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Art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을 위한 7가지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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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The Seven Works of Mercy, 1607, Oil on canvas, 390 cm × 260 cm (150 in × 100 in). Pio Monte della Misericordia, Naples

“내가 굶주렸을 때 당신은 내게 고기를 주었네. 내가 목이 말라할 때 당신은 마실 물을 주었네. 생면부지 이방인인 나를 당신은 받아주었네. 헐벗은 나에게 당신은 걸칠 옷을 주었네. 내가 아플때 당신은 나를 찾아와 주었고, 내가 감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 면회를 와주었네.”

카라바죠는 툭하면 말다툼과 칼싸움에 휘말려 살인까지 저지르는 격정적인 성미의 소유자였던 턱에 로마를 도망쳐 나폴리로 피신하는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살아 생전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았던 덕택에 그의 미술을 높이 아끼던 교황과 귀족들이 늘 그의 생존과 안전을 배후에서 수호해 주었다. 고달픈 망명생활을 하던 카라바죠에게 귀족 후원자들이 제공해 주었던 비호를 중세 성경의 6대 미덕에 한 가지 미덕을 더한 7가지 미덕(신약 마태 복음 25:36-7)으로 재구성해 그린 그림이 바로 『7대 주선(The Seven Works of Mercy)』이다.

인간이라면 인격을 갖춘 다른 인간에게 행해 줄 수 있는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있다.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지 카라바죠가 스스로 겪은 경험에서 이끌어 『7대 주선』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1)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시신을 묻어주자 [카라바죠가 당시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맞게 더해 넣은 미덕].  2)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라 – 고대 로마 시대 널리 알려져 있던 자비의 미덕으로써 이 그림 속에서는 한 여자가 감옥에 갇혀있는 남자에게 젖을 물려 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3) 여행에 지친 고행자에게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주자. 4) 성 마르틴의 행적을 되새겨서 헐벗은 자가 있으면 내 옷을 벗어 입혀주자. 5) 아프고 병든자, 몸이 불편한 자를 알고 있다면 그가 죽기 전에 찾아가 위로하자. 6) 목 타서 물이 필요한 자가 있으면 물을 주자(목이 너무 탓던 삼손은 당나귀의 침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7) 감옥에 갇힌 자를 풀어주자.

[디자인 정글] 우리는 관광객인가 여행자인가?

21세기 크리에이티브는 미래를 향한 여행자

Why Creatives Must be Travellers, not Tour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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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지구 북반부에 사는 수많은 현대인은 직장일이나 평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휴가를 떠난다. 특히 7월 말부터 8월 초, 여름 날씨가 가장 더워지면 직장과 일상을 벗어나 평소 가보지 못한 낯선 장소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과거 가본 곳이 좋아 되돌아 가기도 한다.

어떤 이는 매일의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쉬는 시간을 갖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고, 또 어떤 이는 틀에 박히고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잠시나마 탈피하여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디자인정글』 FOCUS, 2016년 8월 5일 자 Future of Design: 디자인 현재 창조적 미래 칼럼 제10탄 전체 기사 계속 보기. Go to article in Design Jungle magazine

그들은 왜 수퍼스타인가?

The New Yorker Cover Story Purple Rain May022016

RIP Prince (1958-2016) – Prince has passed away.  Purple Rain, The New Yorker Cover Story Purple Rain May 2, 2016 Issue, illustration by Bob Staake

RIP Prince (1958-2016) – Prince has passed away.

SUPERSTARS … THROUGH THE EYES OF ART …

현대 미술을 통해서 나타난 수퍼스타들의 천태만상

…나는 모르겠네.
내 기분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당신은 무슨 수퍼스타임에 분명할꺼야.
당신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까… 
(2003년에 발표된 제멜리아 데이비스 (Jamelia Davis)의 R & B 유행곡 『수퍼스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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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Valentines Day!

CUPID THE HONEY THIEF

큐피드는 꿀 도둑 – 고대 전성기 그리스 시대 시인 테오크리수트가 쓴 시에서 큐피드가 꿀벌통에서 꿀을 훔치다가 벌들에게 쏘이며 아프다고 어머니 비너스(사랑의 여신)에게 불평하는 순간을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펜과 수채화로 그린 작품. 큐피드: “아야 아야! 엄마! 어떻게 이 작은 벌레들이 그토록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거죠?” 비너스: “하하~ 내 귀여운 아들아, 이제 네 화살을 맞고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지? 순간적인 사랑의 희열은 얼마안가 고통과 가슴앓이를 가져오는 법이란다.”

Cupid the Honey Thief by Albrecht Dürer, 1514, Pen and ink and watercolour on paper,
22 cm (8.7 in) x 31 cm (12.2 in). Collection: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The scene is taken from literature, specifically the poem Cupid Stealing Honey by the classical Greek poet Theocritus. The poem tells the story of how Cupid complains to his mother, Venus (the goddess of love), of how the bees sting him because he has stolen their hive. He wonders that creatures so small can inflict so much pain. Venus laughs and tells him that their stings can be compared to the wounds that he himself inflicts on all those hit by his arrows. The brief ecstasy of love may soon be replaced by suffering and heartbreak.

고전 미술 속의 원숭이 [2016년 병신년을 맞아서]

Monkeys in Art

Frans Francken and David Teniers, The Interior of a Picture Gallery, c. 1615-50 Oil on panel Courtauld Institute, London

Frans Francken and David Teniers, The Interior of a Picture Gallery, c. 1615-50, Oil on panel. Courtauld Institute, London.

서양 고전 미술 속의 원숭이는 사슬에 묶여있거나 목이 매여있는 형상으로 즐겨 그려졌었다. 자유로운 상태의 원숭이란 날랜 몸놀림을 이용해 나무줄기를 타고 재빠르게 오가며 재빠른 손재간을 이용해 아무것이나 채가고 훔치는데 능한 교활한 동물이다.

해서 과거 인간은 원숭이를 감각적 세계와 세속적인 유혹의 올가미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혹은 성경 속의 인간의 원죄를 상징했다. 원숭이는 그래서 흔히 손에 사과를 몰래 훔쳐 손에 쥐고 있는 형상으로 그려져서 신의 은총을 잃고 타락한 인간 아담과 이브를 표상했다. Continue reading

옛 그림으로 보는 小 빙하시대 경치

MINI ICE AGE BY 2030

현대인들은 오늘날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를 귀아프게 듣고 살고 있다. 하지만 향후 15년 지구상의 인류는 오히려 소 빙하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370년 전 지구가 마운더 극소기(Maunder Minimum)에 경험했던 것처럼 태양의 활동이 급속하게 줄어들어 2030년 경이 되면 태양의 활동이 지금보다 60%가 감소하게 되며 겨울은 더 추워지고 잘 얼지않는 작은 냇가도 꽁꽁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금부터 370년 전, 그러니까 마운더 극소기에 속하던 1650-1700년대 소 빙하기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사람들은 이 혹독한 기후 속에서 어떻게 생활했을까?

플랑드르 출신의 거장 풍속화가 피터 브뢰겔이 그린 일련의 겨울철 풍경화들은 소 빙하시대 북유럽의 겨울철을 잘 보여준다. 16세기 중엽은 이른바 소빙하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유럽에 극심한 한파가 휘몰아친 시기였다. 고기감을 구하기 위한 농군들의 사냥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인 듯해 보이지 않지만, 겨울철의 한 순간을 묘사한 이 그림 속에는 왠지 알 수 없는 영원불변의 겨울 경치의 아련한 추억을 자아내는 구석이 있다.

피터 브뤼겔 (아버지) Pieter Bruegel the Elder 1565 년, 목판 위의 유화, 117 x 162 cm ©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피터 브뤼겔 아버지 (Pieter Bruegel the Elder) 『겨울 – 눈 속의 사냥꾼 (Jaeger im Schnee)』 1565 년, 목판 위의 유화, 117 x 162 cm ©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농군의 겨울철 낭만과 목가적 서정 피터 브뤼겔이 그린 『눈 속의 사냥꾼』은 플랑드르 지방의 눈 덮인 겨울철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가미하여 묘사하고 있다. 안트베르펜에 사는 한 미술 수집가의 주문을 받아 완성된 이 작품은 4계절 풍경 연작의 4번째판 겨울편으로 3명의 건장한 사냥꾼이 겨울 사냥 후 지친 상태로 눈을 밟으며 사냥개 떼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겨울은 맹수들이 동면을 취하는 계절이다. 사냥 끝에 잡은 여우 한 마리를 등에 지고 오는 한 농군. 농군들의 겨울 사냥은 그다지 풍성하지 못했다. 사냥 도우미인 개들도 눈 속의 사냥 끝에 지치고 추위에 떨며 의기소침 해 졌다. 집 바깥에서 모닥불을 지피 는 어린 농군 들의 모습과 헛벗은 겨울 나무 위의 세 마리 까마귀는 보는이의 시점을 우측 호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와 물레방아와 스케이팅과 얼음지치기에 열중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생활과 생존에 지친 성인들에게 어린시절 천진난만함에 대한 동심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피터 브뢰겔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감상할 때 잊지말아야 할 점이 있다. 화가는 농민들에게 보여줄 그림이 아니라 당시 프랑드르를 통치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2세 황제에게 그의 백성이 이렇게 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보고서로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옛 조선의 궁중작화 기관인 도화서의 궁중화가들이 궁중 밖 광경과 농촌 풍경을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그렸던 기록화와 같다 하겠다. 황제를 비롯한 상류 지배층 인사들은 브뢰겔이 그린 르네상스 시대 북유럽의 플랑드르 지방 농촌의 민속 풍경, 풍습, 진솔한 생활상을 보면서 통치가 잘 되어간다고 여기며 즐거워하고 안도했을 것이다.

피터 브뢰겔 아들 (Pieter Brueghel The Younger (?), 1564/65 - 1638), 1601년, 10,5 x 14,8 cm c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피터 브뢰겔 아들 (Pieter Brueghel The Younger (?), 1564/65 – 1638), 『새잡이 덫이 있는 겨울 퐁경 (Winter Landscape with a Bird Trap)』 1601년, 10,5 x 14,8 cm ©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그의 회화 속에는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 보고 또 보아도 이루 다 설명하기 어려운 서정적 깊이와 인간 군상에 대한 인간적인 시선을 발하고 있으며, 세심하게 고려된 구도 속에는 보는이의 시선을 좌우상하 대각선으로 유도하며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위력이 담겨 있다. 그를 ‘농군 브뢰겔(Peasant Bruegel)’이란 애칭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 만하다.

추운 한 겨울에도 일상의 근심걱정은 부모들에게 넘기고 꽁꽁 언 빙판에서 얼음지치기와 하키놀이를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16세기 빙하기 속 북유럽에서 특히 한겨울철에 먹을것을 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농군들은 사냥꾼이 잡아온 토끼나 덫에 걸려드는 북동 유럽에서 날아온 겨울새 – 주로 까마귀 – 를 식량으로 삼아 연명했다 한다.

꽁꽁 얼어붙어 안전할 것만 같은 빙판에서 느긋하게 노는 아이들의 태평무사함과는 대조적으로 그림 아래쪽 빙판 가운데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빙판 위의 구멍은 인생이란 지금 아무리 고요하고 평안하다고 느껴질지언정 언제든지 구석구석 숨어있는 위험 요인으로 인해 사고나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지극히 위태롭고 뜬구름처럼 덧없는 것이라는듯 인간군상들에게 경고한다.

미술 없는 [현대] 미술

Contemporary Art without Art at the 56th Edition of Venice Biennale 2015

2015년 제56회 베니스 미술 비엔날레를 본 언론의 눈

120년 전 창설되어 오늘날까지 세계 최고 권위와 최대 규모의 국제 현대미술 전시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올해에는 제56회를 맞으며 5월9일에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인공 해상 도시 베네치아에서 그 막을 올렸다. 올 행사에서는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51세, 현재 독일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관장)가 총감독을 맡고 전세계 53개국에서 초대된 136명의 현대미술가들이 선보인 7백 여 점의 작품들이 본전시에 참여해 관객들을 맞고 있다.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 라는 대제목을 내건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가 대중 관객에게 공식 개장하기 앞서 이틀 동안 거행된 언론단 프리뷰 기간을 둘러본 전 전세계 언론사와 미술전문매체 기자들은 이번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감상 감흥과 전시회 분석을 타진했다. 오스트리아 특히 수도 빈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두 일간지 ⟪데어 슈탄다르트(Der Standard)⟫ 지와 ⟪디 프레세(Die Presse)⟫ 지는 문화부 기자를 베니스로 파견해 리뷰했다. 한편, 서부 오스트리아에서 널리 읽히는 카톨릭계 자유주의 성향의 ⟪잘츠부르거 나흐리히텐(Salzburger Nachrichten)⟫ 지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소식이나 전시회 평을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Isaac Julien (b. 1960 United Kingdom) Das Kapital Oratorio (live readings 30’ each). Courtesy Galería Helga de Alvear.

Isaac Julien (b. 1960 United Kingdom) Das Kapital Oratorio (live readings 30’ each). Courtesy Galería Helga de Alvear.

카톨릭계 보수층이나 미술 컬렉터를 주 독자층으로 보유하고 있는 ⟪디 프레세⟫ 지는 비엔날레가 개막하기도 전부터 엔위저 총감독이 내세운 대주제와 본전시 및 공로상 수상자들에 대한 소식을 단편 기사로 실었다. 그중에서도 올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대한 이 신문의 평가가 가장 잘 드러난 기사는 5월5일자 인쇄판 신문에 실린 ’베니스 비엔날레 – 칼 맑스의 ⟪자본론⟫이 오라토리오라고?’라는 제목의 글이다.

엔위저 큐레이터가 서구중심적 정치경제체제와 신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의 소유자임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렇다고 아르세날레에 새로 지은 임시 전시장(가나 태생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 설계) 실내에서 상영되는 이삭 줄리언 감독의 비디오 작 ⟪아레나(Arena)⟫ 배경 음향으로 7개월에 걸쳐 ⟪자본론⟫ 낭독이 흘러나오도록 설치한 것는 ‘맑스의 오용(Missbrauch von Marx)’이 아닐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또 ⟪디 프레세⟫ 지의 토마스 크라마르(Thomas Kramar) 기자는 ’’세계’ 나 ‘미래’ 같이 인류문명과 관련된 거창한 어휘를 내건 것에 비해 출품된 작품들 사이의 연관성이나 일관된 개념이 상실되어 결국 산만하고 파편화된 인상을 남겼다고 지적하고 이번 전시를 가리켜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기드문 해프닝’이라 결론내렸다. 게다가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 속에 드러난 미술인들이 내다본 미래의 정치경제적 전망이 암울하며 보는이에게 미적 즐거움을 주기 부족하고 폭력성 강한 이미지가 출품작들의 주를 이룬다는 점도 지적되었는데, 이 점은 특히 영미권 미술평론가들도 공통적으로 지적한 감상 후기다.

그런가하면 좌파편향 사민주의 성향의 일간지 ⟪데어 슈탄다르트⟫ 지의 아네 카트린 페슬러(Anne Katrin Fessler) 기자는 ‘찟어진 커튼 뒤의 상처와 균열(Narben und Risse heruntergerissener Vorhänge)’이라는 제목의 5월6일 자 전시평에서 ‘역사를 도구이자 지렛대’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한 엔위저 총감독의 모토를 화두로 삼아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통해서 현대 사회가 처한 정치사회적 위기, 종교적 갈등, 어두웠던 역사의 잔재가 현재와 미래 인류에 가하게될 무거운 죄값을 인식하자는 이해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Installation view of Heimo Zobernig's work at the Austrian Pavilion, 2015. Giardini della Biennale, Venice photo: Georg Petermichl

Installation view of Heimo Zobernig’s work at the Austrian Pavilion, 2015. Giardini della Biennale, Venice photo: Georg Petermichl

또 이 신문은 출품작들의 분위기가 대체로 어둡고 심각한 이유로 강력하고 상징성 강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총감독의 미적 취향 때문이라면서 옹호적 논조를 띄었다. 그러나 페슬러 기자 역시 이튿날인 5월 7일 자 기사에서 올해 본전시에는 종말론적 분위기와 전망이 짙게 서려 있으며, 그 멸망의 날이 오기 전까지 목숨을 부지하는 인류는 잠시나마 자연에서 위안을 찾을 것이라는 것으로 전시평을 마무리졌다.

그같은 해석을 다시 한 번 강조라도 하듯, 89개 국가관들이 참여해 자국을 대표해 출품해 황금사자상에 도전한 가운데, 오스트리아관은 올해 개념주의 조각가 하이모 초베르니히(Heimo Zobernig)[참고: 하이모 초베르니히 회고전 기사 – 월간미술 2003년 3월호 월드리포트, 128-129쪽]를 선정해 발표한다. 근대기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Joseph Hoffman)이 설계해 놓은 오스트리아관의 기본 철학에 부합하듯, 초베르니히는 검정색 바닥, 백색 회벽, 개방식 식물 정원이 있는 절대 고요와 고독의 추상적 공간을 창조했다.

조각가 초베르니히는 오스트리아관을 찾은 관객에게 비엔날레 행사장의 시끌벅적한 소음도 다 삼켜버린듯한 이 적막한 공간에서 빈 근대기의 건축거장 아돌프 로오스(Adolf Loos)가 1908년 ‘장식은 범죄’라 선언했던 건축사적・미학적 의미를 재음미해 보라고 제안한다. 올해 오스트리아관 전시를 통해서 현대 오스트리아의 미술계는 역사주의풍 장식주의의 역사적 무게를 뒤로 하고 더이상 제거할 것도 없이 극한으로 제거되고 절제된 극미니멀 공간을 은유로 근대에 이어 현대 그리고 미래를 지향할 것이라는 국가적 안건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런던 백 년 전과 지금 달라진게 있나?

막대그림 그림 거장 LS LOWRY – The Match stick master at the Tate

영국 화가 로렌스 스테븐 로리(Lawrence Stephen Lowry, 1887-1976)의 그림을 감상해보자. 일명 ‘성냥개피(matchstick)’ 그림으로 유명한 로리는 20세기 전반기 영국 수도 런던과 북구 영국에서 급속히 벌어지던 산업화, 도시화, 공장화 풍경을 그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다섯번이나 제영제국4등훈장과 기사작위를 받았지만 매번 거절했던 굳은 신념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고로파 화랑과 신세대 화랑이 공존하는 현대미술 그린하우스

월간미술201501표지WOLGAN MISOOL Monthly Art Magazine, January Special Issue 월간미술 2015년 1월호 특집 “세계 미술현장의 새 지형도 빈 편” 기사 읽기는 여기를 클릭. 오스트리아 현대미술 화랑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박진아의 리포트와 오스트리아 현대미술계 기획자 겸 문필가 마르틴 프리츠(Martin Fritz)와의 인터뷰.

인간은 왜 기부하나?

CHARITY, PHILANTHROPY & FREE MEALS

“기부란 받는자를 모욕하고 기부하는 자는 주고서도 꺼림칙하게 만든다. (Charity degrades those who receive it and hardens those who dispense it.) -조르쥬 상드(George Sand)

1929년 뉴욕 월가의 주식 폭락과 함께 시작된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 1920년대 결핵과 싸우는 동안 열심히 그림그리기 수련을 한 끝에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가 된 폴 샘플(Paul Sample)은 1930년대 부터 일자리가 사라져 실직된 도시 빈민, 극심한 기후변화와 병충해 때문에 근근히 연명하던 농가, 정부 주도 건설사업에 뛰어들어 팔걷고 일하는 육체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려 미국 경제 대공황기를 헤쳐갔던 미국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교회에서의 저녁식사(Church Supper)』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한 돈 많은 갑부 남녀가 어느 고을의 교회를 방문해 교회 앞마당에서 농촌 지역 배고픈 농부들이나 거주민들에게 자선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모습을 담았다. 당시 미국 대도시 곳곳에서는 정부 혹은 개인 자선사업가가 주도된 빈민 무료급식소가 성황리에 운영되었는데, 도시까지 이동할 수 없던 농촌인구를 위해 이동 급식소가 교회, 학교, 관공서 공터에 마련돼 무료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Paul Sample. Church Supper. 1933. Oil on canvas. 102 x 122 cm. (Springfield Museum of Art, Springfield, MA)

Paul Sample. Church Supper. 1933. Oil on canvas. 102 x 122 cm. (Springfield Museum of Art, Springfield, MA)

정부가 실직과 빈곤에 허덕이는 국민 모두를 지원할 여유와 제도가 갖춰져있지 못하던 20세기 초엽 미국, 그래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선활동은 부유한 개인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20년대 내려진 금주령 기간중 밀주사업을 벌여 큰 돈을 모은 그 유명한 조직폭력배 알 카포네도 마음 한구석 자리하고 있던 죄의식을 조금이나마 사죄하고 사회적인 이미지 쇄신을 한다는 뜻에서 카포네 무료 급식소를 시카고에 열어 하루 평균 10만 명이 넘는 배고픈 실직자와 노숙자들에게 빵과 수프를 나눠주었다 하니 말이다.

조지 오웰도 그의 책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에서 썼듯이, 걸인들은 남의 자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노동하여 자기 끼니와 잠자리를 벌기를 원하며 후한 선심을 쓴 자선가나 길거리 걸인에게 동냥 주는 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은 없다고 한다. 자선이란 받는자로 하여금 꽁짜로 나눠받는 것에 의존하게 해 인간 본성을 탁하게 흐린다고 테오도르 헤르츨도 지적했고, 오스카 와일드는 자선이 죄악 창출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까지 했다.

궁중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즈

VELÁZQUEZ IN VIENNA

작년 2014년 10월 말 비엔나의 미술사박물관에서는 바로크 시대 스페인 궁중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즈 전을 열어 스페인 합스부르크 황실가 가족들의 모습을 초상화로 다시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오늘날 대중 미술사 서적 마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던 화가 겸 거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디에고 벨라스케즈. 19세기말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벨라스케즈를 가리켜 ‘화가중의 화가(painter of painters)’라며 프랑스 인상주의의 선구자라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재조명 받기 전까지 실은 서양 미술사에서 오래 잊혀져 있던 유럽 역사 속 궁중화가중 일인에 불과했다.

Workshop of Diego Velázquez 『King Philip IV of Spain』 c. 1653–1656/59, Oil on canvas, 47 x 37,5 cm ©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디에고 벨라스케즈 아텔리에에서 화가와 조수들이 합작해 완성한 펠리페 4세의 초상. Workshop of Diego Velázquez 『King Philip IV of Spain』 c. 1653–1656/59, Oil on canvas, 47 x 37,5 cm ©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20세기 근대주의 대두 이전까지 절대주의 귀족주의가 지배하던 유럽에서 미술을 포함해 각족 공예, 음악, 문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창조 예술 분야에서 먹고 살아야 했던 재능있는 예술가들 사이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귀족집안, 왕가, 황실, 교회에 전속돼 권력자를 섬기며 작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영예스럽고 안정된 생계 수단이었다.

천재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서로 경쟁하며 메디치 가문의 건축가, 화가, 조각가로 활동했고, 모차르트가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로 올라와 합스부르크 황실 음악가가 되길 그토록 갈망했던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유럽이 배출한 걸출한 천재 예술가들은 소명적으로는 신이 내려준 재능을 한껏 발휘해 천상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구현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데 혼신을 바친 위대한 창조가들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생활인이었기 때문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1660)는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태생이나 포르투갈에서 이민온 유태인계 포르투갈 부모 밑에서 카톨릭 교회 세례를 받았으며 소귀족 출신이었던 이유로 해서 벨라스케즈는 당시 스페인을 한바탕 공포로 휘몰아 넣었던 스페인 종교 재판으로부터 수난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유복한 환경에서 일찍이 갓 열 살이 넘은 나이로 철학책을 보고 화가 프란치스코 파체코(Pacheco) 수하에서 그림그리기를 공부하며 화가 수련을 받기 시작했다.

Diego Velázquez 『The Waterseller』 c. 1622, Oil on canvas, 107,7 x 83,3 cm © London, Apsley House, The Wellington Collection English Heritage

벨라스케즈의 초기 작품 『물장수』는 허름한 연인숙, 주점, 주방 풍경을 묘사한 보데고네스 장르의 그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당시 로마에서 활동하던 바로크 시대 화가 카라바죠의 영향이 엿보인다. Diego Velázquez 『The Waterseller』 c. 1622, Oil on canvas, 107,7 x 83,3 cm © London, Apsley House, The Wellington Collection English Heritage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 했듯, 스승 프랑치스코 파체코 보다 그림그리는 재능이 한층 특출났던 갓 스무살 넘긴 젊은 벨라스케즈는 스승의 딸 후아나와 결혼하자 마자 그 연줄로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산티아고 교회를 거쳐 곧바로 마드리드 합스부르크 궁중으로 그 이름이 알려졌다. 때는 마침 1922년 겨울, 합스부르크 왕가 필리페 3세와 4세가 가장 아꼈다던 왕실전속화가 로드리고 데 빌란드란도가 세상을 떠서 그 자리를 메꿀 새 궁중화가 물색작업이 한창이던 시기. 절묘한 시운과 스승이자 장인 파체코의 연줄의 축복을 한껏 받고 24세의 디에고 벨라스케즈는 초봉 50 두카트(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200-250 만원) 받는 궁중전속화가로 전격 발탁된 이후 예순살로 세상을 뜰 때까지 40년 넘게 마드리드 합스부르크 왕실에서 궁중화가로 한평생을 봉사했다.

모든 궁중화가의 최우선 임무는 두 말 할 것 없이 왕과 왕가 가족과 친지들의 공식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다. 요즘과 달리 장거리 여행을 자주하기 어렵던 과거, 스페인 마드리드와 오스트리아 비엔나 두 곳에서 2중 왕실을 거느렸었던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황실은 멀리 떨어져 있던 유럽의 두 수도 사이 가문 친지들의 모습을 수시로 초상화로 그려서 주고받는 것으로써 안부를 확인했고 차후 서로 결혼하게 될 어린 새 후손들의 모습을 미리 확인했다. 오늘날 벨라스케즈의 명작 알려져 있는 작품들 다수는 마드리드의 합스부르크 왕실 가족 초상화이고 그러하다보니 그의 대표작 다수는 스페인의 프라도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Diego Velázquez 『Infante Baltasar Carlos with a Dwarf』 1631–1632, Oil on canvas, 128 x 101,9 cm © Boston, Museum of Fine Arts

펠리페 4세 왕과 이자벨 여왕 사이서 태어난 2살박이 발타자르 카를로스 왕자와 난장이 궁정광대가 있는 2인 초상화. 펠리페 4세는 이 귀한 아들 초상화를 벨라스케즈에게 특별히 맡겨 그렸는데 베네치아파 르네상스의 거장 화가 티치아노의 색감과 구도에서 영향받은 흔적이 뚜렸하다. Diego Velázquez 『Infante Baltasar Carlos with a Dwarf』 1631–1632, Oil on canvas, 128 x 101,9 cm © Boston, Museum of Fine Arts

지금도 비엔나 국립 미술사박물관에 남아있는 벨라스케즈의 합스부르크 왕가 초상화 작품들은 마드리드 왕실에서 선물로 보내왔던 가족 초상화들이다. 벨라스케즈를 궁중화가로 간택한 스페인의 펠리페 4세의 50대 초엽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비롯해서,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의 초상, 오늘날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펠리페 4세 왕의 딸 인판타 마가리타 공주의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초상화 연작들중 네 편을 통해서 벨라스케즈는 왕실 내 신하들간의 권모술수, 30년 전쟁과 경쟁 권력들로부터의 도전과 위헙, 병약하던 어린 왕자와 공주들의 건강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호사롭게 잘 다듬어지고 차밍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으로 왕가 일가족과 친지들을 그려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가 찬연하고 말끔하게 그려낸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 초상화들의 이면엔 이 가문에 드리워질 암울한 미래가 감쪽같이 감춰져 있다. 벨라스케즈의 고용자 겸 후원자이던 펠리페 4세는 실은 스페인 왕국 최후의 왕이된 비운의 인물이었다. 포르투갈이 스페인 영토에서 분리독립해 나가고,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저마다 세력을 키워가자 한때 유럽의 주도 세력이던 스페인 왕국은 점차 군사적, 외교적, 문화적 권력 무대에서 종결을 순간을 맞고 있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마드리드 합스부르크 가문은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후계자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권력 분산을 막고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6백 여년 집권기 동안 가족친인척끼리만 결혼하는 근친혼인을 고집한 끝에 발생된 유전질환과 건강적 장애가 그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엄격한 위계체제와 근엄한 분위기라 내리누르는 궁정에서 해소 역할을 했던 궁정 광대. 벨라스케즈의 눈에 비친 광대란 실없음, 어리석음, 광기를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Diego Velázquez 『The Buffoon Juan de Calabazas (Calabacillas)』 c. 1638, Oil on canvas, 106 x 83 cm © Madrid, Museo Nacional del Prado

엄격한 위계체제와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가 내리누르는 궁정에서 긴장 해소 역할을 담당했던 궁정 광대. 벨라스케즈의 눈에 비친 광대란 실없음, 어리석음, 광기를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Diego Velázquez 『The Buffoon Juan de Calabazas (Calabacillas)』 c. 1638, Oil on canvas, 106 x 83 cm © Madrid, Museo Nacional del Prado

마드리드 합스부르크 왕실 최후의 왕 펠리페 4세가 왕권 후계자 생산을 간절히 기다리며 새로 태어난 왕자와 공주들을 비엔나 합스부르크 왕실로 혼인시켜 대권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펠리페 4세와 첫 아내 이자벨 여왕과 오랜 노력 끝에 탄생한 첫아들 발타자르 카를로스는 안타깝게도 16살 나던 해에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열 살 난 어린 소년의 발타자르 카를로스 초상화와 펠리페 4세가 간절히 기대했던 왕권후계자 아기 펠리페 프로스페로의 초상화는 비엔나 합스부르크 왕실에 보내 결혼을 제안하기 위해 특별히 벨라스케스의 손으로 그려졌다.

발타자르 카를로스의 누이이자 첫 딸 마리아 테레사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결혼시키는 것으로서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의 갈등을 잠재웠다. 펠리페 4세의 둘째 부인 마리아나 여왕과 낳은 인판타 마가리타의 2세, 5세, 8세 때의 초상화들은 장차 레오폴트 1세 황제가 될 비엔나 합스부르크 황태자에게 일찍부터 결혼을 제안하기 위해 보낸 맞선용 초상화였다.

번뜩이는 독창성과 독특한 스타일이 폭발했던 17세기 유럽문화 황금기 바로크 시대, 궁중화가 벨라스케즈는 과연 회화를 재정의한 거장 화가의 대열에 설 만한가? 비슷한 시기 로마에서 활동한 카라바죠의 격정과 파격적인 시각, 스페인 출신의 바로크 거장 주르바란의 강렬한 영혼성, 인간조건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표현한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의 깊이와 승화력, 베르메르의 고요하고 잠잠하되 애상적 시적 감성은 벨라스케즈의 회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허나 초기 시절 그가 즐겨 그렸던 ‘보데고네스(bodegones)’ 혹은 주방 정물화 그림들 중에서 『물장수(Waterseller)』 에 나타난 대담한 화면 구도라든가 유럽 미술사상 가장 아름다운 뒷모습 여성 누드라 불리는 『화장하는 비너스(일명 로커비 비너스)』 같은 작품은 마네 같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새로운 화면구성법을 구축하는데 영감을 주었을 만하다. 그런가하면 20세기 영국서 프란시스 베이컨은 벨라스케즈의 초상화 속 숨막히는 격식을 표현주의로 재해석해 초상 속 모델들을 해방시켰다.

Diego Velázquez 『Infanta margarIta』 (1651–1673) In a WhIte dress, c. 1656.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다섯살난 마가리타 공주. 이 초상화는 비엔나 합스부르크 황실에 사시는 할아버지 페르디난트 3세 황제께서 보시라고 보내진 손녀 초상화였다. 거울에 반사되어 반대방향으로 서 있는 이 모습은 『시녀들』 그림에 재활용되었다. Diego Velázquez 『Infanta MargarIta』 (1651–1673) In a WhIte dress, c. 1656.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궁중화가 벨라스케즈의 평생 목표는 왕실 위계 속에서 승진을 거듭하여 작위를 받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독이 베네치아파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를 깊이 흠모했는데 특히 티치아노가 평생공로를 인정받아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 카를 5세로부터 작위 수여받은 것을 부러워했다. 실제로 벨라스케즈는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659년 필립 4세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고, 그 흔적은 그 유명한 그림 『시녀들(Las Meninas)』(프라도 박물관 소장)에 빼곡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화가 자신의 자화상에 빨강색 십자가로 기록되어 있다.

미셸 푸코의 책 『사물의 질서(Les Mots et Les Choses)』(1966년) 서론의 상세한 분석대상이 된 이래 무수한 학자들 사이의 논쟁의 주제가 된 그림 『시녀들』은 궁중화가로서 성취감에 찬 디에고 벨라스케즈의 자족한 자아를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겨놓은 자랑스런 최종 이력서였다. 커리어리스트 디에고 벨라스케즈는 더도덜도 아닌 궁중 화가였고, 그의 그림은 오로지 그의 후원자 만을 위한 것이었다. 《벨라스케즈》 전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에서 2014년 10월28일부터 2015년 2월15일까지 열린다. Images courtesy: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