들을 해방시켜줄까? 최근 들어 전에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구, 의류, 악세서리 같은 디자인 용품과 소품들을 아무 생각없이 사쓰기 보다는 이런 디자인 제품들을 직접 만드는데 필요한 제작 매뉴얼이나 조립설명서 서적물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같은 추세를 반영한다.

반 보 레-멘첼(Van Bo Le-Mentzel), 『하르츠 개혁 법안 제5번 가구(Hartz IV Möbel)』 2010-2012 Photo: © Daniela Gellner

반 보 레-멘첼(Van Bo Le-Mentzel), 『하르츠 개혁 법안 제5번 가구(Hartz IV Möbel)』 2010-2012 Photo: © Daniela Gellner

사실 20세기 디자인의 역사를 되돌이켜 보건대, 유럽의 가장 원형적 고전 모더니즘 운동도 값비싸고 과시적인 역사주의풍 공예품으로 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대중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저렴한 가격과 실용적인 새 양식을 구축한다는 사명에서 출발했으며, 이어서 1960-1970년대 무비판적 소비주의 문화에 대항한 대안적 문화운동으로 시작된 DIY 운동은 스스로 짖고 만들기 전략으로 통해 소비주의 시장에 대항하는게 목표였다. 그리고 21세기 초 현재, 다시 한 번 DIY 운동은 디지틀 시대라는 새 배경 속에서 소비자들이 주류 소비재 시장과 대안 문화 향유라는 두 다른 축 사이에서 부활하고 있다.

“더 많이 누리고 덜 소유하라(Have more, own less)” 라는 모토를 달고 1973년과 1974년에 연거푸 출간된 제임스 헤네시(James Hennessey)와 빌토르 파파넥(Viktor Papanek) 공저 『유목적 가구(Nomadic Furniture)』와 『 유목적 가구 2(Nomadic Furniture 2)』는 외쳤다. 쓸모없는 싸구려 제품이나 용도를 상실한 무용지물이 우리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는 물질 과징 풍족의 시대, 요즘 불어닥치고 있는 DIYD 운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정말 필요한 사물은 무엇이고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된 천편일률적인 소비품 말고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상 디자인 용품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디자인 박물관에서는 바로 이 문제의식을 화두로 해 『두 잇 유어셀프 디자인(Do It Yourself Design)』 전을 3월20일부터 5월 31일까지 연다. Images courtesy: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40살 헬로 키티

HELLO KITTY! Still Cute at 40

귀여운 것에 살고 귀여운 것에 죽는 일본 대중문화 속 ‘가와이’ 열풍의 대명사 헬로 키티가 2014년 탄생한지 40주년을 맞았다. 흰색 털을 갖고 태어나 본명 키티 화이트로 고양이 인생을 시작한 헬로 키티는 지난 40년 산리오(Sanrio) 사에 소속되어 활발한 귀염둥이 활동을 해 오면서 2014년 말 현재 연간 7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전세계 캐릭터 업계의 초특급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Hello Kitty Vintage Phone, 1976 Photo Credit: Japanese American National Museum

Hello Kitty Vintage Phone, 1976 Photo Credit: Japanese American National Museum

헬로 키티의 가상 탄생설화에 따르면, 헬로 키티는 1974년 11월1일, 영국 런던 교외에서 키는 사과 다섯개를 나란히 올려놓은 높이, 체중은 사과 세 알 무게 정도를 갖고 세상에 태어난 일개 이름없는 흰색 새끼 암코양이. 헬로 키티는 아직 어린 새끼 고양이니 만큼 우유병과 금붕어 어항과 함께 앉아있는 포즈로 동전지갑 겉모델로서 처음 데뷔했다.

이 똘똘하고 참한 어린 고양이는 영어와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며 취미로 쿠키를 굽기 좋아하고 엄마 고양이가 만들어준 사과파이를 잘 먹는 어느모로 보나 귀엽고 탐낼 만한 새끼 고양이이자 전형적인 미래 현모양처가 될 성격을 타고 났다. 어린시절 동네 친구인 디어 다니엘은 아마도 훗날 키티 화이트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는 배우자 후보감 숫놈 새끼 고양이다.

Brandi Milne, Eat Cakes, You Kitty, 2014, Acrylic on Wood

Brandi Milne, Eat Cakes, You Kitty, 2014, Acrylic on Wood

인간은 생명이 있든 없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애착이 큰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을 삽입해 인간성을 부여하고 독특한 성격을 가진 존재로 상상하고 싶어하는 환타지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특히 인간은 인간이 아닌 애정과 애착의 대상을 ‘의인화 또는 인격화(anthropomorphism)’ 하여 허구적 상상 인물의 성격을 애틋하게 여기는 애완동물이나 장난감 속으로 투영시킨다. 전세계 미키 마우스 팬들에게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하여 마치 친한 친구 같은 미키 마우스가 인간의 형상을 하지는 않았지만 생쥐 이상의 인격적인 존재로 떠오를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그 의인화 수법이었듯 말이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너무 바쁘게 활동하느라 결혼도 아직 못한 헬로 키티이지만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사교적 성격을 한껏 활용해 2008년에는 유니세프 세계 어린이 친구 특사로 임명되었을 만큼 성공한 커리어 우먼[고양이]의 가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 가와이 문화를 정치외교 분야로까지 활용하는 일본 기업의 수완은 감성마케팅의 고수임을 넘어서 일면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Simone Legno for tokidoki, Kittypatra, 2014, Sculpture

Simone Legno for tokidoki, Kittypatra, 2014, Sculpture

보다 앞서 1955년에 네덜란드서 탄생한 고양이 캐릭터 미피(Miffy), 그보다 더 일찍이 1945년에 벨기에 만화가가 새끼고양이로부터 본따 만든 캐릭터 머스티(Musti)의 창조자들은 헬로 키티가 그들이 앞선 디자인한 캐릭터의 모방이라며 뾰로통해 한다. 오늘날 헬로 키티 캐릭터는 젊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대중문화 아이콘을 넘어서 현대미술의 모티프로 급부상하며 헬로 키티가 유럽의 선배 고양이 캐릭터의 카피라는 비판을 털어내는데 한창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미국에 있는 일본미국 국립미술관(Japanese American National Museum, 이하 JANM)에서는 팝 아이콘 헬로 키티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현대미술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귀여운 헬로 키티의 세상으로의 탐험(Hello! Exploring the Supercute World of Hello Kitty)』전을 2014년 10월11일 개장해 2015년 4월26일까지 연다. Images courtesy: Japanese American National Museum.

가난 – 미래 보편적 라이프스타일이 될 것인가?

BEING POOR, WILL IT BECOME A FUTURE TREND?

영국 웨일스 카디프 시에서 열리는 아르테스문디(Artes Mundi) 현대미술 연구소가 주최하는 올해 제6회 아르테스문디 비엔날레에서 우수상을 받은 렌초 마르텐스(Renzo Martens). 네덜란드서 태어나 브뤼셀과 킨샤사를 오가며 작업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예술가인 그는 전쟁과 재난으로 폐허와 빈곤에 허덕이는 곳들을 찾아 여행하며 작가 스스로를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부유하고 자기중심적 시점을 가진 구미인이 제3세계인들이 겪는 경제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관망하며 ‘소비’하는 현상을 포착한다. 다분히 이기적이고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의 비디오 작품은 오늘날 폭력, 파괴, 가난 같은 시련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제1,2세계인들이라 하여 미래 닥칠 위기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까고 질문하며 경고하는 듯하다.

Episode 3, 2008. pal, 16:9, color. 90:00. Courtesy the artist and Galerie Fons Welters.

From the Episode 3, 2008. pal, 16:9, color. 90:00. Courtesy the artist and Galerie Fons Welters. In ‘Episode 3’ Martens travels to the ruined Congo, interviewing photographers, plantation owners and locals; he acts the role of journalist, colonist, modern day missionary and development aid worker. His film focuses on one observation: poverty is Africa’s biggest export product, and, as with other natural resources of the Congo, it is exploited by the West through media. Lecturing locals assertively on ideas of poverty as commodity, he encourages them to sell their own photographs of starvation and death, not let Western photojournalists profit from their humanitarian disaster.

럭셔리 시장 진입 지금이 적기다.

HOW TO LAUNCH A BRAND INTO THE LUXURY MARKET

Thomas Hart Benton (American, 1889-1975) "City Activities with Dance Hall" from 『America Today』 1930-31. Mural cycle consisting of ten panels. Egg tempera with oil glazing over permalba white on a gesso ground on linen mounted to wood panels with a honeycomb interior.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ift of AXA Equitable, 2012.

1930년대 경제공황기 미국과 유럽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불황으로 고생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부 상류층들은 전에 없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세계 경제공황기 시대상을 미국 벽화로 그렸던 토마스 하트 벤튼의 벽화 연작 『오늘날 미국』 중에서 “댄스 홀에서 벌어지는 도시인들의 활동상”, 1930-31년 작. Thomas Hart Benton (American, 1889-1975) “City Activities with Dance Hall” from 『America Today』 1930-31. Mural cycle consisting of ten panels. Egg tempera with oil glazing over permalba white on a gesso ground on linen mounted to wood panels with a honeycomb interior.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ift of AXA Equitable, 2012.

과거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을 백만장자라고 부르던 시대는 가고, 이젠 가진 재산의 액수에 영이 10자리가 붙는 억만장자가 되어야 ‘부자’의 대열에 설 수 있게 된 억만장자의 시대가 되었다. 지난 10월 『포브스 (Forbes)』브라이언 김범수 카카오톡 설립자 겸 회장의 기사를 실으며 한국의 새로 출몰한 억만장자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듯, 이젠 제1세계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여러나라와 브릭(BRIC) 국가들로부터 전에 없는 많은 수의 억만장자들이 등장해, 2014년 현재, 전세계 통틀어 억만장자의 수는 1천6백4십5명으로 집계되었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의 액수는 6천6백6십 천조($ 6.4 trillion)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톱 100명 억만장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의 액수는 미화기준 총 3천4백6십 여억 우리돈으로 360 여 조에 달한다.

전세계적으로 중산층은 점점 그 층이 얇아지며 하층으로 이동해가며 양극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젠 천 6백명이 넘는 억만장자들과 200 백 만명이 넘는 백만장자들이 북적대는 명실공히 수퍼리치의 전성시대가 되었고 그 수는 앞으로도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중을 상대로 싸고 많이 파는 박리다매가 여전히 돈을 버는 방법이기는 하나, 동시에 이들 수퍼리치를 상대로 한 초고가 럭셔리 시장은 전에 없이 번성하고 있다. 수퍼리치 혹은 메가리치들의 숨은 욕망과 소비행태를 잘 파악하고 그에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면 비교적 단기간 내에 럭셔리 시장에서 브랜드를 구축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지금 만큼 적기가 또 있을까?

새 브랜드로 럭셔리 제품 시장에 하루 빨리 진입해서 성공하는 비결은?

어떻게 하면 새 브랜드로 럭셔리 제품 시장에 런칭할 수 있을까? 우수 브랜드로서 명망을 얻는다 함은 물론 최고 품질의 제품 라인을 제공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지만 그또한 능숙한 홍보를 통해서 촉진되고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글쓴이 셰리단 윈 (Sheridan Winn)은 한 요트배 생산 업체가 단행한 대담한 성공 벤쳐 사례를 들어서 그 비결을 소개한다.

침울해 보이는 한 편의 흑백 사진 속에는 성난 파도 속을 헤치며 항해하고 있는 나즈막하고 날렵한 배 한 척의 모습이 보인다. 그 사진 밑에는 로고와 함께 ‘템테이션 언리시드 (Temptation Unleashed)” 즉, 고삐 풀린 유혹이라는 뜻의 소표제어가 쓰여져 있다.

자, 이제 펄 모터 요트배 (Pearl Motor Yachts)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모름지기 요트배의 세계라 하면 부副와 럭셔리, 세련된 고난도 테크놀러지와 까탈스러운 제임스 본드의 성미도 족히 즐겁해 해 주기에 손색없이 복잡한 주변 작동 장치들이 집약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 회사는 5년 전에 이안 스몰리지 (Iain Smallridge)가 창립했다. 온화하고 낙관적인 성품을 지닌 35세의 그는 의욕적이고 추진력있는 사람이다. 남 프랑스에서 요트 운전 기사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스몰리지는 상류사회의 생활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는 자기 고유의 배를 지어보자는 결심을 품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스몰리지는 사업 동반자의 집 차고 뒤뜰에서 건설한 첫 요트는 인허가를 받은 후 240,000파운드 (약 한화 4억4천2백 여만원)에 팔았다. 이 처녀 프로젝트는 곧 회사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8년, 스몰리지는 45피트 길이의 후미 조종실형 (aft-cabin craft) 요트인 펄 45 (Pearl 45) 모델을 사우스햄튼 보트쇼에서 진수시켰다. 그로 부터 18개월 안에 그는 상버 투자 동반자 2명을 찾았고 그 덕분에 신제품 컨셉에 투자하기 위한 돈1,800,000 파운드(한화 33억 여원)을 확보했다. 펄 모터 요트 社의 미래는 준비를 마쳤다. 이 회사는 2001년에 보트 8척을 지었고 그리고 이듬해까지 12척을 지을 준비까지 채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990년대 10년 동안에 영국의 소형 보트 제조업은 붐을 맞았었다. 시라인 인터내셔널 (Sealine International), 썬-시커 인터내셔널 (Sunseeker International), 리바 (Riva), 페어라인 앤 프린세스 (Fairline and Princess) 등을 포함한 업계 최대 규모의 업체들은 전세계 보트 제조업계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이다. 선시커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대형 요트 보트를 짓고 있는 한편, 펄 모터 야트는 주로1년에 서너주 동안의 휴가철에 보트를 사용할 것을 위해서 한 번에 6십만 파운드 (우리돈 약 11억 여원) 정도를 손쉽게 일시불 할 능력이 있는 40대 중반 가령의 남성 고객들을 주로 겨냥해 보트를 생산하고 있다.

펄 모터 야트가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잡기 까지는 4년 밖에 걸리질 않았다. 뭐니뭐니 해도 초기 진입 단계에서의 판매가 가장 어려웠다. “빅보이들 (big boys :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 명품 보트 브랜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최고 품질을 갖춘 제품과 업계에서 틈새 시장을 구축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결국 브랜딩과 이미지가 성공의 관건임을 곧 깨닫게 되었다.”고 스몰리지는 말한다.

리타 클리프튼 (Rita Clifton) 인터브랜드 사의 회장은 럭셔리 브랜드에는 3가지 범주로 나뉠수 있다고 믿고 있다. 첫째는 헤리티지 브랜드 (Heritage brand)로 부를 수 있는 것들로서, 전통적인 샴페인家를 그 전형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헤리티지 브랜드가 주로 해야 할 임무는 전통 브랜드를 항상 참신하게 유지하는 일이다. 둘째는 일명 ‘시체 되살리기 (Waking the Dead)’ 범주에 속하는 브랜드로서 브랜드가 너무 오래되서 재소생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 범주에 속하는 럭셔리 브랜드는 ‘뉴 에이지 (New Age)’ 범주에 속하는 것인데, 전에 없었던 아주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를 의미한다.

‘시체 되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 중의 하나로는 프랑스 장신구 업계의 초고가 브랜드인 부셰롱 (Boucheron)을 들 수 있다. 1858년에 설립된 이 브랜드는 지난 몇 년동안 이 업계에서 거의 무시당해오다시피 하고 있다. 부셰롱을 책임지고 있는 이 회사의 새주인인 구치 (Gucci)는 런던에서 활동중인 장신구 디자이너 솔린지 아자구리-파트리지 (Solange Azagury-Partridge)를 부셰롱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했다. “최근 다소 부진을 겪어온 브랜드를 책임지고 그것을 한결 새롭고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더없이 완벽한 기회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임무로는 새로운 장신구 디자인을 창조하는 일 외에도 패키징 디자인, 광고,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 업데이트 업무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펄 모터 요트는 클리프튼이 규정한 두번째 범주에 속한다. ‘여기서 중요한 관건은 이 브랜드가 과연 매력적이고 카리즈마적인 리더에 기초하고 있든가 아니면 참신한 아이디어나 서비스 혁신으로 맹공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클리프튼은 말하면서 그와 비슷한 예로 제임스 다이슨 (James Dyson , 다이슨 진공 청소기),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 스텔라 매카시 (Stella McCarthy), 조 멀론 (Jo Malone, 뷰티 및 보디 케어 브랜드), Space NK (미용 및 약품 매장), 그리고 노부 레스토랑 체인 (Nobu Restaurants, 럭셔리 구르메 퓨젼 레스토랑)들을 꼽는다.

스몰리지는 기존 업계 영역에 혁신적인 접근을 시도해 성공한 사례다. 영국의 대형 보트 제조업체들은 탑승자가 태양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구조인 컨버터블식 플라이브리지 보트 (fly-bridge boats)를 지중해권 시장에 집중 공략 하는 방법을 통해서 성공적인 성장을 거뒀다. 그 결과 실내 공간에 더 중점을 둔 후미 조정실형은 보트 시장에서 비교적 백안시되어 왔던게 사실이었다. “합리적이고 분별있는 사고를 할 줄 아는 남성이 타는 배를 구상하게 되었다. 후미 조정실형 보트는 다소 구식이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풍길수도 있지만 기존 보트 시장이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다.” 스몰리지는 설명한다.

펄 모터 보트는 후미 조종실형 보드 디자인에 모던하고 섹시한 스타일링을 도입했다. 펄 모터가 제공하고 있는 보트 제품군은 길이별로 43, 47 그리고 55푸트 등 3가지 모델들로 구성되어 있다. 선구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디자인 팀의 도움 덕택으로 스몰리지는 후미 조종실형 배를 한 편의 탐미의 대상으로 전환시켰다. 이 회사는 가내 업체로 시작해서 이제는 다국적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스몰리지는 말한다. “모든 것을 같은 시기에 같은 스타일로 일체화할 필요가 있다. 회사의 스타일과 보트의 스타일이 통일감 있게 조율해야 한다. 모든 일은 단계적으로 연결되었다. 우리는 브랜드가 비즈니스를 주도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배들의 이름은 ‘템페이션 (Temptation)’ (유혹)이라고 붙이고 스페인의 휴양섬 마요르카 (Majorca)와 포트머스 (Portmouth)의 사회 부유층만을 위한 요지에 홍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스몰리지는 덧붙인다.

펄 모터스 보트는 홍보 전략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영국 케닐워드에 있는 바이트 솔루션스 (Bite Solutions)에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맡겨서 진주알 3개가 있는 독특한 로고와 새로운 표제어를 채택했다. ‘고삐 풀린 유혹 (Temptation Unleashed)’이라는 표제어는 이미 디자인되고 생산된 보트 한 척에 단지 부가가치를 좀 더하겠다는 생각에 붙인 듣기 좋은 상투어구만은 아니다”라고 바이트 솔루션스 사의 브랜드 전략가인 피터 휴즈 (Peter Hughes)는 말한다. 그리고 “유혹이라는 주제를 둘러 싼 이 비즈니스 전체를 운영함에 있어서 펄을 다른 경쟁 대상들로부터 차별화하는 기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디자이너들과 기술자들은 이 보트를 구성하는 세부 하나하나에 까지 브랜드가 숨쉬고 있도록 하는데 혼심을 기울였다. 그로 인한 결과로 다른 동급 경쟁 보트들 보다 훨씬 호화스러운 모터 요트배 시리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스웨이드와 앵두목으로 마감된 벽이 특징적인 인테리어에는 캐빈내 문짝, 유리 계단, 의자 등받이, 수저 세트와 타월에 이르기까지 펄 모터스 보트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판매부서원들은 모두 펄의 브랜드가 인쇄된 제복을 착용한다. “우리는 마케팅에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지출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10% 더 추가 비용을 쓴 만큼 우리 브랜드의 품질을 보여준다. 눈에 띄기 위해서는 때론 정해진 한도를 추월해야 할 경우도 있다.”고 스몰리지는 말한다.

펄 모터의 보트를 선보이는 박람회 행사 부스에서는 템테이션 바 (Temptation Bar)가 설치되어 뵈브 클리코 샴페인 (Veuve Clicquot)과 로고 소표제어에서 따와 이름한 ‘칵테일 언리시드 (Cocktails Unleashed – 고삐 풀린 칵테일)라는 자체 브랜드 드링크류를 제공한다. “이렇게 해서 보트 제조업계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예산에 커다란 구멍을 내지 않고도 짧을 시일 내에 얼마든지 상류층을 상대로한 최고급 브랜드를 창조할 수 있음을 업계에 일깨워 주었다.”고 브랜드 전략가 휴즈는 말한다.

호화 보트 박람회에서는 보다 큰 보트 제조업체들로부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한다.

특히 썬시커인터내셔널 (Sunseeker International)의 전시 부스는 그 규모와 스타일로 명성이 자자하다.

두 업체들 사이의 총매출액과 연륜은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 썬시커는 설립된지 30년이 되는 회사이며 1년에 300-400대의 배를 짓는다 – 회사 설립 초기와 접근 태도는 놀랄 만큼 유사하다.

두 업체 모두 디자인, 품질, 그리고 최고의 테크놀러지를 최우선적 강조점으로 삼고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스몰리지와 마찬가지로 선시커의 공동 창립자 로버트 브레이드웨이트 (Robert Braithwaite)와 동생 존 브레이드웨이트도 집 차고 안에서 보트를 짓기 시작했다. 펄 모터스가 처음 시장에 진입할 때부터 ‘허영’ 시장 (vanity market)으로 높이 목표 설정을 했던 반면에 브레이드웨이트 형제는 소비자들을 바다의 세계로 천천히 유도하면서 소규모의 스피드보트를 생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이어서 디자이너인 돈 셰이드 (Don Shead)와 협력한 끝에 두 형제는 다양한 종류의 럭셔리 심해용 파워보트를 만들었다.

썬시커의 보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커지고 한결 더 화려해 졌다. 이 회사는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유 모터 요트배 생산자가 되었으며 로버트 브레이트웨이트는 보트계에서 가장 최고 유명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썬시커는 시작 단계부터 두드러진 보트 모델을 선보이는 것으로 출발했으며 다른 보트들과는 아주 색다른 특징들로 남달리 눈에 띄어 보였다”라고 그는 말한다. “수중용 보트 라인 부문에서도 경쟁업체들에 비해서 훨씬 앞서 있어서 썬시커 보트의 우수한 성능과 핸들링은 얼마 안가서 이 업계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였다. 그 이미지를 유지해야겠다는 욕망은 항상 보다 새롭고 우수한 성능을 찾는 기존 고객들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한편 세계 최고의 유명 브랜드를 갈구하는 새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했다.

디에고 리베라 벽화 시리즈 중 "월 스트리트 잔치). Diego Rivera 『Wall Street Banquet (』 (1923-8) fresco, Ministry of Education, Mexico City.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시리즈 중 “월 스트리트 잔치). Diego Rivera 『Wall Street Banquet (』 (1923-8) fresco, Ministry of Education, Mexico City.

이 단계에서 감성 (emotion)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감성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하다”고 인터브랜드의 클리프튼 회장은 말한다. “그 중 대부분- 99.5% – 은 무형 자산이고 나머지 0.5%만 유형 자산이다. 보트 생산 업계에서는 제품의 물리적 성능이 중요하다. 제아무리 가장 매력이 넘치는 광고 캠페인을 벌인다 할지라도 아름다운 엔지니어링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제품이 못되면 소용없다.”

그런데도 감성은 럭셔리 시장에서는 중요한 차별 요소이다. 예를 들어서 디자이너 브랜드 화장품들 같은 일부 브랜드들은 품질과 굳이 상관 없이도 브랜드명 하나만으로도 성공이 가능하다.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의 힘은 다른 보다 저렴하고 덜 고급스러운 대중 브랜드들보다 성능이나 효과 면에서 우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판매 실적에 아무런 영향력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관건은 엘리트층 소비자들이 내 기업의 브랜드를 사용하고 사랑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는 것이다”라고 클리프튼은 덧붙인다. “그같은 원칙은 럭셔리 보트 분야에서 특히 그러한데, 보트 제품 분야는 소유자가 천박한가 아니면 탁월한 취향을 지녔는가를 반영하는 첨예한 분별 경계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를 새로 런칭한다 함은 어떻게 브랜드를 구축할 것이며 어떤 소비자를 주고객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를 매우 조심스럽게 고려해야 함을 뜻한다. 최고급 브랜드를 런칭하면 예컨대 메르세데스 (Mercedes) 자동차의 경우처럼 이후 상황에 따라서 브랜드를 다소 하향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단계부터 최하위급 브랜드로 런칭을 시작하면 그 브랜드를 상향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펄 모터스의 강점들 중의 하나는 고객들과 강한 개인적 관계를 형성해 나갈줄 아는 스몰리지의 능력일 것이다. 이것은 기존 보트 주인들이 보다 큰 새 보트를 다시 구입해 가며 이 브랜드로 되돌아 오게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 결과, 펄 모터스는 고객들이 그의 브랜드를 홍보해 주는 것에 힘입어서 새 고객 만들기에 도움을 받고 있다.

스몰리지는 곧 새로 런칭을 앞두고 있는 펄 55 모델 (2005년 5월 현재 이 제품은 이미 런칭을 한 상태)이 한 유명인 고객 덕붙에 큰 홍보 효과를 얻을 것임을 이미 자신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로는 보트 종류를 더 확장하고 전세계로 펄 보트 딜러망을 포함해서 펄 보트 브랜드를 단 의류 판매망과 항해 학교 교육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스몰리지의 꿈은 “생 트로페 프랑스 고급 휴양지 항구 전체가 온통 펄 보트로 가득차게 될 날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인터브랜드의 클리프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말한다. “사람들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위해서 비싼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그같은 행위와 연관된 상징들 때문이다. 결정적인 요건은 엘리트 고객들이 그 제품을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다. 그같은 광고 효과의 가치는 가격으로 환산불가능할 정도로 값진 것이다.”

그리고 그레이드웨이트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 “그들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런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브랜드를 창출하라.

  • 한정된 자원으로 럭셔리 브랜드 구축하기
    1. 환상적으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제품을 만들라.
    2. 소비/서비스 경험이 제품 판매의 절대적인 최우선 수준이 되도록 하라.
    3. 새 브랜드를 처음 런칭할 때 어떻게 런칭할 것인가 그리고 누구와 함께 런칭할 것인가에 주의를 기울이라. 고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마케팅과 홍보에 남다른 노력을 쏟아 넣어라.
    4. 당신의 브랜드를 열렬히 응원해 줄 고객을 찾으라. 사회적인 명망이 있으면서도 당신의 브랜드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입에서 입으로 당신의 5. 제품을 소문내는 방법으로 홍보해 줄 것이다.
    6. 고객들을 주주들처럼 대우하라. 고객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라. 결국 개인적인 서비스가 관건이다.
    7. PR 팀과 협력해서 전략을 짜라. 당신이 속해 있는 업계에서 아직 개척되지 않은 상상력을 개척하여 포착하라.
    8. 당신이 속해 있는 럭셔리 부문에서 아직 미개발 상태에 있는 영역을 공략하라.
    9. 당신이 하는 일에 믿음을 가지라. 그리고 당신의 브랜드에 대한 열정을 가지라.

※ 이 글은 본래 월간 『디자인』지 2005년 6월호 포럼 컬럼에 실렸던 기사를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대학도시, 도시대학

THE STUDENT IN GRONINGEN, 1614-2014

오늘날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 지방, 도시는 점점 일종의 브랜드가 되었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한 국제 관광산업과 환대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도시들은 서로 앞다투어 저마다의 특징과 장점을 내세워서 도시 마케팅을 하고 그 도시만의 ‘아이콘’을 창출하려 애쓴다. 새로운 랜드마크를 지어 올리고,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 신건물이 들어서고,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새 호텔과 레스토랑 건물들이 옛 건물을 부수고 들어선다. 하지만 도시 브랜딩은 꼭 옛 것을 부숴내고 새 것을 지어넣어야 하는 파괴적 과정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각 도시와 장소가 담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 같은 소프트 파워를 활용하는 길이 더 창조적이고 건설적이다. Continue reading

패션과 미술의 해후

ART MEETS FASHION, FASHION MEETS ART

과거 그 어느때 보다도 오늘날 만큼 패션과 미술이 동등한 위치를 점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때는 없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요즘의 수많은 패션 추종자(fashion victim)들이 매년 매계절 마다 거리와 백화점 매장을 메우며 신유행을 정신없이 뒤쫏고 있고, 미술은 더이상 소수의 가난하고 고뇌하는 숨은 천재들과 난해한 말장난을 즐기는 평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